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경제학과 노벨상 [경제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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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가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주류 경제학자로서 이미 1970년대에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에 따른 경제성장과 기후 관련 논문을 썼으니 쉽지 않은 통찰력을 가졌다. 노드하우스 교수의 문제의식은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세상에 나왔다. 신고전학파 경제성장 모형에 기후요소를 결합하여 성장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내재한 동태통합 기후-경제(Dynamic Integrated Climate-Economy, DICE) 모형이 그것이다. DICE 모형은 기후변화라는 제약을 성장모형에 결합하여 최적 소비와 성장 경로를 제시한다. 기후변화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감안할 때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정책수단을 지금부터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임을 시사한다.

박사과정 시절, 막 출간된 노드하우스 교수의 논문들을 읽었다. 그의 모형은 너무 이론적이고 추상적이다, 구체성이 결여돼 개별 정책효과 도출에 한계가 있다, 나는 좀 더 미시적 분석을 하고 싶다, 이런 치기 어린 생각을 했었다. 그 후 DICE 모형은 전 세계를 지역들로 구분하여 보다 현실적인 방향으로 진화했다.

사회과학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과 가치를 학술 언어로 변환하는 사람이다. 노드하우스 교수는 기후변화 연구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했을까? 첫째, 경제 영역은 환경 영역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경제의 한 축인 생산과정을 이론화하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생산함수를 고안했다. 경제학 수업에서 가르치는 생산함수에는 예외 없이 두 개의 생산요소가 등장한다. 노동과 자본. 교수도 학생도 은연중 생산은 노동과 자본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환경과 자연 없이 생산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토지, 공기, 물 없이 어떤 생산이 가능하겠는가. 노드하우스 교수는 기후에 주목했다. 인간의 생산과 소비 활동에서 발생한 온실가스라는 부산물이 기후와 기상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온실가스가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다. 인류의 윤택한 삶을 위해 지난 수백년간 사용해온 석탄과 석유가 도리어 인간 생활을 옥죄는 모순이 발생한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지혜롭다면 경제활동을 제어하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는 것이 마땅하다.

둘째, 근시안을 버리고 세상을 길게 보며 지금부터 준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장기(長期)에서 우리 모두는 죽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이래 경제학자들은 단기적인 경제문제 해결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사실 케인스의 경구는 이론과 이상(理想)에 매몰돼 민중의 먹고사는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던 당시 학자들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당연히 눈앞에 닥친 경제문제를 해소하는 데 전문가와 정부는 헌신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연속은 미래다. 오늘 마음껏 쓰고 버리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종국에는 기후변화의 비극을 피할 수 없다고 노드하우스 교수는 경고한다. DICE 모형은 2100년과 그 이후의 세계 경제와 기후 상황까지 설명하고 있다. 그는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환경적 피해가 충분히 크기에 지금부터 정책과 경제활동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노드하우스 교수의 정책대안은 ‘글로벌 탄소세’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배출되는 순간 지구적 오염물질로 기후변화를 야기한다. 따라서 한 나라에 국한된 정책수단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 세계가 동일 수준의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당장은 물건 값이 오르고 생산 활동이 위축될 수 있으나, 조금만 길게 보면 나와 내 자식들에게 좋은 정책이다. 탄소세는 새로운 사업기회를 제공하고, 기술혁신을 촉진하며, 사람들의 소비행태를 바꾼다. 얼마 전 세미나에서 노드하우스 교수에게 청중 한 명이 물었다. “글로벌 탄소세가 얼마나 실현 가능한 대안이냐”고. 노(老)교수는 답했다. “인내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산화황을 규제하는 배출권 거래제가 실현될 거라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국민은 경제에 비해 자연과 생태에 대한 관심이 적어 보인다. 자신이나 가족의 건강과 관련될 때에만 환경에 관심을 가진다. 우리 국민은 다소 근시안적이어서 기후변화는 먼 나라 얘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탄소세와 같이 에너지 소비 저감을 유도하는 정책에 대한 거부감은 말할 필요도 없다. 노드하우스 교수도 미국 국민에 대해 나처럼 느끼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대체로 당장의 ‘먹고 마시는’ 일에 익숙하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더 이상 외면하기 힘든 삶의 질곡이 되었다. 그것이 이번 노벨 경제학상을 결정한 사람들이 강조하려는 메시지 아닐까.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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