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백답] 2023.7.12 최우선의 가치
  
  
최우선의 가치

대구로 왔다. 일을 끝내고 오느라 근 열흘 동안 서울에 있었다. 마감 기한을 지키기 위해 며칠 밤을 새느라 도착하자마자 곧장 침대로 뛰어들고 싶었다. 지하철을 탈 기운도 없었다. 동대구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님이 일장연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자신도 이 동네에 살았었는데, 시장 안쪽 국밥 집이 맛있다고 다음에 꼭 가보라고. 심드렁하니 네네 대답하고 있었지만, 문득 깨닫고 말았다. 업무 전화가 아닌 타인과 대화를 나눈 게 일주일 만이었다는 것을. 목구멍이 간지러웠다. 대화도 없이 지냈구나. 가끔은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한계치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는가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기 위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무엇이 됐든 내가 원하는 삶보다는 가혹했다. 더 나은 것 같지 않았다.

 

며칠 전, 트위터에 썼다. ‘돈, 돈’ 노래하는 사람과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나의 편견이자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여태까지 살아온 삶의 데이터베이스에 근간하면 그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가치는 화폐겠지만, 내 인생 최우선의 가치는 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무슨 일을 하든 페이가 얼마인지, 내 명예는 얼마나 보장되는지, 앞으로 어떤 꿈 같은 삶을 안겨줄지 궁리하기 싫었다. 자신이 얼마나 저축했고 얼마나 많은 수익을 거두었는지에 관한 대화는 더 이어나가기 싫었다. 내가 너무 꿈 속을 살고 있는 건가. 나는 안주하고 싶은 듯하다. 돈이 아니어도 내 삶이 당장 행복하다면 할 수 있는 선택들을 하고 싶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단위를 환산하면, 사실 사랑은 그렇게 이익이 큰 일은 아니다. 연애가 아니더라고 사랑하는 일엔 돈이 많이 든다.

 

내 인생 최우선의 가치를 재정비해야겠다. 내 사랑이 연소되었다고 생각이 들 때 기사나 영화나 음악을 찾아듣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하고 반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택시기사님의 대화에 상냥히 이어나가지 못해 후회가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나와 타인을 위한 고민을 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고 믿는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말한 것처럼. 사랑은 지금 가능한 말들을 하게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게 해준다. 변두리에 있는 이를 이끌어준다. 그의 내일을 궁금하게 하고 그와 펼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게 해준다. 사랑하기에 우리는 더 좋고 더 나은 최선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다음 메일은 7월 14일에 발송됩니다.
당신에게도 최선의 사랑을 보내며

2023년 7월 12일
백가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