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동물의 권리'에 주목하는 한국 문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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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생각하는 일은 인간 자신을 생각하는 일" 소설, 詩 作家들 중심으로
염소·개·잉어 등 다룬 '동물 존중 문학'이 문단의 새 흐름으로 부상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지난 9월 18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세상의 주목을 끌 때 인터넷에선 '퓨마 사살'이 더 큰 쟁점이 됐다. 대전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가 사살된 사건을 놓고 젊은 층에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인권 못지않게 동물권(動物權)을 존중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진 세태의 반영이었다.

전례 없이 동물 추모 물결이 일자 대전도시공사는 지난달 28일 사살된 퓨마를 화장한 뒤 위령제를 지내고 동물원 내부의 숲에 묻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래도 동물원 폐지를 비롯한 동물권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올해 동인문학상 최종심에 동물을 매개로 한국 사회의 이면(裏面)을 조명한 소설도 올랐다. 소설가 김숨의 단편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가 선정돼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문학에서도 '동물 존중 문학'이 새 경향으로 불거진 현상을 반영했다. 김숨 소설집은 염소, 자라, 벌, 쥐, 노루, 나비를 제각각 등장시킨 여섯 편의 단편소설을 통해 이른바 '인간 중심주의'가 동물에게 가하는 폭력을 비판했다.

수록작 중 단편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는 흔히 인간 실존의 고뇌를 다루는 데 활용된 부조리극(不條理劇) 형식을 인간과 동물 사이에 투영해 색다른 소설의 풍경을 연출한다. 의대생들이 해부실에서 실습용 염소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 나누는 대화로 꾸며진 소설이다. 의대생들은 사형대에 오를 죄수를 기다리는 집행자들처럼 무표정하게 대화를 풀어나간다. 산 염소를 마취한 뒤 배를 가르는 장면은 일절 없다.

다만 의대생들이 염소 이전에 다른 동물을 실습용으로 해부했던 경험을 회상하거나 처음 염소를 해부하는 터라 이런저런 기대를 떠올리는 과정이 묘사된다. 하지만 오기로 한 염소는 시간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는다. 아마 독자들은 여기서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쉽게 연상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 고도가 끝내 무대에 나타나지 않듯이 김숨의 소설에서도 염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러스트=이철원


한 의대생이 문득 해부대를 바라보며 뭉개진 염소 형상을 상상하곤 그 모습이 자신과 무척 닮았다는 환각에 빠지는데, 인간 바깥의 시선에서 보면 그 환상은 인간이 망각한 삶의 실상이다. 소설은 염소 살해를 보여주지 않지만, 예정된 공포를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서글픈 잔혹성을 섬뜩하게 고발한다.

소설가 하재영이 지난 4월 펴낸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도 동물권 문학 운동을 제시한다. 개가 한국 사회에서 겪게 되는 지옥도(地獄圖)를 담담하게 보고한다. 작가는 경기도 남양주의 어느 개 농장을 취재한 경험부터 전한다.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위생 환경이 열악한 개 농장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뒤 냉장고에 적재된 광경을 보여준다.

작가는 '저 얼굴은 태어나는 순간의 표정이었을까, 죽는 순간의 표정이었을까'라고 묻는다. 그 강아지들은 보신탕이 아니라 개소주 재료로 팔린다고 한다. 작가는 "인권과 동물권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상관관계다. 동물을 생각하는 일은 약자를,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생각하는 일"이라고 한다.

동물권을 주창하는 문학은 동물을 잔혹하게 억압하는 인간 사회일수록 바람직한 인성(人性)의 실현으로부터 멀어진다고 지적한다. 좁은 축사에 갇힌 채 사육된 닭과 돼지의 비참한 운명을 떠올리기만 해도 밥맛이 떨어진다. 인간 스스로 대량생산과 소비의 편익에 중독돼 밥상을 오염시킨다.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비명을 외면하는 사회에선 인간 또한 고깃덩어리로 전락한다는 비판 의식이 젊은 작가들 사이에 높아지고 있다.

굳이 '동물권 운동'을 지향하지는 않더라도 동물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밝히는 문학도 눈길을 끈다. 최계선 시인이 낸 시집 '동물 시편'은 오로지 동물을 노래하면서 때로는 선시(禪詩)처럼 일갈하기도 한다. 수록된 시편 중 '큰 입에/ 반 매듭 작은 입질/ 물 위에 흐르는 바람/ 느낄 줄 알아야/ 물 속에 떠도는 구름/ 볼 수 있지'라는 시 '잉어'가 눈길을 끈다.

수면에 비친 구름 그림자를 제 옷인 양 입고 사는 잉어를 떠올리게 한다. 몸과 마음이 안팎의 경계를 잊는 경지다. 때마침 가을 바람이 선선하다. 이 시의 잉어처럼 저마다 마음속의 구름을 찾아보면 좋겠다. 구름처럼 덧없이 사라질 땐 사라지더라도 잠시나마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도는 '마음 챙김'의 풍미를 맛볼 수도 있겠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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