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토론회, 형편없이 추락중인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김경달입니다. 나훈아 공연이 화제였지요. 또 대선 토론과 트럼프대통령 확진으로 미국에 눈길이 쏠립니다. 이번주엔 박상현님이 미국의 '제리 스프링어'란 인물과 타블로이드TV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람을 피운 배우자와 출연해서 싸움을 벌이는 저질 타블로이드쇼의 진행자로 유명하죠.(스프링어가 신시내티 시장까지 지낸 정치인 출신인 건 몰랐네요) "Will you shut up, man?"이 등장한 막장토론도 맞닿은 면이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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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스프링어: 타블로이드 TV와 정치

지난 주 화요일(미국시간)에 열린 미국 대선 첫번째 토론회는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는 미국 정치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누구나 짐작했던 일이기는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례한 인신공격은 물론, 토론의 룰을 무시한 끊임없는 끼어들기로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지경에 까지 몰아갔고, 사회자는 토론의 이끌기 보다는 트럼프의 입을 다물게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도 트럼프의 끼어들기에 지쳐 “Will you shut up, man?(제발 입 좀 닥치지?)” “Keep yapping, man(그래 계속 지껄여)”라며 트럼프를 “Clown(광대, 바보)”라고 부르는 등, 역대 최악의 대선토론회가 되었다. 결국 대선토론위원회는 이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토론의 룰을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후보들이 상대가 말하는 시간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마이크를 끌 것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타블로이드쇼 진행자인 제리 스프링어, 몬텔 윌리엄스, 모리 포비치를 대선토론 사회자로 세우자는 '장난' 청원

변경된 룰이 다음번 토론회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많은 미국의 유권자들과 외국인들의 눈에 미국의 정치는 이미 질낮은 쇼로 전락했다. 토론 직후 온라인에서는 “모리(Maury) 쇼를 보는 것 같다” “이게 제리 스프링어(Jerry Springer) 쇼냐”는 조롱이 쏟아졌고, 미국의 대표적인 온라인 청원 사이트인 Change.org에는 “제리, 모리, 몬텔이 대선 토론회 사회를 보게 해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물론 청원은 장난이었지만, 타블로이드 쇼의 진행자들, 특히 제리 스프링어가 정치와 관련해서 등장한 것은 완전한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고, 단순한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인들, 특히 저학력의 가난한 미국인들은 쌍욕과 저질 폭로가 쏟아지는 타블로이드 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정치인
애인이나 배우자가 바람을 피웠다는 걸 TV쇼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에 알게 되고, 애정행각의 상대방이 스튜디오에 등장하면서 주먹질과 몸싸움이 벌어지면 방청객들이 스포츠 중계를 보듯 환호하는 이들 타블로이드 쇼는 주중 케이블TV의 주요 프로그램들이다. 방청객이 “제리! 제리! 제리!”를 외치는 '제리 스프링어 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제리 스프링어 쇼는 2018년에 종영했고, 유사 프로그램들, 아니 더 심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해도 낮에 방송되는 TV 토크쇼("daytime talk show”라 불린다)를 타블로이드 TV로 전락시키고, 전 미국에 퍼뜨린 장본인은 제리 스프링어다. 그는 어떻게 타블로이드쇼를 만들어내게 되었을까? 물론 가장 짧은 답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흠뻑 빠지는 뛰어난 말솜씨를 가진, 장래가 촉망되는 똑똑하고 젊은 정치인의 이야기다.

유대계인 스프링어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여섯살이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왔고, 뉴욕에서 자라면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그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보면서 정치인이 되는 꿈을 가졌다. 22세 때인 1968년에는 로버트 케네디의 선거운동원으로 일을 했을 만큼 진보정치를 지향했다.

고작 24세의 나이에 오하이오 주의 보수적인 선거구에서 현역 공화당 하원의원에 도전장을 내밀고 싸워서 패배했지만, 공화당 우세 선거구에서 무려 45%의 표를 얻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의 그를 아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매력적이어서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다른 사람들도 스프링어를 만나면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의 제리 스프링어는 로널드 레이건, 로버트 케네디, 빌 클린턴 급의 정치인이었다”는 것이 그들의 증언이다. 연방 하원의원에 낙선한 스프링어는 이듬해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랬던 그가 오하이오주 사람들에게 “멍청한 인간”으로 각인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시의원 신분으로 성매매업소에 드나들다가 걸린 일인데, 발각된 이유가 성매매를 하고 돈을 자신의 이름이 적힌 개인수표로 지불했던 것이다. 

정치를 떠나 미디어계로
스프링어의 일은 1970년에 미국에서 워낙 유명했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가 그 때 정치를 접고 미디어로 옮겼다고 기억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성매매업소에서 개인수표를 주는 멍청이”로 각인된 스프링어는 정치인으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오하이오를 떠날 생각을 했지만, 막판에 마음을 바꾸고 유권자들에게 사과하는 연설을 했다. 그런데 “제가 멍청한 짓을 했습니다”라며 했던 사과가 너무나 솔직하고 진심이 묻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용서했을 뿐 아니라, 이전 보다 더 많은 지지자를 끌어낸 것이다. (심지어 수녀들까지 스프링어를 용서하자는 호소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정치계에서 살아남은 스프링어는 신시내티의 시장까지 지냈다. 

시장 자리에서 내려온 스프링어는 직업을 바꿔 NBC방송의 신시내티 지국에서 뉴스 앵커를 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1980년대를 방송인으로 보내는 그는 방송뉴스를 떠나 당시 인기를 끌던 주간토크쇼(daytime talk show) 포맷으로 승부를 걸기로 했다. 

낮에 하는 토크쇼는 심야 토크쇼와는 달리 방청객들과의 호흡이 중요하고, 낮에 집에서 TV시청하는 주부들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심야와는 전혀 다른 주제와 다이내믹을 갖고 있었다. 이 포맷을 크게 유행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필 도너휴(Phil Donahue)였다. 1970년 부터 1996년까지 방송된 '필 도너휴 쇼’는 이후에 생겨난 오프라 윈프리, 엘렌 드제너러스 등의 인기 주간토크쇼의 기원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필 도나휴

1991년에 탄생한 ‘제리 스프링어 쇼’는 바로 그런 도너휴의 포맷과 진행방식을 본 뜬 프로그램이었고, 심지어 스프링어의 헤어스타일과 안경까지도 도너휴를 흉내냈을 만큼 성공사례를 충실하게 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낮은 시청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직장에 가지 않고 낮에 집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을 상대로 총기규제와 인권문제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방송국은 결국 프로듀서를 교체하면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주제를 다루는 타블로이드판 신문을 주간토크쇼로 바꾼 듯한 포맷을 만들어냈고, 큰 히트를 친다. 악명높은 제리 스프링어 쇼는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나는 연기를 할 뿐"
로버트 케네디의 정신을 이어받아 미국의 빈곤과 차별의 문제를 이야기하던 진보적인 정치인이 "쓰레기(trash) TV”의 대명사 격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 인터뷰에서 스프링어는 그 프로그램과 자신은 다르다며,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의 스프링어는 말하자면 “영화에서 히틀러 역할을 하는 배우”와 같다고 했다. 거기에서 하는 말과 행동은 어디까지나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연기일 뿐, 자신은 그런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그 말이 사실일 수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스프링어는 2018년에 다시 정치를 하고 싶어서 오하이오 주지사 출마를 염두에 두고 유권자들을 만나서 자신의 정견을 발표한 적이 있었고, 제리 스프링어의 프로그램을 싫어하던 유권자들도 정치인으로서의 스프링어는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그만두지 않는 한 표를 주려고 하지 않았고, 스프링어는 출마를 포기했다. (2018년에 ‘제리 스프링어 쇼’를 종영한 스프링어는 ‘Judge Judy’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새로운 주간프로그램 포맷을 베낀 ‘Judge Jerry’를 제작, 방송하고 있다). 

그는 결국 다시 정치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가 돌아오려고 마음을 먹자마자 유권자들이 그의 저질 주간토크쇼에 대한 비판을 접어두고 그를 반겼다는 사실은 미국의 정치가 얼마나 미디어에 취약한지, 유권자들이 얼마나 유명인에게 쉽게 점수를 주고 그들의 과거를 잊어주는지 잘 보여준다. 트럼프가 아무리 뉴욕에서 부동산으로 돈을 모았다고 해도 13년 동안 NBC에서 ’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쇼를 진행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거라는 지적도 결국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난 주에 있었던 대선토론회가 미국 역사상 최악을 대선토론회였다면, 그것은 참가한 후보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고도 얻을 게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타블로이드 TV에 익숙해진 미국의 시청자들, 특히 트럼프가 노리는 유권자 그룹에게 트럼프의 막말 싸움은 통쾌한 볼거리였을 거다. 미디어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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