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일기 #최현숙 #김다은

[주말에 뭐 읽지]  2021-05-08 #55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왜 나는 부모를 이토록 이해하고 싶은가
최현숙 지음/후마니타스 펴냄


어머니는 ‘어디에서’ 시작돼 ‘어디에서’ 끝이 나는가? 나의 의지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나의 0을 만들고 1이 되도록, 2로 크도록 나를 잡고 놓지 않았던 사람. 내가 무엇인지 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이 오해하는 것이 운명인 사람. 그런 그녀들은 시간이 아니라 공간과 더 닮아 있다. 그 땅 위에서 자식들은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울고 웃고 나뒹굴고 마침내 그곳을 떠남으로써 어른이 된다. 

그래서일까. 나는 어머니가 사라지는 광경을 세밀하게 그려낸 최현숙의 〈작별일기〉를 읽으며 수몰민에 대해 생각했다. 살아온 흔적이 지문처럼 묻어 있는 땅이 죽음으로 꺼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 그 마음의 모양은 어떤 것일까? 〈할매의 탄생〉 〈할배의 탄생〉 등으로 노인의 생을 기록해온 작가 최현숙은 딸이자 관찰자로서, 절묘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어머니의 죽음을 글로 담았다.

〈작별일기〉는 고급 실버타운에 입소한 86세의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병으로 해체되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일지처럼 써 내려간 글이다. 억 소리 나는 보증금에 월 수백만 원을 지불할 수 있는 노인들을 위한 곳이지만 어머니는 이곳을 ‘관짝’ ‘감옥’ ‘예비 납골당’이라고 말한다. 2018년 새해가 시작되면서 알츠하이머 증상이 심해진 어머니는 개인 주거공간에서 공동 케어홈으로 옮기게 된다. 저자는 이를 ‘복귀 불가능한 하강’이라고도 말한다. 그렇게 타인에 의해 ‘터’가 옮겨지고, 육신은 냄새와 함께 무너지고, 정신은 주야 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그런 이유로 저자 역시 어머니 옆에서 때때로 과거, 그 시간을 함께 걷는다.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온갖 꼴들을 활자로 새겨놓은 이 일기를 읽으며 나는 내 안에 존재하던 묵은 질문을 마주했다. 그것은 “왜 나는 나의 부모가 그때, 대체, 왜 그랬는지를 이토록 이해하고 싶은가”였고, 동시에 “나는 왜 그들에게 제대로 이해받고 싶은가”였다. 때때로 이 질문들은 지독한 갈망으로 나를 덮쳐오는데 그 앞에서 나는 주로 ‘결국 패배할 것’이라는 무력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작별일기〉 속 어떤 마음의 풍경들은 마치 살갗에 와닿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기묘한 슬픔과 위로를 주었다. 나는 진심으로 화자의 어머니가 안전하게 죽음에 ‘도착’할 수 있었음에 안도했고, 그 온도가 너무 미지근해서 눈물이 차오르고 흘러내렸다. 

“늙어 죽어간다는 이 무지막지한 노역”을 해내며 화자의 어머니는 산 자들을 향해 ‘사느라 애쓴다’고 말한다. 실은 모두가 감당하고 있는 이 분투의 노역을 증언하며 최현숙은 한 노인의 죽음을 가장 잘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을 미리 보여주었다. 기록의 힘은 이토록 정치적이다. 심지어 최현숙의 기록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다. 

김다은 (CBS PD·팟캐스트 〈혼밥생활자의 책장〉 진행)
*이 글은 2019  연말부록 <행복한 책꽂이>에 실렸습니다.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불량 판결문
최정규 지음, 블랙피쉬 펴냄

“판결문은 왜 누군가에게는 억울함의 대상인가?”

20여 년 전, 한 2년 차 사법연수생이 8시간 판결문을 쓰는 기록형 시험 뒤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세상을 떠났다. 점심 먹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당시 사법연수생이던 저자는 사람이 죽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을 보며, 김치김밥을 사들고 와 시험 도중 꺼내 먹었다. “도시락 폭탄은 던지지 못하더라도 김치김밥은 던지겠다는 소극적 저항으로.” 그런 마음으로 법원을 대했다. 질문할 것투성이였다. 판결문은 왜 반말을 쓰나? 악법도 법인가? 판례는 기득권의 논리가 아닐까? 이주민, 장애인, 국가폭력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변호사가 불량 판결문을 하나씩 짚으며 사법 신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법연수생 시절 ‘김치김밥’을 꺼내는 심정으로.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잉그리트 폰 욀하펜·팀 테이트 지음
강경이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더는 존재하지 않는 마을과 나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에 태어났다. 전쟁을 관통했고 전쟁이 낳은 냉전의 그늘에서 자랐다. 60세가 넘은 뒤에야 자신의 출생을 좇았다. 그 중심에 ‘레벤스보른’이 있었다. 아리아인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하고 우수 인종 국가를 만들겠다는 나치의 프로젝트다. 인종 검사관들은 점령국 아이들의 코 길이를 재고 엉덩이와 생식기를 찔러 등급을 매겼다. 좋은 혈통인지, 나쁜 혈통인지 구분해 1등급 아이들을 납치했다. 20여 년간 여러 국가와 단체를 두드리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아주 어릴 때 헤어진 가족과의 해후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전쟁을 지나며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생존자들은 상실이라는 감각에 익숙해졌다. 확인하게 되는 건 광기 어린 인종주의 그 자체다.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양창모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진료실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저자는 왕진 의사다. 시골 어르신을 방문 진료한다. 본래는 동네 의원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그만두었다. 어느 순간 환자들이 멀게 느껴져서다.
어르신들 집 문지방을 600회 넘게 드나들면서 깨달았다. 진료실에서 오직 환자였던 이가 집에 가보니 온 가족을 건사하는 강인한 어머니였다. 왕진을 통해 ‘증상’ 대신 ‘사람’이 보이게 된 것이다. 그뿐 아니다. 움막, 컨테이너, 심지어는 비닐 포대 더미에 사는 이들 앞에서 저자는 경악한다. 고통의 사회적 맥락을 살아 있는 현장의 언어로 그려내되 성찰의 미덕을 잃지 않는 책. “돈은 우리가 서로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능력을 앗아간다” “우리는 모두 의사다” 같은 문장에 절로 밑줄 그으며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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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안다고 믿는 것을 다르게 보는 법, 수학-슈퍼마켓에서 블랙홀까지
미카엘 로네 지음, 김아애 옮김, 클 펴냄

“수학을 향한 여정은 때로 가장 하찮아 보이는 장소에서 시작된다.”

대한민국 국토의 ‘둘레’는 몇 ㎞일까? 해안선 길이를 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직선으로 뻗은 도로나 건물과 달리 해안선은 구불구불하게 뻗어 있어 정확히 재기가 어렵다. 수학자들은 재지 않고도 ‘무한대’라고 결론을 내린다. 정확한 자를 동원해 해안선의 작고 세세한 부분까지 더할수록 측정값은 끝없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해안선뿐만 아니라 영토와 관련된 문제는 모두 마찬가지다. ‘해안선 역설’이라고 불린다. 저자는 까다로워 보이는 수학적 개념을 흥미로운 일화와 섞어 소개한다. 지루하고 사변적인 교과목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눈을 키우는 실용적 학문이라고 강조하는 듯하다. 학교에서 배워온 산수보다는 ‘철학’에 더 가까운 제재가 많다. 저자는 수학의 본질이 그렇다고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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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방에서 만난 사람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살던 S씨가 맞닥뜨린 최초의 시련은 대입 실패였다. 
그게 시작이었을까? 대학을 졸업한 뒤 무역회사에 취업했으나 S씨는 반 년도 못 버티고 퇴사하는 생활을 거듭했다. 그 사이 부모님의 사업도 기울어 집안 살림도 궁색해졌다.
S씨는 이게 다 어릴 적 읽은 <여자의 일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바보 같은 잔느' '멍청이 잔느' 때문에 저주에 걸렸다고. 그랬던 그이가 예순 넘은 나이에 다시 <여자의 일생>을 찾아나선 까닭을 들어보니...│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 대표)

'인생은 보다시피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전체 글 보기 >>

집안의 어르신이 최근 요양원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치매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거동이 불편해지셨기 때문입니다. 입소를 앞두고 온 가족이 미리 사전 답사를 했습니다. 어르신도 동행했습니다. 그 날 따라 정신이 맑았던지 어르신이 요양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여기는 장례식장도 옆에 있구나.” 맙소사, 그 말이 어찌나 가슴을 저미던지요.
 
그 날 이후 나이듦, 질병,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에 계속해서 마음이 가네요. 책장도 오늘의 추천도서 <아침의 피아노>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같은 책들로 채워지는 중입니다. 말 그대로 ‘복귀 불가능한 하강’ 앞에 선 가까운 존재 앞에서 삶과 죽음,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나날. 필연적으로 다가올 이별의 날이 지난 뒤 나는 그이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요.
 
가정의 달이자 어버이날을 앞둔 이즈음, 참 다양한 선물 광고들이 쏟아져 나오던데요. 그중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게 만든 다이어리였습니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 친한 친구, 연애 경험은 물론 음식 취향, 여행 취향, 노래 취향 등등까지를요. 부모님이 직접 채워넣은 글을 읽게 된 자녀세대 대부분이 “엄마아빠에 대해 내가 아는 게 거의 없었다”라고 한탄하던데요. 때로는 내 삶의 버팀목, 때로는 내 삶의 굴레로 다가오는 부모라는 존재를 지금부터라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 싶습니다. 이해하고 싶고 이해받고 싶었던 ‘내 안의 갈망’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존중하며 소소하게 함께했던 시간들로 훗날의 기억을 채우기 위해.  

"
"생각의 재료를 주는 좋은 레터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항상 잘 읽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따뜻하고 필요한 말들, 최근에 고민했던 부분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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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싶지 않지만
혼자 살기도 싫다!

원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꾸릴 권리를 꼭 혈연이나 결혼으로 보증 받아야 하나? 

여성가족부가 새로운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책을 찾는 분들이 새삼 많아졌습니다.

외로움이 새로운 사회적 질병으로 떠오른 시대,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한계점에 이른 '정상가족'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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