MSV. LETTER
지금까지 MSV를 제작하면서 만난 한 분 한 분들의 스토리가 인상 깊고 디자인을 하는 데 큰 영감을 주었지만, 특히  TED에서 <시각장애인을 포용하는 디자인>으로 강연을 진행했던 크리스 도우니 Chris Downey와의 인터뷰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현지 시간에 맞춰 1시간가량 열띤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포용력 있는 디자인에 관하여 전맹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느꼈던 그의 생각 속에는 깊이 있는 통찰이 담겨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인터뷰의 일부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아래 글은 MSV<Job>호 크리스 다우니 인터뷰를 편집하여 제작되었습니다.


글 김병수 ㅣ 매거진 MSV 발행인
통역 ㅣ박형배
사진제공 ㅣ 돈 포그 스튜디오
TED 크리스 도우니 <시각장애인을 포용하는 디자인>  

TED 이후로 강연도 많이 있으셨을 텐데요. 요즘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나요?

최근에는 워털루대학 안과 연구소의 개조 공사, 워싱턴주립대 시각 장애인 학교 신축 공사에 참여하고 있어요. 또한 샌프란시스코 공립 도서관의 *음성 책 및 점자 센터(Talking Book and Braille Center) 개조 공사와 위스콘신에 있는 비영리 기관을 위한 제조 센터 설립 등에도 참여 중에 있습니다.
*음성 책 및 점자 센터(Talking Book and Braile Center)는 프린트된 책자를 읽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서비스로 음성 파일이나 점자로 된 책, 매거진 등을 제공한다.

상당히 많은 일들을 진행 중이시네요. 이 모든 일을 동시에 하고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현재 건축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는데요. 프로 젝트 내에서 제 역할은 실제 시각장애인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건축가로서의 직업적 경험을 더하여 디자인 프로세스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로 프로젝트 관리와 디렉팅을 진행하고 있고 직접적인 프로덕션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흥미로운 프로젝트들을 많이 해오신 듯합니다.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제겐 모두가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인데요. 그 중 특별히 2016년 완성한 샌프란시스코 *라이트하우스 (Lighthouse for the Blind and Visually Impaired)가 생각납니다. 이곳이 특별했던 이유는 제가 시력을 잃은 후 이 단체를 통해 재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08년 이후 많은 일들을 함께 했었죠. 라이트 하우스의 CEO가 시각장애인이고 직원의 절반 이상이 아예 보지 못하거나 어느 정도의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센터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굉장히 깊고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어요.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for the Blind and Visually Impaired)는 1902 년에 설립된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영리 조직으로 북미에서 가장 큰 규모이며 다양한 재활 프로그램과 전문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중요한 청각경험 디자인


그렇군요. 예를 들면 어떤 부분들에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시각장애인들은 청각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특히 청각 경험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먼저 간단히 설명을 드리자면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장소 여기저기를 이동하면서 소리를 통해 건축을 ‘듣기’ 때문이죠. 이걸 에코 로케이션 Echolocation이라고 부릅니다. 입으로 소리를 내거나 손가락을 까딱까딱하거나 아니면 지팡이의 소리 등이 공간으로 퍼져나가지 면에 부딪혀서 다시 돌아오는 걸 듣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통해 문이 어디에 있는지, 복도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죠.

라이트 하우스의 사운드 랩을 통해 처음으로 공간에서의 음향 분석과 설계를 진행하는 어쿠스틱스 디자이너 Acoustics Designer 와 함께 일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굉장히 풍부한 실험을 거쳐 공간 디자인을 할 수 있었죠. 특정 소리가 건물 안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디지털 기기를 통해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었고, 사용될 건축재료가 바뀌거나 그 모양이 바뀌었을 때 소리가 어떻게 변할지도 가늠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상호작용에 기반한 청각 경험을 세심하게 설계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이 깊이 투영된 인상 깊은 결과물이었습니다.


시각을 잃은 것이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나요? TED 영상을 보면 2008년에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회상하셨죠. 특히 시력을 잃었지만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2008년 이후 당신의 철학이나 건축가로서의 비전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좋은 질문이네요. 저는 커리어 내내 건축가로 일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제 중요한 업무 중 하나에 접근성 이슈가 포함되어 있었죠. 1990년 이후 미국 장애인 법인 ADA(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에 따라 접근성이 건축설계에서 의무가 되었습니다. 사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그런 요구사항이 그전에도 이미 존재했었지만 그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에 가까웠고 저 또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를 가지게 된 이후로 건축가로서 우리의 디자인이 사람들의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접근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디자인합니다. 접근성을 고려한 디자인을 기존의 공간에 어떤 ‘제약'이 걸린다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게 됩니다. 까다롭더라도 접근성 관련 규제들과 포용력 있는 디자인의 법칙들을 따르는 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훨씬 편리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사용자를 거스르게 하지 않는 것이죠. 이런 생각은 제가 시각장애를 가지기 전까지는 절대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디자인한 보행로는

도시에 더 풍성한 경험을 전달합니다.


접근성을 중점에 두고 디자인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배제되었던 소수를 위해 디자인을 했을 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잠재성이 굉장히 많죠. 보통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중점으로 디자인했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TED에서 시각장애인들을 고려한 도시 디자인을 이야기 한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장애를 가진 소수를 위한 디자인을 도시설계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고 일을 진행할 때 실제로 훨씬 디자인적으로도 풍성하며 보행자들에게도 친절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자동차를 이용하고 많이 걸어 다니지 않는 평균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도시를 조성한다면 풍성한 도시 경험을 전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 승하차에 적합한 환경이 되겠죠. 하지만 도시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저처럼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고, 유아차를 끌고 있는 사람도 있고, 노인도 있어요. 다양성의 총집합이죠. 풍성한 경험을 전달하는 도시를 디자인하기 위해 직접 발을 땅에 딛고 걸으며 시각장애인들이 어떻게 걸어 다니고 도시를 이용할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훨씬 더 통합적이고 풍성한 도시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면 일단 운전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무인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진 그렇겠죠. 따라서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남들보다 많이 걷게됩니다.요즘은 차량 공유앱들이 나오면서 기존의 대중교통수단에 비해 즉각적으로 활용이 가능한 교통수단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도시를 생각할 때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 ‘보행자 우선’이 되어야 합 니다. 보행자가 도시를 걸어 다니기 위해 인도는 적절하고 편안한 지보는것이죠.보행로의넓이,폭,길이 등을 휴먼스케일Human Scale에 맞게 검토하고 또한 차량들이 너무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합니다.도시 안에서 보행경험을 하고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죠. 눈으로만 보는것이아니라, 코로 냄새를 맡고 적절하게 소리를 들을 수있는 환경도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선 전통적인 도시의 개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즐거움과 기쁨을 위한 디자인,
어떻게 하면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포용력 있는 디자인을 하기 원하는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 능력을 가지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렇지만 단순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깊은 이해를 가지고 몰입해 보는 수준까지 가야 합니다. 물론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상상하기란 쉬운 게 아니죠. 하루 종일 눈가리개를 한 상태로 생활을 해본 후 내가 시각장애인의 삶을 경험해 봤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그걸 해봤다면 여러분은 ‘두려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디자인은 ‘두려움’을 위한 디자인이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접근성이라는 아이디어는 그것보다 훨씬 더 풍성합니다. 거기에는 ‘즐거움'이란 개념도 존재합니다. 어떻게 하면 ‘즐거움과 기쁨'을 위한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 빌딩과 공원과 도시 여기저기에서, 볼 수 없거나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어떻게 말을 걸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접근성 디자인은 단순히 접근을 허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긍정적인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깊은 수준의 이해가 필요할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깊이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견이나 선입견들을 깨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장애로 인한 불편함에 집중하는 디자인이 아닌 그들이 가진 능력의 긍정적 측면을 보는 디자인을 할 수 있습니다.

7월 13일 발송 예정드렸었는데 하루 미루어진 점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정기적으로 꾸준히 발행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Our philosophy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가치는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지속가능한 가치를 위해 디자인합니다. 우리는 디자인의 역할이 심미적인 것뿐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에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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