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울타리 #허태준 #전혜원기자

[주말에 뭐 읽지]  2021-05-15 #56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죽음으로만 호명되는 그들의 '삶'
허태준 지음/호밀밭 펴냄


20대가 공정에 민감하다고들 한다. 취업준비생과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의대생들이 공공의대에 분노해 거리로 나서며, 대기업의 젊은 직원들이 성과급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노동조합을 만든다. 세상은 ‘청년’들의 이런 목소리를 집중 조명한다.

이 체제에서 거의 죽음으로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존재들이 있다. 2017년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던 이민호 군은 생수 만드는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다. 제주도교육청은 사고 20일 만에 사과했다. 이석문 제주도 교육감은 공식 입장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당시 이렇게 말했다.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수능에 모든 행정력이 집중되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이나 졸업생의 이야기는 주로 언론 보도나 작가의 기록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들려왔다(〈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중에서).” 이 책은 죽음으로만 호명되는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인지 당사자가 직접 써내려 간 기록이다. 저자는 부산기계공고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3년7개월 근무했다.

르포보다 수필에 가깝다. 일하는 곳의 구체적인 조건보다는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캔맥주를 마시며 나눈 이야기,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을 환대해주는 거리에서 느낀 외로움, 산재 사망 기사나 영화 〈설국열차〉를 보며 든 생각 같은 것들이 무척이나 솔직하고 내밀하게 적혀 있다. “누군가가 안정감을 느끼는 울타리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어 있음을 느낄 때마다, 나는 대학생이 아닌 이십 대가 있을 자리에 대해 생각했다.” 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한 이들이 저마다 높은 울타리를 쌓아두고 ‘넘어오지 말라’며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이 땅에서, 저자의 낮은 목소리가 숙제처럼 마음에 남는다.

전혜원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주목한 책

죽음의 청기사
로라 스피니 지음, 전병근 옮김, 유유 펴냄

“그들은 군복을 입지도 않았고, 관통상이 있는 것도 아닌 데다, 포위된 전쟁터에서 쓰러진 것도 아니다.”

전쟁에는 승자가 있지만 범유행병에는 패배한 자들만 있을 뿐이다. 무덤이 부족할 정도로 사람이 죽어 나가지만 속수무책이다. 한 세기가 지난 오늘에서야 수수께끼의 실마리나마 잡아볼 뿐이다. 〈죽음의 청기사〉는 1918년 스페인독감을 샅샅이 추적한다. 막대한 사망자 수로 대표되는 통계 뒤에 가려진 인물과 사건의 면면을 솜씨 좋게 펼쳐놓는다. 역사적 사실과 최신 연구 성과까지 더해 차곡차곡 쌓아올린 이야기는 힘이 있다. 스페인독감이 양차 대전 못지않게, 그 이상으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증명해나간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 끝에는 무엇이 남을까. 스페인독감이라는 ‘선례’가 팬데믹 이후의 삶을 가늠해보게 한다.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고나가야 마사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펴냄

“에바 브라운은 히틀러의 파킨슨병을 눈치 챘을까?”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너무 오래 이어졌다. 10년 동안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왜 마오쩌둥은 난국을 정리하지 않았을까. 그는 사태를 수습할 상태가 아니었다. 1970년 이후 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했다. 1973년에는 언어장애에 시달렸고 팔다리 근육이 위축됐다. 루게릭병이었다. 현대 의학에서도 난치병으로 꼽히는 질병이다. 1976년 사망하기까지 그는 정사를 살필 수 없었다.
뇌신경내과 전문의인 저자가 영웅과 리더의 뇌에 침투한 질병이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는지 설명한다. 히틀러의 파킨슨병,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고혈압, 무하마드 알리의 펀치드렁크 증후군, 밥 딜런의 헌팅턴병 등이 그것이다. 세계사에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모종린 지음, 알키 펴냄

“오프라인 시장의 미래는 로컬이다.”

책 제목만 보면 한참 철지난 이야기 같다. 전자기기부터 내일 아침 국거리까지 집으로 모든 것을 배달시키는 시대다. 이른바 ‘오프라인 시장’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처럼 보인다. 팬데믹은 이런 상황을 더욱 가속화했다. 거리의 온갖 매장에는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다. 반면 슬리퍼 차림으로 갈 수 있는 곳을 뜻하는 ‘슬세권’, 직장과 집이 가까워야 한다는 ‘직주근접’ 같은 말이 유행하기도 한다.
저자는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미래가 로컬, 즉 동네에 있다고 말한다. 삶의 질, 개성, 윤리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는 새로운 공간을 원한다. 이런 욕구를 잘 살펴 ‘택배도시에 도전하는 창조적 커뮤니티’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난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해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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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모 지음, 창비 펴냄

“이 이야기의 끝은 희망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부제는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 수 없는 제목이다. 국가 기능이 마비된 그때, 함께 탑승한 학생들을 구하려 한 생존자의 사연을 다뤘다. 언론은 그를 ‘세월호 의인’이라고 불렀지만 의인의 7년은 영광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람을 더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약을 먹어야 잠을 자고, 불성실한 정부의 해명에 분개해 여러 차례 자해를 했다. 가족들은 고통을 나눠 받았다. 생존자의 절망과 분노,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7년 전 참사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거나, 이제 떠올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길 때 들여다보길 권한다. 누구보다 그날을 잊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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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영토

영혼이 자유로운 프리랜서 사진작가. 어느 날 만난 난민들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임시정부가 마을을 폭격하고  주민을 죽이고 있다며, 그 참상을 세상에 알려달라고요. 밤새 고민하던 그는 결국 난민들을 따라나섰는데...
감정을 억누른 덕분에 더 살아있는 사진. 스티브 맥커리의 포토 저널리즘 세계를 그림과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한국인 아티스트 김정기도 그림 작업에 참여했다네요. │  박성표 (작가)

'한계에서 포착한 예술 포토저널리즘' 전체 글 보기 >>

지난 주말 <좋좋소>라는 웹드라마를 보았습니다.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는지라 후배 기자가 쓴 기사를 보고서야 이런 드라마가 있다는 걸 알았죠.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드라마는 중소기업을 배경으로 벌어진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습니다. ‘좋좋소’라는 명칭도 중소기업을 비꼬는 단어 ‘좋(좆)소기업’에서 따온 거라죠? 이 드라마를 몰아보면서 왜 사람들이 “<미생>이 드라마라면 <좋좋소>는 다큐다”라고 열광하는지도 알 것 같았습니다. 전체 노동자 10명 중 2명만 갈 수 있는(16.9%) 대기업 풍경을 그린 드라마가 <미생>이라면 나머지 8명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중소기업 풍경을 ‘진짜 미친 퀄리티!’(구독자 댓글)로 그려낸 것이 <좋좋소>였으니까요.
 
지난 한 주간 한국사회는 한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목도했습니다. 평택항 부두에서 일하다 300kg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몸이 깔려 숨진 이선호씨가 그이였는데요. 같은 작업장에서 일했던 이선호씨 아버지는 아들이 작업 현장에 있는 동안 안전 장치나 안전 관리자가 일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들이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데도 회사 책임자가 119에 전화를 걸기보다 윗선에 보고를 하느라 바빴다고 증언하더군요.
이런 기가 막힌 사고를 잇달아 겪다 보니 사실 허탈하고 무력한 기분도 듭니다. 사람 목숨값을 우습게 여기는 기업은 물론 그런 기업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는 정치권의 무능에 치가 떨리기도 하지요. ‘거의 죽음으로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존재들’이 여전히 있다는 건, 우리사회가 갈 길이 아직 처절하게 멀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단서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본래 글쓰기를 좋아해 예고를 가려다 집안 형편상 마이스터고로 진로를 바꿨다는 오늘의 추천책 필자 허태준씨는 또래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가능한 빨리 잊어버리려 노력했었다고 고백합니다. 너무 슬프고, 아파 도저히 일상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 같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은유 작가가 쓴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으며 그는 결심했다고 합니다. ‘더는 그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내 아픔을 감추기 위해 그들을 더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요. 
아무쪼록 더 많은 허태준씨가, <좋좋소>가 등장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더 이상 ‘죽음으로 호명되는 그들’이 아닌 ‘살아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 (<작별일기> 리뷰를 쓴) 작가의 경험과 생각 느낌들이 구체적이어서 와닿았고, 
부모님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
" <불량 판결문> 추천하는 내용이 읽고 싶게 만드네요. 
시험 보다가 죽은 사람도 나오는줄 몰랐습니다. 세상 너무...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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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싶지 않지만
혼자 살기도 싫다!

원하는 사람과 행복한 삶을 꾸릴 권리를 꼭 혈연이나 결혼으로 보증 받아야 하나? 

여성가족부가 새로운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이 책을 찾는 분들이 새삼 많아졌습니다.

외로움이 새로운 사회적 질병으로 떠오른 시대, '생활동반자법'은 이미 한계점에 이른 '정상가족'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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