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금속골목 효자 된 ‘배지’

입력
수정2018.01.30. 오후 11:02
기사원문
이재덕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ㆍ소녀상·팬클럽·유기견 등 최근 기부·후원 배지 유행
ㆍ“세월호 이후 문의 늘어 매출 증가” 경영 위기 속 희망



지난 17일 서울 중구 을지로4가.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육중한 금속이 ‘쿵쿵’ 무언가를 내리찧는 소리가 들린다. ㄱ금속 최광복 사장(54)이 56.2㎡(17평) 남짓 되는 공장에서 홀로 배지를 만들고 있었다. 길이 50㎝쯤 되는 황동판을 단조기 위에 올린 뒤 불꽃을 점화시켜 달군다. 최 사장이 손을 놀리자 망치가 내려와 황동판을 쿵 찍었다.

“배지 도안을 음각한 특수강 위에 ‘신추(황동의 일본말)’를 올리고 단조기로 찍으면 신추에 배지 도안이 남게 되죠.”

황동판에는 장애인 단체 ‘노들장애인야학’ 글자와 ‘쌀밥’ 그림이 박혔다. 야학에서 공부하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후원 배지다.

부착하는 것만으로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를 보여줄 수 있는 후원·기부 배지가 최근 들어 크게 유행하면서 침체됐던 을지로 3~4가 금속골목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경영 악화·재개발 추진 등으로 빈집이 늘던 을지로 금속골목에 배지 제작 주문이 몰리면서 문 닫을 위기에 처했던 공장들의 숨통이 트이고 있는 것이다.

최 사장이 주문 제작한 배지 도감을 펼쳤다. 평화의 소녀상 배지, 걸그룹 팬클럽 배지 등 기부·후원 배지들이 빼곡했다.

최 사장은 “2~3년 전 세월호 리본 배지 이후로 을지로 일대에 배지 제작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공장 매출이 50% 정도 늘었다”고 말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배지 제작 비용을 모은 뒤 을지로에 제작을 의뢰하는 이들도 늘었다. 최근 을지로 금속골목에서 위안부 피해자 후원 배지를 제작한 서울 신도고 인권동아리 ‘이퀄(EQUAL)’의 이승연양(18)은 “학생들이 세월호 배지, 유기견 동물 보호 배지 등 다양한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닌다”며 “배지 판매수익금을 관련 단체에 기부하는 학내 동아리들도 많다”고 말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로 호돌이 배지가 크게 유행하면서 을지로 3가에 있던 금속공장, 기술자들이 을지로 4가 등으로 진출했다. 최 사장은 “당시 액자 하나에 호돌이 배지를 여러 개 박아 넣으면 최대 70만원을 받았다”며 “직원들 월급이 15만원이었으니 하나 팔면 직원 4~5명의 인건비를 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있던 1997년 직전까지는 대기업 회사 배지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 초까지 청바지 등에 배지를 붙여 팔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대규모 배지 제작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평창 동계올림픽 배지도 중국에서 제작한다.

최 사장은 “며칠 전 을지로 일대에 대기업 배지가 개당 500원에 들어왔다. 인건비도 안 나오다 보니 다들 그런 배지는 기피한다”고 말했다. 대신 요즘 을지로에선 질 좋은 배지를 만들어 높은 가격으로 판매한다.

후원·기부 배지 제작 의뢰가 늘어나다 보니 금속공장들도 너도나도 배지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을지로 3가에서 배지를 제작하는 ‘ㄴ배지’ 윤여신 사장(51)은 “학생들이 디자인 도안을 들고 을지로 금속공장들을 돌아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며 “이 손님들을 붙잡기 위해 공장들 간 경쟁도 치열하다”고 말했다.

을지로 일대에서 배지를 제작하는 김모씨(46)도 “지난해 촛불집회를 할 때 관련 배지들이 많이 나갔다”며 “지금도 공장 매출의 상당액이 후원·기부 배지에서 나간다”고 말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