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기자 #경계 #오키나와

[주말에 뭐 읽지]  2020-09-18 #27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이명익
너와 나를 가르는 수많은 선

   아포 지음, 김새봄 옮김/추수밭 펴냄    

어린 시절 창문을 열면 철조망이 설치된 담벼락이 보였다. ‘미 군용시설 접근 금지’라고 쓰인 팻말 아래로 ‘초딩’들이 썼을 법한 낙서(‘양키 고 홈’)도 군데군데 있었다. 어른들은 “미군부대 때문에 재개발이 안 된다”라며 불만을 터뜨렸지만 미군부대 때문에 먹고사는 친척들도 있었다. ‘경계’에는 늘 양가적이고 모순된 감정이 흘렀다.

담벼락에 대한 일련의 기억들이 떠오른 건 한 타이완 출신 인류학자가 쓴 여행기를 읽고서였다. 저자는 베트남과 중국 경계를 여행하던 중 ‘밀입국 중국인’으로 오해받고 통행을 제지당했던 경험을 통해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국가의 접경, 민족 간의 경계에 관한 탐구를 시작한다. “국경을 넘는 여정은 국가와 자신 간의 관계를 깨닫게 해준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일본과 오키나와, 남한과 북한, 홍콩과 중국을 가로지르는 경계선마다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로 엮인 증오와 연민이 뒤섞여 있다. ‘오염’시킨다는 상상, ‘침입자’라는 날 선 언어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등 이데올로기 전쟁이 남긴 ‘선’마다 현대사는 계속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경계선이 만드는 긴장감이 단순히 물리적인 국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오키나와 여행에서 1960년대 ‘파인애플 여공’이라 폄하받던 타이완 여성 노동자들의 흔적을 본다. 곧이어 오늘날 타이완의 일손 부족을 대체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존재가 겹친다. 중국 동포, 오키나와인 등 경계에 선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현대사의 다른 서막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저자가 “경계선은 우리를 늘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다”라고 말하는 이유다. 인종, 젠더, 민족 등 너와 나를 가로지르는 수많은 경계들에 대해 생각했다. 꼭 철조망이 걸린 담장을 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경계선’들이 많다.

김영화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황세원 지음, 산지니 펴냄  

“우리가 토론해야 할 것은 어떤 일을 하건 누구나 기본적인 노동의 질,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는 방법이다.” 

지은이는 ‘일in연구소’ 대표다. 기자 출신으로 사회적 경제 관련 기관, 민간독립연구소에서 일하며 ‘좋은 일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희망제작소에서 일할 때는 ‘좋은 일을 찾아라!’라는 보드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시대 노동에 대한 낡고 오래된 관념들을 되짚어본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정규직이 무엇이고 기관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집계가 왜 다른지 분석한다. 그러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보다 모두가 비정규직이 되어도 상관없는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직장 내 연차휴가 일수, 청소년의 일자리, 고용보험 등 일과 관련한 여러 제도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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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오버
한스 페터 마르틴 지음, 이지윤 옮김, 
한빛비즈 펴냄   

“공포를 유발할 수 있는 예측은 삼가려고 노력했습니다.”  

20년 전 〈세계화의 덫〉에서 저자는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공격’을 경고했다. 경고는 예언이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되던 날 밤 뉴욕에서 저자는 새로운 책을 구상했다. 브렉시트와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의 우경화를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고 출판사에 이메일을 썼다. 저자는 서구 세계와 그들이 쌓은 문명화 모델을 향해 ‘게임 오버’라고 말한다. 초세계화와 디지털화, 주식시장의 붕괴와 기후변화, 대규모 이민은 입법과 사법, 행정, 언론을 산산조각 냈다. 무역전쟁과 통화전쟁, 디지털화와 로봇 기술은 공포와 불안을 키운다. 정말 게임은 끝난 걸까? 자유로운 게임은 설 자리를 잃었지만 새로운 게임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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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지음, 창비 펴냄   

“유무형의 창작물을 만들고 파는 것이 내 일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작가는 ‘한 가지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가수이고 작가, 영상 감독이며 만화를 그린다. ‘네가 좋아서 하는 일에 왜 자꾸 돈 얘기를 하느냐’는 말을 듣는다.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일은 작가를 먹고살게 하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른다. 돈이란 뭘까? 예술의 가치란 뭘까? 작가는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 중에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시작 가격은 당시 월세 50만원. 트로피를 손에 쥐고 이랑은 말했다. “1월 총수입은 42만원, 2월에는 96만원이더라고요.” 예술가라는 직업과 노동의 대가는 궤를 같이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한 작가의 고군분투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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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붉은 실 
미스터 펫 지음, 이경민 옮김, 
엘릭시르 펴냄   

“작든 크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게 바로 인간이야.”  

타이완 본격 추리소설의 선두주자 미스터 펫의 단편집. 한국인에겐 낯선 공간인 현대 타이완을 배경으로 한 작품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친구와의 재회, 연인의 기만으로 인한 분노, 아내의 외도 상대에 대한 살의(殺意)로 범죄에 빠져드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트릭과 수수께끼 풀이라는 미스터리 본연의 즐거움은 물론이고, 작품 곳곳에 뿌려놓았던 복선을 철저히 회수하여 의문점을 남겨놓지 않는 개운한 스토리텔링이 이 작가의 장점이다. 타이완에서 이미 출판된 단편집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한국 출판사인 엘릭시르가 기획한 오리지널 단편집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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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에서 만난 사람  

 "이상한 일은 지금부터다. 며칠 뒤 한 남자 손님이 와서 〈오맨〉 초판본을 찾는 게 아닌가? 몇 년 동안이나 팔리지 않고 먼지만 먹고 있던 책을 며칠 사이 두 사람이 사려고 하다니, 기분이 묘했다. 손님은 자신이 올해 60세가 되어 정년퇴직했기 때문에 소일거리 삼아 책을 찾아다닌다고 했다... " 
책에 얽힌 사연을 수집하는 헌 책방 주인이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세 번째.

책 동네 소식

요즘 책방 동네의 가장 큰 이슈는 누가 뭐래도 코로나19도서정가제입니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죠. 도서정가제를 폐지하면 동네책방, 나아가 지식생태계가 무너진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도서정가제를 폐지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좀 더 싼 값에 책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부산 동네책방 주인들이 함께 만든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65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서깊은 책방에서 이제 갓 동네에 자리를 잡은 새내기 책방까지, 동네책방 26곳이 모여 도서정가제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한 건데요. "무뚝뚝한 편에다가 모여서 뭔가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책방 카프카)" 부산 책방 주인들이 이 정도 규모로 한자리에 모인 건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 하는군요. 도서정가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든, 한번 귀기울여 볼 만한 이들의 목소리. 글로 된 성명서는 이곳을 클릭하세요.
  
영상 보기 >> 풀 버전(10:55) vs  축약 버전(2:14)  
            *축약 버전은 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 sns를 링크합니다.
책 읽는 독앤독
시사IN×동네책방 콜라보 프로젝트. '독'립언론과 '독'립서점이 만났습니다
<시사IN>이 전국의 동네책방🏡 35곳과 함께 진행중인 책 읽는 독앤독🐶(독립언론×독립서점) 콜라보 프로젝트 페이지를 클릭해보세요. 다양한 책과 책방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친구책방을 찾을 때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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