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숙 #꽃밥 #할머니

시사IN북 뉴스레터 #26

며칠 전 텔레비전을 돌리다 <6시 내 고향> 류의 프로그램에 눈길이 갔습니다. 시골집 부엌에서 쌀을 갖고 나오던 한 할머니가 생쌀을 오독오독 씹는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말하더군요. 가난했던 시절, 생쌀이 너무나 맛있었다고요. 첫 아기를 임신한 뒤 시누이 집에 갔다가 쌀독에서 남몰래 생쌀을 한가득 집어먹은 기억도 생생하다고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때 눈치 채고도 눈 감아준 시누이가 너무 고마웠다”면서요.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오늘 소개하려는 그림책이 생각났습니다. 요즘 그림책 읽는 어른들이 부쩍 많아졌다죠?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림책을 주제로 읽기 모임을 하는 동네책방도 적지 않다 합니다. 삶이 고단할수록 그림책이 건네주는 단순하고 소박한 메시지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모양입니다. 따뜻하고 개성적인 그림을 보고 느끼는 경험도 매력적이고요. 

강화된 거리두기 속에서, 쉽지 않은 삶 속에서 또 한 주 고단한 시간을 보냈을 님도 오늘은 밥 위에 소복이 피어난 작고 하얀 꽃들을 보며 내 인생에 힘이 됐던 한 끼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으시기를. 

💎 그림책을 뉴스레터 메인으로 추천한 것은 처음인데 어떠셨나요? 편집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언제든 말 걸어주세요. 하단의 좋았어요👍  별로였어요👎 중 하나를 클릭한 뒤 의견을 적어주시면 됩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꽃

   정연숙 글, 김동성 그림/논장 펴      

세상에는 예쁜 꽃이 참 많다. 예쁜 꽃 하나를 고르는 일은 무척 어렵지만, 가장 귀한 꽃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벼꽃이다. 〈꽃밥〉은 순희라 불리던 할머니의 일기를 통해 쌀과 살아온 시대를 그린다. 낟알이 조롱조롱 맺힌 푸른 면지를 넘기면, 할머니의 일기가 귀한 상차림처럼 한 장 한 장 펼쳐진다.

1964년 8월, 여름 햇살 뒤로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으려고 벼 사이를 뛰어다닌다. 순희는 이삭마다 핀 하얀 벼꽃을 보자, 갓 지은 쌀밥이 생각난다. ‘쌀 세 톨에 보리밥 한 톨’이라는 학교 구호가 있던 1970년대 시절을 지나, 순희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다. 순희의 어머니는 산모가 잘 먹어야 한다며, 미역국과 흰쌀밥을 지어준다. 꿀맛과도 같은 밥 한술을 뜨며 생각한다. 내가 먹는 밥이 어린 생명을 자라게 한다고.

순희는 아기의 이름을 벼의 꽃, 미화(米花)라고 짓는다. 쌀의 소중함을 익히 알고 있었던 순희에게 그 이름은 평생 품어온 이름이었을 거다. 순희가 엄마가 되고 미화가 자라 은진이를 낳으며, 생명이 삶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1990년대 수입 농산물 소비가 본격화하면서 농사로 삶을 이어갈 수 없었던 사람들과 귀농하는 2010년대 사람들을 보여주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 변화 과정 또한 보여준다.

볍씨에서 싹이 나 모가 되기 위해서는 엄마의 배 속처럼 부드러운 흙이 볍씨를 자라게 해야 한다. 곧은 줄기를 가지려면, 호수와도 같은 논으로 옮겨져 씩씩하게 성장해야 한다. 뜨거운 여름, 작은 벼꽃은 낟알을 맺기 위한 산모의 고통처럼 피어난다. 꽃을 피우지 않은 낟알은 존재할 수 없다는 듯 이삭 하나하나마다 분명하고 맑은 꽃을 피워낸다. 낟알이 여물어갈수록 벼는 고개를 숙이고, 가을걷이를 마친 논은 모든 것을 비워내며 숙연한 자세로 겨울을 맞는다. 벼의 한살이는 우리의 생과도 참 많이 닮아 있다.

할머니의 일기는 2018년 10월을 끝으로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다음 해에 필 벼꽃을 손녀 은진이와 함께 볼 수 없을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그럼에도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따뜻한 밥과 같은 온기가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일 거다.

하얗고 작은 꽃송이가 영글어 쌀이 되고, 쌀은 밥이 된다. 매일 먹는 밥이라서 밥에 대한 기억은 하나로 모을 수 없이 많다. 외할머니 집 대문을 열면 바다처럼 펼쳐져 있던 푸른 논, 이불 속에 넣어두었던 밥공기, 학교에 지각할까 봐 서두르는 내 입속에 넣어주었던 엄마의 투박한 김밥, 우리 아기가 처음으로 먹었던 흰 쌀죽.

시대가 바뀌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는 건, 밥 앞에서 숟가락을 들고 밥 한술을 뜬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밥을 제대로 먹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 고단함 때문에 밥 안에 핀 꽃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다. 오늘은 작고 하얀 꽃이 밥 위에 소복이 앉아 있는 상상을 보태며, 밥 한 공기를 야무지게 비워야겠다.

김지혜(그림책 서점 '소소밀밀' 대표)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가치의 모든 것 
마리아나 마추카토 지음
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 

“어디에서 가치가 만들어지고, 착취되고, 파괴되는가?” 

저자인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혁신 이론가’다. 그가 ‘가치의 모든 것’에 대한 책을 쓴 이유는, 현대 사회에서 가치 개념에 대한 혼란이 현실 경제의 문제점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 창조’는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인 데 비해 ‘가치 착취’는 자원을 이전하거나 거래하는 과정에서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가치 개념이 허물어진 최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가치 착취가 가치 창조의 가면을 쓰고 부를 쉽게 착취한다. 이에 따라 각 경제 주체들이 삶을 개선하는 가치 창조보다 ‘주가’로 표현되는 금융적 가치를 높이는 데만 몰두하면서 불평등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책 자세히 보기 >>  


 26일 동안의 광복
길윤형 지음, 서해문집 펴냄  

“이 책은 우리가 75년 동안 치르고 있는 ‘기나긴 형벌’ 같은 사후 정산이 시작되는 첫 3주에 대한 얘기다.”  

책을 쓴 계기가 재미있다. 통일외교 분야 기자인 지은이는 2019년 2월28일 북·미 하노이 ‘노딜’ 회담에 충격을 받았다. 우울을 다스리기 위해 읽은 책이 일본인이 쓴 〈일본의 가장 긴 하루〉. 1945년 8월15일을 다룬 역사 다큐였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자 안재홍은 ‘실망에 떨어져 들어가고 있는 민중이 기뻤던 것은 8월16일뿐이었다고 개탄하고 있다’고 했다. 안재홍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기 위해 지은이는 국회도서관에서 회고록과 당시 신문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8·15부터 조선총독부 청사에 성조기가 게양되는 9월9일까지 26일간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을 써냈다. 그 시기의 구겨짐과 뒤틀림이 한국 현대사의 기원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바이든과 오바마
스티븐 리빙스턴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버락과 조의 우정은 특별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젊고 지적이라 어휘를 정확하게 사용하려 애를 썼지만, 나이 많고 붙임성 좋은 백인은 화법이 대체로 충동적이었다. 2005년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버락 오바마가 초선 상원의원일 때였다. 2008년 두 사람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경쟁자로 만났다. 이후 역사상 가장 가까운 대통령과 부통령이 되었다. 그럼에도 바이든이 대선 출마를 저울질할 때 오바마는 격려조차 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의 논픽션 도서 편집자로 일한 저자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바마 행정부를 그린 역사서는 아니다. 집권 초기에 초점을 맞춰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고 차이를 극복해내는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이르지만, 바이든 당선 이후를 조금 예견하게 된다.  


스무 해의 폴짝 
정은숙 지음, 마음산책 펴냄 
 
“소설 속 인물들이 다들 잘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출판사 마음산책이 탄생한 지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420여 종을 냈다. 정은숙 대표는 어떻게 스무 해를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지 궁리하다가 문학 저자 스무 명을 인터뷰했다. ‘긴 시간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문학의 항구적인 가치를 옹호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태 속에 몸을 두되 더욱 문학적인 것에 마음을 쏟는 작가, 시인, 평론가’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신형철·김숨·백수린·손보미·김금희·조경란·하성란·정이현·백선희·김연수 등 작가 스무 명을 만났다. 당대의 작가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나볼 수 있는 행운으로도 읽을 이유가 충분한데, 각각이 털어놓는 ‘문학하는 삶’의 밀도도 높다. 이들의 답변 못지않게 질문 또한 다정하면서 예리하다.  

    <외롭지 않을 권리> 읽기 원정대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는 동거, 
그리고 높은 장벽의 혼인.
정녕 두 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걸까?

‘가족이 뭘까’ 
새삼 고민하게 되는 명절을 앞두고
<외롭지 않을 권리> 
랜선 읽기 모임을 시작합니다.

*9월21일부터 하루 한 장(챕터)씩 
2주간 읽어 나갑니다(빨간날 제외) 

 


신기한 일이다. 진주문고에 들어서는데 청소년들이 눈에 띈다. 교보문고를 떠올리면 알겠지만 규모 있는 오프라인 서점의 주 고객은 시간 있고 여유 있는 중노년층이다. 어린이·청소년은 부모와 함께 서점을 찾는 정도다. 지역 중대형 서점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혼자 또는 친구와 어울려 서점을 찾은 청소년들이라니…. 

동네책방과 함께하는 콜라보 프로젝트 
이번호에는 '진주 시민의 자존심' '서부 경남권 대표 서점'으로 꼽히는
경남 진주의 진주문고를 찾았습니다.

-청소년들이 바글대는 신기한 서점 (<시사IN> 677호) 중에서
*기사를 읽고 싶다면 사진을 클릭하세요

<시사IN>이 전국의 동네책방🏡 35곳과 함께 진행중인 책 읽는 독앤독🐶(독립언론×독립서점) 콜라보 프로젝트 페이지를 클릭해보세요. <시사IN> 지면에 새로 연재되기 시작한 다양한 책방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책방을 찾을 때도 책 읽는 독앤독 홈페이지를 참고하세요(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책방 문을 닫고 온라인 주문만 받는 친구책방들도 있습니다). 친구책방에 가면 [주말에 뭐 읽지]에 소개된 책📚과 <시사IN> 최신호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동네책방에서 시사IN 구독을 신청하실 때는 해당 책방에 지원금이 갈 수 있게끔 책방 이름을 꼭 함께 적어주세요).

시사IN북
book@sisain.kr

이번호 <시사IN> 뉴스레터 어땠나요?

<시사IN> 뉴스레터를 아직 구독하기 전이라면 여기
추천하고픈 친구에게 이 링크를 전달해주세요 http://book.sisain.co.kr/

💬받은 이메일이 스팸으로 가지 않도록 이메일 주소록에 book@sisain.kr를 등록해주세요.  
수신거부 원한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04506 서울시 중구 중림로 27 가톨릭출판사빌딩 3층 (주)참언론 TEL : 02-3700-3200 / FAX : 02-3700-3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