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번째 편지 : 느끼함, 날 것의 사랑표현, 라자냐
안녕하세요, 냠냠편지 구독자님! 작년 12월 21일, 열 번째 편지를 마친 지 벌써 한 달 반이 지나갔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희는 지난 냠냠편지의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약간의 변화를 주어 신선해진 냠냠편지를 보내기 위해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즌에는 ‘시리얼’과 같은 하나의 음식 키워드를 정해서 각자의 이야기를 보내드렸다면, 이번 시즌부터는 바톤터치를 해보기로 했어요 : 나나의 자유로운 음악추천을 시작으로 - 동구리는 그와 연상되는 음식 에피소드를 그리고 - 알렉스는 그림을 보고 떠오르는 맛집 이야기를 적어나가기로 했습니다.

부디 2021년의 냠냠편지도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맛있는 냠냠편지, 잘 부탁드립니다.

구독자 여러분 추운 날씨 잘 지내고 계신지요. 오랜만의 편지입니다. 이번 화 부터 용기내어 조금 더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사실 굉장히 낯가리는 성격이라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잘 웃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제가 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보내는 편지라니요. 저를 처음보는 분들은 저를 때때로 차가운 사람이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 굉장히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슬프게도 그 점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항상 약점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지요.  

넷플릭스 시리즈인 '그레이스 앤 프랭키'를 다들 아시나요? 너무나 다른 성격의 70대 여성 둘이 같이 살면서 벌어지는 짜릿한 우정을 다룬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그레이스는 이성적이고 지혜롭고, 프랭키는 자유분방하고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는 내내 그레이스는 동구리, 저는 프랭키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줄곧 둘의 우정을 동경했습니다. 

사근사근한 첫인상에 속아 동구리와 한 집에 산지 3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동구리는 알고보니 드라이아이스 만큼이나 차갑고 둔감한 사람이더라고요. 맞습니다. 동구리의 장난에 줄곧 놀림을 당하는 상황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채로운 장난을 쳤지만, 절대 타격을 입지 않는 동구리를 보고 발만 동동 구르며 분해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속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고 동구리에게 "사랑해!"하고 이야기 했습니다. 어떤 모진말에도 무반응이던 동구리가 쑥스러워하며 처음으로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동구리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찐하고 느끼한 표현들을 생각해내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에는 끈적이는 비트와 가사가(너의 사랑이 없었다면 난 없었을거야 마치 심폐소생술을 받은 기분이야) 매력적인 Summer Walker의 CPR이라는 곡을 동구리에게 바칩니다. 
🎧 Summer Walker - CPR

지난주에 비가 내렸던 날을 기억하시나요? 그 이후로 부쩍 추워져서, 전기장판 온도를 조금 더 높여야 했지 뭐예요. 그 날 느끼하고 다정한 저의 룸메이트 나나는 몸을 덥혀줄 따끈한 감자수프를 만들어서 제게 나눠줬어요. 저는 거기에 치즈 한 장을 넣어 녹여 먹었을 정도로 느끼한 맛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곰곰이 생각해 봤습니다. ‘느끼한 맛’'고소한 맛', '부드러운 맛'이라고 달리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갑자기 나나를 비롯해서, 제가 그동안 만났던 모든 느끼한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네요. 어쩌면 세상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날 것의 사랑 표현이 고소하고, 부드럽다고 생각하나 봐요. 영어로 느끼한 사람을 표현할 때도 ‘cheesy’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에요.

저는 느끼한 맛을 한없이 좋아하면서도, 미뢰도, 마음도 생각보다 건조한 사람이기에 그 맛을 해소해 줄 무언가가 없으면 괴로워해요. 그래서 냉장고에 청양고추스리라차 소스를 비상용(?)으로 구비해두곤 합니다. 날것의 사랑 표현을 들었을 때는 머릿속으로 애써 평화로운 자연 풍경 따위를 떠올리며 표정관리를 하고요. 그러면서도 다시 찾게 되는, 주기적으로 먹어주지 않으면 섭섭한, 그런 맛이 바로 '느끼한 맛’ 같아요.

구독자님도 저처럼 느끼한 맛을 좋아하시나요? 콜라 없이도 연어나 크림 리조또를 얼마나 많이 드실 수 있나 궁금합니다.
아, 날 것의 사랑 표현을 좋아하시는지도요.

합정역 카밀로 라자네리아, '몬타냐'
혹시 파스타 드시러 가면 어떤 파스타를 주로 드시나요? 저는 무조건 느끼한 크림 파스타를 주문하곤 하는데요. 그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합정역에 위치한 카밀로 라자네리아'몬타냐'라는 메뉴랍니다! 아, 먼저 카밀로 라자네리아에 대해 잠깐 설명드리자면, 넓적한 면과 소스들을 켜켜이 쌓은 뒤, 제일 위에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워내는 라자냐를 전문으로 하는 자그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에요.

합정역 카밀로 라자네리아, '몬타냐'
고소한 크림 소스를 베이스로, 소고기와 표고/느타리/새송이 등, 다양한 버섯들을 넣어만든 몬타냐는 정말 '세상에 이런 라자냐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었는데요. 소스에 비벼먹을 레몬 밥과, 후식으로 나오는 판나코타까지 깔끔한 한 상을 처음 받았을 때의 그 기분은 아직도 잊지 못해요. 라자냐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멀리서라도 찾아갈만한 곳이고,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무조건 어느 정도의 만족은 하실 거라 제가 보증합니다. 실제로 제가 여태 10명이 넘는 분들을 이 라자냐의 길로 인도했었는데, 단 한 명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커스텀 커피 합정점, '아이스 카페 라떼'
카밀로 라자네리아를 방문한 뒤 갈만한 카페도 하나 추천드리고 싶은데요. 걸어서 3분 거리에 위치한 커스텀 커피아이스 카페 라떼에요! 용인 쪽에서 크게 떠서 그 근처에만 분점이 몇 개 있고, 판교 현대백화점에 입점했을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지만, 합정점은 오픈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커피의 산미나 씁쓸함을 즐기신다면 추천드리지 않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맛은근하게 달달한 뒷 여운이 잘 맞을 것 같다면 분명 좋아하실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그랬거든요! 굳이 기존의 유명한 카페들과 비교해보자면, 상수역 듁스 커피 화이트의 꼬수운 맛보다는 성수동 메쉬 커피 라떼의 부드러운 맛에 가까운 느낌? 물론 저는 두 곳의 라떼 다 좋아하지만요 :)

커스텀 커피 합정점, '캔 카페 라떼'
나올 때 보니 캔커피로도 판매 중이시길래 당시 사두었던 아이스 라떼를 지금 또 마시는 중인데, 너무 제 취향이라 나중에 또 사다놓을 예정입니다. 사실 캔커피 감성이 힙해서 그냥 힙스터인 척 한 번 집에서도 마셔보고 싶었어요... 카밀로 라자네리아의 몬타냐커스텀 커피의 아이스 라떼! 둘 다 느끼한 듯 하지만, 막상 먹어보면 과하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에 계속 찾게 되실 걸요? 구독자 님만의 또 다른 맛집들이 있다면 답장 우체통을 통해 알려주세요! 저 역시 또 다른 맛집들을 보고 배워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도 화이팅이에요 :D
앞으로의 냠냠편지도 기다려진다면 구독해주시고, 친구에게도 공유해주세요 :)
냠냠편지를 쓰는 이들에게 힘이 됩니다!
냠냠편지에 덧붙이고 싶은 이야기, 궁금한 점 또는 하고 싶은 아무말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클릭! 
답장을 기다릴게요.
냠냠편지에 답장하신 다른 분들의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답장 우체통을 확인해주세요.
(냠냠편지의 답장과, 답장의 답장이 공유되어 있답니다! 만약 공개를 원치 않으신다면, 본 메일주소로 연락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