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품 없는 추석 연휴' 도전기… "익숙지 않아 어렵네요"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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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26. 오후 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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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버리고… 어쩔 수 없이… / 출발 전 용기·거즈 손수건 등 준비 / 필요할 땐 잊고 물티슈·냅킨 사용 / 친정서 싸준 음식은 겹겹이 비닐 / 도전은 쉽지 않았지만… / 4박 5일 간 68개 일회용품 나와 / 대체용품 썼더라면 절반은 줄어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소원은 비셨나요? 추석은 꽉 찬 달만큼이나 풍성함을 선사합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가족을 만나 헛헛한 마음을 달래고, 한상 가득 차려진 명절 음식으로 배도 든든하게 채웁니다. 다만 이 같은 풍성함 이면엔 지구환경에 드리우는 그림자도 있다는 게 아쉬워요. 가족·친지 간 주고받는 선물은 각종 포장재를 남기고, 넉넉하게 준비했다가 남긴 차례 음식들은 냉장고를 전전하다 음식물 쓰레기가 되기 일쑤입니다. 지구에게 폐를 덜 끼치는 추석을 보낼 수는 없을까요? 고민 끝에 지난 21∼25일 ‘포장재 없는 추석연휴 나기’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미리 실토하자면, 이번 이야기는 실패담이자 반성문입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

하루 앞서 연휴를 맞게 된 저는 귀성길 짐가방에 포장재를 대신할 준비물을 챙겼습니다. 패브릭 가방 3개, 냅킨 대용 거즈 손수건 3장, 소·중·대형 보관용기, 그리고 텀블러 2개입니다. 텀블러 하나엔 물을, 또 하나엔 커피를 담았습니다. 

저와 남편은 양가 모두 차례를 지내지 않고, 모이는 식구도 많은 편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이번 도전이 너무 시시하게 끝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했답니다. 그러나 서울 집을 떠난 지 세 시간도 안 돼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허기를 달래러 들른 첫 휴게소에서 달랑 텀블러만 손에 들고, 음식을 담아 먹을 보관용기는 트렁크에 두고 내린 겁니다. 어포와 타코야키, 호두과자 등 평소 좋아하는 간식을 먹고 싶었지만 굵은 빗줄기를 뚫고 다시 차로 가는 게 귀찮아 보관용기가 필요 없는 꼬치를 집어듭니다. 만두를 사달라는 8살, 4살 두 아들의 손에도 꼬치를 들려줍니다. 문득 ‘식당에서 보증금을 받고 작은 식판을 대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잘 알겠지만, 요맘때 아이들은 인간이 도구를 쓰는 동물이라는 걸 자꾸 잊어버립니다. 꼬치에 꽂힌 어묵과 떡, 소시지를 굳이 조몰락거리며 먹다 손과 얼굴에 양념 칠을 합니다. 그제야 저는 거즈 수건도 차에 두고 온 사실을 깨닫고 판매대의 냅킨을 여러 장 뽑아 쓱 닦아줍니다.

남은 목적지까지 운전대를 잡기로 한 남편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더니 아이스커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졸음을 쫓으려면 텀블러에 있는 따뜻한 커피로는 안 되겠다나요. 플라스틱컵에 빨대와 종이홀더까지 빠짐없이 꽂힌 걸 보니 가슴이 쓰려옵니다.

정오를 넘겨 남편 고향인 전남 순천에 도착했습니다. 시댁 근처 대형마트에서 과일박스를 샀습니다. 골판지와 충격방지용 포장재가 과일을 위아래로 덮은 종이상자입니다. 택배용도 아닌데 이렇게 살뜰히 이중삼중 포장재를 두를 것까지야. 그러면서도 ‘그래도 부모님께 드릴 선물인데…’ 싶어 ‘보자기로 한번 더 싸주겠다’는 점원의 말에 ‘네’라고 대답합니다.

이후로도 ‘아, 맞다’와 ‘깜빡했네’, ‘어쩔 수 없지’를 되뇌는 ‘도전 실패’가 이어졌습니다.

저녁 외식을 하러 찾은 횟집은 상이 비닐로 덮여있었고, 이번에도 거즈 수건을 잊은 저는 물티슈와 냅킨을 뽑아 씁니다.

식사 후에는 시어른들이 맡아주는 ‘육아 찬스’를 얻어 우리 부부는 곧장 영화관람을 하러 갔어요. 집에 안 들르고 바로 극장으로 갔으니 텀블러, 장바구니가 있을 리가 없죠. 늦은 밤 시댁에 돌아온 우리 손에는 생수병과 노점 할머니에게 산 밤 한 봉지가 들려있었습니다.

‘포장재 없는 추석연휴’라는 말을 주워 담고 싶을 만큼 민망한 연휴를 보내고 다시 집에 돌아온 25일. 친정어머니가 싸주신 음식 보따리는 실패기에 쐐기를 박았습니다.

전과 열무김치, 송편, 강정, 청국장, 밤이 겹겹이 비닐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국물이 샐까, 냄새가 심할까 걱정스러운 마음과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모정이 보관용기로도 모자라 비닐봉지 11장에 담겼습니다.

◆마음 따로, 행동 따로

4박5일을 보내며 비닐 32장, 종이류 9개, 페트(PET) 3개, 저밀도 폴리에틸렌(LDPE) 2개, 기타 플라스틱 6개 등 총 68개의 포장재·일회용품이 나왔습니다. 과일상자처럼 포장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과 냅킨처럼 사용 후 바로 버린 쓰레기를 빼고도 이렇게 많습니다.

미리 마련해 간 대체용품의 존재를 깜박 잊어버리는 일만 없었더라도 비닐 사용은 절반으로 줄이고, 페트와 종이컵, 플라스틱컵 사용은 제로를 달성할 수 있었을 겁니다.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아무 의미 없는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폐기물 대란’이 벌어지기 1년 전인 지난해 4월, 저는 ‘제로 웨이스트 장보기’라는 제목으로 대형마트에서 포장재 없이 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세계일보 2017년 4월6일자 1·10면 참조>

장보기만을 목적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간 만큼 이번처럼 어이없게 까먹는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일주일치 식재료를 사는데 비닐, 폴리프로필렌(PP), 폴리에틸렌(PE) 등 각종 플라스틱류 42점을 포함해 총 55개의 포장재가 나왔습니다.

과일이나 채소를 보관용기에 담을 때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고, 회를 사려다 안내방송으로 책임자를 호출하는 일도 벌어졌죠.

폐기물 대란으로 일회용품에 대해 사회적인 반성이 일어난 뒤에도 한동안 눈에 띄는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간 텀블러 사용 습관을 들인 덕에 이번 연휴기간 일회용 커피컵 사용만큼은 많이 줄였습니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은 물론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커피전문점에서도 텀블러를 내미는 손이 어색하지 않게 됐습니다. 지난 22일에는 한 과학관을 찾았는데, 이곳에 입점한 커피매장은 텀블러를 쓴다고 하니 가격을 1000원이나 할인해줬습니다.

마트는 여전히 포장재가 넘쳐났지만 유제품 코너에서 우유팩 두 묶음을 띠지로 두른 제품도 눈에 띄더라고요. 여전히 비닐 소재라는 게 아쉽지만, 두 묶음을 봉지처럼 통째로 담던 것에 비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크기입니다.

환경부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는 묶음 상품이나 2+1 같은 증정 상품 상당수가 포장형 비닐 대신 띠지로 교체될 예정입니다. 일단 업계 자율에 맡기고 추후 패키지 비닐 포장을 금지할 거라고 하네요.

규제 완화를 이유로 풀어놨던 부분도 다시 강화됩니다. 정부는 재작년 화장품 수출에 걸림돌이 된다는 업계의 민원을 받아들여 포장공간 비율을 10∼15%에서 35%로 한시적으로 늘려줬습니다. 화장품 세트의 총 면적을 100이라고 했을 때 원래는 90만큼 제품을 채워야 하는데, 65만 담아도 되도록 과대포장을 허용해준 것이죠.

음료 포장 횟수 기준도 1회에서 2회로 늘어났습니다.

환경부는 내년부터는 완화 이전 포장 공간 비율과 횟수를 적용할 계획입니다.

이명박정부 당시 ‘소비자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규제에서 빠진 커피전문점 종이컵도 플라스특컵처럼 하반기 입법예고를 거쳐 매장 내 제공이 금지될 겁니다.

그러나 이번 제 경험에서 보듯 ‘진짜 변화’는 제도와 마음가짐을 생활화할 때에야 찾아옵니다. 다음엔 성공기를 쓸 수 있도록 심기일전하겠습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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