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포럼] 전기요금 올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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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은 두부 값과 콩값으로 말했다. 콩값이 올라도 두부 값을 올리지 않더니 결국 두부 값이 콩값보다 더 싸졌다고 했다. 에너지 분야를 전공하는 한 교수는 햇반 값과 쌀값으로 비유했다. 쌀값은 올랐는데 가공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게 누르는 바람에 햇반 값이 더 싸지는 기현상과 같다고 했다. 전기 값을 두부나 햇반에 빗대 한 얘기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상황에 대한 조롱 섞인 언급이다.

싼 전기료 때문에 생긴 왜곡된 모습은 널려 있다. 김 사장은 바나나 농장을 사례로 들었다. 스마트팜이라고 포장했지만 전기로 농장 난방을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말한다. 서울대 공대 기숙사를 지을 때 전기 난방 시스템을 깔겠다는 최초 설계를 논란 끝에 말렸다는 학장 출신 교수의 고백도 있다. 학교에서 쓰는 전기나 농업용 전기 모두 원가보다 싸게 적용하는 요금 체계 때문에 생긴 일이다.

특정 용도에 원가 이하로 값을 적용하는 현행 전기요금 방식은 뜯어고쳐야 한다. 월 사용량 200㎾ 이하의 가정용 1단계 요금이나 농업용이 대표적이다. 농가를 무조건 영세농으로 취급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전기를 적게 쓴다고 저소득 가구로 간주하는 것도 오류다. 쓴 만큼 부과하고 저소득 계층에게는 쿠폰이나 바우처 등을 지급해 지원하는 게 맞는다. 현행 가정용 3단계에서 1단계 대상은 800만여 가구인데 이들이 모두 저소득층에 해당하지는 않는다. 1인 가구나 외부에서 경제 활동을 많이 하는 고소득층 가구의 가정 전력 사용량은 적을 수 있다. 노년층이나 다자녀 가정이 오히려 전력 다소비 가구이면서 저소득층일 수 있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요인은 안팎으로 널려 있다. 우선 한국전력의 악화되고 있는 실적이다. 올해 상반기 한전의 연결기준 영업적자는 8147억원에 순손실은 1조1690억원에 달했다. 2015년과 2016년 각각 10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가 2017년 들어 전력구입비가 급증하면서 3분기 연속 적자로 반전했다.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전력구입비 증가로 이어졌다. 국회에 제출된 한전 자료를 보면 올해부터 2030년까지 9조원가량 전력구입비가 추가로 든다고 한다. 2022년 폐쇄 예정이던 월성 원전 1호기를 올해 가동 중단하고 신규 원전 6기 건설 계획을 백지화한 데 따른 부담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추가로 들인 전력구입비가 전년 동기 대비 2조1000억원이었으니 타당해 보이는 계산이다.

한전은 전력구입비 연동제를 도입하려고 한다. 원료구입비가 변동하면 이에 맞춰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LNG나 석탄 같은 연료비 외에 전력 생산 방식의 변화나 기술 진보 등도 전력구입비 변동 요소다. 내릴 요인이 생기면 다행이지만 국제유가 동향을 보건대 향후 수년 내엔 오를 개연성이 더 커 보인다.

전기를 사용하고 내는 돈은 요금이다. 세금이 아니다. 쓰는 만큼 그에 비례해 내는 비용이다. 그런데도 세인의 인식과 언행에는 전기세·수도세라는 말이 무의식 속에 자연스럽다. 기업이든 상가나 가정이든 전기를 공공재로 간주하는 성향이 강하다. 지난여름 폭염 때 에어컨 가동으로 확 늘어날 비용을 전기료 폭탄 운운하자 깎아주기로 결정한 청와대와 정부 당국자도 이런 사고 틀에 갖혀 있다. 전기료 한시적 인하는 포퓰리즘의 극치다. 가격 체계를 왜곡하는 이율배반에 다름없다. 무엇보다 형평성에 위배됐다. 에어컨을 쓰지 않았거나 아예 없는 가구는 공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무원칙 퍼주기였다.

정부는 탈원전을 해도 현 정부 임기 내 전기요금 인상이 없다고 고집한다. 2022년에 올해 대비 1.2%가량, 2030년까지 10.9%만 인상된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아무리 따져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공공요금 차원에서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묶어 두는 건 자충수밖에 안 된다. 빨리 솔직해져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을 방도는 없다.

[윤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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