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준비청년과 좋은 어른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연결합니다.

"스며들 듯, 다가온 사람"

- 한채원 빌더님

한채원 빌더님을 떠올리면 환한 미소부터 그려집니다.

누구에게나 아끼지 않고 보여주는 미소는 어떤 빛보다 아름다운데요.

청년들을 만나면 들어주고, 응원해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한채원 빌더님은

소이프가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달려옵니다.


허들링의 달리기 모임 ‘허들런’의 든든한 안내자이자 리더로 활동하고 있어요.

스며들 듯 함께해주는 한채원 빌더님 덕분에 허들링이 더욱 빛나고 있답니다.

Q1. 빌더로는 언제 가입했고, 소이프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2020년에 빌더로 가입하게 되었는데요. 그때는 제가 상담 일도 조금 안정된 시기였어요. 대학교 다닐 때는 봉사도 하고 싶고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는데요. 대학 다닐 때는 기관들에 후원만 하다가 상담사로 자리를 잡고 나니까 구체적인 활동을 더 하고 싶은 거예요. 보육원 봉사도 하고 싶었지만, 제가 아이들을 한 번 만나고, 꾸준히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만나는 건 조심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못 가게 되면 그 관계에서도 아이들이 상처받을 수도 있잖아요. 정말 나중에 삶이 안정되면 꾸준히 갈 수 있을 때 해야겠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죠. 


빌더에 가입하게 된 계기는 우연히 소이프 기사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일단, 꾸미지 않고 일하는 담백한 느낌이 들었고 무엇보다 제품 디자인이 예쁜 거예요. 제가 어릴 때 아이들에게 교육도 해주고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소이프가 이미 그걸 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빌더가 되면 마치 내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2022년 허들링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 캠프에 가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된 거죠. 

Q2.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궁금해요.

저는 청소년 때부터 약간의 외로움이 있었어요. 11살쯤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여러 친척 집을 거치면서 생활해왔거든요. 부모님은 살아 계셨지만 함께 생활하진 않았고, 16살쯤부터는 거의 혼자 지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릴 때는 ‘위탁 가정’에서 자란 셈인데 그땐 개념을 잘 몰랐던 거죠. 어릴 땐 의식하진 못했는데, 심리적으로는 제 자신을 자립준비청년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그래서 자연스럽게 어릴 때의 꿈이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질 좋은 교육과 따뜻한 정서적 유대를 제공하는 보윤원 같은 공동체를 설립하는 것이었어요. 그런 걸 내가 할 수 있다면 정말 멋지고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결핍이 자연스럽게 꿈이 된 거죠.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저는 '자립준비청년'이 삶을 함께 살아가는 형제자매이자, 정을 나누는 가까운 이웃이라고 생각해요.


*가정위탁이란? 부모의 질병·가출·이혼·수감·실직·사망·학대 등의 사유로 친가정에서 아동을 키울 수 없을 경우, 위탁가정에서 일정 기간 아동을 양육했다가 다시 친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

Q3.  2022년 허들링 제주도 캠프에 참여하셨잖아요. 어떤 용기로 참여하게 되셨고, 어떤 추억들을 만드셨나요?

2022년 허들링 제주도 캠프에 참여한 타이밍이 좋았던 게 심리상담사 1등급 필기시험이 끝난 직후였어요. 심리상담사는 1등급이 최상위 자격이거든요. 이제 정말 함께 할 수 있는 때가 됐다, 실제로 사람들 만나서 활동할 수 있는 때가 됐다고 생각했죠. 제주도 캠프 직전이 필기시험이라,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자며 공부하고, 끝나자마자 출근해서 일하고 캠프에 간 거라 진짜 피곤하던 때였어요. 이동할 때마다 졸아서 많이 민망하고 미안했어요. 같이 어울릴 때는 정말 재밌게 놀았는데 버스에 타면 그렇게 졸리는 거예요. 그때 함께 간 빌더님들이 저를 계속 챙겨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일단은 2022년은 친구들도, 빌더들도 만난 게 처음이니까 서로가 조심스러워했어요. 서로서로 낯도 가린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하면서 점점 편안해졌고, 생일인 친구들과 파티도 하면서 즐거웠죠. 희선이랑 같은 조였는데, 많이 낯을 가렸을 텐데 저한테 다가오려고 노력해 준 게 기억나요. 말도 먼저 붙여주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 주는 거예요. 고마웠죠. 자영이도 되게 눈에 띄었어요. 사회성이 정말 좋은 거예요. 저는 처음이라서 조심스러웠는데 자영이를 보면서 정말 멋지다는 생각을 했죠. 재훈이랑은 비행기랑 버스에서도 옆자리에 앉아서 내내 붙어 다녔는데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 좋아하는 일본 여행, 좋아하는 음식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편하게 해줘서 제가 친구들에게 맞추려고 억지로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자립준비청년을 처음 만나는 자리이다 보니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고민도 많이 했고요. 제가 텐션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 가만히 지켜봤거든요. 그땐 잘 몰랐으니까 저도 친구들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수동적일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때 반성도 많이 했어요. 친구들이 정말 훌륭했던 거죠. 

<2023 허들링 제주도 캠프에서 소모임을 함께한 친구들과>
Q4. 2023년에는 치어빌더로 활동하셨는데요. 심지어 3월부터 12월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아서 연말 파티에서는 개근상도 받으셨죠!

저는 소이프의 철학이나 운영하는 마인드가 정말 좋았고 공감했어요. 작년 활동은 진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고요. 공허감이 큰 상태였는데 허들링에 참여하면서 소속감도 느꼈고, 따뜻함도 있었고요. 시간이 가면서 고민 없이 잘 어울릴 수 있게 되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니까 기분도 전환됐고요. 활동하면서 그냥 저의 ‘허들링’이 됐어요. 


친구들과 주고 받는다는 느낌이 많았어요. 작년에는 확실히 진짜 자연스럽게 친구를 사귀듯이 천천히 다가가는 게 좋았어요. 일단은 좋아서 매달 참석한 거죠. 매달 셋째주 토요일은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고요. 제가 좀 FM이어서 뭔가를 하기로 했으면 기본적인 걸 잘 지키려고 해요. 치어빌더를 신청할 때부터 모든 스케줄에 당연히 출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은 무조건 다 비워놨고요.

Q5. 치어빌더를 하시면서, 빌더님들과 관계하는 것은 어떠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누군가가 나서서 만나요, 뭐 합시다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따로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평적인 관계여서 다들 천천히 지켜봤던 것 같아요. 매달 만나기도 했지만, 소모임 할 때는 각자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해서 우리끼리는 만나는 시간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친밀한 유대 관계는 만들지 못해서 그런 부분들이 아쉽지만, 그게 자연스러웠다는 생각이 들고요. 올해는 더 자주 만나기 위한 자리를 만들게 되지 않을까요? 이제 2년 차니까 자연스럽게 접점이 많아질 것 같아서 기대가 돼요.

<2023 허들링 제주도 캠프에서 아침마다 달리기한 멤버들과 찰칵>
Q6. 치어빌더 활동을 하면서, 작년 한 해 어떤 즐거움과 추억이 생기셨나요?

제일 크게 느껴지는 게 사람들이 편해지고, 친해졌다. 그래서 더 편하게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모임도 생기고, 만나서 달리기도 하고, 전시도 보고, 산에도 가고요. 


기억에 제일 남는 건 제주도 캠프입니다.  2박 3일 동안 같이 있으니까요. 두 번째 날 송미랑 같은 소모임을 했는데, 그게 되게 좋았어요. 비밀의 숲도 가고, 레일바이크도 타고, 유민미술관도 가고. 저희 조는 여자들 4명이 함께 다녔는데 인원이 적어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이 정서가 좀 비슷하기도 했고요. 소소하게 자연을 즐기고, 즐거운 감정도 느끼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수다도 떨고. 그런 일상 같은 시간이 정말 좋았어요. 송미하고도 편하게 대화한 게 그때가 처음이었거든요. 그전에 인사만 나눴는데 엄청 가까운 느낌이 들었고, 이젠 만날 때마다 반가워요. 


제주도 캠프에서 달리기를 해야 겠다는 생각은 못 했는데 소이프에서 먼저 제안을 해주셨잖아요.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하고 싶은 걸 함께 해도 되는구나라는 마음이 좋았거든요. 아침 6시에 만나서 은학이랑 저랑 달리기를 한다고 하니까 태희 빌더님도 참여했고, 이틀 동안 자연스럽게 아침마다 만나서 달리는데, 제주도였으니까 더 특별했어요. 그게 또 굉장히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아요. 


지연 빌더님과 재진 빌더님은 산책을 하셨고, 자연스럽게 용재랑도 아침에 함께 산책을 하셨고요. 제주도에서 했던 달리기 모임이 ‘허들런’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잖아요. 그게 참 감사해요. 아마 소이프에서 제안을 안 해줬다면 저는 눈치 보느라 생각만 하다가 못했겠죠. 

<우도에서 허들링 친구들과 함께>
Q7. 거리를 두고 자립준비청년을 봐왔던 때와 허들링에서 친해진 지금과 비교하면 무엇이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2022년에 제주도 캠프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저도 그렇고 재진 빌더님도 그렇고, 우리의 요구나 생각들이 앞서가면 안 된다는 걸 느낀 것 같아요. 2022년에는 오히려 봉사자의 마음처럼 내가 친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막상 캠프에 다녀왔더니 제가 받기만 한 것 같은 거예요. 그때는 좀 괴로웠어요. 가서 여행만 즐기고 어떤 혜택만 받고 온 것 같은데, 내가 가서 뭘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쨌든 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어른이었는데, 어른의 역할을 한 건가. 이런 고민이 적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것도 시행착오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의 ‘만남’을 내가 일방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나. 진짜 좋은 관계는 활동하면서 만들어지는 건데 말이죠. 


확실히 우리가 서로 마음도 살피고 가까워지고 친밀감이 생기기 전에 그냥 만나는 시간도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주의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만나는 빈도도 중요한 것 같거든요. 자주 만나면서 이 어른이 위험한 사람이 아니구나 느끼고. 멀리 지켜보기도 하고, 가까이서도 보고. 치어빌더라는 어른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구나 확인이 돼야 그다음에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일단 정말 편해지고 친해지기 전에 사소하게 만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별다른 의도가 없는 그냥 편한 시간들이 많이 있어야, 서로의 마음까지 엿볼 수 있는 가깝고 친밀한 시간을 보내는 게 강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자주자주 만나는 시간들을 더 가지면 좋겠다. 마주침이 많아지면서 낯가림의 시간이 지나고, 서로의 가치관을 볼 수 있는 어떤 활동을 하면 더 좋은 것 같아요. 경제 모임 같은 스터디 모임도 그렇고 러닝 모임도 그렇고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더 특별한 우리만의 시간이 되잖아요. 그러면서 신뢰도 더 쌓이고 관계도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허들링 활동은 가능하면 진짜 오래오래 하고 싶어요. 가능하면 평생 하고 싶을 정도예요. 

Q8. 한채원 빌더님은 허들링에 참여하는 자립준비청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으신가요?

저는 편한 이모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허들링 친구들한테 진짜 편한 존재가 됐으면 좋겠어요. 편하다고 서로 함부로 하는 관계가 아니라, 편하게 다가와서 얘기하고 싶은 관계. 장난도 칠 수 있고, 농담도 나눌 수 있고 속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은 관계요. 


허들링 친구 중에서는 재훈이 하고 편해요. 은학이는 작년에 많이 편해졌어요. 러닝도 같이 하고 인스타그램에서 DM도 주고받으면서 편해졌고, 송미하고는 제주도 캠프 때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친해졌어요. 송미가 귀여운 장난도 많이 하는데, 되게 사랑스럽다고 느꼈어요. 자영이는 경제 모임도 함께 하고, 달리기 모임에서도 만나면서 좀 편해지고 있고요. 


친구들이 처음에는 저를 야무지게 본 것 같아요. 친해지면 되게 맹하기도 하고 약간 허술하기도 하고, 또 장난치는 것도 좋아하고, 뭔가 깜빡깜빡 잊기도 해요. 그런 저의 모습도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좋더라고요. 제 그런 모습도 보여줄 수 있고, 친구들의 다른 모습도 볼 수 있는 서로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어요. 진짜 본연의 편안한 모습, 서로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그 정도의 관계가 되면 좋겠어요.

<허들링 달리기 모임 '허들런'과 함께한 2023 손기정평화마라톤>
Q9. 작년 11월에 허들링 커뮤니티 친구들과 함께 ‘허들런’이란 모임으로 마라톤에 나갔는데요. 피니시 라인에서 허들런 멤버들을 발견하고 두 팔 벌리고 달려오던 빌더님을 기억합니다. 눈물을 흘리셨던 것도요.

피니시 라인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발견하고, 정말 반가웠어요. 그날 21km 하프에 도전했는데 달리는 도중에 다리에 통증이 와서 정말 아팠고,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졌어요. 다들 기다리는 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집에 갔을 것 같았고, 그렇다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고요. 기다리고 있다면, 오래 기다리는 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오만가지 고민을 하면서 달렸는데요. 


피니시 라인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허들링 식구들이 보이는데 감격스러웠죠. 감동이었어요. 피니시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환대해 주는 그 느낌. 나를 기다려준 이것이 허들링이다. 사실 진짜 고마웠어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 같았고, 우리가 함께 또 추억을 만든 것 같았어요. 계획하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까 그런 시간들이 생긴 게 참 좋아서 고마워요. 

<마라톤을 준비하며 허들링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 연습한 날>
Q10. 마라톤 풀코스를 계획하고 있을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나한테는 뭔가 힘이 있고, 장점이 있다고 보여주는 게 달리기였죠. 달리기는 힘들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댈 곳이기도 해요. 힘들 때마다 달리기를 찾아요. 그러면 다시 힘이 나기도 하고 나 이런 부분이 괜찮은 사람이야 다시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마인드 풀 러닝’이라는 러닝 크루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작년에는 뭔가 울적하고 우울한데 뭘 해야 힘이 날지 잘 몰라서 일단 달렸어요. 이젠 애쓰는 달리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며 명상하듯이 달리고 있어요. 호흡을 그대로 느끼고 애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하는 러닝 크루의 마인드와 철학이 좋았어요. 그전까지는 ‘나를 증명하는 달리기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그냥 살아있는 달리기를 해보자’라는 마음의 전환이 생긴 거죠. 달리기를 하면서 호흡하는 그 자체로 내가 살아있구나, 그것만으로도 됐지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정 형편 때문에 전학을 가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말괄량이었는데 전학을 하고 나니 상황도 환경도 다 바뀌게 되니까 살짝 기가 죽어 있었어요. 그러던 중 6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저한테 장거리 달리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신 거예요. 달리기를 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관심을 주니까 그게 좀 좋았나 봐요. 나를 지켜보던 어른이 ‘너 이거 잘할 것 같으니 해보지 않겠니’라고 말해준 게 약간 사랑받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래서 그때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시에서 달리기 대회에 나갈 선수를 뽑았는데, 학교 대표로 장거리 달리기 선수로 뽑혔어요. 뽑히고 나서 1년 동안 훈련을 받았죠. 이게 첫 번째 달리기를 만난 계기예요. 반에서 선수로 활동을 한다고 하면 주목받기도 하고, 자습 시간에 따로 훈련도 받을 수 있었어요. 그게 저한테는 엄청 큰 계기가 됐어요. 기가 다시 살아난 계기요. 


전학 후에 친척 집에 살면서 많이 우울해하고 있었는데, 나한테 특별한 재능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장점을 누군가 알아봐 주고, 나를 선택해 준 느낌이 드니까 그것도 너무 고마운 거예요. 달리기를 하면서 ‘나 은근히 근력이 있네, 지구력이 있네’ 새로운 내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요. 저한테는 ‘달리기’가 ‘너 괜찮은 사람이야’, ‘너 장점이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느낌이 있어요. 그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하게 됐고요. 


중학교 때도 운동회를 하면 장거리 달리기하겠다고 제가 나섰는데요. 친구들은 제가 키도 작고 몸도 막 여리여리하니까 특별한 기대를 안 했어요. 그런데 또 지구력은 있으니까, 1등은 아니어도 2등, 3등은 하고. 이런 과정들 속에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기도 했어요. 남들이 처음에는 바로 알아차리지는 못하지만, 나한테는 뭔가 힘이 있고, 장점이 있다고 보여주는 게 달리기였죠. 달리기는 힘들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기댈 곳이기도 해요. 힘들 때마다 달리기를 찾아요. 그러면 다시 힘이 나기도 하고 나 이런 부분이 괜찮은 사람이야 다시 일깨워주는 것 같아요. 


지금은 ‘마인드 풀 러닝’이라는 러닝 크루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작년에는 뭔가 울적하고 우울한데 뭘 해야 힘이 날지 잘 몰라서 일단 달렸어요. 이젠 애쓰는 달리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며 명상하듯이 달리고 있어요. 호흡을 그대로 느끼고 애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하는 러닝 크루의 마인드와 철학이 좋았어요. 그전까지는 ‘나를 증명하는 달리기를 했다면 이제부터는 그냥 살아있는 달리기를 해보자’라는 마음의 전환이 생긴 거죠. 달리기를 하면서 호흡하는 그 자체로 내가 살아있구나, 그것만으로도 됐지라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2023년 허들링 모임에 참여한 치어빌더님들과 함께>
Q11. 한채원 빌더님 직업은 심리상담가인데요. 특별히 심리상담가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심리상담가로 일하면서 갖게 된 원칙이나 가치관도 궁금합니다.

원래는 중어중문학을 전공을 했어요. 중국어를 잘 하는 편이라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 중 제일 괜찮은 것 같아서 공부하고, 관련된 일을 하면 쉽겠다고 싶었죠. 대학교 3학년 때 광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번역도 하고, 중국어를 활용하는 일을 했는데 재미가 없는 거예요. 내가 자동차 부품처럼 느껴졌고요.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깊어졌죠. 졸업을 앞두고 취업 고민을 진지하게 하다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좋아하는 거, 무엇을 해도 삶의 의미를 찾는 스타일이에요. 의미 있는 삶을 살자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공부하고 도전한 게 ‘상담’이에요. 심리학은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들은 보통 되게 취약한 상태가 되고, 힘들 때 저를 만나러 와요. 상담을 하러 오는 대부분의 내담자들은 정서적인 고립이 발생해 찾아오는 일이 많아요.  제가 특별히 막 어떤 기술로, 의사처럼 병이 있는 사람을 살려준다거나 어떤 감동적이고 대단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그런 건 아니고요. 사람마다 분명히 어딘가는 빛나는 구석이 있잖아요. 원래 가지고 있고, 빛나는 어떤 걸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데 잠깐 잊고 있는 거죠. 그런 걸 제가 다시 봐주고 발견해 주는 거예요. 상담을 통해서요. 제가 받아온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상담도 그렇게 하려고 하거든요. 저에게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해 주는 사람이 있어왔고, 그런 사랑을 받아왔으니까 저도 그런 일을 하고 싶어서 ‘상담’을 하고 있어요. 

Q12.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시는 편인데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마음인지 궁금해요.

저는 사실 많이 들어준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제가 막 들어줘야지 마음 먹는 건 아니고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듣게 되고, 제 얘기 하고 그런 거죠. 어떤 친구들이 많이 들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면 내가 언제 그랬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부모님과 자란 친구들은 어쨌든 부모님이 이야기를 들어준 시간들이 있을 거잖아요. 우리 친구들은 그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잘 들어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제가 또 들어주는 걸 좋아해요. 그런 게 잘 맞으니까 상담사를 직업으로 한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교류하는 거라서 듣는 거에 대한 피로감은 없어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저도 말이 많아요. 신나요.

Q13. 요즘 관심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상담소를 꾸리고 독립한 지 얼마 안 돼서 상담소 공간을 꾸미는 재미가 있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대로 페인트칠도 하고, 인테리어도 하는 즐거움이 컸어요. 전 동물을 좋아해요. 어릴 때 시골에 살았는데, 강아지와 고양이가 늘 있었거든요. 어릴 때부터 같이 성장한 경험과 기억이 있어서인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고양이, 강아지 짤 같은 거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요. 힐링 돼요. 아시다시피 달리기도 좋아해요. 음악 듣는 것도 되게 좋아했었어요. 20대 때는 재즈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거든요. 사장님이 재즈를 엄청 좋아하시니, 맨날 재즈 듣고, 그러다보니 악기에도 관심을 가졌었고요.


당장 관심을 갖고 계획 중인 건, 2년 사이에 집을 사고 싶어요. 이사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다음 이사는 내 집으로 가고 싶다는 게 가장 큰 플랜이에요. 또 상담소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브랜딩을 잘 하고 싶어요. 자립준비청년을 잘 이해하는 상담사들을 양성해서 팀을 꾸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개인적인 관계가 생겼기 때문에 허들링 친구들이 원해도 제가 상담할 수는 없거든요. 제가 못하지만, 자립준비청년을 이해하는 상담사들을 양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2022년 허들링 제주도 캠프에서>
Q14. 친구들에게는 좋은 어른이 많이 필요합니다. 빌더님에겐 좋은 어른이 있었나요? 성장 과정에서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처럼 느껴졌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아이의 장점이나 잠재력을 관찰하고 봐주고,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도록 살짝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요. 쉽지 않죠. 오래 지켜봐야 되고요. 그냥 보는 게 아니라 관찰하듯이 보는 눈이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약간 그렇게 보는 게 애정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저에게 장거리 달리기를 해보라고 해 준 6학년 때 체육 선생님이 정말 좋은 어른이었던 거 같아요. 저한테 달리기를 해보라는 제안들이 저는 일단 고마웠고요.


중학교 때 부모님이 결국 이혼을 하게 되면서, 친척들 집에서 잘 지내려고 노력한 게 의미 없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었어요. 가족이 회복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무너지면서 우울감에 빠져서 공부도 안 하고 수업 시간마다 자고, 집에 가서도 잠만 자던 시절이 있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요. 우울해서 아무 생각도 하기 싫으니까 현실을 도피했던 거예요. 문제를 드러내는 건 아니었으니까 주변에서 심각하게 보진 않았는데, 담임 선생님이 굉장히 무서운 여자 선생님이셨는데요. 저를 유심히 지켜보셨나 봐요. 짝이 바뀔 때마다 매번 공부를 잘하는 애들 옆자리에 앉게 배치해 준 거예요. 공부를 안 하고 성적이 뚝뚝 떨어지니까 주변에 다 우등생들을 앉혀주신 거예요. 그런 친구들한테 둘러싸여 있는데 선생님이 나를 신경 써서 이렇게 자리를 배치해줬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엔 고맙더라고요. 그래도 무시하고 자고, 대답도 잘 안 하면서 학교를 다녔지만, 1년 동안 지켜봐 주시더라고요. 혼내거나 그러지 않고 네가 조금만 더 노력을 하면 좋은 고등학교에 갈 수 있다고요. 그런 감사함을 이제야 느끼고 있는 거 같아요. 

Q15. 자신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 내가 포기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내가 포기하는 순간이 끝나는 거지 그전까지는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는 마인드가 있어요.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이런 선택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상주의적이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향도 있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잘 되는 상황도 있고, 안 되는 상황도 있고, 좋은 모습도 있고, 안 좋은 모습도 있잖아요.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안 좋은 것도 많지만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다 살피기에는 내 삶은 유한하니까 나의 장점이나 좋은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런 걸 잘 살려서 보려 하고요. 너무너무 속상해 너무 힘들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자.” 언젠간 죽을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잘 살아야지.” 불굴의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됩니다.

이야기 기록한 이. 유랑流浪
이야기 나눠준 이. 한채원 빌더님
소이프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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