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조윤석] 인류의 2교시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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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는 낙이 없는 존재감 제로의 중학생 두 명 앞에 외계인이 나타나 인류의 미래를 건 탁구 경기를 제안하는 박민규 작가의 ‘핑퐁’이란 소설이 있다. 소설에서는 1000년에 한 번씩 외계인이 지구를 찾아와 지상에서 가장 왕따인 인간 두 명을 골라 탁구 시합을 벌이는데, 인간이 이기면 인류의 다음 1000년을 그들이 결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인류의 2교시’를 걸머쥔 중학생 둘은 천신만고 끝에 우주 최고의 탁구 고수 외계인을 이기게 되고, 그동안 자신들을 학대하고 괴롭힌 친구들과 희망 없는 인류를 그 자리에서 없애버릴지, 아니면 한 번 더 기회를 줄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소설의 결론이 심히 궁금하겠지만 직접 읽고 확인할 기회를 드려야 하니 여기서 멈춰야겠다.

지금 인류의 운명을 결정짓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가 우리나라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는 이 회의의 이름은 IPCC 제48차 총회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이며,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인간 활동에 대한 기후변화의 위험을 평가하고 대처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지금까지 전 세계 195개국의 기후 전문가들이 참여해 다섯 차례에 걸쳐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근거’ ‘미래에 대한 영향’ ‘정책 선택’의 세 분야로 나눠서 작성되는데, 과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들을 평가하고 종합해 해당 시점에서 최선의 견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IPCC 보고서는 강제성을 담은 정책 권고나 결정을 만들어내진 않지만 유엔기후협약 협상의 근거 자료로 활용되기 때문에 인류 전체에게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IPCC는 2007년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이번 송도 회의에서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 시 합의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로 낮추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담은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가 채택될 예정인데, 총회 기간 중 모든 회원국의 검토와 동의를 거쳐 최종 승인이 돼야 한다. 다행히 이 특별보고서가 채택된다면 오는 12월 2∼14일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릴 제2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서 각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자는 논의를 진행할 때 근거 자료로 활용될 것이다.

여기서 ‘다행히’라는 걱정 어린 부사를 굳이 쓴 이유는 특별보고서가 채택이 안 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어벤져’들을 보면 다들 지구를 지킨다고 하지만 입장과 방법이 서로 달라 같은 편끼리 쌈질을 하기도 한다. IPCC에 참가하는 195개국의 입장도 서로 많이 다르다. 기후변화 협상을 선도하며 가장 높은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는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의 유럽연합 27개국과 마지못해 따라가고 있는 비유럽연합(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러시아 등) 7개국, 가장 낮은 목표치를 제시하면서 기후변화의 역사적 책임론을 강조하는 중국 등 131개 개발도상국, 멕시코 스위스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한국이 속해 있는 상대적으로 높은 감축 목표치를 제시하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입장을 조율하려는 5개국,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을 거의 하지 않았음에도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아프리카 50개국, 39개 작은섬국가연맹과 저개발국가 그룹이 있다.

각국의 상황을 이렇게 나열해놓고 보니 이번 총회는 영화 속 ‘어벤져스’의 대결보다 스펙터클하고 험난해 보인다. 폭염도 지진도 쓰나미도 모두 영화 속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부디 ‘핑퐁’의 왕따 중학생들 손에 인류의 운명이 넘어가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조윤석 십년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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