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태평동의 꼭대기에 서 있는 주영과 정주>
문화 숨 인터뷰: 마을에서 10년간 먹고산다는 건
* 인터뷰이: 주영, 정주
* 인터뷰어 : 충현, 소똥
* 인터뷰 편집: 충현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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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이 있다. 모두가 알만한 이 속담을 사전에 검색해보면, ‘세상 넓은 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아주 부정적인 뜻이다. 우린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하게 관계하며 살아가는 삶이 좋다고 배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점점 우물 안 개구리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물 밖이 우물 안보다 대단히 좋았던 기억이 많지 않다. 내가 선택한 가장 아늑한 우물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들과 잘 먹고 살 방법을 찾고 싶다. 내 역량이 닿는다면 그 우물을 조금씩 넓혀가고 싶기는 하다.

 

사회적 협동조합 문화 숨은 2011년부터 12년째 태평동에서 먹고 살고 있다. 사회적인 기준으로 아주 ‘잘’ 먹고 살고 있지는 않지만, 마을에서 놀고 일하고 관계하고 키우고 먹고 배우며 문화 숨만의 방법으로 잘 먹고 살고 있다.

 

"우리가 맨날 요 태평동 동네에서 알짱거리고 있을 때,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경쟁 업체들을 전국에서 날고 기는데, 우린 너무 동네에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우리가 잘 못해왔나.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는 건 아닌가. 진짜 많이 생각했거든요. 동네에서 추리닝 입고 텃밭 잡초 뽑고 그러고 있으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니라, 돈도 좀 더 많이 벌고 상근자도 늘리고 직원들 인건비도 많이 올려야 하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만의 모습이 있는 거죠. 어쨌든 선택은 문화 숨이 했으니까. 그런 선택이 과연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10년을 지나와 보니 그래도 동네에서 사부작 사부작 거리던 시간이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다 여유롭게 살지는 않지만, 가난을 그냥 쿨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 가난해. 하지만 나는 뭐 이 상태가 지금은 좋아.’라고 하는 마음들을 스스로에게 주기도 하고 서로에게 좀 받기도 하고 지내왔던 것 같고, 그것이 문화 숨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_ 문화 숨 정주

 

12년째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는 문화 숨의 모습이 전국에서 날고 기는 기업들보다 못해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우물 안에서 가장 온전할 수 있다면, 굳이 우물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뭘까?🐸


-충현-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각자 어떻게 합류하게 되었나요?

정주

안녕하세요. ‘사회적협동조합 문화 숨’ 이사장 황정주입니다. 문화 숨은 2011년도에 성남시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에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는 창업팀 1기를 모집할 때 들어갔던 팀 중 한 팀이었고요. 함께한 세 명 다 문화예술 쪽 비영리 단체에서 활동해와서 지역에 있는 예술가, 기획자, 창작자들이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법인 설립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 당시에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형식이 처음 나왔을 때였어요. 문화가 가지고 있는 공공성이 대단히 중요하기도 하고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걸 한번 좀 도전해 보자 하면서 1년 6개월 정도 준비하고 최종적으로 2013년 8월 8일에 사회적협동조합 법인을 설립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그 당시 사회적 협동조합은 저희도 처음이었지만 법과 제도도 처음이어서 다 힘든 상태였어요.

 

충현

내가 가는 길이 길이고.

 

정주

사회적협동조합 초창기에 시작해서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후회하기도 했는데 버티다 보니 10년 가까이 됐네요. (웃음)

<길을 개척하는 모험가 정주>

주영

저는 성남에 오래 살기는 했는데 서울에 베이스를 두고 일하고 있다가 좀 쉬게 됐어요. 그때 대표님이 가볍게 알바를 주시면서 시작하게 됐죠. 성남 지역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는 풍물패가 있는데, 그 동호회에서 알고 지내고 있었거든요. 간단하게 하는 실무보조 일이었고 쉬엄쉬엄 해보자 해서 알바를 하다가 결국 이렇게 본격적으로 함께하게 되었네요.

 

충현

원래부터 계획하고 계셨을 수도 있어요 (웃음)

 

정주

원래 지역에서 아주 좋은 인재라고 소문이 자자해서. 주영은 원래 장애인 사회복지 쪽 전문가예요.

 

충현

아, 서울에서는 사회복지 쪽 일을 하셨던 거예요?

 

주영

오랫동안 발달장애인 성교육 강사 활동을 했었고, 요거 하기 전에는 서울시에서 하는 성평등 문화 확산 사업을 진행하는 코디네이터 4년 정도 일을 했었죠. 교육 쪽에서 오래 일을 하다가 이렇게 분야를 옮겨오게 된 거죠.

 

정주

근데 전문가처럼 잘하십니다.

 
🌞 태평동이라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작업하시기도 하셨고,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이 동네를 소개해주세요.

정주

일단 저희 둘 다 태평동에 살아요. 저는 태평 1동, 주영은 태평 3동. 사무실이 있는 지금 여기는 태평 4동이구요. 사실 저 같은 경우는 2006년도에 이 동네에서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했던 경험도 있고, 대학을 여기 가천대로 나왔거든요. 그래서 요 동네에서 많이 놀았어요. 친구들도 자취를 많이 했었고 청년 시절에 재밌는 기억들이 있죠. 그러다 보니 문화 숨을 창업하고 나서 공간을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 얻게 됐어요. 처음에는 태평 2동에 구했다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면서 가장 저렴하고 언덕 꼭대기인 태평 4동까지 왔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요. (웃음) 이 동네가 또 도시재생 지역이에요. 문화 기획자한테는 어쨌든 개발이 제한된 곳이니까 오히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을 수 있었죠. 우리가 하고 싶은 비즈니스 모델도 그런 거였고요. 그런 측면에서 여기 태평동이 문화 숨하고 맞아떨어졌던 게 있는 것 같아요.

 

충현

아까 저희 오는데, 차로 오르기도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오르막길이 있더라고요.

 

정주

네네. 가천대 쪽에서 올라왔죠? 거기로 걸어오시는 분도 있어요 (웃음)

 

충현

그런 오르막길이나 도시재생 지역인 것처럼 또 태평동이 가진 특징이 있을까요?

<태평 4동은 언덕 꼭대기에 있다. 모닝으로 올라가기 조금 무서웠다.>

주영

지금 사업을 하면서 드는 생각들은 노인들이 많은 곳. 그래서 주로 ‘할머니들과 무엇을 할 수 있지?’라는 고민을 계속하게끔 되는. 시야에 사람들이 다 노인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또 집값이 싸보니까 청년들도 생각보다 많고, 외국인들의 유입이 진짜 많은 곳. 히잡을 쓰고 계시는 여성분들과 가족 단위로 같이 가시는 외국인 가족 분들 진짜 많이 볼 수 있어요. 주로 중앙아시아 청년들이 많아요. 그런 여러 가지도 좀 특색이라면 특색이고. 그리고 재개발, 도시재생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이해관계의 조합들이 있어서 같이 할 수 없는 노선의 사람들이 함께 마을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충현

거기서만 나오는 그림들이 있겠네요

 

주영

진짜 마을 관리 회의에 모이시는 분들 보면 사무실 차려놓고 재개발하자고 하시는 분들부터 도시재생 사업에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 함께 마을 관리 사협을 운영하고 계세요. 여러 가지가 좀 복잡하게 섞여 있는 동네 특징이 있는 거 같아요.

 
📖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기반구축 사업을 통해 진행하시는 교육을 소개해주세요.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시나요?

충현

보니까 다른 사업도 그렇고 유행어를 사용해서 이름 짓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가보자고' 사업 맞나요?

 

정주

맞아요. 저는 이런 유행어를 모르는데, 주영이 엄청 잘 알아. (웃음)

 

주영

태평동에 사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기획을 했는데, 이 동네가 청년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많이 없어요. 막차 시간에 저희 동네를 도는 77번 버스 정류장을 보면 늘 젊은 분들 줄이 진짜 길게 서 있어요. 다른 곳에서 놀고 들어오는 거죠. 그런 패턴이면 이 동네에 뭐가 있는지 자세히 알지도 못할뿐더러 가는 곳만 가겠구나. 드로잉이랑 사진을 매개로 이 동네들을 돌아다닐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서 이 바로 앞에 천 년 된 절이 있거든요. 근데 그게 진짜 절인지 아닌지 관심이 있어도 들어가 보기까지는 못하니까. 또 자원순환 가게도 오며 가며 알지만 들어가 보지 않으면 모르는 공간이니까. 그런 것들을 기록해보고 얘기도 들어보고 직접 같이 가보고, 주차장도 한번 둘러보고, 무인 택배함이나 본인이 실제 이용할 수 있는 텃밭들도 둘러보고. 안 될 것 같지만 한번 해볼까? 해서 (웃음) 했어요. 저희는 진짜 안 될 줄 알았어요. 여기서 청년 프로그램을 해서 10명을 모은다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거든요. 근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고 모집이 순조로워서 깜짝 놀랐었죠.

 

정주

도대체 이 동네에서 왜 이렇게 잘 되는 건지 (웃음) 정말 그런 생각을 좀 하면서... 이렇게 되다 보니까 다른 사업을 구상하는 데서도 좋은 영감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 당근마켓 홍보가 되게 유효했어요.

 

충현

당근마켓이 지역에서 홍보가 되더라고요.

<TMI1. #가보자고 포스터는 뒷북 공식 리플렛과 똑같은 무료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정주

유료 광고, 유료 홍보를 했는데 유효했던 거 같아요. 배우는 순간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사실 저한테 문화예술 교육 기획을 할 때의 솔직한 심정은 우리 조합원들의 일자리가 좀 최우선적인 측면이 없지 않아 있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강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들을 좀 많이 주고 싶어요. 코로나 이후에 너무 힘드니까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사로서의 기회나 일거리를 많이 줬으면 좋겠고 그게 기회가 돼서 또 다른 일거리로 확산됐으면 좋겠고. 사실 그게 되게 현실적인 조합의 입장이에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강사들을 섭외하고 참여자들과 관계하고, 사람들을 매개하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저도 많이 배우게 되더라구요.

 

주영

저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배우는 과정이에요. 제가 낯을 엄청 많이 가리거든요. 월급을 받고 일을 하니까 낯선 사람한테 전화도 하고 친절도 하고 그런 거죠.

 

정주

그런가요? 낯가림이 심했나요? (웃음)

 

주영

그렇게 전화하고 만나면서 생각한 건 만나기 전에 느껴지는 것들과 실제 만났을 때 사람들의 격차가 되게 클 때가 많거든요. 그 격차가 크면 클수록 제가 진짜 많이 배우는 것 같긴 해요. 너무 섣불리 판단했던 것 같아. 제 틀을 깨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방법들을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두 분은 기획자, 실무자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하고 활동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보통은 예술가 베이스의 단체가 작업의 연장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기획자 베이스의 단체로서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는 것의 장점과 단점이 궁금합니다.

정주

기획이라고 하는 건 모든 걸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상상을 현실화하는 건 예술가나 강사거든요. 예를 들면 최근에 우리가 이제 다른 프로젝트에서 낭독공연 '오히려 좋아 낭독회'라고 하는 거를 하는데 기획자 입장에서는 낭독을 구체적으로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치가 있고 의미도 재미도 있을 것 같아서 기획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막상 강사 입장에서는 그걸 현실화하는 데에서 세부적으로 디테일하게 돌봐야 할 게 많은 거죠. 강사가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지점을 기획자도 잘 알아야 되고 소통을 잘해야 해요. 주영은 어때요? 기획자나 강사라기보다는 매개자나 실무자니까.

 

주영

저는 뭐 장점이라고 할 게 있나 싶어요. (웃음) 장점을 느끼기가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어서. 저는 실무자들이랑 같이 일했던 기간들이 길고 필요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긴 하죠. 스스로 효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음에도 주변에 문화예술 강사들이 많아지고 예술가를 중심으로 기획된 프로젝트나 워크숍 같은 데 참여할 기회도 조금씩 생기다 보면, 아...

 

정주

예술가의 언어를 이해를 못 하겠다? (웃음)

 

주영

감수성 자체가 좀 다르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게 어떤 때는 굉장히 섬세한데 제가 따라가지 못할 때도 있고, 완성보다는 그 과정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근데 그 과정이 제가 보기엔 '이걸 이렇게 한다고?'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들이 있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실무자로 딱 정체화를 하는 건 이게 편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본인이 생각했던 걸 잘 이뤄나갈 수 있게, 그것 외에는 신경쓰지 않도록 하겠다고 생각하면 생각하면 편하더라고요. 믿고 맡기는 거죠. 그런데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지, 불편한 건 아닌데 잘 모르겠어요.

<예술인들 효율성 아...>
 
🙈 여러분의 본캐는 무엇인가요? 자신의 본캐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캐들이 있나요
<내가... 정말 부캐가 없던가?>

정주

생각해보니까 저는 부캐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뭐 문화 숨에 있거나 조합 일을 하거나, 아니면 이제 뭐 온갖 지역 안에 있는 네트워킹에 관여하죠. (웃음) 끊어야 되는데 그런 게 잘 안 돼요.

 

충현

그럼 그 본캐가 만족스러우세요?


정주

글쎄요. 만족스러운 지점도 있지만 의무감도 많이 있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없으면 마을이 안 돌아가는 건 절대 아닐 텐데. 누군가가 부르면 그건 내가 필요해서 부르는 것일 거고, 또 그만한 역할이 있으니까 부르겠지. 그런 생각이 있으니까 다니고 그러는 게 많은 것 같아요. 일주일에 사무실에 있는 경우가 많이 없어요. 워낙 싸돌아다니고 이러는 걸 많이 해서 그게 일이자 삶이자 생활이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충현

지역에 있는 관계들이 일로서만 만나는 관계도 아니고 삶도 나누고 그러실 것 같고, 친구이기도 하고 일하기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정주

맞아요. 예를 들면 올해 쉼이 필요하다 그래서 모임을 하나 만들었어요. 근데 모이고 나서 딱 보니까 맨날 만나는 사람들이 (웃음)

 

주영

되게 대단해 보이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생각이 들죠. 바쁜 와중에도 다니시는 거 보며 신기하고 아, 안 맞는다... (웃음)

 

충현

주영은 어떤데요?

 

주영

본캐는 사실 백수죠.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게 저의 본래 캐릭터라는 것을 작년에 한 6개월 정도를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알았어요. 그렇게 길게 온전히 집에서 쉬어 본 경험이 사실 없는데, 다리도 좀 불편한 상황이었고 그때 되게 행복했거든요.

 

정주

나도 그런 거 좋아하는데 (웃음)

 

주영

못 견디실 거예요. 저는 거진 밖에 6개월간 나오지 않은 상태로 계속 지냈는데 정말 재밌게 지냈어요. 넷플릭스도 보고 잠도 많이 잤고 책 읽는 거 빼고는 진짜 다 한 것 같아요. 평소에 관심 가졌던 것들. 영상 편집 유튜브 보면서 만져보고 생산적이지 않은 일들로 계속 보낸 거예요. 집도 이렇게 했다 저렇게 해보기도 하고 굉장히 바쁘게 건강하게 잘 지냈거든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게 저의 본 캐릭터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지금은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죠.

 

정주

맞아, 너 나보다 엄청 바빠. 공부도 하잖아

 

주영

네. 저는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여기서 일을 하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동호회에서도 맡은 일을 하고 있고, 발달장애인들과 자조 모임도 하고 있고요. 사실 시간을 쪼개서 쓰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그냥 쪼개지는데, 그럼에도 온전히 혼자 가만히 있는 걸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건이 된다면, 누군가 돈을 대준다면 난 진짜 이렇게 계속 살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여행도 필요 없고 온전한 집과 시간과 컴퓨터 정도만 있어도 굉장히 즐겁게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웃음)

 

정주

나도 그래.

 

주영

아, 못 견디신다니까요! (웃음)

 

충현

시간을 비우는 것도 되게 능력인 것 같아요. 일이 당장 있지 않더라도 바쁘다 보면 오프가 안 되는 거 같아요. 계속 불안하고 '내가 뭐 안 했나.' 저도 요새 많이 그런데, 비우는 능력도 진짜 중요할 것 같고요. 근데 또 재밌는 게 문화예술인들한테는 비우고 싶지 않아도 비워야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 모든 공모가 끝나고 다시 시작되기까지의 기간인 12월~2월. 그 기간은 공모사업을 통해 사업을 진행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많은 문화예술교육자의 보릿고개라고 불리는데요. 여러분은 그 보릿고개를 어떻게 보내고 견뎌내고 계시나요

정주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하반기에 바짝 땡겨서 돈을 벌어야죠. (웃음)

 

충현

실제로 상반기와 하반기의 차이가 큰가요?

 

정주

좀 있죠. 그래서 하반기에는 영업을 뛰어다니고 이래야 되는데 그러지는 않아요. 회사를 경영하는 대표로서의 역량은 부족한 것 같아요. 돈 버는 데서는 완전 허당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운 좋게도, 그냥 이렇게 가끔 연락이 와요. 사업 해달라고 그러고, 같이 좀 해보자고 하기도 하고 그런 연락들이 와요. 진짜 힘들고 어려워서 뭐가 있어야 되는데 할 때쯤 되면 하늘이 도와주시는지 오더라고요. (웃음) 그것도 복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거를 수행하죠. 지금까지 그런 게 들어왔을 때 거절해 본 적은 없어요. 어떻게든 대화를 해서 미팅을 해서 예산을 조정할 수도 있고 서로 형편에 맞춰서라도 만들기도 하고 보통 하반기 때는 그런 일들을 하죠.

 

정주

사실 우리는 그래요. 굶어 죽지 않을 정도만 들어오면 된다. 급여도 높지 않거든요. 정말 겨우 최저임금 수준을 좀 넘어서요. 굶어 죽을 정도가 되면 조합이 문을 닫아야 되는데 그냥 웃으면서 우리끼리 하는 얘기가 “진짜 하늘이 무슨 우리가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감을 주는 것 같다.” 암튼 상반기 때는 바짝 당겨서 비축을 하려고 되게 많이 노력을 하죠.

<문화 숨 입구에 붙어 있는 수많은 포스터들. 겨울을 나기 위한 곡식이다.>

충현

몇 분이서 일하고 계시는 거예요?

 

정주

상근자는 3명이고, 프로젝트에 따라서 조합원들이 참여하시고 있고요. 겨울이 제일 한가하죠. 프로젝트도 거의 다 끝나고 용역 사업이든 보조금 사업이든 11월 12월이면 다 끝나잖아요. 그럼 워크숍을 길게 제주도라도 가죠. 내년 사업에 트렌드가 어떤지도 연구도 하고, 같이 공부할 거 있으면 공부도 하고. 못 쉬었던 대체 휴가들 다 모아서 휴가도 가고 그런 거죠. 그러면서 또 그 해를 날 에너지를 비축하려고 해요. 10년 하다 보니 그게 하나의 생활 패턴이 돼버린 것 같아요.

 

소똥

비축한다는 표현이 너무 멋있었어요. 뒷북은 상반기에 항상 없고 하반기에 메꾸는 거거든요. 메꾸는 것에 급급한데

 

충현

제주도 워크샵도 못 가죠.

 

정주

대출을 받기도 하고, 이게 그냥 좀 참 쉽지는 않죠. 통장의 잔액은 없어지는데 월급날은 다가와. 그러면 그것만큼 힘들고 짜증나는 일이 없거든요. 이사장 당장 때려치고 싶고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요.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주영

저는 평소에 입는 옷이에요. 제가 오랫동안 검정색 옷을 좋아했는데 검정색을 풀로 입는 것에 대해서는 좀 꺼려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옷차림. 상갓집 가는 옷차림이 보통 검은색이니까 위아래로 검정만 입는 건 좀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가, 아이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풀로 검은색으로 착장을 많이 하더라고요. '어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을 했죠. (웃음)

 

정주

아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습니까?

 

주영

이건 괜찮은 건가 보다 하면서 옷을 사면 그때부터 계속 검은색만 사더라고요. 얼마 전에 빨래를 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웃음)

 

정주

다 검정이야?

 

주영

거진 검정색이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회색, 남색, 파란색 계열이죠. 대부분 다 검정색으로 하고, 되도록이면 눈에 띄지 않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웃음) 검정색에 대한 그런 게 좀 있죠. 극도로 피하는 것 중 하나는 검정색과 남색을 매칭하는 걸 제가 안 좋아하더라고요. 되게 싫어해요. 창피해요.

 

충현

왜요?


주영

모르겠어요. 그냥 검정색 옷에 남색 바지면 저 혼자 되게 안 어울리고 창피하다고 생각해요.

 

충현

뭔가 색 조합이 안 좋은 색인가.

 

주영

그냥 제 만족인 것 같아요. 보기에 되게 이상해요.

 

충현

아이돌은 누구 좋아하세요?

 

정주

여기는 아미입니다. 찐 아미.

 

충현

요새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주영

아니 저는 뭐 늘 지지하기 때문에.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지만 괜찮습니다. (웃음)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지만 괜찮습니다.>

정주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어제까지 연휴였잖아요. 오늘 일정표를 안 보고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다 이제 카톡을 한번 봤죠. 근데 오늘 어르신 프로그램이 하나 오픈하는 게 있었어요. 큰일 났네. 그래서 아침 7시에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머리 질끈 매고. 근데 어르신들을 처음 만나니까 츄리닝만 입고 갈 수는 없네. 그래서 원피스 하나 있길래 걸치고 나온 거예요. 어르신들 만나는데 그래도 귀엽게는 보여야지 싶어 가지고. (웃음) 오늘 옷차림은 아침에 그냥 전혀 일정표를 생각 안 하고 있다가 당황스럽게 온 스타일?

 

주영

저는 늘 이 차림이에요. 여기서 격조가 좀 있다 그러면 이게 검정색 셔츠나 카라가 있는 티로 바뀌는 거죠. (웃음)

 
🍲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예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주영

저희는 점심을 다 같이 먹는데 이 동네가 식당이 없어서 그냥 직접 해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도시락을 싸거나 아니면 대표님이 가끔 식재료 같은 거 이렇게 채워 놓으시면 그거 가지고 해 먹는 경우들이 요즘에 많이 늘어났어요.

 

정주

텃밭도 있어가지고.

 

주영

네, 저희가 텃밭을 어쭙잖게 하나 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잘 자랐어요. 그래서 한동안은 쌈 채소를 그렇게 해서 계속 샐러드 먹고 쌈해서 먹고 지금은 고추와 가지가 풍년이어서 계속 그거 가지고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그렇게 같이 먹고 있죠. 따로 먹는다는 게 지금은 사실 상상이 잘 안되는 그런 구조이기도 하고 셋 다 불편해하진 않아서 그러려니 해요. 근데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해요. 왜 점심을 따로 먹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옛날에는 따로 먹는 게 자연스러운 곳에서 일했어서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가지와 고추가 풍년!>

정주

여기 저희가 작년 7월에 이사를 왔어요. 이사 왔는데 여기 보면 카페도 없고 식당도 없어요. 먼젓번 사무실에서는 거의 나가서 사 먹었죠. 근데 여기 올라와서는 사 먹을 데가 없는 거예요. 사 먹으려고 내려가면 마을버스 타고 올라와야 돼요. 걸어 올라올 수는 있지. 근데 너무 힘들어. 그러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건강도 좀 챙겨야 되는 상황이 되었고 그냥 어떻게 텃밭을 마을에다가 냈는데, 요 밑에 텃밭 하나는 아무도 안 하신다고 그래서 반강제로 우리가 고추도 심고, 쌈 채소도 심고, 자연스럽게 사무실에서 먹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스스로 원두도 갈아서 내려서 먹고, 밥도 도시락을 싸서 다니든 아니면 쌈 채소를 갖다가 참치 캔에서 비빔밥을 먹던 나름 재미있는 식사 시간이 됐어요. 오늘도 떡볶이 밀키트를 우리 신랑이 자기가 먹겠다고 사놓은 거를 아침에 가지고 나와서 먹었는데 그런 것들이 먹는 즐거움이라고 해야 되나. 나름 재미도 있고요.

<문화 숨 텃밭에 숨어 쉬는 야옹이>
 
🕜 문화 숨은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정주

저희는 ‘문화적 지역 재생’이 비즈니스 모델이었던 거죠. 근데 2011년에는 그게 너무 생소한 거였던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저희한테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고, 이거 수입을 어떻게 내냐고 진짜 많이 했거든요. 지금도 모든 수익을 그걸로 내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기까지 왔죠. 저희가 그래도 활동하면서 국토부 장관상도 받고 그랬거든요. 아마 그런 걸로 영업을 허벌나게 뛰었으면 그래도 도시재생 분야에서 유명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우리는 그러지는 못했죠. 우리가 맨날 요 태평동 동네에서 알짱거리고 있을 때,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경쟁 업체들을 전국에서 날고 기는데, 우린 너무 동네에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우리가 잘 못해왔나.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는 건 아닌가. 진짜 많이 생각했거든요. 동네에서 추리닝 입고 텃밭 잡초 뽑고 그러고 있으면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니라, 돈도 좀 더 많이 벌고 상근자도 늘리고 직원들 인건비도 많이 올려야 하는데.’ 그런 생각들을 하죠. 근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만의 모습이 있는 거죠. 어쨌든 선택은 문화 숨이 했으니까. 그런 선택이 과연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10년을 지나와 보니 그래도 동네에서 사부작 사부작 거리던 시간이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다 여유롭게 살지는 않지만, 가난을 그냥 쿨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그래, 가난해. 하지만 나는 뭐 이 상태가 지금은 좋아.’라고 하는 마음들을 스스로에게 주기도 하고 서로에게 좀 받기도 하고 지내왔던 것 같고, 그것이 문화 숨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주영

문화 숨은 크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문화 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11년간 활동해 왔던 그것이 이 지역에 문화나 흐름이나 역사와 같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서 대표님한테 맨날 마을 공동체 시조새라고 놀려요. (웃음) 그런 식으로 문화 숨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럴 가능성이 있거나 그렇게 하고자 하는 단체들이 이 마을 안에 많이 늘어났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제 앞으로는 고민들을 같이 해나갈 수 있는 곳이 많아지겠구나 싶어요.

 

충현

좋네요. 꼭 거대한 전국 단위, 전 세계 단위가 아니더라도 나로 인해서 지역이 변화하는 걸 보는 건 되게 기쁜 일일 것 같아요.

<문화 숨에 식탁에 함께 할 사람들이 점점 늘어갈 것이라 믿는다.>
 
<수업 중인 하쿠나마타타>
 
😀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주영

저희는 지금 계속 모집에 관련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저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너무 재미있고, 알차고,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해서 짜잔 하고 세상에 내놨는데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신청서 한 장 없고 문의 하나 없을 때 겪게 되는 자괴감이 있어요. 최근에도 생활 동반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했던 프로그램이 있는데 비슷한 상황을 겪었거든요.

 

정주

이 세상 동거 가족들은 다 모일 줄 알았어. (웃음)

 

주영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모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괜찮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모두가 외면하는 상황이었어요. 오히려 안 될 것 같았던 프로그램은 어느 니즈에 딱 맞아가지고 수월하게 모집이 되고 모인 사람들도 너무 좋아하고 순조롭게 진행되는 걸 보면서 이게 너무 양극단이어서 여쭤보고 싶은 게 모집은 잘 되는지, 내가 너무 신나서 기획했던 프로그램을 아무도 원하지 않을 때 오는 현타를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정주

그거에 비하면 여기 지특 사업은 정말 너무너무 잘되고 있는 거죠.

 

영주

그래서 더 현타가 온다니까요. 이건 뭔데 이렇게 잘 되는 거고, 이건 뭔데 이렇게 안 되는 거건가 생각을 계속해요. 암튼 그것이 궁금합니다!

문화 숨 인터뷰:  끝.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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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소재용, 문화 숨
  • 녹취록 작성 : 조웅희
  • 장소: 태평동 문화 숨 사무실
  • 인터뷰 발행일: 2022.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