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호
(통권 95호) 2024. 4. 16
🎗️ 열린 세미나 🎗️


예술과 공통장 2부


4월 독서토론 세미나 시간에는 권범철 저자의 책, 『예술과 공통장』 후반부(3,4장)를 다룹니다.

『예술과 공통장』은 임금 노동이 숙명처럼 부여된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자율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에만 의존하는 삶에서 벗어나 기댈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 책은 그 다른 무언가를 공통장(commons)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가용할 수 있는 물질 자원이 거의 없는 도시에서도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공통장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요? 있다면, 과연 그것은 지금 어떤 모양과 상태로 우리 곁에 있는 것일까요? 혹은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세미나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열린 세미나는 관심 있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 4월 20일 토요일(19:30)

3장 전술 공통장: 오아시스와 문래예술공단

4장 전략 공통장: 창의문화도시와 서울시창작공간

에필로그: 도시 공통장과 '우리'의 삶



🙋‍♀️ 열린세미나 일정 변경 알림 🙋‍♀️
열린세미나 일정이 2, 4주 토요일로 변경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보다 원활한 세미나 진행을 위해 요일을 변경하게 되었으니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이번에 변경된 일정은 시범 기간을 거친 후 다시 조정될 수 있다는 점 미리 안내드립니다.


  • 일정: 4월 20일 토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카카오톡 <열린 세미나> 오픈채팅방
      🔮 참가방법
      
    👇  지난 세미나 갈무리 1  👇

     

    예술과 공통장 1부



     3월 30일 (토) 저녁 7시 30분



    📍 토론의 소주제
    1. 공통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양한 탐색들을 비교해 보며 살펴보자.
    2. 공통장과 예술실천의 관계를 살펴보자.

     1. 공통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양한 탐색들을 비교해 보며 살펴보자.

    ㄱ) "공통장은 하나의 대안적인 삶의 양식이다." - 13쪽입니다.

    "이 책이 도시의 예술가를 주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들을 도시에서 가장 가시적인 공통장의 생산자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 15쪽입니다.


    ㅈ) 우리가 지난번 열린세미나 시간에 "4.10 총선 국면에서 권력장의 재편 경향과 그 의미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는데 여기서 "권력장"이라는 말과 오늘 우리가 논의하는 "공통장"을 대비시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ㅂ) 책의 서론에서 공통장의 역사도 짚어주고 있었는데요, 우선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도시 공통장" 이고 곧, "스쾃"이라고 합니다. (17쪽)

    이 책은 "전략 공통장"과 "전술 공통장"을 대비시키고 있었는데요, "권력장"과 "공통장"의 대비는 앞 대비를 연결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궁금해집니다.


    ㄱ) "공통장은 공통인들의 상호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하나의 체계다." - 46쪽

    권력장은 권력자(권력을 욕망하는 자?)들의 상호 협력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하나의 체계일까요?


    ㅈ) 나온 용어들을 정리해 보면, 우선 스쾃은 공통장이 출현하는 한 형태 혹은 특수한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도시 공통장은 공통장의 역사적 형태였던 농촌 공통장(즉 공유지)과는 달리 도시에서, 특히 메트로폴리스에서 형성되는 공통장의 지리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술가가 "가장 가시적인" 공통장의 생산자인가는 예술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ㄱ) "이 집합적 주체, 공통재, 공통화는 서로 얽혀 공통장이라는 체계를 형성한다" - 46쪽

    권력장의 경우에는 '집합적 주체, 공통재, 공통화'라는 세 항목이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합니다.


    ㅂ)

    ㅈ) 이 책에서 전략과 전술은 미셸 드 세르토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라서 레닌의 것과는 물론 다르고 네그리·하트의 것과도 다릅니다. 그런데 전략공통장을 권력장과 유비해 보고 전술공통장을 우리가 말하는 공통장과 유비해 보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ㅂ) 네, 전술과 전략을 대비시키는 개념이 흥미로우면서도 의문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책의 1장에서 공통장에 대한 세 가지 논의를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1) 제3섹터로서의 공통장, 2) 반자본주의적 공통장, 3) 체계로서의 공통장.


    ㄱ) "전략이 전체를 조망하며 질서를 수립하는 지배 권력이라면, 전술은 지배적인 질서의 틈새에 출몰하는 운동이다." (162)

    "오아시스와 문래예술공단이 그렇듯 전술 공통장은 때로 기존의 질서와 대립하며 새로운 공통의 부를 사회적으로 생산한다." (162)

    "이와 달리 전략 공통장은 사회적으로 생산된 부를 흡수하거나 모의하는 행동 체계다." (163)


    ㅈ) 세르토는 전략을 권력의 기술로 이해하고 전술을 반권력(권력부재)의 기술로 이해합니다. 레닌은 전략과 전술을 사회주의 당의 실천적 목표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정세적 과제로 구분합니다. 네그리와 하트는 장기적인 삶정치적 지향인 전략은 다중에 의해 천명되며 당을 비롯한 일련의 조직형태들은 이것의 실현을 위한 전술적 단위로 이해합니다.


    ㄱ) 165쪽의 표입니다.

    ㅂ) 공통장에 대한 세 가지 논의는 각각 공통장과 자본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ㅈ) 공통장을 반권력, 권력의 부재로 정의할 때의 문제는 공통장을 가동하는 에너지를 다중의 자기역능으로 설명할 수 없고 권력에 대한 reaction으로만 설명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 책이 쓰고 있듯이 권력장이 공통장에 대한 reaction(흡수, 선별, 기각 등등)인데 말입니다.

     

    ㄱ) "이 책에서는 공통장의 작동을 흡수하거나 그 작동 방식을 모의하는 사회적 체계를 전략 공통장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것에 맞서서 그것을 넘어서는 대안적인 가치 실천을 통해 삶의 재생산을 추구하는 이들의 공통장은 전술 공통장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구분은 공통장을 계급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다. 그 관점에 따라 우리는 도시의 구성이 두 공통장의 힘 관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89, 90)

    "요컨대 '전략이 권력의 상정으로 조직'된다면 '전술은 권력의 부재로 결정된다.' " (160)


    ㅈ) 이 책에는 권력에 전략을 양도하면서 전술을 그것의 틈새활동으로 규정하는 공통장 소극의 관점(세르토)과 권력이 공통장에 기생한다는 공통장 적극의 관점이 공존하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ㄱ) "주의할 점은 전술이 권력의 부재로 결정된다고 해서 힘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존재 자체가 욕망하는 기계들의 산물,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욕망하는 기계들의 생산 과정”이기 때문이다. 스쾃-공통장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 이 욕망이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며, 생성하는 힘이다. 따라서 권력의 부재는 전략 주체가 전술 주체에게 기대하는 바람일 뿐이다." (161)

     

    ㅈ) 이 딜레마(권력이 부재하지만,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는 권력과 역능/힘을 이질적인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ㄱ) 373쪽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전략'도 말하고 있습니다.

    “공공 기금의 재전유와 공공시설의 방향 전환 같은 그 실천들은 비록 작은 사례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공적인 것 안에서 공통 영역의 확장이라는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권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실천이 아니라 지배 질서를 그 내부에서 ‘오염’시키는 아래로부터의 ‘전략’일 것이다.”


    ㅈ) 전략strategy은 어원적으로 "다중을 이끌기"(stratos+agein)를 의미하는데 이때 이끎을 다중 외부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다중의 자기지도로 이해할 때 다중이 희생자나 피동자가 아니라 자기조직화하는 전략적 주체성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strategy (n.)

    1810, "the art of a general, the science of war," from French stratégie (16c.) and directly from Latinized form of Greek stratēgia "office or command of a general," from stratēgos "general, commander of an army," also the title of various civil officials and magistrates, from stratos "multitude, troop, a division of the people; army, navy, expedition, encamped army," probably originally "a camping army," and meaning etymologically "that which is spread out" (from PIE *str-to-, from root *stere- "to spread"). With Greek agos "leader," from agein "to lead" (from PIE root *ag- "to drive, draw out or forth, move").


    ㅂ) 1장의 내용 중 네그리·하트의 공통장 논의와 데 안젤리스의 공통장 논의의 차이를 지적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는데요, 네그리·하트는 "공통장을 자본의 내부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데 안젤리스는 "공통장을 자본의 외부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이 책은 전자보다 후자의 논의를 더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권력을 전략에 양도하는 공통장 소극의 관점이 만들어졌다고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입장(공통장을 자본의 외부로 이해하는 입장)을 더 지지하는 데에는 네그리·하트의 낙관적 전망(65쪽)에 대한 비판이 일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관련해서 65쪽 두 번째 단락의 내용을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의견이 궁금합니다.


    ㄱ) 65쪽 두 번째 단락입니다

    "요컨대 삶정치적 생산은 삶 자체를 노동으로 포섭하지만 그 노동 과정이 자본으로부터 점점 자율적이고 협력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네그리·하트는 자본을 넘어설 대안이 자본 안에서 이미 마련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은 사적인 축적을 위해서는 공통화의 경향을 억압해야 하지만 그것은 생산성에 족쇄를 채우게 되므로, 자본은 점점 그 경향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러한 과정이 결국 다중multitude의 힘을 증대하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ㅂ) 내용 공유 고맙습니다.

     

    ㅈ) 저자가 세르토의 개념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개념이 갖고 있는 소극성(오염이라는 말이 표현하는 바의 미시저항성)에 일정한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지점으로 읽힙니다. 이 부분을 좀더 적극적으로 발전시키면 좋겠습니다.


    ㅂ)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네그리와 하트의 이런 관점을 비판하는 이유는, 공통장은 투쟁을 통해서만 구성되는 것인데 네그리와 하트의 관점은 이러한 투쟁을 통한 구성의 계기의 중요성을 약화(혹은 누락)시킬 수 있어서 비판하는 것으로 읽혔는데요, 어떨까요?

     

    ㅈ) 네그리·하트가 "제국의 외부(바깥)에 아무것도 없다"는 내재성 테제를 제시한 바 있지만 그들의 주장을 공통장이 자본의 내부에 있다고 보는 주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다중의 역능의 독립성을 강조하는"자율"주의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공통장은 자본 외부에 있다"라는 말로 해석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ㄱ) 71쪽 각주에서는 네그리·하트와 데 안젤리스의 관점이 꼭 대립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저자 자신은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데 안젤리스의 강조에도 불구하고 그의 관점과 네그리·하트의 관점이 뚜렷하게 대립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네그리와 하트의 저술에서 비물질 노동으로부터 코뮤니즘으로의 이행이 경향적으로 서술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서술은 특이성들의 집합인 다중이 그 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조건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획이, 맑스가 단일한 노동계급을 가능하게 한 조건이 무엇인지 밝힌 것처럼, 다중이 구성될 수 있는 조건을 밝히는 데 있다고 이야기한다." (네그리·하트, 『다중』, 154)

    "요컨대 데 안젤리스가 다중 내의 분할을 강조하면서 ‘우리’ 되기를 구성의 문제로 강조한다면 네그리와 하트는 ‘우리’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강조한다. 그 조건에 대한 강조가 구성의 문제를 저버리는 것은 아니므로 ― 무엇보다 네그리와 하트에게 다중은 경험적인 개념이라기보다 이루어야 할 하나의 기획(“다중 만들기”)이다. ― , 이것은 주안점의 차이일 뿐 대립되는 관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권범철, 「현대 도시의 공통재와 재생산의 문제」, 140~1)


    ㅂ) 네, 의견과 함께 살펴야 할 내용 공유 감사합니다. (어쨌든) 여러 공통장에 관한 논의를 비교하면서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는 바는 "공통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다"(83)라는 점인 것 같습니다.

     

    ㅈ) 공통장이 근원적, 우선적이고 자본장이 기생적 이차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볼 때 자본은 공통장의 외부에서 생성되거나 지속될 수 없습니다.

    질문은 오히려 자본이 아니라 공통장을 중심으로 자본이 그 내부에 있는지 외부에 있는지를 묻는 식으로 제기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ㅂ) 자본을 중심에 두고 공통장의 위상을 평하기보다는, 공통장을 중심에 두고 자본의 위상을 평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ㅈ) 자본은 인간 비인간 공통장을 포획, 종획하여 그것의 에너지를 전유하고 사유화하는 사회관계로 출현했기 때문입니다.


    ㅈ) 자본주의처럼 적대적인 사회에서 투쟁이 공통장의 생성, 유지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공통장은 차이들(특이성들)의 협력의 장인만큼 투쟁을 전제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즉 "공통장은 투쟁을 통해서만 구성된다"는 생각은 일면적이라는 의미입니다.


    ㅂ) 투쟁의 목적은 공통장 그 자체의 생성이라기보다는 공통장의 기생(혹은 침식)을 막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2. 공통장과 예술실천의 관계를 살펴보자.

    ㅈ) 비물질노동의 장이 공통장적 성격을 갖는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은 비물질노동이 착취되고 수탈되고 있다는 사회관계적 사실과 그것이 그러한 관계 속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내재적인 공통장적 성격으로 인해 그러한 관계와 갈등하면서 대안적 관계를 요구하며 그러한 관계를 위해 투쟁하게 된다는 사실을 혼동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예술이나 예술가가 일정하게 전제되고 그것 자체를 해명하는 데에는 지면을 별로 할애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결과 독자는 전업예술가를 예술가로 보게 되고 그들이 생산하는 작품을 예술로 보도록 이끌립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의 예술인회관 점거투쟁이나 "예술가들"의 문래동 집거와 공동생산 같은 것을 예술 공통장의 전형적 사례로 제시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비예술가들이 대거 포함된 촛불집회 같은 경우는 공통장 구성의 사례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되는 것 같아요. ^^


    ㄱ) 예술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예술가가 '가장 가시적인' 공통장의 생산자인지 그 여부가 달라진다는 말씀을 조금만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문의드립니다.

    "가사노동이 숭고한 사랑에 의한 행위로 여겨지면서 착취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노동은 예술=선의 지위를 획득하면서 착취된다는 점을 이야기한 바 있다." 301쪽

    책에서 가사노동과 예술노동을 연결한 부분들은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부분은 저자가 아래 세 번째 인터뷰 질문의 답변에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율평론 Now!] 『예술과 공통장』 권범철 저자와의 인터뷰


    ㅂ) 위 인터뷰에도 언급되지만, 가사노동과 예술노동을 연결하는 주요 고리 중 하나는 둘 다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누구나 뜻대로 전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통재"' 즉, "비임금 노동"(143)이라는 것이었습니다.

     

    ㅈ) 예술인간이 공통장의 가장 가시적인 생산자라고 한다면 문제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농업노동자, 물질적 노동자, 비물질적 노동자, 가사노동자, 서비스 노동자 등이 오늘날 공통장의 생산자로서 예술가보다 덜 가시적인 생산자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ㅂ) 책의 서론에 "예술은 현대 도시에서 각광받는 실천이다."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바꾸어 말하면 이 책이 주요 사례로 삼고 있는 "예술"은 "현대 도시에서 각광받는 실천"으로 주목받고 있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어쩌면 조 선생님께서 이야기하신 "전업예술가"라는 점이 현대 도시가 관심과 흥미를 두는 지점, 혹은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들(예술가들)은 각자의 욕망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하며, 집합적으로 삶을 재생산한다. 그들의 지향점은 더 많은 화폐 축적에 있지 않다."(143)

    이 외에 책에서 공통장과 예술실천의 관계를 서술한 대목들이 또 어디가 있을까요?

     

    ㅈ) 전업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도시공간이 산업적 도시공간에 비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들이 산업의 획일성을 벗어나는 상상의 세계공간을 창출하기 때문입니다. 임대된 공간을 이토록 매력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들 덕분에 자본/지주들은 지대차익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됩니다.

     

    ㄱ) 책은 전략 공통장이 "전술 공통장의 대안적 삶을 위한 가치들을 경쟁력 강화의 마디로 절합하려고 시도한다. 공동체의 협력을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저렴한 방편으로 전유하고, ‘대안적인 삶과 예술’ 활동을 도시의 스펙터클로 흡수한다."라고 씁니다.(165)


    ㅈ) 문래예술공단의 경우에 이 전업예술가들은 그곳의 토착노동자들이 예술인간으로 전화하도록 만드는 자극제로도 기능했습니다. 나중에는 함께 공동전시를 하기도 하고요.

     

    ㅂ) 이러한 과정도 공통장과 예술실천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사례로 볼 수 있을까요?

     

    ㅈ) 네 노동자의 예술가되기와 예술가의 노동자되기가 동시적으로 실현되면서 공통화가 이루어지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ㄱ) 이 책의 관점을 확장하면 말씀해주신 대로 촛불집회 참여자, 농업노동자, 가사노동자, 서비스노동자, 유튜브노동자, 플랫폼노동자, 게임하는 플레이보러(playborer), 길거리 버스킹하는 사람 등 모두가 도시를 포함한 현대 자본주의의 온오프라인 스펙터클을 생산하는 데에 참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ㅂ) 네 토착 노동자들과 전업예술가들의 공통적인 것이 발견되고 생산되었다. 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ㄱ) "인지자본주의적 다중은 경제인간과 예술인간의 이러한 혼성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주체성이다. 그래서 다중의 경제활동과 예술실천의 무대는 노동과 거의 동의어로 된 삶 그 자체이다." (조정환, 『예술인간의 탄생』, 338쪽)


    ㅈ) 현대의 (농촌을 포함한) 메트로폴리스 공간을 공통장과 권력장이, 공통화와 사유화가 갈등하고 투쟁하면서 발전하는 공간으로 이해할 때, 공통화의 작업을 하고자 하는 예술가, 예술인간 공통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좀 더 쉽고 분명하게 상상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겨레] ‘주민 협업전시’ 앞둔 문래동 예술촌 작가들


    ㅂ) 예술 실천은 곧 공통화의 실천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공통화하지 않는 예술가도 있으니, 예술인간과 예술가는 만날 수도, 이별할 수도 있는 개념인 것 같습니다.

     

    ㅈ) 어제 모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보니 1층을 반려견을 위한 공간으로 할애하여 개들의 놀이터를 만들어 두었더군요. 몇 마리의 개들이 그곳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반려견을 키우는 것이 아니지만 자본은 재빠르게 그 경향을 파악하여 산업화하는데, 사람들의 반려견과 함께 하는 삶이 축적하고자 하는 자본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면서 도시공간이 달라져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ㅂ) 반려견을 위한 스타벅스라니, 어떤 공간일지 궁금합니다. 관련해 "투쟁하면서 발전"한다는 표현에서 과연 어떤 발전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세미나를 마칠 시간이 되어, 이 질문은 다음 시간에 제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ㅈ)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인지화로 말미암아 예술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예술가는 상대적으로 화폐 체계의 습격을 당하기 쉬운 위치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다음 시간에….^^

    👇  지난 세미나 갈무리 2  👇

     

    4.10 총선 국면에서

    권력장의 재편 경향과

    그 의미에 대하여

    2부



     3월 14일 (목) 저녁 7시 30분


     
    📍 토론의 소주제
    1. 연합정치의 대두 (더불어민주연합, 녹색정의당, 민주당/조국혁신당)
    2. 시민사회와 제도정치권
    3. 대의정치의 향방, 한계, 대안 (비례대표제와 선거제도개혁) 

     1. 연합정치의 대두 (더불어민주연합, 녹색정의당, 민주당/조국혁신당)

    ㅈ) 우리의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1)비례대표의 비중이 너무 낮은 데다가 2)위성정당을 허용하는 구멍을 갖고 있지만 22대 총선에서 연합정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부분적으로 발견되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ㄱ) [경향신문] 준연동형 비례제? 선거제도 쉽게 풀어드립니다.

      

    ㅈ) 기본소득당과 사회민주당이 새진보연합으로 연합한 후에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당과 다시 연합한 것이 한 예이고, 녹색당과 정의당이 선거연합을 한 것이 또 하나의 예이며, 조국혁신당과 민주당은 이와는 다른 형태이지만 기본적 연대의식 하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ㅂ) 이번 22대 총선에서 각 정당이 연합정치를 추구하게 된 큰 요인은 무엇이라 볼 수 있을까요?

     

    ㄱ) [참여연대] [22대총선 정책과제2] 다당제·연합정치 가능케 하는 정치개혁 관련법 개정

    “선거제 협상 결과 가까스로 준연동형비례제가 유지되었지만 두 거대정당은 야합해 비례의석을 지역구 의석 확보를 위해 축소시킴. 국민의힘은 앞장서서 위성 정당을 창당해 소수정당에게 돌아갈 의석을 가져가는 반칙을 또다시 감행함. 민주당은 준연동형비례제의 취지를 살리겠다며 협상을 통해 소수정당에게 일부 의석을 나눠주는 연합정치를 시도하고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조치로 의석수 극대화를 꾀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위성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움. 녹색당과 정의당은 함께 녹색정의당을 창당했는데 새로운 시도이지만 선거용으로 급조된 정당이란 비판이 제기됨.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 등 선거를 앞두고 탈당한 세력이 중심이되어 창당하거나 조국혁신당처럼 정치권 외곽에서 있던 인사들이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정당들도 등장하고 있음. 현재의 정당과 정치인들의 총선 승리를 위한 다양한 시도는 총선에서 유권자의 선택으로 평가받을 일이지만, 위성정당의 경우 위헌 탈법 논란이 있고 유권자의 혼란을 부르는 등 폐해 등도 만만치 않음.

    앞으로의 정치개혁의 방향은 한국사회의 다양성이 국회 의석 구성에 반영되는 다당제 정치와 다양한 정치실험과 정책에 기반한 합종연횡을 가능하게 하는 연합정치의 토대를 만드는 방향이 되어야 함. 공직선거법은 상대다수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지지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경우라도 당선될 수 있어, 대통령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 당선인의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되고 정치적 안정성이 약함. 프랑스,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자가 없는 경우 1,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실시하고 있음.“

    위 보고서는 다음 여섯 가지를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1) 민주적 정당성 확대와 연합정치를 위한 결선투표제 도입

    2) 위성정당 방지법 제정

    3) 생활밀착형 정치 보장하는 ‘지역정당’ 설립 가능토록 정당법 개정

    4) 비례성이 증진된 선거제도 도입, 비례대표 확대, 의석수 확대

    5) 유권자 표현의 자유 확대

    6) 불법 정치자금 감시와 근절, 투명성을 확대하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

     

    ㅈ) 각각의 경우가 조금씩 다른 이유, 다른 조건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시민사회가 다원화, 다양화되어 한 두 정당에 의해 대의될 수 없는 복잡한 성격을 갖게 되었음에도 한국 사회를 양당체제가 지배하고 있다는 모순 속에서 연합정치가 실험적 방식으로만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ㅂ) [한겨레] 준연동형 아래 모였다가 흩어지자야권 선거연합정당 논의 점화

    작년 말 기사입니다. 위 기사에서는 '선거연합정당'을 '플랫폼 정당'을 지향하는 정당이라 설명하고 일단은 의석 확보가 연합의 주요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각자 이해관계가 다르지만, 연합 정당에 참여한 당들의 공통된 전제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라고 하네요.

    "플랫폼 정당"이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매일노동뉴스] 정의당 플랫폼정당안, 현실적인 진보정치 발전방안


    ㅈ) 민주당과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진보당이 연합한 첫 번째 연합의 경우 현 정권심판이라는 대의에 부합하는 다수의 의석 확보를 추구하는 연합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본소득당이나 사회민주당의 경우는 독자적으로 의석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조건을 고려하면서 비례에서의 연합정치를 추구했다고 생각됩니다. 21대총선에서 용혜인의 기본소득당의 선택했던 길이기도 합니다.

    이미 원내정당인 진보당의 경우는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지 않기 위해 지역구와 비례에서의 일정 지분을 약속 받은 후 연합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녹색정의당은 '준'이라는 관사를 붙였지만 더불어민주연합의 본질이 위성정당이라는 점 을 들어 비례연합에 불참했고 독자노선을 걸었습니다.


    ㅂ) 연합정당과 위성정당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한겨레] 민주 비례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공식 창당

    '위성'과 '연합'이라는 말이 나란히 쓰이기도 합니다.


    ㄱ)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니 위성정당은 원래 "위성정당(衛星政黨, 영어: satellite party) 또는 구색정당(具色政黨, 영어: bloc party)은 일당제 국가에서 정권을 잡은 수권 정당(여당) 외에 다당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존재하는 명목상의 정당이다. 위성정당은 체제를 지지하고 일정한 한도 내에서 이익을 추구하나 정권 교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며 정권 교체를 바라지도 않는다. 또한 지방조직이 없으며 당원 숫자도 극히 적다."(위키백과)라는 의미인데 대한민국에서의 비례위성정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시행 이후 거대 양당이 총선 시기마다 창당하는 비례 득표용 위성정당을 가리킨다…비례위성정당은 총선을 앞두고 창당된 후 총선을 치른 이후에는 모정당과 합당하거나 원 소속정당으로 복귀하는 방식으로 해산하는 가설정당의 형태"라는 설명이 나무위키에 있습니다.


    ㅈ) 이후 전개과정을 보면 더불어민주연합은 평등한 연합이 아니라 종속적 연합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전지예, 정영이, 임태훈 후보가 컷오프된 것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ㅂ) 큰 틀에서 연합의 성격이 평등하냐(=연합정당) 종속적이냐(=위성정당)의 차이인 것 같은데요, 현 상황에서는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위성정당 방지법"은 오히려 연합을 금지하는 법으로 작동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떨까요?

     

    ㅈ) 더불어민주연합의 시민사회 부분인 연합정치시민사회에서 추천한 후보들이었던 전지예, 정영이 후보는 '반미친북'을 이유로, 임태훈 후보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민주당에서 재추천을 요구해 컷오프 되었습니다.

     

    ㄱ) [경향신문] 민주연합 시민사회측 상임위원 전원사퇴···“임태훈 부적격은 차별


    ㅈ) 22대 총선에서 사용되는 위성정당이라는 말은 위의 위키백과 개념과는 달리 비례대표 위성정당을 의미합니다.

    2. 시민사회와 제도정치권

    ㅈ)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힘이 국민의 미래라는 비례대표위성정당을 만든 것에 대응하여 민주당도 '준'비례대표위성정당을 만들기로 했는데 그 비례대표위성정당 창당 과정에 시민사회와 3당(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진보당)이 연합한 것입니다.

    녹색당과 정의당은 더불어민주연합과는 달리 어느 정도 수평적인 연합의 성격을 가졌습니다. 정의당의 플랫폼이 녹색정의당의 플랫폼으로 이용되는 점에서 대등하지는 않았지만 말입니다.

    조국혁신당은 위성정당으로 출발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민비조->비조지민으로 나아가면서 독자적 비례정당을 실험한 중요한 사례로 생각됩니다.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의 준위성정당보다 더 높게 나오는 점도 주목할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ㅂ) 녹색정의당과 시민사회, 조국혁신당과 시민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ㄱ) [경향신문] 우리 그래도, 정치할까요?

      

    ㅈ) 조국혁신당은 비위성정당의 방식, 독자적 방식으로 비례정당이 성립될 수 있고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시도로 기록될 것으로 보입니다.

    시민사회라는 말은 다중의 정치공간에서 일정하게 조직된 부분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실련, 참여연대, 노동조합운동 등등으로 말입니다. 녹색정의당의 경우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조직, 전국여성농민회와 같은 농민조직 등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정당입니다.

    조국혁신당은 그런 식의 시민사회 조직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장식 씨 같은 사람이 이전의 정의당 출신이기 하지만 노동, 농민, 여성 등의 시민사회 조직이 조국혁신당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ㄱ) [뉴스타파] 22대 국회도 '종부세 납부 집단'이 과잉 대표, 국민 10


    "민주당은 당선안정권을 20번까지로 전망했다. 이에 절반인 10석을 민주당 몫으로 챙기고, 나머지 10석은 진보당·새진보연합·시민사회에 후하게 나눠줬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의 급상승세가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정당투표 지지율을 깎아내리면서 문제가 생겼다.

    민주당에 실망해 자칫 투표 포기로 이어질 뻔한 중도 지지층이 대안으로 조국혁신당을 택해 투표율을 끌어올려 파이가 커진다는 조국 대표의 발언 역시 일종의 ‘풍선 효과’를 간과한 듯하다. 조 대표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 지지층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으로 겹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지난 정권, 조국 사태를 겪으며 많은 중도 지지층이 민주당 지지를 거둬들인 것을 고려한다면 22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양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모멘텀도 없이 중도층이 갑작스럽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낼 이유는 더더욱 없어 보인다.”

    위 기사의 맥락으로만 보면, '시민사회 조직'과 '조국혁신당'은 경쟁하는 구도로도 느껴집니다.

    위키백과에서는 '시민사회'를 '자발적인 공공 및 사회 조직과 기관의 총체를 일컫는 말'로 정의하고 있네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활동소개


    ㅈ) 시민은 citizen으로 이해하는가 citoyen으로 이해하는가에 따라 시민에 대한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략적으로 말해 1980년대에 민중개념이 득세할 때에는 시민을 citizen으로 이해해서 비민중적 소부르주아적 경향의 집단을 지칭했고, 1987년 6월 항쟁에서 넥타이부대로 대표되는 시민사회의 투쟁력이 확인되고 경실련이나 참여연대가 조직되면서 프롤레타리아와 협의의 시민을 포함하는 프랑스혁명당시의 시뜨와엥에 접근하는 시민 개념이 득세하기 시작했고 민중 집단도 시민사회 속에 자기정립해 갔다고 생각됩니다. 민주노동당도 그런 과정에서 탄생했던 것으로 보이구요.

    그럼에도 시민운동 속에 오래된 구분이 여전히 실재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녹색정의당의 기반이 되고 있는 시민사회와 더불어민주연합의 기반이 되고 있는 시민사회는 일정하게 구분됩니다.

    녹색정의당이 노동, 농민, 빈민, 청년과 같은 전통적 민중집단 외에 여성, 기후, 소수자, 인권 등의 의제나 집단으로 관심을 넓혀가는 가운데 촛불에 결합했던 다양한 집단들이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대의정치의 향방, 한계, 대암 (비례대표제와 선거제도개혁)

    ㅈ) 현재의 제도 속에서 치러지는 선거는 양당정치의 새로운 재생산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ㅂ) 네 여러 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앞서 이야기되었듯 한계들도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ㄱ) [네이버 지식백과] 비례대표제

    "높은 비례도를 유지하면서 또한 ‘누구를 당선시킬 것인가’도 선택할 수 있는 비구속명부식(자유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유권자의 의사를 의회에 전달하는 수단으로서는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한겨레] 선거제도 개혁 ‘20년 흑역사양당 기득권에 개악·꼼수 얼룩

    ㅈ) 국민의 힘의 승리냐 민주당의 승리냐라는 양자택일적 게임이 무엇을 배제하는가는 반미는 안 된다, 친북은 안 된다, 병영거부는 무조건 안 된다는 더불어민주연합의 컷오프 사태 속에서 그 한계의 일단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생각됩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 후보의 당선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는데 위성정당 창당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소수정당 후보의 당선이 더 어렵도록 변질되었습니다.

     

    ㅂ) 말씀하신 '위성정당 창당'은 '비례 위성정당'과는 다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ㅈ) 비례위성정당을 말합니다. 비례대표의원의 수가 지역구에 비해 너무 적은 것도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지역구를 통해 재현되는 지역의제/지역의원도 중요하지만 전국적, 전지구적 의제를 제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지역에 구속되지 않는 비례대표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기후 같은 것은 지역적 문제에 한정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ㄱ) [민들레] 국힘이 위성정당 만들겠다면 법으로 막을 수 있을까


    ㅂ) 현 상황에서는 선거제도개혁에 있어서 "비구속명부식 비례대표제"가 지향점이 될까요?

     

    ㅈ) 어떤 대의제가 현재의 대의왜곡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려면 이 분야에서의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와 같은 상황변화를 고려하면 현재의 비례대표보다 더 많은 비례대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ㄱ) 지난번에 조정환 선생님께서 공유해주신 기사입니다.

    [경향신문] 비례대표제 개혁 어떻게 해야 하나

    “비례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제도적 해결책은 크게 보면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연동형 방식의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해서 득표와 의석 비중의 불비례성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례대표 의석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시도된 첫 번째의 실험은 위성정당 출현으로 실패했고, 동일한 제도를 유지할 경우 ‘위성정당 방지법’을 통한 보완입법이 필요하다. 두 번째 방법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하기 쉬운 비례성 증진 방법이며, 기술적 대표성의 측면에서도 할당제에 대한 적용이 더 용이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크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오히려 비례대표 의석 비중은 17대 56석 (18.7%) 이후 지역구 의석 확보라는 명분으로 끊임없이 줄어들었다.”


    ㄱ) 연동형과 준연동형의 차이는 아래 기사에 나옵니다.

    [한겨레21] 연동형, 준연동형, 병립형, 권역별복잡한 비례대표 선거제, 단칼에 정리하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에서 한 정당이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의 비율이 비례대표 선거에서 얻은 정당 지지율에 미치지 못하면, 정당 지지율에 맞춰 비례대표 의석에서 채워주는 방식. 예를 들어 전체 300석인 한국 국회에서 한 정당이 지역구에서 10석을 얻고 비례대표 선거에서 10% 지지를 받았다면, 지역구 의석과 전체 의석의 10%(30석)의 차이인 20석을 비례대표 의석에서 채워준다. 이 정당의 총 의석수는 30석. 현재 독일에서 시행하고 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완화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정당 지지율에 맞춰 비례대표 의석을 채워줄 때 그 정당 지지율의 일부만 반영하는 방식. 현재 한국에서 시행하는 방식으로 정당 지지율과 지역구 의석비율의 차이 가운데 절반까지만 비례대표 의석을 채워준다. 예를 들어 전체 300석인 한국 국회에서 한 정당이 지역구에서 10석을 얻고 비례대표 선거에서 10% 지지를 받았다면, 지역구 의석과 전체 의석의 10%(30석)의 차이인 20석에서 절반인 10석을 비례대표 의석에서 채워준다. 이 정당의 총 의석수는 20석.”


    ㅈ) 비구속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실험사례에 대한 보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의 정당공천제가 문제적인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문제를 공천에서 당원의견이나 국민의견을 더 많이 받는 방식으로 완화하려 하고 있지만 아직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ㄱ) "원래 선거는 추첨보다 민주적인 방법이 아니었다.“

    [시사IN] 선거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일까? [물리학자 김상욱의 격물치지’]

    "민심의 모든 지점을 반영할 수 있는 선거제도는 대선거구(권역별)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다. 유사한 제도를 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는 덴마크,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다.“


    ㅈ) 선거가 측정불가능한 것을 측정하려는 시도(그것도 "귀족주의적 시도")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결정권을 부여받고 있다는 점이 늘 의식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ㅂ) 말씀하신 측정불가능한 것은 소위 말하는 '민심' 으로 볼 수 있을까요?

     

    ㅈ) 네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민심"이 과연 "선출된 소수"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에 대한 주요한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선출되어 권력을 휘두르고자 하는 자들이 선출 대의제의 제도화를 필요 이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ㄱ) 이 인터뷰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책도 있습니다. 선거인가 추첨인가?』


    ㅈ) 의료제도의 발전이 그 효과만큼이나 자기치유능력의 쇠퇴를 가져온 것처럼 대의제의 발전과 보편화는 다중의 자기조직화와 자기정치화, 자기가치화의 힘을 쇠퇴시키는 것으로 작용해 왔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양자는 반드시 대립적인 것으로 볼 수는 없는데, 현재의 대표자들과 대표권력이 양자를 양립불가능의 방향으로 즉 서로를 대립시키는 방향으로 대의제 권력을 강화, 절대화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ㄱ) [한겨레] 민주주의 구하려면, 국민대표 추첨으로 뽑아야

    “국회의원과 시의원 등의 대표를 지금과 같은 선거가 아니라 보통시민들이 보통시민들을 추첨을 통해 뽑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ㅈ) 이런 식의 추첨 대의제는 다중의 자기조직화나 자기가치화와 대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꼭 추첨체 만이 아니라 다중의 자기조직화와 양립가능하고 상보적인 다양한 대의제의 형식들이 실험되고 개발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ㅂ) 일본의 모 기업에서 직원들이 추첨으로 돌아가며 경영자 역할을 하는 걸 보여주던 다큐멘터리도 생각납니다.

    💻
    진실연대자가 추천하는 강연

     
    『기준 없이』 출간 기념
    스티븐 샤비로 강연



    4월 20일(토요일) AM10:00-12:00
    ✏️
    진실연대자가 쓴 서평



    들뢰즈라는 바다,

    그리고 나름의 부표일 수 있는

    『대담』


     

    이윤하 (들뢰즈를 읽는, 심리상담사)

    사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책들은 허들이 높은 편인 것 같다. 읽고 좋아서 주변 누군가에 추천하면, 책을 좋아하는 그들은 보통 책을 샀지만, 앞장 몇 장이 펼쳐지는 것도 잠시, 책장으로 직행하여 더는 꺼내지지 않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나의 지인들은 오이디푸스에 익숙했기 때문에 주로 『안티 오이디푸스』부터 사는데 보통 첫 장을 넘기는 데에도 실패하는 것 같다. 첫 문장부터 이렇다. 

    “그것은 도처에서 기능한다. 때론 멈춤 없이, 때론 단속적으로. 그것은 숨 쉬고 열 내고 먹는다. 그것은 똥 싸고 씹한다.” 

    아주 발칙하고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뭔지도 알지 못하는데, 그것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과 마주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고정된 무엇이 아님을, 부정 대명사적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글쓰기적 장치인 것 같다는 현재의 이해에 다다랐다. 그러나 글을 읽자고 들어온 독자가 처음 만나는 도입부의 첫 문장의 첫 단어부터 낯설고 놓아야 할 위치를 알 수 없다면, 토끼 구멍에 빠진 앨리스처럼 예상치 못한 혼돈의 미궁에 빠진 상황일 테니 누가 마냥 좋아라만 하겠는가.

    (ㅇ ㅇ ㅇ)
    (ㅇ ㅇ ㅇ)

    그는 책을 책이 아닌 방식으로 접하는 방법, 즉 책을 접한 뒤에 “이것이 작동하는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p.25)”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이 방식은 나의 들뢰즈 읽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길과 유사해 보이긴 한다. 어쩌다 마주한 그의 문장 하나가 가슴에 박혀 울린 김에 『차이와 반복』을 샀지만 바로 접힌 채로 읽히지 못한 채 꽂혀 있었다. 시선을 쉬이 뺏는 것들이 도처에 머무는 시대에 그러한 글이 길게 읽힐 리 만무했다. 그런데 어쩌다 시간이 남아돌 때 종종 페이지를 펼쳐 마주한 그의 문장들은 인상적이었다. 전부를 알지 못하더라도 그렇게 만난 부분 부분이 일렁이고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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