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과 좋은 어른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연결합니다.
짜응의 소중한 귓속말

작은 행동이 누군가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자립준비청년 캠페이너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손자영은 허들링에서
‘짜응’이라는 닉네임을 씁니다. 벌써 자립준비청년 커뮤니티 허들링 CM
(커뮤니티 매니저)으로 활동한지 3년 차. 경력직이란 말을 들으며 매달 착착착!
발 빠른 의견과 행동력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한겨레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고,
아름다운재단 캠페이너로 활동하며 멋진 활약상을 보여주고 있는 짜응.
성실함과 재빠름으로 똘똘 뭉친 그녀의 속내가 궁금했답니다.
Q1. 짜응을 만나면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자립준비청년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는 자주 묻지 못했어요. 허들링을 처음 시작했던 마음이 궁금합니다.
참여자가 아니라 CM으로 도전한 이유가 있나요?
당사자로 캠페이너 활동을 하면서 제 경험으로만 이야기하게 되는 일이 많아졌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듣고 캠페인 활동에 반영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저도 자립한지 9년 차라 지원 제도나 정보에서는 많이 멀어져 있고, 이제 막 자립하는 친구들이 어떤 지원을 받는지, 어떤 제도를 더 유익하게 느끼는지도 궁금했고요. CM으로 허들링을 시작하게 된 건 민망함 때문이죠. 캠페이너로 활동하고 있고, 자립한 시간도 꽤 됐으니까요. 허들링에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친구들한테 정보를 얻으려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Q2. 허들링에 기대했던 마음과 현실은 어떻게 달랐고,
어떤 점은 기대 이상이었나요?
3년 전 처음 CM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그때는 당사자로서 소이프 고대현 대표님과의 입장 차이도 있어서 삐걱거리기도 했습니다. 의견을 맞춰가던 시기였어요. 근데 생각보다 허들링 친구들을 만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동생들이 많았거든요. 저는 처음에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편인데 친구들이 경계를 하고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게 느껴져서 친해지기 어려웠어요. 1년 차에 함께 CM으로 활동했던 희선이가 저에게 다가오면서 많이 친해졌지만, 다른 친구들이랑 친해지는 속도는 너무 느렸어요. 당사자들끼리 모여서 그런 건지, 허들링 특성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천천히 친해지니까 좀 더 노력하고 더 오래 활동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1년 차 때는 저도 CM이 처음이었고, 소이프도 첫 시도였기 때문에 함께 만들어 나가야 했어요. 그땐 근본적인 것에 대한 회의를 진짜 많이 했어요. CM이라는 제도가 왜 생겼고, 우리가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프로그램을 해야 하고, 왜 해야 하는지, 반복하고 반복하는 긴 여정이었죠. 버겁다는 생각도 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쌓이다 보니까 허들링 커뮤니티가 왜 필요하고 우리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더 명확해지더라고요. 
Q3. CM 3년 차가 되었습니다. 활동의 변화, 마음의 변화가 어떤지 궁금해요.
CM이란 제도가 생기던 해에 허들링 커뮤니티를 처음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커뮤니티가 구체화되는 걸 경험했어요. 친구들도 점점 더 재미있다고 말해줬고요. 매달 정기적으로 만나고, 함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시간이 갈수록 허들링이 더 좋아져요.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고요. 친구들이 활동이 좋았다고 하면 책임감 같은 게 더 생겨요. 이젠 3년 동안 쌓인 게 있어서 작년과 다른 프로그램을 해도 목표나 방향이 더 명확하게 정립되고, 눈에 뚜렷하게 그려지는 것들이 있어요.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CM이 해야 될 일을 정확히 인지할 수 있어서 매달 준비하는 시간도 단축되고요. 친구들에게 뭐 하고 싶은 지 매번 물어보거든요. 듣고, 생각하고, 찾고. 그런 것들이 많이 쌓여서 지금은 더 높은 퀄리티의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만남의 질’도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CM을 지원한 첫해에는 친구들의 생각과 정보를 많이 수집해서 대외적인 캠페인에 반영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는데요. 이젠 그냥 언니, 동생 사이의 관계를 즐기게 되고, 커뮤니티 밖에서도 생활이나 사적인 이야기들을 나누고, 자주 만나고 싶고 편하고 좋아요. 이젠 책임감보다는 ‘즐겁다, 재미있다’는 마음으로 활동해요.  
<씨스터즈들과 함께>
Q4. 허들링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스터즈’가 결성되기도 했는데요.
허들링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시스터즈는 3명의 24세 동생들과 짜응이 친해져 결성한 모임입니다.)

저는 보육원에서 살았을 때도 친구들보다 언니들을 더 좋아했어요.

친구들이 왜 언니들이랑만 친하게 지내느냐고 그랬는데, 나이가 많으면 뭔가 더 배울 게 있고, 또래와 다르다고 생각해서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 허들링에서 동생들이랑 친해지게 되니까, ‘내가 동생들도 좋아하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동생을 떠나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걸 좋아하고 있고, 그 마음으로 CM을 하고 있어요. 시스터즈는 다들 저보다 4살이 어린데 동생이란 느낌은 안 들거든요. 그냥 친구에요. 처음에는 저 혼자 4살 많으니까 언니답게 굴어야지 했는데, 애들이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하하. 시스터즈는 이제 제 인간관계와 삶에 깊이 들어온 사람들이 되었어요.


시스터즈에게 마음이 확 열린 건 아니고, 서서히 열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동생들이 저에게 너무 진지하고 재미없다는 말도 했거든요. 허들링 안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이 사람이 이런 모습도 있네’.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천천히 친해지게 된 게 아닐까요? 허들링 모임이 끝나면 바로 헤어지지 않고, 카페를 가거나 맥주를 마시기도 하거든요.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끝난 이후의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시간들을 함께 하면서 진짜 많이 친해지고, 관계가 단단해진 것 같아요.

Q5. 허들링 커뮤니티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하나요?
특히 어떤 점에서 그런 걸 느끼는지 궁금해요.

제가 2년 차일 때 CM을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했어요. 저는 활발하고 타인과도 금방 친해지는 성격인데 허들링 친구들이랑은 그렇지 못하니까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활동을 하면서 외로운 거랑 안 하면서 외로운 거랑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활동을 하면서 외로운 거면 다시 생각을 해봐야 했어요. 그때는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속도로, CM의 역할로 친구들에게 다가가려고 했다면 친구들은 활동하는 당사자로 그들만의 속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시스터즈가 저한테 고맙다는 말을 되게 많이 해주거든요. “언니를 보니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겠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을 봐서 다행이다. 고맙다.”는 말을 해줬어요. 이런 말들이 허들링 모임이 필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제가 100% 완벽하고, 제 삶이 100% 완벽한 건 아니지만, 어떤 부분은 배울 점이 있고, 저도 동생들에게 배울 점이 있고, 배우고 싶은 점이 있는데 그런 게 서로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허들링에 있으면 내 삶을 설명하는 게 싫어서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편하게 생활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겪었던 어떤 상황을 말하면 서로 단박에 알아듣고. 이런 것들을 어디에서나 쉽게 얻지 못하거든요. 이런 바탕 위에 관계가 쌓이다 보니 서로 힘이 돼 줄 수 있는 게 많아요. 다른 지원사업들은 사업이 사라지면서 다시 단절되고, 관계를 쌓기 어려워요. 허들링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린 계속 여기 있다. 우리는 계속 여기 있으니까 다른 일로 바쁘다가도 필요하면 다시 돌아와라.”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런 메시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6. 서로를 탐색하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는 건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잖아요?
맞아요. 매년 허들링 커뮤니티의 목표에는 ‘자아 탐색’이 있어요.
자아를 탐색하는 것도 타인과 부대끼면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음악을 좋아하면, ‘저 친구는 어떤 음악을 좋아하지? 저 친구가 좋아하는 노래는 뭘까?’ 나도 찾아보고 듣고, 궁금해하고. 내가 모르는 걸 알게 되면 ‘저 친구의 삶은 저렇게 흘러가네’라고 생각하고, 건강한 자극이 되기도 해요. 똑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마주할 때도 있어요.

자립을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 정책과 지원제도에 대한 의견이 모두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 건 좀 불편해’라고 말하면 각자 성향이 있으니까, 서로 알아가고 수용해가면서 친해지는 게 재미있어요. 회의를 할 때도 ‘다 좋아요’라고 하지 않고, 이런 점이 불편할 수도 있다고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논의하고, 수용하고 조율하는 게 힘이 돼요.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뿐만 아니라 소이프 쌤들이나 빌더님들하고도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들이 생겨나고 있어서 좋아요.  
Q7. CM을 하면서 보람 있던 점이나 좋았던 점, 난감했던 점이 있나요? 
처음 CM 활동을 하던 해에는 경험이 없어서 불편한 건 있었죠. 정말 싫은 건 없었어요.
작년에 CM들과 함께 기획하고 떠난 ‘제주도 캠프’는 정말 좋았어요. 그때 친구들이랑 많이 친해졌어요. 남자 친구들과도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예전엔 제가 일방적으로 질문만 한다고 느꼈는데 답도 막 오가고요.
카페에 가서 공감카드를 가지고 그룹별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서로 쉽게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진짜 많이 했어요. 제주도라는 지역적 공간이 그렇게 만든 건지. 그날의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건지 모르겠는데 모두 여기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좋았어요. 친구들이 모두 자기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들이 모두 귀하게 여겨졌어요. 캠프에 참여해주신 빌더님들도 귀하게 들어주셨거든요.
그때 누군가 들어주는 게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언도 없이 계속 듣기만 하셨거든요. 들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때 경험이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거란 것도 알았구요.
Q8. 짜응은 당사자 캠페인도 열심히 하고 있고,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보내고 있는데요. 제가 지켜본 짜응은 어떤 일을 해도 진심을 다하는 것 같습니다. 그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거대한 동기나 무언가를 바꾸겠다는 마음은 없고, 해야 되니까 합니다.

해야 되는 게 왜 나일까 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시설을 퇴소하고 취업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들어가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겠다고 생각을 했던 건 현실의 문제들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어서였어요.


저랑 어릴 때 보육원에서 같이 살았던 언니 2명이 연달아서 자살하는 일이 있었어요. 슬퍼서 보육원 선생님한테 전화했는데 버텨야 된다고 했어요. ‘그렇게 죽는 게 다는 아니다. 좀 버티면 어떻게 안 되겠냐.’ 버티고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 죽는 게 나약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불편했어요. 그때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어요. 그때 ‘왜 우리만 뭘 해야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 내가 ‘뒤집어엎어 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대학에서 전공 수업을 듣고 나니 이론과 현실은 너무나 다르고 난 뒤집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20대 초반 마음에 품었던 동기가 여전히 조금 남아 있는 게 아닐까요?

내가 다짐했던 마음, 내가 바꿔보겠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뿌린 말들이 길을 열어준 게 아닐까요? 다른 사람한테 뭔가 하겠다고 얘기를 하게 되면, 해야 되고, 그게 나를 끌고 갈 때가 있어요.

<짜응의 어린시절 >
Q9. 가끔 제가 짜응에게 “열심히 살지 마! 열심히 하지 마!”라고 하잖아요.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뭐든 열심히 하는 짜응을 보면 배우기도 하고 조금 덜 열심히 해도 좋겠다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짜응! 왜 이렇게 뭐든 열심히 하나요?

이 질문, 제일 좋아요.

저는 작고 작은 게 굉장히 중요하고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에 있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굳이 큰 회사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도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제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게 ‘굉장히 작은 일’인 거예요.


보육시설에서 자란 저는 양육자가 자주 바뀌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저를 1년 동안 키워준 양육자가 있었는데, 자기 전에 매일매일 20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귓속말을 해줬어요. 1시간이 넘도록. 그런 양육자는 한 번도 없었어요. “자영아 너 오늘 하루 어땠니? 오늘 엄마 설거지 도와줘서 고맙고, 너 때문에 행복했어.” 이런 작고 사소한 말들이었는데 정말 좋은 거예요.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이런 작은 행동들이 누군가의 삶에 굉장히 중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반대로 어릴 때 꿈이 외교관이었거든요. 초등학교 때 온라인 외교관 사절단 ‘반크’ 활동을 간절히 하고 싶었어요. 가입비가 3만 원이었어요. 당시에 제가 도와 달라고 말할 수 있었던 선생님께 연락해서 가입비를 내주시면 제 꿈에 한 발짝 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읽고 답을 안 했어요. 그게 마음에 크게 남아있어요.

언제나 제 꿈을 응원해준다고 해서 용기내 부탁했는데 당시에는 큰 돈이라서 그럴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상처처럼 남은 기억이예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런 작은 것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큰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작은 것부터 잘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Q10. 짜응이란 청년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짜응이 좋아하는 것, 요즘 가장 관심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요즘 영상을 배우고 있어서 더 관심이 있는데 출판사 유튜브 채널 ‘민음사 TV’를 즐겨봅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맨날 보다가 잠들어요. 다양한 책들, 어떤 문장에 대한 얘기도 하고, 출판사 직원들이 회의하는 얘기, 소소한 직장인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요즘 제 관심사입니다. 
<짜응이 좋아하는 공간 >
Q11. 짜응은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저에게 책친구이자
책을 함께 읽는 동지라는 느낌도 있어요.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고3 때까지는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퇴소를 하고 대학을 진학하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참 길었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바로 대학을 갈 수가 없었던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소속감 없이 살았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직장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안 하는 알바생으로 2년을 살았는데 그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어디에라도 소속돼 보려고요. 맨날 정해진 시간에 카페에 가서 책을 읽었는데 소속감을 만드는 저만의 행위였던 것 같아요. 그때 처음으로 책을 끝까지 읽어보는 경험을 하면서 책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때는 심리, 인문학 관련 서적을 진짜 많이 읽었어요. 나의 결핍, 내게 왜 자아가 없는지, 내 인생 왜 이런가에 대한 답을 책에서 많이 찾았어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처한 상황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서서히 느끼게 됐죠.  


지금도 대학 때 만난 친구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꾸준히 갖고 있는데, 이런 건 어릴 때 많이 해야 되는 것 같아요. 내 사고에 갇히기 전에 타인의 다양한 얘기를 들어야 되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 시간도 즐겁지만 같이 얘기하는 게 정말 즐겁더라고요. 같은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제를 정하고 얘기할 때 재밌거든요.

저에게는 편견에 갇히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어요.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여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더 어릴 때, 더 많이 듣고 읽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책을 읽고 있고, 처음에는 결핍을 채우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좋아서 읽고 있습니다.

Q12. 제가 20대일 때는 40대의 삶을 상상하지 못했어요. 그럴 마음에 여유도 없었고요. 20대인 짜응은 40대를 상상하면 어떻게 살고 싶나요?
미래에 대한 생각은 자주해요.
언젠가는 한적한 외곽에서 살고 싶고, 정말 뜬금없지만 ‘비건 공방’을 하고 싶어요. 손재주가 있는 건 아닌데 빵도 만들고요. 그 공간에 사람들도 모이면 좋겠어요.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청소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 계속 사부작사부작하면서 할 수 있는 건, 공방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나이 드는 게 엄청 두렵지 않아요. 더 좋다고 해야 되나? 스물여덟인데 스무살, 막 어릴 때는 매일 너무너무 힘들고, 분노하고 너무너무 억울했어요. ‘내 삶은 너무 억울하다, 왜 하필 나인지 모르겠다.’ 늘 그런 생각으로 살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괜찮아지고 의연해지더라고요. 어떤 큰 일에도 딱히 크게 반응하지 않고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나이 먹는 게 너무 좋다!’입니다.
Q13. 마음이 편안해지는 계기가 있었나요?
자립준비청년 캠페인 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스물네 살에 몽골로 해외 봉사활동을 가서 진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때도 제 자신이 자주 부끄럽다고 생각했거든요. 잘하는 것도 없고, 뭔가 늘 부족하다고. 회피하기 위해 떠났어요. 대학생활을 하는데 너무 바쁘고 힘들었고, 사는 게 너무 빡세니까. 그냥 해외에 가서 5개월 정도 단절되어 있자, 한국에 없으면 봉사활동에만 집중하게 되겠지 그랬어요.
몽골에서 벽화도 그리고, 주민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치고, 컴퓨터 교육도 하고. 여기저기에서 행사도 진행했어요. 몽골에서 깨달았는데 제가 생활적인 부분이 뛰어난 거예요. 청소랑 요리도 잘하고, 알뜰살뜰하게 잘 챙기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자립을 했던 게 되게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어요. 같이 해외봉사를 갔던 팀원들이 이런 저를 너무 좋아해 주는 거예요. 왜 날 좋아해 주지? 진짜 나 좀 잘하는 사람이구나, 나를 잘 챙기는 사람이구나 그때 처음 느꼈어요.
처음으로 나 좀 괜찮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자립준비청년 캠페인을 해 볼 마음도 갖게 된 거죠. 당사자 캠페인 활동을 시작하면서 치유의 과정도 경험했어요.  
Q14. 소이프에는 자립준비청년을 생각하는 빌더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짜응도 빌더에 가입하셨던데요.
독서 모임이 있는데 너무 좋아서 최근에 회원가입을 했어요.
매달 회비가 2만 원이었는데요. 그때 한창 소이프에서 빌더 리워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가계부를 정리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거 하겠다고 2만 원도 내는데 빌더 가입비가 1만 원이면 밥 한 끼인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하게 생각했어요. 누가 뭐라고 안 했는데 괜히 찔려서. 딱히 어떤 빌더가 되겠다 이런 마음은 없었어요. 하하.  
Q15. 짜응에게 좋은 어른이란? 힘든 어른이란?

작년 제주도 캠프의 기억이 좋았던 건 늘 쏟아내기만 했던 말들을 누군가 들어주었던 경험 자체가 좋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뻔한 말이긴 하지만 어른들이 더 많이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한 번 만나 갑자기 친해지고, 어떤 순간 친구들에게 둘도 없는 좋은 어른이 되겠다거나 이런 건 솔직히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인간관계도 그렇고요.

갑자기 ‘멘토가 되어 줄게’ 이런 건 별로 안 좋은 것 같고요.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줬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이기는 게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기억에 남는 어른들도 맨날 잔소리를 해도 늘 곁에 있어줬던 사람들이었어요. 계속 같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어른이 저에게는 좋은 어른 같아요.


힘든 어른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가 원할 때, 필요할 때, 자기가 생각날 때 연락하는 어른.

그게 너무 느껴져요.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거든요. 제 기준대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 기필코 되고 싶구나’ 이런 게 느껴지는 사람을 종종 만나는데 제 환경과 저라는 사람은 그 사람의 ‘기필코’로만 사용되는 거죠. 그런 어른들은 자기가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만족하면 금방 사라지더라고요. 자신이 원하는 역할만 열심히 수행하고요. 자존감을 키우겠다, 봉사 시간을 채웠다, 그럴 수도 있고요. 그게 시작이 될 수 있긴 한데 경계해야 되는 부분인 것 같아요.

Q16. 허들링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하는 친구들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우리 허들링은 많이 고민하는 모임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CM을 만든 것도 결국에는 허들링의 운영 시스템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당사자 이야기를, 함께 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하지 않도록 우리가 시스템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거라고. 걱정하는 마음을 덜고 즐겁게 와서 함께 하면 좋겠어요!  
Q17. 2023년 허들링에 대한 기대와 3년 차 경력직으로(?),
함께 활동하고 있는 CM들에게 하고픈 말 해주세요!
그냥 너무 고맙고, 점점 더 좋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아요. 각자 일도 하고, 대학도 다니고 일상도 너무 바쁘잖아요. 그런데 서로 도우려는 마음이 너무 느껴져서 고맙다라는 말 전하고 싶어요.
이야기 기록한 이. 유랑流浪
이야기 나눠준 이. 짜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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