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 송장벌레가 사체를 ‘유아식’으로 바꾸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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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18. 오후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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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비물 발라 장내세균이 부패미생물 대체
‘바이오 필름’ 덕분 9일 지나도 냄새 안 나



송장벌레는 대표적인 곤충계 장의사이다. 곤봉 모양의 더듬이로 사체가 분해할 때 나오는 미세한 화학물질을 감지하면 곧바로 현장에 날아간다. 사체는 자손의 먹이가 된다. 이 딱정벌레가 없다면 자연은 죽은 동물의 사체로 뒤덮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체를 어떻게 애벌에의 먹이로 바꾸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새, 쥐, 작은 동물의 사체는 송장벌레의 단골 먹이이다. 사체는 영양가가 풍부한 먹이이지만 금세 부패해 유독물질이 생기고 병원성 미생물이 번성하며 그 과정에서 영양분이 사라져 버린다. 어떻게 이런 부패과정을 막아 두고두고 자손 애벌레의 먹이로 삼을까.

막스 플랑크 연구소 등 독일 연구자들은 검정수염송장벌레를 실험실에서 기르면서 다양한 실험과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이런 의문에 해답을 내놓았다. 송장벌레가 자신의 장내세균을 사체에 분비해 사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고 애벌레가 잘 자라는 ‘유아식’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이 송장벌레가 사체를 발견하면 구덩이를 판 뒤 그곳으로 끌고 가 파묻는다. 이어 강력한 턱으로 사체의 가죽과 털을 잘라내 애벌레를 키울 보육장을 마련한다. 어미는 입과 배에서 분비물을 내어 사체 조직 표면에 바른다. 연구자들은 이를 ‘바이오 필름 매트릭스’라고 불렀다. 코팅을 마친 송장벌레 암컷은 알을 낳고, 이틀 뒤 알에서 깬 애벌레는 장내세균으로 숙성한 사체의 조직을 먹고 자란다.

연구자들은 송장벌레가 처리한 사체와 그렇지 않은 사체가 어떤지 실험실에서 비교했다. 9일 동안 방치한 사체는 부패해 액체상태가 됐고 곰팡이로 뒤덮였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나 송장벌레가 처리한 사체에서는 아무런 악취도 나지 않았다.



송장벌레가 공생관계인 장내세균을 바름으로써 사체가 부패하는 것을 막고 그곳에 유용한 미생물이 자라도록 했다. 유전자 분석 결과 애벌레의 보육장이 있는 사체 부위에서는 부패와 관련된 미생물 대신 ‘야로위아’라는 효모 등 비병원성 미생물이 압도했다. 연구자들이 사체에서 송장벌레의 분비물 막을 제거했더니 애벌레의 성장이 현저히 늦어졌다. 

연구 책임자인 샤타누 슈클라 막스 플랑크 화학 생태학연구소 연구원은 “송장벌레는 사체의 미생물 활동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장내 미생물 군집으로 대체한 것이다. 그 결과 어미가 돌본 사체에서 토양 기원의 곰팡이 대신 송장벌레의 몸속에서 기원한 효모가 자랐다. 이런 미생물 군집의 전환이 송장벌레가 돌본 사체에 생화학적 변화를 낳았다”라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설명했다.

연구에 참여한 헤이코 포겔 같은 연구소 곤충학자는 “이번 연구는 곤충이 어떻게 장내뿐 아니라 장외의 번식 자원에까지 공생 미생물군 배양 장소를 확장함으로써 서식지를 바꾸어 나가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미 국립학술원 회보 16일 치에 실렸다.



송장벌레는 전 세계에 1000종 이상이 산다. 국립생물자원관이 펴낸 ‘한국의 곤충-송장벌레’ 편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이번 연구가 이뤄진 검정수염송장벌레를 비롯해 금털송장벌레, 네눈박이송장벌레, 넓적송장벌레 등 26종이 서식하며, 큰 사체 주변에 알을 낳거나 작은 사체를 땅에 묻은 뒤 알을 낳는 식으로 사체를 이용한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hukla, S. P., Plata, C., Reichelt, M., Steiger, S., Heckel. D. G., Kaltenpoth, M., Vilcinskas, A., Vogel, H. (2018). Microbiome-assisted carrion preservation aids larval development in a burying beetle.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DOI: 10.1073/pnas.1812808115 http://dx.doi.org/10.1073/pnas.181280811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한겨레 전문기자ecothink@hani.co.kr

현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로, EBS <하나뿐인 지구> 진행(2005년)
<환경과 생명의 수수께끼>, <프랑켄슈타인인가 멋진 신세계인가>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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