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뉴스] 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1%가 낳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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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10.16. 오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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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공원 늘면서 급증…도심선 파리가 주 먹이, 사체 청소도
생태계 건강 입증, 병해충 막는 기능도…피해 줄이는 관리 필요



우리나라에서 사람에게 가장 큰 신체적 손해를 끼치는 동물은 말벌일 가능성이 크다. 반려동물 급증과 함께 개 물림 사고가 급증해 지난해 다친 환자는 240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벌에 쏘여 119구급대가 이송한 환자는 지난 4년간 연평균 7700여명으로 그보다 3배 이상 많다. 

사망자도 적지 않다. 소방청 집계 결과, 지난해 12명이 벌에 쏘여 사망했으며, 폭염으로 벌의 활동이 주춤한 올해에도 9월까지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로 사람을 공격하는 벌은 땅속에 집을 짓는 장수말벌과 땅벌, 그리고 수풀에 둥지가 있는 좀말벌이다. 건물 처마 밑이나 벽틈에 집을 짓는 왕바다리, 등검은말벌, 털보말벌, 말벌 등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119가 출동하는 횟수만 연 16만∼17만 건에 이른다. 이들은 모두 최근 대도시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왜 말벌은 도시로 몰려들까. 사람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끼치는 말벌을 ‘아예 박멸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연 말벌은 해롭기만 한 곤충일까.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 말벌

말벌 전문가인 최문보 경북대 연구교수는 “꿀벌이 꿀을 생산하고 꽃가루받이를 해 주는데 견줘 말벌은 독성이 강한 침으로 쏘고 양봉에 피해를 주니 반감이 큰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말벌은 포유류의 호랑이나 사자처럼 곤충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중요한 생태계 조절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말벌은 다른 벌뿐 아니라 메뚜기, 파리, 딱정벌레 등을 모두 잡아먹고 죽은 동물의 근육을 떼어가는 등 청소 기능도 한다. 무엇보다 나방 애벌레를 사냥해 산림해충의 대발생을 막아준다. 최 교수는 “연구는 안 돼 있지만, 말벌은 엄청난 양의 애벌레를 잡아먹어 해충의 폭발적 증가를 일차적으로 막아주는 구실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말벌은 꿀벌처럼 꽃가루받이도 해 준다. 말벌이 다른 곤충을 사냥하는 것은 애벌레에게 먹일 단백질을 확보하기 위해서지만 자신의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꽃에도 많이 모여 꿀을 섭취한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말벌이 양봉장을 많이 습격하는 이유는 자신과 새끼의 먹이인 단백질(꿀벌)과 당분(꿀)이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왜 도시로 몰려드나

서울 등 대도시에는 1990년대 후반부터 말벌이 급증해 119 출동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종욱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 등은 2012년 과학저널 ‘곤충 연구’에 실린 논문에서 대도시 말벌 급증 현상에 몇 가지 요인이 있다고 밝혔다. 

먼저 도시 확장으로 숲이 줄어든 반면 도시 안에는 공원, 정원, 가로수 등 다양한 녹지가 늘어 말벌이 도시 안에서 둥지를 틀고 먹이를 찾을 여건이 좋아졌다. 주변보다 2∼3도 높은 기온과 잦은 열대야는 말벌의 부화율을 높이고 활동 기간을 늘렸다. 숲에 들끓는 천적과 기생벌이 도시에는 없다. 게다가 음식 쓰레기와 음료 찌꺼기는 좋은 먹이가 됐다. 교외의 자연이 줄고, 도시가 자연화하면서 도시는 말벌의 최적 서식지가 됐다.



최 교수가 최근 대구에서 왕바다리, 등검은말벌 등 도시 말벌류의 먹이를 분석한 결과 뜻밖에도 파리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등검은말벌의 먹이 가운데 벌 종류는 45.8%였고 파리 종류는 44.3%를 차지했다. 특히 도심에서 파리의 비중이 컸다.

꿀벌은 편애, 말벌은 증오

말벌 혐오는 거미, 바퀴, 벼룩, 진드기, 파리 등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오랜 진화 과정과 문화에 뿌리박고 있다. 그러나 말벌의 생태적 기능을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세이리언 섬너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박사 등은 과학저널 ‘생태 곤충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 ‘왜 우리는 벌은 사랑하면서 말벌은 증오할까’에서 “우리는 말벌이 질병과 병해충 전파를 막아주는 생태계 서비스를 과소평가한다”며 “소중한 자연 자본인 말벌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연구자들은 “말벌에 대한 혐오는 사람을 쏘는 67종에 이르는 사회성 말벌에서 비롯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성 말벌도 850종이 있고 전체 말벌 7만5000종의 대부분은 외톨이로 산다”고 밝혔다. 1%도 안 되는 말벌이 전체 이미지를 왜곡한다는 얘기다. 이런 편견은 언론이 확대하고 전문가들까지 가세한다. 연구자들은 “말벌은 벌보다 3배나 종이 많은데 벌과 비교하면 연구는 절반, 학술발표는 4분의 1, 특히 생태계 서비스 관련 논문은 40분의 1에 그친다”고 꼬집었다.

말벌은 박멸 아닌 관리 대상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말벌 피해가 심각한 나라다. 인구밀집 지역에 개체수가 급속히 늘고 있으며 여기에 외래종인 등검은말벌도 가세한다. 기후변화로 이런 추세가 수그러들 것 같지도 않다. 최 교수는 “도시에서는 조절이 가능한 수준을 넘었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하다”면서도 “생태적 기능이 제대로 밝혀져 있지도 않은데 무작정 박멸하자는 태도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사실 말벌이, 사람으로 친다면 아파트 크기인 사람을 일삼아 공격할 리 없다. 자신의 집과 새끼를 지키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 벌통을 건드려도 20m 이상 벗어나면 더는 따라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히려 도시에 최상위 포식자가 산다는 건 생태계가 잘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최 교수는 “도시에 사람 이외의 동물이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람 중심 태도에서 벗어나야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조홍섭 한겨레 전문기자ecothink@hani.co.kr

현 <한겨레> 환경전문기자로, EBS <하나뿐인 지구> 진행(2005년)
<환경과 생명의 수수께끼>, <프랑켄슈타인인가 멋진 신세계인가> 등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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