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_해변에서 파도를 주웠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인스타그램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기능을 좋아합니다. 제가 직접 질문을 올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올린 질문과 대답을 엿보는 것을 좋아해요. 그렇게 구경하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들은 캡쳐해두곤 하는데, 두고두고 그 대답들을 읽으면서 위로받았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좋아하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질문 & 답변들을 몇 가지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Q.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이겨내시는지 궁금합니다!

= 맛있는 거 먹고 하루 푹 쉬어요.

스스로에게 힘이 나는 것을 스스로 해주면 좋아지는 것 같아요.

From. 김사월 (@april_sour)

Q. 정아야 나 곧 면접 보러가 어떡해 떨려 나 잘하겠지? 난 classic이니까!

= 그래 바로 그거야! 나도 CLASSIC 부르기 직전에 항상 먹는 마음!

From. 선우정아 (@sunwoojunga_official)

Q. 급전이 필요해서 회사일을 다시 시작했고

고시와 병행을 해야 하는데 자꾸 시험에서 도망치고 싶네요.

= 저는 평생 도망다니면서 살았는데 ㅋㅋ 영영 도망다닐 수는 없더라고요.

고시를 준비하신다면 여러 모로 훌륭하신 분일 텐데 자신의 훌륭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희망 어쩌구가 아니라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 같네요.

자신이 별로 안 훌륭하다고 해도.

From. 박찬용 (@parcchanyong)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기능은 24시간 지나면 사라지는 게 매력인데, 그걸 이렇게 오래오래 보관하고 전파(?)까지 해도 되는 것인지! 옮겨적으면서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 기능의 매력은 어울리는 사진을 함께 첨부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렇게 글로만 적으니 분위기가 또 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따뜻하고 다정한 답으로 가득한 지인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엿보다가, 그동안 모아놓은 질문과 이야기들을 꺼내보고 싶었어요. 저도 맛있는 것을 먹고 Classic을 듣고 제 자신의 훌륭함을 믿으면서 한 주를 보내봐야겠어요!

무엇을 먹으면 행복해질지 고민하는

<망고네 슈퍼> 주인장 드림

이 주의 오렌지 한 조각🍊

윤지영 - 27살이 되던 날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들이 글을 낭독하는 순간을 좋아합니다. 노래를 부를 때와는 또다른 느낌으로 와닿는다고 해야 할까요. 언젠가 공연을 보러갔을 때, 라이브보다도 1부와 2부 사이에 틀어줬던 낭독 영상이 더 인상깊었던 적도 있습니다. 이 영상 역시 뮤지션 윤지영의 글과 나레이션으로 구성된 픽션 비디오인데요, 한 편의 짧은 독립영화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중 오래오래 맴돌았던 문장들을 짧게 옮겨 적어봤어요. 텍스트로 읽을 때와 목소리로 들을 때 어떻게 느낌이 다른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후루룩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인간은 일생을 아쉬워하고 그리워만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랑했던 누군가를, 나보다 잘난 누군가를, 잘 읽어내던 일들과 실패를, 꿈과 목표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들을 매일 같이 갈구하다가 스스로 삶을 끝내는 밤에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글로 쓰고 떠난다니요. 어찌 됐든 뭔가 해야만 했습니다. 기억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머릿속에 썼습니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사람들까지 되새겨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머뭇거리기를 몇십번째, 결국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일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윤지영, '27살이 되던 날' 中

이 주의 군만두 하나💫

만두 먹고 술 먹고, 모든 게 잘 되진 않았어도 / 김남숙

매번 너무 빨리 나와서 감탄하던 만두가, 그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훨씬 늦게 나왔다. 나는 만두가 나오기 전에 이미 반쯤 취해 있었고 친구들은 이미 저마다의 세계에 간 뒤였다. 나는 만두가 나오자마자 만두를 맨손으로 집어서 한입에 꿀꺽 먹었다. 내가 맛있다, 라고 말하며 먹고 있는데 취한 친구들이 맛있냐, 라고 뒤늦게 따라 물었다. 그러고는 친구들도 손을 뻗어서 만두를 맨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다 넣었다. 맛있네. 맛있어. 친구들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만두를 호호 불어 먹었다. 바보들, 멍청이들. 잘 살자면서. 나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웃었다.

-[민음사] 만두 먹고 술 먹고, 모든 게 잘 되진 않았어도, 김남숙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 '내가 술 먹기 싫은 이유'를 총 9가지나 메모장에 적었던 적이 있습니다. 5번 항목에 '나는 지금 쓰고 있는 글이 얼마나 개 같고 내일 후회할지 알면서도 쓰고 있다'라고 적어놨는데, 그걸 알면서도 왜 썼는지 의문이 드네요^_^ '내가 술 먹기 싫은 이유'라는 제목부터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그 이후로 열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기회로 확인해보니 역시 열어보지 않는 쪽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시고 뭔가를 쓸 정도로 그렇게 부지런한 편도 아니지만, 가끔 술을 마시거나 새벽에 글을 쓰면 늘 엉망진창인 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술자리 풍경을 생생하면서도 재밌게 묘사한 영화나 글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쓰고 만들지!' 하면서 늘 감탄하곤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만두와 술 냄새가 여기까지 풍기는 것 같아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그려지는 것만 같아서, 덩달아 웃음을 짓게 되더라고요. 바보와 멍청이라는 말을 밉지 않게, 애정을 가득 담아서 할 수 있는 관계들을 좋아합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온 직후, 이 글을 읽어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주의 모래 한 움큼🌴

강이채 - Creep (cover)

한때 쨍한 파란빛으로 염색해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는데요. 결국 파란색에는 도전하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갈색 계열을 오가고 있지만, 이런 영상을 볼 때마다 역시 파란색이 최고다! 생각하게 되네요. 이탈리아의 해변에서 파도소리와 어우러지는 바이올린과 강이채의 목소리.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커버 영상이라서, 가끔씩 떠나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는 영상이에요. 사실 라디오헤드의 원곡은 청량함과 평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 파도소리와 함께하는 이 버전은 어딘가 아련하면서도 청량하고, 아름다우면서 낭만적인 느낌까지 들어요. 당장 이탈리아의 바다로 떠나기는 어려운 요즘, 이 영상과 함께 방구석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Ps. 여름밤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채언루트의 Uneasy Romance도 함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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