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께 보내는 네 번째 흄세레터
이다혜 기자의 에세이를 담은 지난 레터, 재밌게 읽으셨나요? 이다혜 기자가 원고 청탁을 수락하며 덧붙인 말이 있는데요, “고전은 같이 읽고 해석을 듣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였어요. 피드백을 보니 독자님들 의견도 비슷하더라고요. 모든 이야기가 그렇겠지만, 고전은 특히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많은 이야깃거리를 주는 듯합니다. 흄세레터 4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박아람 번역가 버전의 《프랑켄슈타인》 일부도 공개하고, 함께 즐기면 좋을 콘텐츠도 사심 가득 담아 추천해보려고 합니다.
곧바로 이어질 《프랑켄슈타인》 미리보기는 편집자 흄&세가 고심해서 골랐는데요, 공교롭게도 화자도 분위기도 사뭇 다른 두 대목을 소개해드리게 되었어요. 레터 마지막에는 활자에 치인 님을 위해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을 소개하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매주 진행되는 피드백 이벤트도 놓치지 마시고요!✨)
《프랑켄슈타인》 미리보기 -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그때였습니다. 멀리서 초인적인 속도로 나를 향해 다가오는 형체가 보였어요. 내가 조심스레 걸어온 얼음 벌판의 균열들을 껑충껑충 뛰어넘었고, 가까이에서 보니 인간이라기엔 체격이 너무 컸습니다. 나는 몹시 불안했지요. 눈앞이 흐려지고 머리가 아찔했지만 차가운 산바람에 금세 정신을 차렸습니다. 형체가 더 가까워지자(거대하고 혐오스러운 모습이었어요!) 그제야 내 손으로 만든 괴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분노와 공포에 치가 떨려서 놈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목숨을 걸고 싸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계속 다가오더군요. 얼굴에는 경멸과 전의가 뒤섞인 쓰라린 고통이 엿보였지만, 끔찍한 모습은 인간의 눈으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분노와 증오로 말문이 막혔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혐오와 경멸의 독설을 퍼부었지요.


“이 악마! 감히 나에게 오려고? 그 괘씸한 머리에 맹렬한 복수를 퍼부을 이 팔이 두렵지도 않냐? 썩 꺼져라. 더러운 버러지 같은 놈! 아니, 거기 서라. 너를 짓밟아 가루로 만들어버릴 테니! 아, 네가 극악하게 살해한 희생자들의 목숨과 비열한 너의 목숨을 맞바꿀 수만 있다면!”


그러자 악마가 대꾸하더군요. “당신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사람들은 모두 흉측한 것을 증오하지. 살아 있는 존재를 통틀어 누구보다도 추한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울까! 하지만 나의 창조자인 당신마저 나를 혐오하고 부정하다니. 당신과 나는 한쪽이 죽어야만 풀리는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다. 나를 죽이려 하다니. 감히 생명을 갖고 장난을 치나? 당신이 나에게 도리를 지킨다면 나도 당신과 인간들에게 도리를 지키겠다. 나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다시는 인간들을 건드리지 않겠다. 거절한다면 당신의 남은 친구들을 모조리 죽여 그들의 피로 지옥의 나락을 가득 채울 것이다.”


“역겨운 괴물! 몹쓸 악마 같으니! 지옥의 고문도 너의 죗값으로는 부족할 텐데. 비열한 마귀! 너를 만든 나를 원망한다면 어디 덤벼봐라. 내가 경솔하게 불을 붙인 그 생명의 빛을 꺼뜨려줄 테니.”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누군가를 향해 느낄 수 있는 모든 적의를 불태우며 나는 놈에게 달려들었지요.


놈은 가뿐하게 나를 피하며 말했습니다.

“진정해라! 내 저주받은 머리에 증오를 퍼붓기 전에 내 말을 들으란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고통받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 셈인가? 삶은 고통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나에겐 소중하니 내 삶을 지킬 것이다. 명심해라. 당신은 나를 당신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나는 당신보다 몸집이 크고 더 유연한 관절을 가졌어. 하지만 당신과 맞서 싸우지 않겠다.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니 당신이 본분을 지킨다면 나의 주인이자 왕인 당신에게 복종하겠다. 아, 프랑켄슈타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리를 다하면서 나만 짓밟으려 하다니. 누구보다도 나를 공정하게 대해주고 관용과 사랑을 베풀어야 할 사람인데. 내가 당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잊지 마. 나는 당신의 아담이 돼야 하지만 타락 천사가 됐지. 당신은 죄 없는 나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갔어. 온 세상이 축복으로 가득한데 오직 나만 지독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인정 많고 선량했지만 비참한 삶이 나를 악마로 바꿔놓았어.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다시 선량하게 살겠다.”(134~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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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미워하는 사람이 없는 저도 가끔은 이유 없이 주먹을 쥐곤 하는데, 아무런 죄 없이도 기쁨을 빼앗기고 ‘오직 나만 지독한 외톨이’로 살아가야 한다면,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프랑켄슈타인》 미리보기 - 괴물의 이야기

“차츰 나는 더 중요한 것들을 알아갔지. 그 가족이 명확한 소리로 경험과 느낌을 소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그들이 하는 말이 듣는 이의 마음과 표정에 기쁨이나 고통, 미소나 슬픔을 자아낸다는 사실도. 그야말로 굉장한 기술이었지. 나도 배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어.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 그들의 발음이 너무 빠르기도 했고, 그들이 내뱉는 낱말을 눈에 보이는 사물과 분명하게 연결할 수 없어서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낼 길이 없었어. 그래도 달이 차고 기울기를 여러 번 되풀이하는 동안 헛간에서 지내며 열심히 노력한 끝에 대화에 자주 나오는 사물 몇 가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 우유, , 나무 같은 말을 익혀서 사용해보았지. 그 집 사람들의 이름도 알게 됐어. 청년과 소녀는 서로를 몇 가지 이름으로 불렀지만 노인의 이름은 딱 하나, 아버지였어. 소녀는 누이 또는 아가타라고 불렸고 청년은 펠릭스오빠, 아들이라고 불렸어. 이런 낱말들의 의미를 깨닫고 내 입으로 발음하게 됐을 때 느꼈던 기쁨은 뭐라고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 말고도 몇 가지 낱말은 뜻을 이해하거나 사용하지는 못해도 구분할 수 있었지. 이를테면 좋다, 소중하다, 불행하다 같은 말이 그랬어. (......)


내 사고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이 아름다운 가족의 동기와 감정을 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펠릭스는 왜 그리도 비참한 모습인지, 아가타는 왜 그리도 슬퍼 보이는지 몹시 궁금했어. 내가 이 선량한 사람들의 행복을 되찾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잠자리에 눕거나 멍하니 있을 때면 앞을 못 보는 인자한 아버지와 예의 바른 아가타, 멋진 펠릭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어. 그들이 내 미래의 운명을 좌우하는 우월한 존재인 것만 같았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이 나를 받아주는 장면을 수백 번 그려보았다. 내 모습을 보면 역겨워할 테지만 예의 바른 태도와 다정한 말로 먼저 호감을, 그런 뒤에는 사랑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


이런 생각에 마음이 들뜨면서 언어의 기술을 익히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지. 내 발성은 거칠지만 유연했고 목소리도 감미로운 노래 같은 그들의 목소리와는 딴판이었지만 뜻을 아는 낱말은 편안하게 발음할 수 있었어. 우화 속에서 주인에게 사랑받는 강아지의 행동을 흉내 냈다가 야단맞는 당나귀 꼴이 될 수도 있었지만, 당나귀의 행동이 예의에 어긋났더라도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렇게 얻어맞으며 욕먹을 이유가 있을까 생각했다.


봄의 상쾌한 소나기와 쾌적한 온기 덕분에 대지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어. 동굴에 숨어 있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던 남자들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땅을 경작하더군. 새들은 더 밝은 음색으로 노래했고 나무에는 새순이 돋기 시작했어. 축복받은 대지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척박하고 축축하며 황량했던 대지가 이제는 신들의 거처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지. 매혹적인 자연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기운이 났다.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현재는 평온했으며 미래는 밝은 희망의 빛과 즐거운 기대로 반짝거렸어.”(153~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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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이 아닌 괴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오두막에 숨어 지내며 가난하지만 화목한 가족을 지켜보던 괴물이 인간의 언어를 익히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는 장면입니다. 아름다워서 슬픈 대목입니다.

👀 편집자 흄&세가 추천하는 함께 보면 더 좋을 콘텐츠 🙌
📍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난 괴물
프랑켄슈타인보다 괴물에 이입하신 분?🙋‍♀️ 가난하지만 서로가 있어 버티는 드라세 가족을 멀리서 지켜보고, 몰래 마음을 전하고, 용기 내 다가갔지만 끝끝내 버림받은 괴물에 어찌나 마음이 가던지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각색한 국내 창작 뮤지컬인데요, 괴물 캐릭터가 특히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모든 넘버가 세계 n대 뮤지컬 뺨치게 좋지만, 그중 〈난 괴물〉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쓸쓸한 전주와, “나의 신이여 말해보소서 대체 난 뭘 위해 만들었나. 단지 취미로, 호기심에 날 만들었나. 숨을 쉬는 나도 생명인데 왜 난 혼자서 여기 울고 있나요. 여기 버려진 채로”라는 가사, 배우의 연기까지 더해진 괴물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마음에 박힙니다.  
📍 소설가 이종산의 유튜브 〈프랑켄슈타인이 누군지 아세요....?〉
《머드》, 《커스터머》, 《게으른 삶》 등을 쓴 이종산 소설가에게 새로운 타이틀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바로 유튜버! 영화&드라마&책 리뷰뿐만 아니라 메이크업과 먹방 영상까지 있답니다.😜 최근에는 감사하게도 흄세의 《프랑켄슈타인》을 가지고 영상을 찍어주셨어요(내돈내산).

프랑켄슈타인은 박사가 아니라 우수한 대학원생 느낌이라는 멘트처럼 유쾌하고 솔직한 감상을 들을 수 있어요. 또 경향신문에 연재 중인 [이종산의 장르를 읽다]에 프랑켄슈타인의 창조물은 왜 괴물이 됐나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써주셨어요. 소설가는 《프랑켄슈타인》을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보세요. 👀

4개월마다 만나는
하나의 테마, 다섯 편의 클래식

001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박아람 옮김

002색 여인

엘리자베스 개스켈 | 이리나 옮김

003 석류의 씨

이디스 워튼 | 송은주 옮김

004 사악한 목소리

버넌 리 | 김선형 옮김

005 초대받지 못한 자

도러시 매카들 | 이나경 옮김

💌 님, 이번 흄세레터 어떻게 읽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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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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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추첨을 통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10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권(5명)을 드립니다.
흄세레터 4호 이벤트 당첨자는 3월 4일 발행되는 흄세레터 5호에서 발표합니다.

 지난 이벤트 당첨자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5명)
손*희(5706), 안*윤(3006), 류*혜(6094), 김*선(4701), 류*승(3077)
스타벅스 아메리카노(10명)
김*선(5546), 최*화(3110), 송*영(7045), 박*혜(5199), 하*서(5390)
배*해(5012), 이*연(2304), 문*실(6980), 강*현(7794), 박*영(3933)
선물은 레터가 발송되는 금요일에 문자와 택배로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흄세(휴머니스트 세계문학)
boooook.h@humanistbooks.com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23길 76(연남동) 휴머니스트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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