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에게 드리는
#13 열네 번째 화요일 이야기 
(2020. 10. 20)
🍂
나의 책상 유랑기
_김보나 기자

내게 처음으로 ‘내 책상’이 생긴 것은 초등학생 때다. 유치원에서 쓰던 플라스틱 탁자와 달리 학교의 책상은 노란 상판이 빛나고 가방 걸이도 달렸다. 무엇보다 나만 쓰는 책상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책상에 연필로 이름을 쓰거나 서랍에 교과서를 넣었다 빼며 수없이 장난쳤다. 

교복을 입을 무렵 나는 더 다양한 책상을 접했다. 친구 집의 책상은 각도가 조절되는 마그넷 보드가 달려 책을 읽기 편했다. 카페에 놓인 넓고 우아한 마호가니 테이블에 반해 어른이 되면 저런 책상에서 글을 쓰겠다고 맘먹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하나둘 취직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책상의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었다. 사무실에 책상을 갖는다는 것, 그건 바로 사회에서 자기 터를 잡기 시작한다는 말과 같았다. 동기와 선후배들은 에스엔에스에 책상 사진을 올리며 소식을 전했다. 임용 시험을 통과한 이의 책상에는 교과서가, 사무직의 책상에는 모니터와 사원증이 놓였다. 

나는 내 책상, 독서실 혹은 국어 학원의 책상을 보며 위축되었다. 취직한 이들이 한없이 부러웠고, 이 세상에 내 자리 하나 마땅히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만 여겨졌다. 그러다 이내 깨달았다. ‘책상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었어.’ 학생과 달리 어른은 자기가 머물 자리와 책상을 스스로 구해야 하는 존재였다. 

거듭 떠돌아다니던 올해 봄,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던 내게 ‘좋은생각사람들’의 구인 공고가 눈에 띄었다. ‘좋은생각? 내가 아는 그 잡지?’ 그간 여러 차례 겪은 거절이 떠올랐고, 나보다 뛰어난 조건의 사람이 지원할 듯해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본 《좋은생각》에 대한 호기심이 무기력을 이겼다.

처음으로 출근한 나는 조금 긴장한 채 자판을 두드렸다. 출근 이틀 차, 원고를 펼치려는데 책상에 뭔가가 놓여 있었다. 벽걸이 달력이었다. 간단한 메모와 ‘좋은생각 김은석’이 적혀 있었다. 달력에는 세계 여러 곳에서 찍은 돌 사진과 짧은 경구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가 날 반긴다는 마음이 전해져 울컥했으나, 아직 얼굴을 다 외우지 못해 인사도 제때 못하고 어릿거렸다. 그날 나는 그 메모를 떼어 책상에 붙였다.

여느 때처럼 일하던 어느 날, 맞은편에서 ‘지이잉.’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자 책상 상판이 진동음과 함께 느리게 솟고 있었다. 책상 주인은 눈높이를 알맞게 조절하고 일어나서 일을 시작했다. 책상 앞면을 보니 세모꼴 버튼이 달려 있었다. 주위를 살피자 몇몇 사람들이 서 있었다. 요즘 책상이 많이 좋아졌네, 신기함에 미소 짓다가 실감이 났다. ‘그러고 보니 새 책상이구나.’ 오랜만에 새로운 책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모니터와 원고가 놓였고 이제 따뜻한 메모도 하나 생긴, 책상.

사실 책상 앞에서 영감을 얻을 때보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더 자주 찾아온다.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자세라도 바꿔 보는 게 내 버릇이다.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점심시간을 틈타 짧게라도 산책했다. 커피를 든 행인을 스쳤고 매번 달라지는 바람과 하늘을 관찰했다. 그러면 바깥 공기처럼 신선한 생각이 가끔 흘러들기도 했다. 

우선, ‘자기 자리는 책상이 있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구나. 책상과 명함이 생겼지만 아직 일에 익숙지 않아 허둥대는 스스로를 보며 느낀 점이었다. 어느 날엔 좋은님의 글 뒤에 붙는 ‘○○시 ○○구’가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지역을 보며 나와 다른 책상, 그리고 다양한 일터를 가졌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이 글을 보낸 이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며 부지런히, 어느 때는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참, 벽걸이 달력은 내 방에 걸었다. 봄에는 굽이치는 시내에 잠긴 반짝이는 돌을 보여 주던 달력이 이제 단단한 진갈색 돌담을 내보여서, 가을이 온 걸 알았다.


💬  님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화요일 오후 세 시’는 좋은님과 함께 성장합니다. 좋은님의 소중한 의견을 들려주세요! 

 “보나 기자님 책상 아기자기해요!" 
"저의 취준생 시절이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와 같은 기자 좋은 의견 포함 레터 구성, 주제, 아쉬운 점 등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보내 주세요. 추첨을 통해 매주 한 분에게 《좋은생각 10월 호》와 굿즈를 선물로 드립니다.😘 ▶ 의견 보내러 가기 (클릭)

👏 지난주 설문 이벤트 당첨자(성함, 핸드폰 뒷자리 4개)👏
-
이 ** (9498)

경품은 금주 내로 발송 예정입니다.
보내주신 의견을 바탕으로 다음 번에는 
더욱 더 알찬 소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좋은생각사람들

※ 본 메일은 발송 전용으로 회신 받을 수 없습니다.
문의 메일은 positivebook@naver.com 으로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