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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읽지]  2021-09-30 #73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unsplash


마음의 온기가 필요한 날, 정세랑을 읽다
정세랑 지음/창비 펴냄


병원에 이송 기사라는 직군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환자들의 침대를 밀어 검사실로 데려다주고, 검사가 끝나면 병실로 돌려놓는 일을 주로 맡는다. 건축학부 학생인 서연모에게 이 아르바이트를 소개한 이는 “헬스 같은 것은 필요 없다. 두 달만 해보면 팔근육이 바로 붙는다”라고 설명한다. 미끄러운 병원 복도로 ‘베드’를 운전할 때마다 서연모는 자신이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혈액세포가 된 기분에 빠지곤 한다.

〈피프티 피플〉은 서울 근교의 한 중소도시에 위치한 대학병원이 배경이지만 의학 소설은 전혀 아니다. 책 제목 그대로 등장인물 50명이 자신의 이름이 붙은 소설의 각 장을 이끈다. 이들은 스치듯 지나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소설은 그런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병원 숙직실에 살며 시신을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일을 하는 66세 하계범이 지하 경사로에서 그만 힘이 빠져 미끄러질 뻔하는 순간 젊은 이송 기사가 그를 돕는다. 소설에 명시되지는 않지만 이 젊은이의 이름은 서연모일 테다.

병원 인근의 영화관에서 서연모와 하계범과 그 밖의 〈피프티 피플〉 속 인물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영화를 보는 사이 화재가 난다. 관객들은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이기윤의 안내에 따라 음료수를 적신 손수건이나 옷으로 입을 막고 대피한다. 닥터헬기 조종사 최대환은 옥상에 대피한 관객들을 구조한다. 첫 번째로 구조된 어린이들은 오정빈과 정다운이다. 정빈의 아빠는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 있고, 다운의 아빠는 누군가를 해쳐 교도소에 가 있다.

느슨한 연결 사이로 무엇이 흐를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마음의 온기가 필요한 날, 정세랑을 읽는 이유이다.  김연희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우리가 선택한 가족
에이미 블랙스톤 지음, 신소희 옮김, 
문학동네 펴냄
“어째서 부모가 되는 것은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까?”

‘결혼했는데 왜 아이를 낳지 않느냐’라고 누군가 물으면 되묻곤 했다. 그럼 당신은 아이를 왜 낳았느냐고.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아직 못 만났다. ‘정상’과 ‘당위’의 힘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데서 나온다. 아이는 온전히 부모의 힘으로만 성장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 마을이 필요하다’ 같은 말도 나오지 않았으리라. 자식이 없는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적 양육을 담당한다. 저자는 미래세대를 기르는 일은 지금보다 더 ‘지역사회의 숙제’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013년부터 무자녀 커플의 삶을 공유하고 관련 연구를 모아둔 ‘우리는 아이 (안) 가져’라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책 자세히 보기 >>>

진붕
리카이위안 지음,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펴냄
“‘진나라를 멸망시킬 것은 반드시 초나라’라는 말의 참된 의미는?”

모두가 이익을 추구하고 눈앞의 성공에만 급급하면서 음모와 모략, 배신을 일삼았던 중국의 ‘후안무치한 영웅시대’, 진한(秦漢) 교체기를 담은 육중한 역사서다. 일본과 중국 두 나라에서 30년 이상 진한사(秦漢史)를 연구한 저자 리카이위안이 마치 추리소설 같은 글쓰기로 진나라가 멸망하고 한나라가 건국되는 당대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진나라 말의 역사를 정리하면서 공리주의적으로 덮어놓고 진취와 발전만 추구하면서 윤리도덕 및 인문교육을 홀대한 것을 진붕(秦崩:진나라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제시한다. 책 자세히 보기 >>>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해나무 펴냄
“우리는 한 모금의 숨결에 온 세계를 담을 수 있다.”

책은 도발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음번에 우리가 들이마시는 숨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죽는 순간 내뱉은 공기 중 일부가 함께 딸려온다면 어떨까?” 다음 문단을 읽을 수밖에 없다. 작가 샘 킨은 기원전 44년 3월15일 로마 원로원 회의실에서 카이사르가 단도에 찔려 몸속의 피와 숨을 잃어가는 순간을 클로즈업하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생각해보라. 한때 카이사르의 폐 속에서 춤추던 분자들 중 일부가 그토록 먼 거리와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이 순간 우리의 폐 속에서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때 기체의 속성을 설명하는 화학 교과서 대신 읽었더라면 좋았을 책이다.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박서련 지음, 마음산책 펴냄
“그것이 사장의 눈이라는 것을 알기에 쳐다보기를 멈출 수 없었다.”

표제작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는 정말 내 얘기 같았다. 이야기 속 ‘나’는 아이패드를 사기 위해 만화 카페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 석 달째, 가게에 좀처럼 얼굴을 비추지 않던 사장에게 갑자기 전화가 온다. “그림 잘 그리네?” 나도 만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이 일하던 앞 타임 아르바이트생이 갑자기 그만두게 된 건 사장에게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자기가 안 보고 있는 것 같아도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을 CCTV로 다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도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장편소설 〈마르타의 일〉에서도 느꼈지만, 박서련의 소설은 이렇게 나의 일상과 닿아 있다. 책 자세히 보기 >>>

책 만드는 사람들

"나는 책 읽는 사람이 많아지려면 일단 읽지 않아도 사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이 사면 그중에 한 권은 읽게 될지도 모르니까." 

예쁘고 신기한 것은 일단 사고봐야 직성이 풀리는 '프로 소비꾼'이 책 파는 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북 마케터가 풀어놓는 '일의 기쁨과 슬픔' .


한동안 소설을 잘 읽지 않았습니다. 취재나 기사 작성에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들, 그러니까 정치․경제․사회 분야 책을 주로 읽었죠. 그러다 오랜만에 접한 소설이 오늘 소개된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었습니다. 한 독서모임에 갔다가 떠안은 추천도서중 한 권이었죠(사실은 이 독서모임도 취재를 위해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정세랑 작가가 지금처럼 유명하진 않았기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책을 읽어내려간 기억이 납니다. 병원 내 직군 등에 대한 묘사가 너무 디테일해 ‘의료계 종사자인가?’ 싶기도 했죠.
 
그런데 이 책, 손에 잡으니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50명이나 되는 등장인물들간의 연결 고리를 좇다 보니 한나절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독서모임을 같이하는 분들의 반응이었어요.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는데 이분들이 책을 읽은 뒤 다같이 ‘정세랑 좋아’를 합창하더라고요. 다른 책을 읽을 때는 호오가 꽤 분명하게 갈렸는데 말이죠.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론 작가의 필력에 매료된 요소가 가장 컸겠죠. 그런데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사하게 만드는 소설의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피프티 피플>처럼 다양한 성정과 배경을 가진 인물이 등장하는데다 그 인물들이 내 곁에 존재하는 누군가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소설을 읽을 때는 더욱 그렇죠. 실제로 당시 독서모임 참가자들이 가장 만족스러워했던 것도 ‘나는 왜 등장인물 중 ○○○에게 유독 마음이 끌리는가’를 얘기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닐텐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마음 깊은 곳 그림자를 끌어내 돌아볼 수 있었던 거죠.
 
정세랑 작가는 최근 나온 에세이집(<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자신의 포기할 수 없는 목표중 하나로 ‘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이해하는 것’을 꼽았던데요. 이를 가능케하는 가장 좋은 방법중 하나가 소설을 읽는 일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마침 계절도 소설 읽기 딱 좋은 가을의 초입이네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시고요😀
     

“뭔가를 꾸준히 읽은 게 교과서 이후로 처음이었어요.”
매일 조금씩 팀원들과 같이 뉴스를 읽다보니 의지가 되면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접하며 배운 것도 많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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