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그 마음에서부터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매주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고 있지만, 더 긴 호흡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너무 좋아서, 너무 좋아해서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사실 음악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냥 가사를 빌린 아무 말에 가까운 것 같지만요. 조금은 무기력하고, 조금은 우울하게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런 모양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가벼이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가끔씩 마음이 갈 때, 의식의 흐름을 담은 글을 써서 보낼까
합니다. 제목에 🍋 표시를 달지 않고 보낼 예정인데, 가끔은 이런 글을 받아보는 것도 괜찮으신지 궁금하네요. 이런 것도 괜찮다/혹은 별로다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공유해주실래요? 늘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 '하나'와 '괜히'는 1, 2번 글 제목에서 인용한 노래 제목입니다! 1. '여태 얼려 두었던
그때그때의 사랑들 전부 녹아버려서 이제 기억나지 않았으면’
야, 있잖아. 나는 무기력한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 ‘개의 입장’ 앨범을 반복재생하면서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늘 무기력한 시간들을 미워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다시 무기력해지곤 했는데. 무기력한 목소리가 좋아지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그저 그런 목소리들을 무기력하다고 표현하지 않았던 것뿐이지.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무기력하다는 말이 그렇게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무기력한 목소리를 무기력하게 누워서 듣는 것 – 그것은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여유로운 사람의 생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 이 앨범의 한 구절을
캡쳐해서 ‘여름에 에어컨 틀어놓고 무기력하게 누워서 듣고 싶다’라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이런 걸 올리는 건 무기력한 인간의 행동이 아닌데. 그냥 정말 다른 생각 없이, 가만히 누워서 노래를 듣는 것. 그러다가 잠드는 것. 그게 내가 꿈꿨던 무기력함의 모습인데. 어쩌면 진정한 무기력함을 꿈꿨던 것이 아니라, 무기력하다고 말하면
‘아! 나도 그런 무기력함 좋아해!’라고 공감해줄 사람을 꿈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날은 다른 답장이
왔다. ‘안 돼 오존 파괴돼…’ 그래, 여태 얼려 두었던 그때그때의 사랑들이 전부 녹아버리려면, 에어컨을
틀면 안 되지. 더워서 죽기 일보 직전, 도저히 꼼지락거릴
기운이 없을 때 들어야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노래였다. 얼려두었던 그때그때의 사랑들이 남아 있나. 이미 전부 녹아버린 지 오래인 것만 같았다. 가끔 잠이 안 올 때
메모장을 뒤지면, 이런저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전부 여름이었다. 헥헥거리면서 약속 장소에 뛰어갔을 때, 커다란 콜라 한 통을 사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냥 더울 것 같아서, 하면서
콜라를 내밀었던 손도. 뭘 또 이런 걸 샀냐고 했지만, 그날의
콜라는 시원했다. 그날은 더웠고 그날의 콜라는 시원했지 – 남아
있는 건 그냥 그런 뻔한 감각들. 2. ‘행복이란 말을 입에 담으면 사람들이 전부 내게 다가와서 조그만 내 입을 틀어막고서 다신 그런 말을
못하게 만들겠지’
새벽 2시인지 3시인지, 가만히
누워서 이 노래를 들었다. 그날의 나는, 행복이라는 말을
담은 조그만 입을 틀어막는 사람 쪽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모퉁이에서
발이 엉켜 넘어진 채로 그대로 좀 누워 있고 싶었던 것일지도. 어느 심정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괜히 이 노래를 들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끔은 행복이 너무 손쉽게 잡히는 것만 같고, 가끔은 행복이
너무 멀리 있는 것만 같고. 사실 어느 순간부터는 행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조금은 어색해졌다. 우울하다거나 슬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즐겁다/재미있다/좋다 대신에 ‘행복하다’라는 말을 쓰는 게 좀 이상해서. 어렸을 때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다. 행복은 어딘가 최종 목표 같은 느낌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즐거움이나 재미가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데, 그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는 건가. 지금의 즐거움이나 재미는 그냥 참 소소한 건데, 별거 아닌데 – 이걸 행복이라 말해도 되나. 그런데 그런 게 행복이 아니면 또 뭘까
싶었다. 오늘의 기분은 어떤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그 사람을 멀찍이 바라보는 방관자 10 정도 되려나. 3. 스쳐갔던 몇 번의 순간들 어느 해 여름, 페스티벌에서 잡지와 테이프를 팔았다. 아침부터 부스를 차려놓고, 오지 않는 손님들을 기다리며 부스를 지켰다. 가끔 가다 온 손님들에게는
반가운 인사를 건넸으며, 점심 시간에는 뜨끈해진 도시락을 먹었다. 중간중간
누군가 시원한 음료수를 사다 줬지만, 도저히 그 더위 속에서 저녁 공연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한참을 걸어 택시를 불렀고, 택시 속이 천국이다 생각하며 돌아왔지. 그때 생각했다, 한여름의 페스티벌은 갈 데가 못 된다고. 그렇지만 가끔은 그 페스티벌만의 낭만이 궁금해서, 입장권을 끊고
가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엔 포기.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 그때 페스티벌 라인업에 ‘파라솔’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날 해가 가시기를 조금 더 기다렸더라면, 어쩌면 파라솔의 라이브를 만났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또 어느 해 여름, 미술관에 공연을 보러 갔다. 악동뮤지션과 파라솔 – 악동뮤지션의 라이브를 보고 싶고, 파라솔은 좋아하는 곡이 딱 한
곡 있으니까 괜찮은 라인업이다! 생각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파라솔의 공연이 진행 중이었고, 이미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어서 무대 가까이에서 보기는 어려운 상태였다. 아, 파라솔 멤버는 3명이구나.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하면서, 미술관 전시를 보러 갔다. 미술관 전시를 구경하다가, 저 멀리에서 좋아하는 그 딱 한 곡이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전시를 보면서 라이브를 듣는 건 또 색다르네,
좋다 – 딱 그 정도의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악동뮤지션의 순서가 다가올 때쯤, 가까운 자리를 찾아서 무대 근처를 두리번거렸지. 딱 그 정도의 감정으로, 파라솔의 라이브를 스쳤다. 그때 조금 더 일찍 도착했더라면, 무대 가까이에서 그들의 라이브를
들었더라면. 어쩌면 그때부터 좋아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스쳐간 순간들이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좋아할 걸. 무언가를
너무 좋아하게 되면, 가끔씩 그런 후회를 하곤 했다. 그러나
후회하기에는 아직 좋아할 나날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스쳐갈 것이고, 그 많은 것 중 일부와 사랑에 빠질 것이고,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면 ‘왜 그때 알아보지 못했을까’ 하면서 조금
후회하겠지. 그러나 그때에도 좋아할 나날들이 한참 남아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더 오래 무기력하게, 안전한 반경 안에서 좋아할 게 분명한 것들을 손 안에 쥐고서 지내고 싶어. 지금 나는 무엇을 손에 쥐고 있는지, 가만히 앉아 생각한다. 그 조그만 것들을 꼭 쥐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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