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코치' 서민규 인터뷰
2020.07.04 | 구독하기 | 지난호보기 

 
K E Y W O R D
#콘텐츠  #커리어  #생산자
 

"까놓고 말하면정규직이 된 적이 없어요창업 3비영리 1광고회사 9개월이 끝이었어요."
서민규는 절박함이라는 단어를 자주 입에 올렸다. 돌아갈 길이 없었기에, 손에 든 것으로 어떻게든 만들어가야 했다고. 그때부터 남의 생각에 시중드는 일을 그만두었다고. 3권의 전자책. 1권의 종이책. 선택은 비범했고, 결과는 탁월했다.

'콘텐츠 코치' 서민규에게 '정체성'에 대해 물었다.


'콘텐츠 코치' 서민규
명함에 콘텐츠 코치라고 적혀 있네요.

작가는 많잖아요그 너머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책을 내고 작가로 끝나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했거든요그래서 스스로의 역할을 코치로 만들어갔습니다.
 
 
만들어갔다고요?

롤모델이 곤도 마리에에요자신만의 정리 비법을 곤마리 메소드라는 콘텐츠로 만들었죠. ‘곤마리 컨설턴트’ 과정은 몇백만 원씩 내고도 들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해요공인할 자격은 누가 부여했느냐고요콘텐츠가 대중을 설득했고대중이 권위를 부여했지요.
 
저는 스스로 코치하는 심정으로 콘텐츠를 쌓아왔어요아주 절박한 마음으로 바닥부터 차근차근 성장했고요제가 저를 코치해왔기 때문에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콘텐츠 코치'로 커리어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처음의 감정을 '절박함'이라 표현하시는군요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해지네요.

일반적인 커리어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어요까놓고 말하면정규직이 된 적이 없어요창업 3비영리 1광고회사 9개월이 끝이에요.
광고회사를 나와서 제 손에 들린 것들을 돌아보는데이것으로 커리어로 못 만든다면 콘텐츠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나를 지킬 무언가가 절실했거든요.

당시에 사내 동아리나 비영리 활동가들을 상대로 에버노트 강의를 해왔었어요그 내용을 어떻게든 모아서 전자책을 냈지요.


<에버노트 생각서랍 만들기>라는 책이지요?

맞아요. 뭐가 있어서 만들었다기보다 '만들어야 하니까어떻게든 한 거였어요.
 
 
만들어보니 어떻던가요? 

콘텐츠가 있으면 취업에 유리할 줄 알았어요그런데 막상 만들고 보니 메리트가 없더라고요회사는 정해진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하잖아요그런데 저는 창업비영리광고회사강의콘텐츠… 모양이 많다보니 팔 자르고 다리를 잘라 그 자리에 맞춰야만 하더라고요.
'내가 CEO여도 나는 거른다!' 생각하고 보니돌아갈 커리어가 없었어요그래서 콘텐츠를 커리어로 만들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 밖에 없었지요.
 
 
'만드는 행위'가 주는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했어요.
... 소비자에서 콘텐츠 생산자로 삶을 전환해내신 거죠.  


돌아갈 커리어가 없어서 콘텐츠로 커리어를 만들었다니비범한 생각이네요다음 콘텐츠가 중요했겠어요.

맞아요첫번째 콘텐츠가 기록의 당위성에 대한 에세이였기 때문에두번째 콘텐츠는 실용성에 중점을 두어 집필했어요덕분에 반응이 좋았고요.

그다음부터가 중요했어요이것을 어떻게 커리어로 만들까. 스타트업이 Product-Market Fit을 맞추듯내 콘텐츠에 맞는 시장을 찾아야 했어요그때 대학이 눈에 들어왔고요. 대학생들이 필수품처럼 노트북을 사용하지만, 기록은 중구난방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록 관리 툴로써 에버노트를기획 툴로써 워크플로위를 강의 콘텐츠로 만들었어요대학에 직접 전화를 돌리고 제안하여 기회를 만들었고요.

2018년에 고려대에서 첫 강의를 하고그 후로 여러 대학에 설 수 있었어요작년에는 처음으로 대기업에서 강의했어요그 경험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지요.
 
 
어떤 경험이었길래 남다른 의미가 있었나요?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더라고요커리어는 물어보지 않고요대기업에서 이게 통한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영역에서 통하겠다고 느꼈어요.
 
 
콘텐츠가 커리어로 작동하는 구조를 확인하신 거군요. 전통적인 커리어와 비교할 떄, 콘텐츠 커리어 만이 갖는 차이를 느껴본 적 있나요?

'퇴사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였어요퇴사를 고민하는 분들로부터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내 꺼인 듯 내 꺼 아닌 내 꺼 같은 회사'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프로젝트도 하고결과물도 내고고과도 있지만이력서 한 줄로 치환되는 거 이외에는 진짜 내 것이 아니라고요.
그게 정체성 문제와 연결되어 있더라고요. '이 명함 아니면 나는 뭘까.' 커리어와 정체성 사이에 공백이 있는 거죠.
 
반면에 저는 명함도 없었어요그렇지만 뭐라도 하나 내 이름으로 만들고 나니까 정체성 전쟁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돈과는 거리가 멀어도중요하잖아요정체성이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정체성이 확실한 사람으로서 민규님은 그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전했나요?
 
'만드는 행위'가 주는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했어요소모적인 행위를 할 때와 생산적인 행위를 할 때 느끼는 기여감이 다르잖아요회사 생활에서 소진감을 느낀다면남은 에너지를 조금씩이라도 모아 무언가를 생산하는 일에 써보길 제안했어요저 또한 전자책을 만드는 행위를 하면서 활력이 생기는 변화를 체감했으니까요.
 
 
어떤 반응이 돌아오던가요?
 
생산하는 활동이 내 삶에 들어왔다라는 후기가 가장 인상 깊었어요.
유튜버를 시작하신 분도 있어요에버노트 강의를 듣고 독서 노트를 정리하기 시작한 분이었지요그것을 또 영상으로 풀어내신 거예요구독자가 2만 몇천 명이나 되어요책을 소비하기만 하던 소비자에서 콘텐츠 생산자로 삶을 전환해내신 거죠.


'어떻게든 만들어야 했기에' 만들었고, '어떻게든 커리어를 쌓아야 했기에' 쌓아왔던 서민규의 3년. 필사적으로 만든 전자책 3권은 종이책을 쓰는 암묵지가 되어주었다. <회사 말고 내 콘텐츠>는 최근 2쇄를 찍었다.


양보할 수 없는 '나'
만드는 행위 이전으로 돌아가 볼게요. 사실 첫 번째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에버노트 강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강의는 어떤 계기로 하게 된 건가요?
 
비영리 조직에서 일할 때, 혼자 에버노트를 잘 쓰는 사람이었어요하루는 동료가 사내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에버노트 강의를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뭔가를 준비해 알려주는 경험을 했어요. 5명을 상대로 했는데, 반응이 괜찮았어요.
 
좋은 반응을 등에 엎고 WISDOM이라는 플랫폼에 에버노트 강의를 올려보았어요. 반신반의하면서요. 그런데, 월드비전의 사내 동아리에서 불러준 거예요! 너무 신기해하면서 갔는데, 그때 '강사님'이라는 소리를 처음 들었어요. 그 경험이 작지만 큰 계기가 되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계속 강의를 여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물론 그다음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요.
 
 
왜 그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절박하지 않았거든요. 조직에 속해 있을 때였으니까요. 그렇지만 강의를 더 잘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었어요.
비영리 섹터에는 디지털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분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1인 활동가, 비영리 조직 등에 무료로 강의를 들어달라고 요청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해갔어요. 누군가 내 강의에 반응을 해주니까 그 반응이 좋아서 노력한 거지만, 그 이상은 없었던 거죠.
 
 
그럼 반대로 여쭤볼게요. ‘절박함에 더욱 촉을 세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책 <지적자본론>을 읽었을 때요. 책에서 지금은 제안의 시대라고 말을 해요거기에 콘텐츠를 대입해보면 정말 잘 들어맞더라고요그래서 제안하는 경험과 제안받는 경험 모두를 놓치지 않으려고 촉을 세웠어요.
물론 커리어 없이 해왔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빈약해요촉도 빈약할 수밖에 없고요그래서 오히려 더 다양한 제안에 반응해 왔던 거 같아요장기적으로 영양가 없는 경험일지라도뭐든 해보려 노력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에버노트에 기록되어 왔겠지요?
 
맞아요에버노트에 항상 적고 있어요벌써 2000일가량 매일 써왔어요저 자신을 잘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요몇 년 전 기록을 돌아보면서 '그때 이렇게 했나?' 분석하기도 하고반추하기도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진짜 해야 하는것은 무엇일까?


에버노트를 그 정도까지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링크’ 때문이에요. 2000개를 링크로 분류해놓으면 쭉 살펴보는데 몇 초도 안 걸리거든요.
에버노트 책을 쓴 것도 링크 때문이었어요우리가 링크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익숙해도링크로 지식을 정리하는 행위는 익숙하지 않았거든요그래서 링크 중심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에버노트 생각서랍 만들기-실전편>에 썼어요.

요즘은 노션이 잘 해주고 있지만요.
 
 
그러고보니 노션 콘텐츠를 만들 생각은 해보셨는지 궁금하네요.
 
노션이 한창 뜰 때주변에 노션으로 콘텐츠를 만들려는 분들이 많았어요하지만 저는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에버노트야 사용하면서 하루 날 잡아 뒤집어보는 경험이 있었으니 애착이 갔지만노션은 아니었으니까요.

콘텐츠를 만드는 거야 할 수 있지만…… 외주 같은 거 있죠느낌이뭔지 아시겠나요?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군요.
 
정확해요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요.
덕분에 깊이 고민했어요나의 것을 한다고 시작했는데또 남의 것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진짜 해야 하는것은 무엇일까?” 고민한 결과가 바로 세 번째 콘텐츠 <생산적인 생각 습관>이에요. 콘텐츠를 생산하며 나에게 생긴 '습관'을 말해주는 것이 가장 나다운 콘텐츠라고 생각했거든요.

 
<나만의 콘텐츠를 시작하는 다섯 가지 질문>이 떠오르네요첫 번째 질문이 바로 "양보할 수 없는 ''가 존재하는가?"였지요.
 
제가 만일 저 상황에서 노션 콘텐츠를 만들었더라면, '돈 버는 나', 혹은 '될 거 같은 것을 선택하는 나'를 좋아하는 거였겠지요?

양보할 수 없는 '나'에 대해서는 저도 한마디로 정리하진 못해요. 다만 항상 질문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끊임없이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양보할 수 없는 ''는 그 질문을 통해 구체화 되어 가니까요


내 콘텐츠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서민규는 다섯 가지를 묻는다. 양보할 수 없는 '나', '지금' 손에 쥔 것, 해결하고 싶은 '문제', 조합과 확장. 질문 하나하나에 그의 궤적이 묻어난다. 콘텐츠에는 제법 베테랑이 된 지금도 그는 처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물으며 나아간다. 관련 포스트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혼자 해왔기 때문에 함께를 꿈꾸며
<회사 말고 내 콘텐츠>2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앞선 3권의 전자책과 비교할 때, 종이책을 만드는 과정은 무엇이 다르던가요?
 
출판사와 협업했다는 점이 달라요. 전문가의 빨간펜에 무지막지하게 까여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일부러 혼자 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혼자 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마추어리즘으로 했던 부분들이 있었어요. 전문가와 협업을 해보니 그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좀 더 프로페셔널하게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 더 나은 협업을 위해 무엇을 더 연마해야 할 지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확실히 '혼자'의 과정이 많았겠네요.
 
너무 혼자 하긴 했죠. 한참 <회사 말고 내 콘텐츠> 원고를 쓸 때는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은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패스트파이브나 헤이그라운드와 같은 공유 오피스를 선호해왔어요. 우연히 생기는 상호작용을 기대하면서요. 코로나19는 예상 못 했지만요.
 
 
네트워킹에 대해 여쭙고 싶어지네요. '커리어가 쌓이지 않으면 네트워크는 빈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빈곤함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나요?
 
페이스북을 계속했어요. 사실 그것밖에 할 게 없었어요.
대신에 페이스북으로만 아는 사람들을 분석하는 게 저의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했어요.
 
 
분석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었나요?
 
예를 들어 내가 알고자 하는 사람이 10년간 블로그를 했다, 그러면 10년간의 포스트를 다 봤어요. 혼자서 모든 것을 하다 보니 나는 어디쯤 있는지를 짐작하기 어려웠거든요. 그렇게 파보았던 분들이 수십 명이 됩니다.

그분들이 저를 아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지만 오프라인 모임을 열면 가요. 가서 저를 드러내요.


콘텐츠는 온라인에 업로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미래의 협업을 위해서라도요.  
 
 
앞서 말씀하신 분들은 민규님 보다 앞서간 분들인 거 같네요.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는 어떻게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나요?
 
매일 같이 에버노트에 기록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만난 사람을 기억하고 싶다, 이 사람이 신기하다 할 때는 human lab이라는 태그를 붙여서 저장해둬요.
 
장기적인 네트워크는 여전히 고민이지만, <회사 말고 내 콘텐츠>를 통해 만든 인연들을 잘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 사람과 fit이 맞겠다'는 것을 어떻게 감각하시나요?
 
그 사람이 써놓은 것을 전부 다 읽어봐요그 사람이 뭘 읽는지도 세심하게 보고요그러지 않으면, 반의반도 모르고 만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같이 한다고 해도 전제가 매우 다를 수 있잖아요? 차근차근 확인해 나가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들고요. 무슨 회사 대표, 어디 어디 출신 이렇게 말하면 알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 사람이 지금까지 해온 경험과 아카이브를 살펴봐야지요.
 
그래서 저는 무조건 콘텐츠는 온라인에 업로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미래의 협업을 위해서라도요.

 

소비자가 아닌 '생산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콘텐츠와 관련해 요즘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왜 한국 콘텐츠는 한국에만 머물러서 박터지게 싸우는 걸까.’ 직업상 외국 콘텐츠를 많이 살펴보는데한국 콘텐츠들이 확실히 깊이가 있어요. 왜 스타트업이 마켓 사이즈를 이야기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세계가 점점 평평해지고, BTS의 팬이 전 세계에 있고밀레니얼의 문제는 어디서든 비슷하게 발생하잖아요콘텐츠를 삶에 영향을 끼치는 기술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90년생이 온다>가 세계적으로 작용하는 콘텐츠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지요그런 의미에서 한 번에 영향을 끼칠 콘텐츠’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곧바로 아마존에 갈 수 있는 최단 경로의 콘텐츠를 말이에요.


엄청난 콘텐츠가 될 거 같네요.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요.

작년 말에 벤자민 프랭클린의 전기를 봤는데, 그 사람은 출판업을 했거든요? 주 정부의 조폐 사업권을 따오기도 하고, 수 십 가지 필명으로 이 잡지 저 잡지에 기고를 하기도 하고, 직접 잡지를 만들기도 했어요. 1700년대는 지금보다 가능성이 적은 시대였잖아요? 뭘 해볼 수도 없을 때인데 엄청나게 다양한 걸 시도했던 거지요.

그에 비해 지금 우리는 소스가 무궁무진하잖아요. 생산 도구, 환경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고요. 그런데 상상력은 훨씬 못 미치는 거 같아요. 좋은 콘텐츠, 프로덕트가 많아지면서 소비자로 만족하기도 쉬워졌고요.


생산자로 들어서기 좋은 환경이 구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생산을 넘보지 못 하는 이유가 뭘까요?

우선 너무 바빠요. 바쁘다는 이유로 콘텐츠를 뒷전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요. 
빠르게 생산자로 전환한 사람들이 시류를 타고 커가는 걸 보면서 '저것은 저 사람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많고요.

저는 그런 분들이 하루라도 빨리 소비자가 아닌 생산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앞당기는 일을 하고자 해요. 콘텐츠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이니까요.
더 많은 분들이 자기만의 콘텐츠를 통해 기회를 만들고, 삶을 전방위적으로 펼쳐가셨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양보할 수 없는 '나'가 도무지 잡히지 않는 사람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원래 저는 줏대도 없고좋아하는 것도 없었어요대학 전공도 친구가 권유해서 들어갔고군대 가기 전까지는 서든어택만 했었어요.

주관이 뚜렷했기 때문에 뭘 선택한 게 아니에요선택했기 때문에 주관이 뚜렷해져 갔어요 

우리 삶에 선택지가 많다 보니 오히려 시작하는 걸 주저하게 되잖아요그런데 아주 작게라도 선택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다 보면주관은 만들어지더라고요.
그러니 우선 선택하시길 바라요제일 괜찮은 안을 선택해서 주관을 만들다 보면양보할 수 없는 도 점점 뚜렷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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