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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이 온다
그들은 우리가 기피하는 저임금 노동을 한다. 그들은 우리가 먹는 먹거리를 생산한다. 그들은 우리가 사는 집을 짓거나 청소한다. 그들은 우리가 입는 옷을 만든다. 그들은 우리의 가족을 돌본다. 그렇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침묵 당한다. 언제든지 그들이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한다. 때로 그들은 죽음으로써 세상에 알려진다. 우리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이주민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노동력으로 온다. 이 노동력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 때만 사회에서 자리가 생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철저하게 노동시장이라는 세계에서, 경제적 이윤이라는 목적으로 도구화 된다. 본국에서 그들이 받은 교육과 인간관계 등이 모두 단절된 채로 그들은 오직 국적으로 존재가 읽히는 노동력이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존재할 자격은 법에 의해 제한된다. 내국인의 시각으로 그들은 존재가 '불법'인지 '합법'인지를 감시당한다.
제조업이나 농업 분야의 노동자로 오기도 힘든 경우, '신부'가 되어 온다. 노동시장의 성불평등은 이주 여성에게 노동자로서의 문보다 신부로서의 문을 더 열어 놓는다. 외국인 노동자라고 했을 때 혹시 어떤 얼굴을 떠올리는가. 여성은 결혼제도 속에서 재생산 노동을 하지만 이 노동은 모두 부불노동unpaid labor이다. 자국 여성들이 점점 거부하는 가부장제의 여성 착취 노동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 국가의 여성에게 이전된다. 여성의 노동은 원래 보이지 않았기에 결혼 이주 여성의 노동도 이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여성에게는 결혼이 곧 노동의 세계이며 신부는 사실상 노동자 되기다. 그러나 노동-노동자가 아니라 결혼-신부라는 틀 속에서 결혼이주여성의 노동자성은 더욱 더 보이지 않는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의 78% 가량이 남성이라면 결혼 이민의 81.5%는 여성이다. 비자의 형태로 사람을 보면 노동(남성)/결혼(여성)으로 성별화 된 이민이다. 이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남성은 공적 영역으로 이주한다면 여성은 사적 영역으로 이주하면서 책임지지 않는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된다.
결혼 이주 여성은 한국 남성과 시부모를 위한 돌봄 노동을 수행하고 한국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역할을 맞는다. 오늘날 우리의 돌봄은 가족제도 안에서는 결혼 이주 여성에게, 가족 제도 바깥에서는 여성 이주 노동자에게 맡겨졌다. 돌봄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부산물로 전지구적으로 나타나는 여성 노동 착취를 통해 만들어졌다. 동유럽 여성들은 서유럽에서, 동남아 여성들은 일본, 홍콩, 싱가포르, 한국에서, 남미 여성들은 북미에서 저임금으로 돌봄 노동을 수행한다. 이주의 여성화feminization of migration는 오늘날 이주의 중요한 현상이다. 결혼 이주 여성은 가부장제의 보이지 않는 재생산 노동이 국가와 국가 사이를 이동하는 현실을 증명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여성은 '노동자'로 보이지 않는다. 남성은 노동자로 여성은 신부로 인식한다. 한국에서 '베트남 신부'는 결혼 이주 여성을 가리키는 하나의 관용적 표현이다. '신부'라는 호명 속에서 실제로 이 사회가 이주 여성의 노동에 보이지 않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은폐된다.
노동자와 이주민의 삶, 재개발 지역 등에 관심을 보여온 추유선의 작업에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자들의 밥과 집이 종종 등장했다. 이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삶의 조건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 그의 시선이 머물기 때문이다. <우정과 환대의 예술제>, <이주민 예술제> 등에 꾸준히 참여해온 추유선은 타자와의 관계맺기, 무한한 환대의 가능성을 고민한다. 경제의 관점으로 이주민을 도구화하는 사회에서 최근 몇 년 간 추유선의 작업은 이주민들에 대한 환대에 집중되었다. '사랑의 기술'(2021)과 'Apple'(2020)에서는 공통적으로 이주민과 함께 먹는 행위가 등장한다. 먹이고, 나누는 이 행위는 환대의 표현이다. '그들'과 '우리'의 분리가 아니라 뒤섞이며 나눠 먹는다. 5년 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 <부채를 꼭 쥔 손>은 이러한 이주민의 현실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화두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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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 농장에서 깻잎 밭까지
근대 이후, 더욱 산업화 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 된 나라로의 이주는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이주민 담론은 이주민만의 문제인가. 오늘날 '외국인' 노동자 없이 '내국인'의 삶은 불가능하다. '로컬' 푸드라지만 이 땅의 노동자들은 이미 '글로벌'이다. 깻잎에, 미나리에, 파 한 단에도 외국인 노동자의 손길이 스며들었다. 그리고 오늘날 이주민의 얼굴에서 100년 전 조선인의 얼굴을 발견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하와이(당시 '포와'로 불렀다)로 이주한 조선 여성들의 사진이 남아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호놀룰루에서 찍은 조선 여성들의 단체 사진에서는 단호한 표정이 읽힌다. 또 다른 사진 속의 여성은 부채를 꼭 쥐고 있다. 이 사진은 추유선이 여성 이주민을 시대와 국가를 넘어 이어지는 존재로 바라보도록 영감을 주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하와이로 이주하며 사탕수수 농장과 파인애플 농장 등에서 가혹한 노동을 했다. 앞서 이주한 중국인, 일본인 노동자보다 더 저렴한 임금으로 노동하면서도 그들은 식민지 조선에서의 삶보다 더 나은 가능성을 꿈꿨다. 먼저 이주한 이 조선인 남성 노동자들과 사진을 통해 중매가 이루어져 하와이로 결혼 이주를 한 여성들을 '사진신부'라 일컫는다. 사진신부들은 한국에서 최초의 집단적 결혼 이주자이며 노동 이주자이다. 1910년에서 1924년까지 이러한 형태의 이주가 있었으나 1924년 미국에서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 입국 금지법을 만들면서 조선인의 합법적 이주는 한동안 끊겼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가족과의 이별을 감수하며 멀고 먼 땅으로 이주한 사진신부들이 하와이에 도착해서 마주한 현실은 사진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성과 혹독한 노동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에게 닥친 이 현실에서 오늘날 한국 땅의 결혼 이주 여성들, 이주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오늘날에도 결혼을 통한 이주는 저소득 국가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취적' 삶의 유형이다. 존 버거가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장 진취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듯이, 당시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들도 식민지 조선을 떠나 신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 했다. 남성 이주 노동자와 달리 여성의 이주에는 젠더 억압에 대한 저항이 포함된다. 이들은 본국에서는 종교적, 또는 여러 가지 문화적, 제도적 이유로 여성에게 주어지기 어려운 교육의 기회를 꿈꾸고 경제활동을 통해 가족을 돌보려고 한다. 특히 장녀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이주를 결심한다. '첫 번째 아이'는 이 점을 반영한 작품이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장녀들이 이동했다. 얼굴이 지워진 이 여성들은 조선인도, 베트남인도 될 수 있다.
추유선은 이미 '빨래 프로젝트' (2021)를 통해 이러한 사진신부의 이야기를 다룬 적 있다. 빨래는 당시 하와이로 이주한 여성들이 했던 주요한 노동 중 하나다.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 여성들은 빨래, 바느질, 백인 가정의 가정부, 사탕수수 농장 등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조선 독립을 위한 자금 마련에 힘을 보탰다. '빨래 프로젝트'에서 추유선은 144명의 사진신부 이름이 적힌 옷을 입고 빨래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부채를 꼭 쥔 손>에서 영상 작업으로 만나는 '빨래'(2022)는 이전의 '빨래 프로젝트'의 연장으로, 오늘날 한국으로 오는 이주 여성의 목소리까지 덧붙여 이주의 여성화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각해보도록 이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파인애플 농장에서 일하던 조선 노동자의 얼굴은 오늘날 한국의 깻잎 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20점의 소품으로 묶은 '사탕수수와 깻잎'은 이주 노동의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푸른 자연의 색은 날카롭고 길다란 사탕수수 잎으로 보일 수도, 작고 약한 깻잎으로 보일 수도 있다. 푸른 잎사귀 앞에 놓인 엉덩이 의자를 보는 순간 이것은 경관이 아니라 노동의 현장임을 깨닫는다. 이처럼 시대는 다르지만 여성 이주와 노동에 대해 계속 생각하도록 한다. '761700000 그리고 3199e+8'은 인천 항구에서 하와이 항구까지의 거리인 7617킬로미터, 다시 한국에서 베트남까지의 거리인3199킬로미터를 의미한다. 이 거리는 이주민들에게 꿈을 현실화 하는 거리이다. 그러나 종종 이들의 꿈은 그 사이에서 현실이 아니라 초현실이 되어 버린다.
'일곱번째 아이'에는 일곱 개의 손이 보인다. 1970년대 서유럽에서 육체노동자 일곱 명 중 한 명은 이주 노동자였다. 이를 두고 시인 아틸라 요제프는 이주 노동자를 제 7의 인간이라 호명했다. 이 '제 7의 인간'은 인격체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오직 노동력만 제공하는 도구이다. 현재 한국의 임금 노동자 중에서 공식적으로 이주노동자의 비중은 4%가 채 안 되지만 중대재해 사망자의 11%는 이주노동자이다. 도구화 된 존재가 겪는 비극이다. 이주민들은 '손발노동'을 제공하면 그만일 뿐 사람으로 자리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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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이 사람이 될 때
전시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탕수수와 깻잎'에는 한국인이 읽을 수 없는 글자가 가득하다. 초록색 잎사귀 아래 배어나오는 언어들. 밥상 위에 놓인 깻잎 한 장 한 장에 노동자의 목소리가 스며들었지만 우리는 듣지 못한다. '사탕수수와 깻잎'은 노동자의 피와 땀의 결과물인 농작물이 그들의 언어와 결합한 모습을 통해 먹거리를 목소리로 전환시킨다. '우리'가 씹어 먹은 그 목소리.
추유선은 지속적으로 이 목소리들의 복원을 위해 베트남어를 노출시킨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사람은 이 언어 앞에서 단절을 경험한다. '진정한 공간'은 한국으로 결혼 이주한 베트남 여성의 기록과 과거 식민지 조선에서 하와이로 이주한 천연희의 기록을 각각 베트남어와 한국어로 나란히 배치했다. 다른 시대에 다른 언어로 적혔지만 '신부'로 이주한 여성 '노동자'의 고충이 공통적으로 담겨 있다. 이주 여성이 처한 현실은 이처럼 젠더 억압과 사회의 계층 문제가 가장 뒤섞인 장이다. 이들의 존재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결합한 착취를 보여준다.
'그들' 이주민들의 목소리는 '우리' 내국인의 여과지를 통과한다. 이주민의 노동의 결과물은 이 사회의 공기처럼 존재하지만 사람으로서 그들의 목소리는 제도 밖을 뚫고 나오기 어렵다. 이주노동자들은 죽어서 뉴스가 되어 알려질 뿐이다. 건설 현장에서, 설탕 창고에서, 물류 창고에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그리고 그들이 '시집온' 가정에서 주검으로 간신히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잊혀진다. 다시 또 다른 이주민이 그 자리를 채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 유지를 위해 한국 남성에게 제도적으로 젊은 이주 여성이 공급되며, 경제를 위해 노동시장에 이주노동자들이 공급된다. 이주민이란 영원히 늙지 않는 존재다. 오직 대체될 뿐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언제나 살아있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이주민이다.
제국주의는 얼굴을 바꿨다. 식민 지배를 하는 시절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글로벌'은 치밀한 방식으로 저소득 국가를 억압한다. 존재가 상품이 된다. 나아가 한국의 가족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저소득 국가의 가족을 해체한다. 새로운 식민체제다. 누구의 노동에 의지하여 자본이 형성되는가.
그렇다면 환대와 사랑은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아마도 노동력이 사람이 될 때 가능할 것이다. 환대는 조건부가 아니다. 존재의 자격을 묻지 않는다. 기능과 역할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사람의 자리를 비자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성원권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성원권은 법적 권리만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관점을 필요로 한다. 내국인 '우리'와 이주민 '그들'이라는 분리에서 벗어나 상호관계적 존재로 여겨야 한다. 많은 이주민들은 법적으로 귀화를 했더라도 문화적 편견으로 낙인을 경험한다. 일상의 환대는 견고한 문화적 낙인에 맞서는 적극적인 정치적 행동이다. 초록색 잎을 앞에 두고 엉덩이 의자에 앉아 이주노동자들이 보는 것,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집중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제서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인간의 얼굴이 보일 것이며, 들리지 않던 목소리가 들리고, 익명이었던 존재가 이름을 전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