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작가, 을지로 미드나잇 그레이 /

안녕하세요, <중심잡지>의 에디터 릳(a.k.a. RD)입니다. 벌써 벚꽃도 다 떨어져가는, 4월의 중순입니다. 갑자기 요 며칠 중부지방엔 한파주의보가 몰아치기도 했죠. 봄은 한창 영차영차 걸어가는데, 환절기의 기온차는 무시못할 함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주, 잠깐 제주에 왔습니다. 온 김에 짬을 내서 사람이 없는 바닷가와 오름길을 걷기도 했는데요. 번잡하게 돌아가던 삶으로 부터 떨어져 숲 속을 걷다보니 머릿속 한켠에 치워두고 있었던 고민들이 새삼 하나 둘 떠오르더라구요.

고민이 물꼬처럼 탁, 하고 올라온 것은 국립수산과학원 앞을 걸어갈 때였습니다. ‘종보존연구센터’라는 간판을 보는 순간 과학과 예술이 쌓아올린 역사적인 담장이 떠올랐던 거죠. 예술이 인간, 혹은 인간 너머의 어떤 것을 보는 것이라면 과학은 현실의 최첨단(이를테면 멸종 직전의 종을 보존하는 일같은 것)을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떤 측면에서, 예술과 과학은 항상 궁극적인 것, 더 먼 곳을 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삶의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갖고 있던 고민이 마주쳤던 거죠.

이번 주에는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성민 작가, 그리고 을지로 밤의 색깔인 미드나잇 그레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았습니다. 비록 내일이면 저도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가겠지만,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바다의 기운을 담아 뉴스레터를 띄워봅니다. 그럼, 22호 시작합니다!

#이성민

나 그냥 이대로 죽어버릴래!, 장지에 분채, 먹, Acrylic, 93 x 72 cm, 2021
이성민 작가의 작품은 포토샵과 같은 디지털 그래픽 툴이 수행하는 것을 아날로그로 변환하여 작업으로 치환하는 특성을 가진다. 작품의 요소가 되는 레퍼런스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세밀한 큐레이션과 재현행위는 화면 안에서 대비와 조화를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작가는 시각적 언어 안에서 가상의 공간과 속도, 실재의 운동성과 에너지를 한꺼번에 인식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다룬다.

미적 감각은 순간적이고 휘발성이 강하며, 작품을 향한 천착은 집요하고 지난한 행위다. 이것이 공존하는 그의 미술에서는 자극적인 균형감이 느껴진다. 젊음은 흔히 세련됨으로 귀결되기 쉬우나 사실 투박함에 더 가깝다. 적어도 미술분야에서는. 젊은 모색과 기성의 완결성, 둘 모두가 세련됨과 투박함을 동시에 품고 있을 때, 관객은 시각적 쾌감을 느낌과 동시에 적극적 감상자가 될 수 있다. 그의 작품을 망원동에 위치한 공간인 WWW SPACE에서 만났을 때 아주 오랫동안 그림 앞에서 아주 즐겁게 머무를 수 있었다.

일상에서 우주의 기원까지 모든 것을 아우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선택한 지점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은 작가의 특전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이성민 작가는 멋진 이해를 보여준다. 무지개 색 밥알을 한 알 한 알 쌓아올린 정갈하고 찬연한 초밥 같은 그림을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보자.

#을지로 미드나잇 그레이

헐리우드의 잘 나가는 시나리오 작가 길 펜더(오웬 윌슨 분)와 약혼녀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 분)는 이네즈 아버지의 사업 확장을 위한 프랑스 출장에 동행하게 됩니다. 평소 1920년대 파리의 음악, 예술, 문학 등을 매우 동경했던 길에게 이곳에서의 낭만을 느낄 시간과 여유가 필요했지만, 그와 달리 이네즈는 이곳을 매우 고리타분하게 느낄 뿐이었죠.

이네즈는 친구들과 함께 댄스 클럽에 가버리고, 홀로 밤거리를 산책하던 길 펜더 앞에 나타난 오래된 푸조는 그를 태우고 어디론가 가게 됩니다. 도착한 곳에서 길은 살바도르 달리, T.S. 엘리엇, 헤밍웨이 등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되죠.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들과 더불어 1920년대 파리의 예술과 낭만을 보여주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입니다.

저녁을 밝히던 높은 빌딩들의 불이 하나 둘 꺼지고 마지막까지 산림동 골목을 채우던 기계소리마저 옅어지면 을지로에도 어둠이 찾아옵니다. 군데군데 웅웅거리는 네온사인들만이 소란스러웠던 낮의 아쉬움을 달래고, 도시가 밤의 정적에 잠기는 것을 막아줍니다.

철공소 골목의 영업종료를 알리는 셔터 내리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 을지로의 밤은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합니다. 을지로 미드나잇 그레이는 산림동이 가장 조용해지는 밤의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색입니다. 어스름한 밤하늘은 낮의 흔적들과 함께 고요한 골목을 밝히며 을지로를 포근히 감싸안습니다. 곳곳에 숨겨진 보석같은 공간들에서 우리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공유하는 멋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차가웠던 밤의 공기가 기분좋은 선선함으로 바뀌어가는 요즘, 길 펜더가 거리를 거닐다 아름다운 파리의 옛 모습을 만났던 것처럼 여러분도 을지로 골목의 길 펜더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를 어디론가 데려가버리는 마법같은 미드나잇 그레이, 바로 이번 주 을지의.색 입니다.

안녕하세요. 모르는게 많은 몰라입니다. 이번 주 을지예술센터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소하지만 리얼한 소식! 지금 바로 보시죠.^^ 
첫 번째 소식 : 을지예술센터 PD 청두가 바쁜 또 다른 이유

을지예술센터 PD로 살아남기란 무인도에서 농사짓기와도 같습니다. 과연 청두PD의 일상은 얼마나 고단할지 살짝쿵 들여다 볼까요? 청두는 산더미 같은 본인의 과업에도 충실하지만, 그가 바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을지예술센터에는 마스코트 Dog슨트이자, 청두의 반려견인 삼공가 있습니다. 청두삼공의 오라버니로써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청두는 종종 을지예술센터 4층의 CCTV를 관찰하곤 합니다. 그 이유는 삼공의 응가 스팟이 4층 하얀 조약돌 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얀 조약돌 위에 검정 조약돌이 갑자기 등장한다면, 그것은 삼공의 응가입니다. 삼공의 응가가 하얀 조약돌의 뽀얀 색깔을 해치지 않도록 청두는 빠르게 삼공의 검정 응가를 치우고, 응가 아래에 놓인 조약돌을 물티슈로 한땀한땀 닦아낸답니다. 삼공가 을지예술센터의 마스코트 Dog슨트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공은 삼공 오라버니, 청두의 부지런함 덕분입니다. 


두 번째 소식 : 을지예술센터 PD 지인이 바쁜 또 다른 이유

을지예술센터 PD로 살아남기란 무인도에서 농사짓기와도 같습니다. 과연 지인PD의 일상은 얼마나 고단할지 살짝쿵 들여다 볼까요? 지인은 일과 연애한다는 소문이 퍼질만큼 많은 일을 합니다. 과연 워커홀릭의 삶을 유지하는 그녀의 버팀목이자, 힐링 포인트는 무엇일까요.

지인은 청소를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자리만 깨끗하면 될 것이 아니라, 사무실 전체, 게다가 다른 팀원들의 책상까지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청두가 DM리스트를 정리하려고 분류해둔 명함을 섞어서 한데 뭉쳐두고, 몰라가 한눈에 보려고 펼쳐둔 행정 서류들을 한데 섞어두고, 가 아껴뒀다 먹으려고 숨겨둔 음식을 버리기까지 하죠. 이제 을지예술센터 식구들은 본인들의 책상에 지인의 손길이 다녀가는 것에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사무실이 깨끗할 수 있는 것은 지인의 손길 덕분입니다.

  • 심학철 : 기억연 (심학철 ), MoPS2021. 04. 09 ~ 06. 06    .
  • 마이클 딘 : 삭제의 정원 (마이클 딘), 바라캇 컨템포러리, 2021. 03. 31 ~ 05. 30    .
  • SF2021: 판타지 오디세이 (구현성, 김보영, 김희천, 듀나, 람한, 롬버스, 루시 매크래, 배명훈, 앤 리슬리가드, 양아치, 장서영, 장종완, 정소연, 최윤), 중간지점2021. 04. 10 ~ 04. 25      .
  • Fortune Telling: 운명상담소 (조주현, 백지수, 강호연, 곽은정, 김수환, 김정모, 김주리, 노말리티(feat.두이), 노진아, 박가인, 백인태, 비디오로즈(강현우,허철주), 송인옥, 송지형, 우정수, 장종완, 정윤선, 최장원, 홍학순),  일민미술관2021. 04. 11 ~ 07. 11.
         ☺ 전시명을 클릭하시면 전시정보를 보실 수 있어요!

# 다음호에.만나요

이번 주도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곧, 아차하는 사이에 더위가 우리를 찾아올 것 같아요. 봄이란 원래 왔나 싶으면 사라지고 없는 계절이니까요. 그리고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뜨겁게 달궈진 을지로 골목, 철공소들이 내뿜는 열기는 저에게 남아있는 인상적인 을지로의 모습 중 하나입니다. 마침내 봄이 가고 나면, 열기로 메워진 골목 사이에서 아지랑이들이 피어오르죠. 아쉬운 봄이 가기 전에, 을지로를 더 마음껏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입니다. 환절기에 모두 건강 챙기세요.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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