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같은 남의 집 이야기
다섯 번째

공간 디자이너로 일한 지 어느덧 8년이 넘어가던 때였다.

한국에서 힙하다고 소문난 공간은 나의 손을 거쳐가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주가를 한창 올리고 있던 어느 보통의 날.

주말마다 있는 세컨 하우스를 짓고 싶어 하는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되었다.

평이하게 다가온 공간이었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나는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그의 니즈를 담아내고 싶은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늘을 품은 침실, 통창, 아일랜드 바 테이블, 미니 정원..

작은 도면 안에 나의 욕심들을 채워나갔다.

일에 열중하고 있던 문득 그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디자이너님은 어떤 공간에서 진정한 휴식을 느끼시나요?”

초월적인 감각을 쫓아다녔고, 그 감각을 공간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해오던 나는

‘진정한 휴식’이 주는 감각을 오래도록 잊었던 것이다. 갑자기 질문이 낯설게 느껴졌다.

휴식은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공간이 만들어주는 것일까.

나는 언제 진정한 휴식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내가 지금 그려내고 있는 공간은 어떤 휴식을 전해줄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진 나는 대답을 제대로 없었다.

사무실에서 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의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고민을 이어가던 순간, 나의 , 서울의 어느 오래된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지친 몸을 끌고 문을 열고 들어온 내 오피스텔은

오랫동안 지켜온 푸근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은 오늘도 같은 온도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게 아닌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소소하게, 나의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올해로 지어진 지 45년이 되어가는 이 공간은,

처음엔 나에게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다.

옛날 드라마에 나올 법한 철로 된 작은 현관문, 낮은 층고, 좁은 현관..
나의 어느 취향에도 맞지 않은 채 쭈뼛이 서서 나를 마주하는 듯했다.

불편한 듯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이곳에서

마음을 쉽게 내어주지 못한 잠들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금씩 변해오며 나를 맞춰주고 있던 내 공간.

때묻어가며 나를 지켜주고 있는 이 오래된 공간이

내가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나를 편안하게 감싸주고 있던 게 아닐까.

진정한 휴식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선

오랫동안 공간과 자신을 맞춰오는 노력 또한 필요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아간 고향이 나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는 것처럼.

오래도록 맞춰온 연인이 나에게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주는 것처럼.

매일 일상 끝 단조롭게 나를 맞이하던

나의 오래된 오피스텔이 오늘따라 유난히 따뜻하게 나를 감싸온다.

sti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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