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그날 밤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탈리아의 한 경찰국을 찾아온 낯선 남자. 당황하는 형사들 앞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자신을 대법원 판사라고 소개합니다. ‘무정부주의자의 그 사건’을 감사하러 왔다는 그의 말에 형사들은 어쩔 줄 몰라하는데요. ‘그 사건’이 도대체 뭐길래 사내의 등장만으로 형사들이 진땀을 흘리는 걸까요?

남자가 경찰국으로 찾아오기 얼마 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발생합니다. 은행 폭파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된 무정부주의자가 신문을 받다가 창문으로 뛰어내려 죽고 만 거예요. 경찰국은 그 사건을 자살로 처리하며, 용의자의 자살이야말로 그가 범인인 것을 말하는 증거라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발표를 믿기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어요. 경찰 쪽 발표 중엔 갑작스레 바뀐 부분도 있었고, 용의자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이런 점을 판사가 따져물을 것이 당연하니, 형사들은 당황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아니나 다를까 낯선 남자는 그날 밤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습니다. 남자의 날카로운 질문공세와 매끄러운 말솜씨에 형사들은 그날 밤의 일을 하나 둘 말하기 시작하는데요. 과연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가 일어났던 그날 밤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진실 혹은 거짓🤔

여기까지 11월 월간희곡작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의 줄거리였습니다. 경찰이 거짓말을 한 건지, 진실을 말한 건지 궁금하시다면 힌트가 될 만한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릴게요. 

이 작품은 1969년 실제로 일어난 ‘피아자 폰타나 폭격’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폰타나 광장의 한 은행에서의 폭발을 시작으로 연이어 다른 곳의 폭탄이 터져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사건인데요. 정부는 이 일을 무정부주의자들의 소행이라 여겨, ‘주세페 피넬리’를 비롯한 수많은 무정부주의자들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밤, 주세페 피넬리는 경찰의 신문을 받던 도중 5층 창문에서 떨어져 죽고 말죠. 경찰은 피넬리는 자살한 것이며, 그의 자살은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암묵적 증거이며 자백이라고 발표합니다.

어라, 이거 방금 말했던 줄거리 같다고요? 그만큼 피아자 폰타나 폭격과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무척 닮았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공연된 년도가 1970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의미심장한데요. 작품이 공연된 후인 1971년, 주세페 피넬리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우발적 원인에 의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어졌습니다. 시간이 더 흐른 후에는 사건을 일으킨 진범이 잡혔지만, 당시 피넬리를 신문했던 경찰들은 처벌받지 않았다고 해요.😡

팥소 없는 찐빵 = 풍자 없는 다리오 포

줄거리만 보면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무겁고 진지한 극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읽어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풍자극이에요. 풍자는 이 작품을 쓴 ‘다리오 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다리오 포는 2016년 사망 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이탈리아의 대표 작가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총체적인 의미의 연극인’이라고 칭해요. 그가 극작, 연출, 무대 의상, 안무는 물론 배우의 역할마저 모두 해냈기 때문인데요. 다재다능한 그는 당대의 사회 이슈를 재미있게 꼬집는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대중들에게는 큰 인기를 얻었지만, 풍자의 대상이 되던 권력층과 교황청에겐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 예시 중 하나로, 타락한 가톨릭 교회를 풍자하는 <미스테로 부포>가 텔레비전에 방송되었을 땐 바티칸 측에서 ‘텔레비전 방송 역사상 가장 모독적인 쇼’라고 비난했다고 해요.

다리오 포는 이런 비난과 위협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는데요. 날카로운 풍자극을 통해 권력층에 대항하고, 관객들이 현대 사회의 부조리함에 눈을 돌리게 한 그의 노력은 1997년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빛을 발했답니다.✨

여기서 잠깐! ’권력층을 풍자했다면서,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이 판사라니. 이상한데...’ 이런 의문이 생기지 않나요? 맞아요. 사실 경찰국을 찾아온 남자는 대법원 판사가 아니었어요. 작품에 나온 표현 그대로 ‘미친 사내’였을 뿐이에요. 하지만 형사들이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모든 것을 털어놓은 뒤였습니다.

낯선 남자가 판사라고 철썩같이 믿은 채 우왕좌왕하는 형사들의 모습은 아주 우스꽝스럽게 묘사됩니다.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당시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경찰에 대한 풍자로 가득 차 있어요. 다리오 포는 희곡을 통해 죄 없는 노동자를 죽게 만든 것도 모자라,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했던 권력층을 비판했던 거죠. 풍자란 ‘민중이 통치자들의 모든 부정과 부패를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자신들 스스로에게 분명히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해온 가장 효과적인 무기’라던 그의 생각이 작품에서 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지금까지 11월 '월간희곡'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소개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월간희곡 소개와 함께 진행되는 독서 인증 이벤트는 어느덧 네 번째인데요. 처음은 아주 야심 찼습니다. ‘희곡의 재미를 알리고, 많은 분이 좋은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도와보자!’ 이것이 1막1장이 월간희곡과 이벤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죠. 첫 이벤트를 열고 한 달 후, 설레는 마음으로 SNS에 들어갔습니다. 소풍날 도시락 뚜껑을 열기 직전의 아이 같은 마음이었어요. 자… 멤버분들이 어떤 글을 써주셨을까? 개봉박두!

결과는 어땠을까요? 조금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면, 총 세 번의 월간희곡을 진행한 결과 참여자는 단 한 분뿐이셨어요.😭 그래서 이 이벤트를 스리슬쩍 접어야하나 고심한 것도 사실인데요. 그런데 이 이벤트를 처음 기획했을 때의 목적과 열정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니 아무래도 포기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더더더 열심히 희곡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답니다! 앞으로도 1막1장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멤버분들께 좋은 희곡 작품들을 소개해나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기다릴게요!🙏

📌 독서 인증샷 리뷰 이벤트 참여 정보

I 참여 해시태그: #1막1장_월간희곡

I 기간: 12/9(금) 자정까지!

I 혜택: 12월 월간희곡 도서(1명), 스타벅스 아메리카노(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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