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삶 앞에 님은 어떤 태도로 마주 서 있나요?

안녕하세요. 레터지기 수월입니다.😊
2023년 새해 잘 맞이하셨나요? 저는 하늘공원에서 일출을 보며 새해 첫날을 시작했어요.
붉은 태양 빛을 온몸에 물들이며 《나는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의 한 대목을 기도로 올렸습니다.

모든 존재에게 사랑을 보내며 기도합니다.
모두가 본래의 힘을 회복하기를
모두가 그들 자신과 이 세상을 치유하기를
모두가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님 본래의 힘으로, 삶을 믿고 나아가는 순간들로 올해를 가득 채우기를 바랄게요.

새해 첫 소울레터는 ‘좋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나누고 있는 단순한 진심 수수 님과 현우 님의 글로 꾸려보았습니다.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발자취만으로 영적인 삶에 대한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수수 님과 현우 님이 저에게 그런 분들입니다.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진실함’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원고를 보내주셨어요. 새로이 맺게 된 관계에 대해 진실하게 깊이 성찰하며 마주하는 한 사람의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단순한 진심 블로그에 <나의 결혼식> 글을 한 달간 연재했습니다. 이 글은 <나의 결혼식>의 가장 마지막 글입니다. 지난 글을 읽어보고 싶은 분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읽어보기)


나에게 글이란


촉촉하고 부드러웠던 하얀 장미 꽃잎이 바랜 종이색이 되어 바삭하게 말라 있다. 그새 한 달이 흐른 것이다.

한 달 전 나는 작은 결혼식을 했다. 겨울이 오기 전 아슬아슬하게 결혼식을 해낸 뒤 강릉으로 돌아와서는 한 달 동안 집에 콕 박혀서 매일 글을 썼다. 말라가는 부케 꽃잎을 곁에 두고서. 그동안 나뭇잎은 모두 떨어져 나뭇가지의 굵고 세밀한 윤곽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차분하고 고요한 정신과 흩어지지 않는 시선으로 나를 둘러싼 작고 비좁은 세계를 바라본다. 겨울은 글쓰기에 가장 적절한 계절이다.

‘결혼’이란 단어가 내 삶에 들어오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쓰고 남은 건 내가 가진 언어가 얼마나 가난하고 흐리멍덩한지에 대한 확실한 깨달음이다. 불안, 흔들림, 두려움, 모순을 표현하기에는 언어가 납작하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한 가닥씩 풀어내려면 얼마나 많은 단어와 고민하는 세월이 필요한 걸까.

글을 쓰고 있다 보면 가끔 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간신히 한 글자 한 글자 뱉고 있는 모습. 다들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데 나만 희미한 과거의 파편들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까마득한 뒤편에 멈추어 있는 것 같다. 왜 나는 흘러가는 과거를 내버려두지 못하고 문장에 영영 가두려고 애쓰는 걸까. 어째서 다른 사람들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 숨겨진 이야기를 끈질기게도 붙잡으려 하는 걸까. 

글을 쓰든 쓰지 않든 삶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바다의 물결처럼. 물결은 날카로운 바위에 쾅 부딪히고, 돌멩이 무리들을 만나면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낸다. 바람의 리듬에 따라 때로는 고요하고, 때로는 세차고,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무시무시하게 일렁인다. 해님과 달님이 서로 밀고 당기면 물결은 속절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나는 그 물결 위에 둥둥 떠 있는 나뭇잎 한 장이다. 나뭇잎 한 장은 물결보다 더 아무것도 아니다. 언제든 바위 어딘가에 처박힐 수도 있고, 날카로운 돌부리에 걸려 갈기갈기 찢길 수도 있고, 깜깜한 바다 깊숙이 가라앉아버릴 수도 있다. 나뭇잎은 물결 한 자락조차 어찌할 수 없다. 나뭇잎의 운명은 그토록 무력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휩쓸리고 부딪히는 동안에도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기 위해. 언어라는 자유롭고 답답한 도구를 사용해서 감각하는 모든 것을 눈앞에 쏟아낸다. 이것이 한순간에 나뭇잎을 구겨뜨리는 물결의 흐름에 대응하는 나의 방식이다.
‘나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엉망이지만 살아 있잖아. 이런 순간에도 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있잖아.’

결혼 이야기를 쓰면서 ‘아무래도 이 글은 나의 일기장에 숨겨두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짝꿍 현우의 아버지)은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나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아버님의 말을 듣고 아버님의 행동을 보면서 꼭 써야 할 무언가를 느꼈다. 아버님은 나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떠올리게 했다. 그 의문을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결혼 이야기는 속 빈 깡통, 그러니까 가짜와 다름없었다. 아버님을 빼고 쓴 결혼 이야기는 내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몇 년 전, 엄마 아빠 앞에서 진실과 거짓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던 때가 떠올랐다. 진실을 선택하면 더 이상 그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찬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거짓을 선택했다. 거짓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관계에 조금씩 조금씩 구멍을 뚫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구멍을 메우려고 노력해보았지만, 구멍은 채워지지 않은 채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처음부터 진실했더라면 어땠을까.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라 할지라도. 진실이 가져올 불편함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랬더라면 되돌릴 수 없는 구멍은 처음부터 없었을까. 

나는 내가 쓴 결혼 이야기가 가져올 수많은 해석들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엄마, 아빠, 어머님, 그리고 아버님께 이 글은 어떻게 다가가게 될까. 아버님 어머님과 이제 막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데 나의 글이 우리의 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 그들에게 나는, 글쓰는 나는, 아무래도 거북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이제 막 결혼했는데 일찍부터 불편한 관계가 되어버리고 마는 건 아닐까. 예쁨 받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미움받지는 않게끔 내 속사정은 일기장에나 몰래 간직하고 조용히 사는 게 좋은 선택일까. 

두려웠고 불안했다.
그리고 무서웠다.

그럼에도 쓰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 안에서 일어난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게다가 사실은 아버님이 진지하게 읽어주시길 바랐다. 내가 어떻게 보고 느끼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주셨으면 했다. 또 나는 언어가 있는 존재이며, 한 사람이 자신의 언어로 만든 세계는 어느 누구도 통제하거나 해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 주셨으면 했다. 그렇게 아버님이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앞으로의 관계에 나도 그도 진실하게 임하고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하기를 바랐다. 나, 고작 글 하나로 실현 불가능한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삶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족 이야기를 깊이 파고들어 쓰게 될 것이다. 가족은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가까운 타인이자, 늘 궁금하고 이해하고 싶은 대상이니까. 이제는 현우의 가족도 내 가족이 되었으니 아버님, 어머님도 글에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선택하게 될 것이다. 현실을 가릴 것인가, 아니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것인가. 그건 내가 거짓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진실하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같다. 나에게 글이란 삶 그 자체이니까.

만약 드러내길 두려워하는 부분을 공백으로 비워두고 누가 읽어도 불편하지 않은 환하게 빛나고 따뜻한 이야기만 쓴다면 가족 이야기는 이내 생명을 잃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일에 자신감과 재미를 잃게 될 것이다. 써야 할 것을 쓰지 않은 글, 교묘한 공백과 그럴싸한 거짓이 담긴 텅 빈 글은 읽는 이에게도 공허함을 줄 것이다. 그렇게 읽는 이는 글쓴이에 대한 신뢰를 거둘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모두 용기 내어 진실하게 썼고 내면을 냉정하리만큼 정확한 언어로 고백했다. 그들은 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른 채 오직 진실이라는 가치에 자신의 전부를 내던졌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글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고 읽는 이는 가슴이 뛰었고 작가 자신 역시 글을 씀으로써 진실하게 존재하는 장소 ―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일 것이다 ― 를 만들어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나도 그렇게 쓰고 싶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온전히 흡수하고 남김없이 배출하면서, 그리고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감당하면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수수(단순한 진심)
느릿느릿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 얼굴에 늘 미소를 띠고 있는 나무늘보에 반해 ‘안녕늘보씨’라는 이름의 북바인딩 공작소를 만들었고 7년째 수제 노트를 만들고 있다. 짝꿍 현우와 함께 ‘단순한 진심’이란 이름의 숙박 공간을 운영하기도 하고, 같은 이름으로 유튜브 공간에 삶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고 단순한 삶에 진심입니다》라는 책을 썼다. 좋은 삶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 여정을 글이든, 영상이든, 공간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누고 있다.

님이

삶을 사는 데 중요히 여기는 단 한 가지 가치가 있다면?

단순한 진심 현우 님의 추천 도서📚

📕 생각을 걸러내면 행복만 남는다
(노아 엘크리프, 이문영 역, 정신세계사)

생각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종종 걷잡을 수 없이 생각에 사로잡혔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생각을 멈추라’는 영성 서적들의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멈추라는 거야?’ 멈추려고 할수록 생각은 불어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멈출 수는 없지만, 생각을 믿지 않을 수는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여러 번, 깊이 이 책을 읽었습니다. 정신적인 고통을 느낄 때마다 ‘내가 어떤 생각을 믿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어서 ‘나는 왜 그 생각을 믿게 되었는지’, ‘그 생각이 왜 진실이라고 생각하는지’ 살펴보다 보면 더 이상 그 생각을 믿지 않게 되었고, 감정적인 고통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어둠과 싸워 이길 수 없듯이, 생각과 싸워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저 생각에게 먹이를 주지 않으면 될 뿐입니다.

생각으로부터 고통받지 않기 위해서 생각을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믿지 않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려준 고마운 책입니다.

📒 야마 니야마
(데보라 아델, 이문영 역, 침묵의향기)

몇 년 전 요가를 배울 때 선생님께서 제일 먼저 ‘야마’ 와 ‘니야마’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열 가지 지침이라고 하시면서요. 비폭력, 진실함, 훔치지 않음, 지나치지 않음, 무소유, 순수함, 만족, 자기 단련, 자기 탐구, 그리고 내맡김. 당시만 해도 각각의 지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어떤 책에서도 찾기 어려워 겉핥기식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이를테면 ‘훔치지 않는 것’의 의미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것이라고만 받아들이고 공부를 마무리 지었죠.
시간이 지나고 이 책이 출간되어 그 열 가지 지침을 처음부터 심도 깊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우리의 해석이 얼마나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훔치지 않는다는 건 단순히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는 걸 넘어서 타인의 기쁨, 지구의 생명, 자신의 고유성을 훔치지 않는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었습니다. 살아가는 일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혼란스럽습니다. 답 없는 인생의 선택들 앞에서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평화롭고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 표지를 클릭하면 자세한 책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소울 일지 #1

삶이란, 감정임을 깨달았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도 어느 작은 도시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입니다.
다음 소울레터가 제 마음에 방문하는 날은 1월 12일이 되겠네요. ‘112’라는 숫자가 저의 정체성과 같은 만큼, 온 마음과 진심을 다해 ‘나의 소울 일지’를 적어봅니다.

*

저는 입직 이후, 줄곧 직장 내에서의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뜻대로 되지 않는 환경들과 인간관계, 매일 마주쳐야 하는 끔찍한 단어들과 상황들, 감정 노동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홍일점 여성 경찰관으로서, 외딴 섬처럼 항상 동료들 사이에서 표류하는 기분과 그들과의 갈등 그리고 오해 속에서 많은 상처를 받기도 했지요. 저는 너무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불만족스럽지만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모든 것을 뭉뚱그려 무의식 속으로 억누르며 얻게 된 것은 결국 만성적으로 지속되는 불안, 우울, 상실감, 외로움, 공허함 같은 마음의 병이었어요.

특히 올해 연말은 사랑했던 연인의 이별 통보, 재정적인 문제, 타인에 대한 열등감, 자신감과 자존감 저하,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저 자신과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보며 많은 것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버겁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며 다 내려놓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올해 연말만큼 저의 결핍이 제 삶에 진득하게 물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남이나 상황 탓을 하거나, 아니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며 남이나 상황을 이해해보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낙관적인 마음을 먹어도 그때뿐, 가난한 마음은 항상 걱정과 괴로움을 껴안고 살며 나 자신과 내 삶을 비난했습니다. 과거가 보낸 후회와 미래에서 온 불안으로 얼룩진 마음은 항상 현존하지 못한 채로, 낮은 차원에서 살며 제 현실 또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며, 억눌린 것을 풀어내지 않으면 내 삶에 행복이란 영원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을요.

마음공부를 시작하며 저는 결국 삶이란 감정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감정을 인정하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날, 폭설이 내렸습니다. 세상이 아주 아름답게 보이는 날이었습니다. 타지에서 외로웠던 저는 정말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과 슬픔을 나누며 간만에 편안함과 든든함을 느꼈습니다. 장례식장 창문 너머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잠시 떠올랐다가 스쳐 지나가 버릴 뿐이었어요. 저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계속 억누르고 있는 상태였고, 또 다른 걱정과 분노 속에서 번뇌하고 있었으니까요.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하루도 지나지 않아 아버지와 심한 갈등이 있었고, 저는 예정보다 일찍 집으로 올라와 버렸습니다. 그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저는 모든 감정을 무의식 속에 억눌러 둔 상태였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기에 저는 아주 평화로운 상태였을 거예요. 저 스스로도 그렇다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러나 며칠 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저는 갑자기 터져 나오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장례식장에 앉아서 나누었던 가족들과의 대화, 그 편안함과 든든함, 폭설이 내렸던 풍경의 아름다움, 잠깐 들렀던 할머니 집에서 느꼈던 그리움과 슬픔. 그 순간이 너무 그리웠어요. 있는 그대로 느껴주지 못했던 그때의 감정들이 모두 걷잡을 수 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하면서 미칠 듯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그리움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충분히 느껴주지 못했던 감정에 대한 후회. 행복한 것을 행복하다 느끼지 못했고, 슬픈 것을 슬프다 느끼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

저는 주말에 일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눈이 쌓인 풍경을 마음껏 사진으로 찍었고, 부모님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영화도 보며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그날 밤에도 또 저를 힘들게 하고 비난했던 아버지에 대해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며 새벽까지 눈을 뜬 채로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을 되새겨 보기도 했고요. 잠든 엄마를 꼭 껴안고 오래오래 곁에 있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모든 순간에 저는 ‘행복하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습니다. 더 이상 그리웠던 그 순간들에 대한 감정 반응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진 몇 장이 마음속에 걸려 있는 것처럼 평온하고 잔잔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외로웠던 마음에 작은 새싹 하나가 돋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곧 나의 뿌리를 희미하게나마 인식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국 모든 감정이란 자신을 알아달라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행복하거나 기쁜 것, 혹은 반대로 힘이 들고, 고통스럽고, 밉고, 상처받았는데 억지로 억지로 ‘행복하다, 괜찮다, 감사하다, 잘 될 것이다’라고 말하면, 그 순간은 정말 괜찮아질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억눌린 감정은 무의식 속에 남아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더군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상이 평온해진 것은 아닙니다. 직장 동료와의 갈등이 심해졌고, 미움받으며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걱정할 일들이 연이어 생겨서 마음의 불안이 심해질 때도 잦았죠.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을 관찰하고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며 그것을 계속 말로 내뱉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여유를 갖고, 모든 일에서 감사와 사랑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엄마가 승진 선물로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책들이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거울 앞에 섰는데, 뿌연 거울에 비친 제 형태를 보니 또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모든 것이 힘들었던 거예요. 그렇게 터진 눈물은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으로 저를 이끌었습니다. 저는 따뜻한 샤워실 안에서 뿌연 연기들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고 심장의 파동과 어머니의 사랑도 있는 그대로 느껴보았습니다. 마음속에서 ‘모든 것이 사랑이다’라는 메시지가 저도 모르게 피어나고 있더군요. 어쩌면 감정을 억압하여 나타난, 존재에 대한 의심과 부정들을 저질렀던 나 자신과 천천히 화해하고 있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난한 영혼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네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헛짓거리야. 너는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가 그저 그렇게 죽을 거야. 그런 인생이라면 지금 관두는 게 어때?” 그러나 아직 제가 이름 붙이지 못했고 만나보지도 못한 어떤 존재의 목소리도 말합니다. “너는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어. 나를 믿어.”

2023년은 제 안에 있는 무한한 사랑과 가능성을 깨달으며 나의 존재 이유와 내 삶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뜻깊은 한 해가 되도록, 정신세계사의 책과 소울레터를 등불 삼아 차분히 제 길을 밝히며 걸어가야겠습니다. 제 영혼의 이야기를 들어준 소울레터에게 감사를 보내며 모두에게 사랑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수월이 추천하는 함께 읽으면 좋을 책 
《어느 경찰관의 사람공부》라는 책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경찰관’이라는 공통 키워드가 있기도 하지만😅 마음공부가 체화되면 어떤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생활밀착형 영성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에세이랍니다. (책 제목을 클릭하면 자세한 책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나의 소울 일지>는 님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가족, 친구, 연인, 일터, 우연히 맞닥뜨린 일 등 살아가면서 겪은 다양한 일을 통해 내면을 살피며 알게 된 크고 작은 깨달음 이야기, 마음공부를 하며 겪은 소소한 생활 속 이야기,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힐러라면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답장을 나눠요
⭐첫 번째는 좋아하는 일로 사업을 성장시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기. 두 번째는 비물질 차원 탐구하기(오래도록 명상을 해온 어느 시점에 명상 중 눈을 감고 있어도 선명하게 색이 보이거나, 어떤 장면들이 보이는 것을 경험하고는 두려움이 앞서 습관적으로 하는 명상을 중단하고 짧고 아주 드물게 명상을 해왔는데, 앞으로 나의 두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깊은 명상이나 유체이탈을 통해서 무한하고 신비로운 비물질 차원에 호기심을 가지고, 다양한 체험을 하고 싶다. 그리고 비물질 차원을 통해서 더욱더 이 3차원 물질 현실을 알아가고 싶다) 세 번째로는 더 많이 활동하기. 걷고, 더 자연으로 들어가 보내는 시간을 만들고,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것들을 만나고 경험하기.

⭐1. 그림책 출판 2. 가족들과 여행  3. 마음의 평온
이 세 가지의 “균형”을 잘 맞춰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

⭐2023년 새해 소망: 나 사랑하기, 타인 사랑하기, 모두 사랑하기

영상 추천

혼자라고 느껴질 때 하면 좋은 명상

오늘 나눈 두 글은 모두 내가 어떤 힘든 상황에 있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만나 세상에 드러내는 여정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때 외로움은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잠시 자리에 앉아, 고요함 너머에서 들려오는 가슴의 소리를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다음 소울레터는 2023년 1월 26일 목요일에 발송됩니다!
오늘 소울레터, 어떠셨어요?
여러분의 의견은 소울레터가 무럭무럭 자라는 데 큰 힘이 됩니다.
정신세계사
soul.letter.inner.world@gmail.com
서울특별시 마포구 성산로4길 6 2F 02-733-3134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