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시대, 귀농·귀촌을 통한 지역에서의 삶

오형은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 위원·지역활성화센터 센터장
귀농·귀촌 45만 시대
그간 정부에서 농촌에 많은 사람들을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로 귀농·귀촌 정책을 펼쳤는데, 실제로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2019년 한 해 동안 귀농·귀촌한 인구가 45만 명에 달한다는 것을 보면요. 그런데 실제로 대부분은 지역 살이를 하러 내려온 사람일 뿐, 실제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그중 3%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귀농 인구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성공적으로 귀농한 '귀농 선배'들 찾아가서 농사를 배우거나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 농업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지자체에서는 귀농귀촌 협의회를 만들어서 귀농·귀촌자들끼리 정보를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지역의 문제, 귀농·귀촌자를 섭외하면 다 해결된다?
지자체는 왜 귀농·귀촌 정책을 열심히 펼칠까요? 그 이유는 총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농업, 어업에 종사할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입니다. 둘째, 지역사회를 유지할 청년과 어린이들이 지역에서 성장해 나가길 원해서고요, 마지막으로, 귀촌자들이 지역에서 경제 활동과 소비 활동을 함으로써 지역 사람들이 원하는 생활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공급되길 바라서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해서 지역으로 가면 이 문제들이 해결될까요? 
최근 지자체들은 이런 고민에 따라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단순히 아무나 오시면 집 주고 농지 준다고 무작정 홍보하는 게 아니라, 타깃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죠. 예를 들어서 폐교될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 전학 올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는 부모가 오면 좋겠다, 라는 식으로요. 그리고 여기에 적합한 귀농·귀촌 정책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시인들이 갖는 농촌에 대한 오해들
첫째, 지방 소멸? 농촌이 사라질 것이다? 
물론 2040년이되면 인구가 감소할 거라고 많은 인류학자들이 이야기하지만 사실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농촌 인구의 경우도 2010년까지는 줄어들었지만, 이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증가세는 귀농·귀촌 정책의 성과로 볼 수 있겠죠. 
둘째, 농촌에는 노인들만 살고 있다? 
물론 노인 인구가 많기는 합니다. 데이터상 24%이 65세 이상의 노인이긴 하니까요. 마을에서 체감하는 바는 더 클 거고요. 그런데 고령화율만 놓고 보자면 농촌보다 도시의 고령화율이 더 높습니다.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고령화되고는 있지만 청년 인구가 귀농·귀촌으로 유입되면서 이 하락세를 지지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셋째, 농촌의 일자리, 농사밖에 없다? 
농촌에도 도시처럼 다양한 일자리가 있습니다. 다만 일자리를 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죠. 도시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구직하는 것과 달리 농촌에서는 알음알음 일자리를 알아 가야 합니다. 실제로 농업 관련 기술 지원, 교육이나 출판, 관광사업, 숙박, 식당, 축제, 지역 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마을 디자이너 등등 다양한 창조계층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3년 전, 한 청년이 금산 전통시장에 카페를 연다고 했을 때 40%가 공실이고 노인밖에 없는 그 시장에서 로스터리 카페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최근에 3주년을 맞았다고 해요. 막상 열고 나니 아이들, 청년들, 엄마들이 고객이 되면서 덩달아 시장 방문 고객도 늘어난 것이죠.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지역에 노인만 있는 게 아니라 아이들, 청년들도 살고 있으며, 더불어 농촌에는 농삿일 말고도 다양한 일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 충만한 농촌에서 뿌리내리고 살 수 있으려면
도시 사회는 지금 인구 과밀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구 밀도가 낮은 농촌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요. 그 관심은 대중매체로도 이어져서, 한적한 시골에 놀러가거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TV 프로그램이 종종 나오기도 하죠. 무엇보다 코로나19 이후로 사람 적은 농촌이 더 안전하다는 인식도 늘어나고 있고요.  
금산에서 귀농·귀촌 주민들의 수기를 모아 펴낸 잡지 <어쩌다 시골>에 실린 귀촌한 부모들의 이야기를 보면, 도시에서 살 때에는 경쟁의 삶을 가르칠 수밖에 없었는데 시골에 와서 살다 보니 엄마도 아이들도 함께 사는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것이 행복한 미래 사회를 만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쟁 아닌 협력의 세대를 키워낼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 농촌에 온 것이죠. 뿐만 아니라 젊은 층들은 영화 <리틀포레스트>처럼 자연주의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 농촌에 오기도 하고, 퇴직한 노부부는 제2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 농촌에 오기도 합니다. 물려받을 땅이 있는 젊은이들이 농부가 되기 위해 농촌에 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농촌의 기존 주민 분들은 이런 귀촌자들에 대해 "전사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더라"라고들 표현합니다. 함께 마을에서 살게 되어 즐거웠고 고마웠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마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요.
농촌에 가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귀농해서 농사 지으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두고 '3무 농부'라고들 하는데요. 기술력 없고, 농지 없고, 인맥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농사 짓는 것도, 판매도 힘들다고요. 농사와 연관된 조건을 갖추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 해도 폐쇄적인 농촌 분위기에서는 구직 정보를 얻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온전한 마을 살이
그래서 정부는 농촌에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커뮤니티케어 전문가들을 육성합니다. 예를 들어, 충남 홍성 홍동에는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마을 기업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창출되는 일자리를 통해 일반 시장경제에서 지원하지 못하는 것들을 지역 주민들이 만들어 갑니다. 
예를 들어 'ㅋㅋ만화방'은 엄마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기 위해 만든 만화방으로, 동시에 방과 후 돌봄 거점이자 청소년들 동아리방이 됩니다. 이 외에도 도서관, 출판사, 어린이집, 목공소, 로컬푸드 판매장 등 다양한 일자리와 직장을 스스로 만들고 지역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일자리가 많이 있는 농촌에서라면, '전사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지 않는 '온전한 마을 살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귀농·귀촌인들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사, 이해, 관심, 존중'이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의 눈에 시골에 계신 분들이 지식이나 정보도 부족해 보이시겠지만, 
오랜 시간 그 땅을 지켜오셨고 그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 온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이시니까요. 
그분들에 대한 존중이 지역 공동체를 잘 이끌어나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교류에서 체류로, 그리고 정착으로─조금씩 농촌과의 접점을 늘려 나간다면
귀농·귀촌이 보다 성공적이려면, 무작정 가서 살아 보겠다고 시작할 것이 아니라 우선 교류를 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5일, 10일, 한 달, 1년 이런 식으로 차츰차츰 체류 기간을 늘려나가 보는 것도 좋고요.
올 여름 인제에서는, 도시의 청년들이 산촌 살이를 체험해볼 수 있도록 10일짜리 체류 행사를 연 바가 있습니다. 인제에 정착한 청년들이 주관한 이 행사는 청년들이 다 함께 즐기면서 인제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산촌에서의 삶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고민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농촌으로부터 농산물, 반찬 등을 구매하거나, 과일이나 꽃을 농가로부터 주기적으로 받는 '구독 서비스' 등으로 교류해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다음에 농촌에 가서 한 달 살이, 세 달 살이, 나아가 열 달간 마을 사무장으로 지내 보기 등 천천히 농촌을 따라 간다면, 전사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귀농·귀촌자들이 줄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