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먹고 사는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라잎스페이퍼 시즌2



라잎스페이퍼는 2022 지역문화예술교육 기반 구축 지원사업 참여 단체의 먹고사는 이야기를 담은 뉴스레터입니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의식주와 더불어 이들이 가진 관계, 태도, 관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생’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각 단체의 이야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7월 29일부터 11월 18일까지 매주 금요일 두 팀의 이야기를 메일로 보내드립니다.

본 뉴스레터는 청년협동조합 뒷북의 조합원 충현, 소똥, 혜진이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연극실험실늘의 유운,준영,미선>
연극실험실늘 인터뷰: 변화무쌍한 그림자처럼
* 인터뷰이: 함유운, 이준영, 한미선
* 인터뷰어 : 소똥, 충현
* 인터뷰 편집: 소똥
💬 음성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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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

빛을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빛의 반대급부에 보이는 그림자를 보게 됐는데 뭔가 홀리듯이 확 끌렸어요. 그림자라는 게 굉장히 변화무쌍하잖아요. 변화무쌍한 이 아이는 나랑 항상 같이 있는 애잖아요. 근데 우리가 그걸 인지하고 살지 않죠. 그게 근데 나잖아요. 내가 아닌 게 아니잖아요. 그것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럼 내가 저렇게 변화무쌍한 것들을 가진 거잖아요. -유운

 

그림자는 변화무쌍하다. 항상 쉬지 않고 바삐 움직인다. 누군가의 그늘이 되어주기도 하며, 나만이 알고 있는 그늘 속에 잠기기도 한다. 다만 그것을 살아가면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연극실험실늘은 항상 곁에 있는 그림자로 시선을 옮겼다. 그 시선을 통해 변화무쌍한 자신을 발견했고, 관객 곁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다. 늘 곁을 지키는 동반자 그림자처럼, 변화무쌍한 그림자처럼. 늘 묵묵히 마음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소똥-

💭 여러분과 여러분의 단체를 소개해주세요.
<인터뷰 시작에 앞서 녹취를 준비하는 소똥>

유운

저희는 2006년도에 창단을 한 극단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뭔가 좀 재미있는 것을 같이 연습도 하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어요. 그렇게 시작됐던 것이 기왕이면 이름 달고 뭔가를 해보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창단 공연을 하면서 연극실험실늘 이라는 극단을 만들었죠. 당시에 모두 30대 중후반대였어요. 그러다 보니 결혼과 출산, 결혼에 의한 거주지 이동 등으로 인해서 셋이 모이기가 어려워졌죠. 어쨌든 만든 팀을 이끌어가야 했기 때문에, 그때그때 프로젝트에 따라서 이렇게 저렇게 모여서 활동하는 팀이 되었어요.

 

유운

처음에는 저희 이름처럼 실험적인 그런 작품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비언어적으로 표현하는 팀이었는데 저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 쉬운 연극을 해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작품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듣고, ‘쟤는 왜 굴러? 쟤는 왜 사다리에 거꾸로 매달려 있지?’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고민하게 됐어요. 일상적인 이야기로 좀 깔깔거리고, 서로 공감하고, 울고 웃고 하는 작품들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미지적인 작품들을 많이 했었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실험이겠더라고요. 일상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연극 작업을 하면서 그림자 예술 교육도 같이 진행하고 있어요. 그림자를 확산하고 싶은 마음에서 축제까지 진행했어요. 다방면으로 뭔가 열심히 해보려고 애쓰고 있는 팀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으쌰으쌰 해보려는 마음을 갖고 지금껏 진행하고 있는 함유운이라고 합니다. (웃음)

 

준영

저는 이준영이라고 하고요. 저는 이제 같은 극단 출신이 아니고, 일반 극단에 있었어요. 실험극을 하는 극단이 아니었죠. 아까 유운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무대에서 구른다든가, 어려운 표현 방식을 싫어하는 극단이었어요. 우리가 배고픔을 표현하는데 막 허리를 구르면서까지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웃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연극만 했어요. 어릴 때부터 극단에서 포스터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소똥

유은님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극단에서 활동하셨는데 유은님과는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유운

정반합이라고요 (웃음)

 

준영

옛날에 제가 공연하고 있을 때 유운샘이 공연을 보러 왔어요. 저랑 같이 출연했던 형하고 친했거든요. 그 형님은 또 유은샘이 연출 맡은 작품을 같이 하는 게 있었어요. 공연이 끝나고 같이 회식하는데 우연히 유은샘이 합석하게 됐어요. 대학로 내 술집에서 합석해서 같이 술 먹다가 술에 취하고..

 

유운

싸우다 정든 사이라고 보시면 (웃음)

 

미선

저는 배우 활동만 쭉 하던 한미선이라고 합니다. 이 친구(유운님)는 젊었을 때 대학로에 연극하는 집단 중에 73소띠 모임에서 만났어요. 아. 나이가 나왔네요. (웃음) 친구들끼리 모여서 활발하게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후에는 서로 각자의 작품 활동을 쭉 했어요. 저는 배우 활동을 위주로 많이 하고 교육 활동을 거의 안 했어요.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었죠. 나이를 더 먹어가면 사실은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어지잖아요. 내가 연극인인데 연극이 아닌 다른 걸로 계속 돈을 벌고 있었죠. 시선을 좀 바꿔봤어요. 예술 사업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다가 그 현장에서 유은샘을 만나게 된 거예요. 유운샘이 하는 작업을 옆에서 보는데 축제라든지, 예술 사업이라든지 이런 걸 직접 기획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림자극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어요. 그림자들로 정말 많은 세계를 만드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했어요. 배우고 싶다. 유운 선생님 가르쳐 주십시오. (웃음) 유운샘이 하나부터 가르쳐줬죠. 그러다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같이해보자고 제안해서 오게 됐어요.

💭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쉬운 연극을 표방한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쉬운 연극이라는 타이틀은 연극이 어렵다는 걸 전제한다고도 느껴지는데요. 연극의 문턱이 존재한다면 무엇인지, 그 문턱을 낮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유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관객과 얼마만큼 소통하며 전달될 수 있는가?’ 저는 표현주의 연극을 연출해왔어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 철학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받았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지점이 있었어요. 사실 연극이라는 게 특정한 사람이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어야 되는 건데, 마치 내가 먼저 스스로 뭔가 거리감을 만들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누구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운

이제 그런 작품을 만들려다 보니 서정적인 작품이 탄생해요. 정말로 문턱 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노력 중에 축제도 만들고, 교육이라는 방식도 진행하는 거죠. 연극은 끼가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해보면 ‘어? 나도 할 수 있는 거네.’라고 경험해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경험하면 경험한 만큼 연극이 쉬워질 수 있잖아요. 접근하기 쉽고, 극장을 찾아오기가 쉬워질 거고요. (연극을)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유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보는 사람마다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계속해요. 예술가들이 함께 먹고살 수 있는 그런 마을. 그런 마을을 꿈꾸면서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을이 꼭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충현

마을을 만든다면 어디에 만들고 싶으세요?

 

유운

계속 고민하고 있는데요. 양주도 생각하고 있기는 해요. 양주에서도 그런 노력을 했었고, 공감해 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 제가 구상하는 지역은 좀 더 작은 규모의 지역들이긴 하거든요. 그래서 강원도의 두메산골 이런 데를 생각하고 있기도 해요.

 

소똥

지금 두 분께서는 연극의 문턱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게 어떤 것일지?

 

미선

저는 어려서부터 좀 어려운 작품들. 사르트르 같은 철학적인 실험극을 너무 좋아했던 것 같아요. 어려서 좋아한 것 같아요. 어려서 그랬던 것 같은데 ‘관객은 관객일 뿐이고, 난 무대 위에 배우다.’ 이 생각으로 오랫동안 작업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그 문턱이 스스로 내려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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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

작품을 계속 그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 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조금 숙련이 돼간다고 할까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관객의 마음도 읽게 되는 지점이 생겼어요.

 

준영

문턱은 연극만 있는 게 아니고 미술도 있고, 음악도 있고 다 있잖아요. 당연히 뭘 해도 다 턱이 있죠. 연극은 그나마 턱이 낮다고 생각해요. 제가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주부 극단이나 어르신 극단을 많이 만나요. 사실 배우라는 건 우리 상상 속에 한번은 도전해볼 만한 꿈 같은 거잖아요.

 

준영

제가 연극 수업을 할 때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아요. 우리는 다 연기자고 배우예요.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자꾸 둘 필요가 없어요. 종종 수업이 끝날 즈음 여러분 중에 연극을 진짜 대학로에서 한번 해보고 싶다면 연락 달라고 해요. 딱 한 분이 해보고 싶다고 저한테 연락했어요. 운이 좋게도 그분이 대학로와 연결되었죠. 대학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과 똑같은 배역으로 리딩을 했어요. 리딩 후에 저에게 장문의 문자가 날아왔어요. 이제 자신의 실력을 인정했으니까 안 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저는 괜찮은데 왜 그러냐고 말했어요. 근데 제 주변 연출가분들은 저한테 그런 행동은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연극은 쉽게 시작하는 경우가 별로 많지도 않고, 나이를 먹고 오면 난감한 게 많아요. 선후배 관계도 복잡하고요. 약간 이상해 여기도. 근데 그런 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처음이 있으니까 그냥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친구는 대학로에서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분들에게 지금 하는 곳에서 연극하는 힘을 주고 싶어요.


👻 그림자자 가진 신비로운 매력에 빠졌다고 소개해주셨는데요. 그림자가 품고 있는 신비로운 매력을 알고 싶습니다. 그림자의 신비로운 매력을 어떻게 뽐내고 계신가요?
소똥

작년에 라잎스페이퍼를 연재하면서 ㈜인트리라는 단체를 만났는데, 그 단체도 그림자극을 하세요. 그 단체도 그림자극만큼 무한한 매력을 뽐내는 게 없다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연극실험실늘에서는 신비로운 매력에 빠지셨다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흥미로웠어요. 그림자의 무한하고 신비한 매력.

 

유운

뽐이랄 것까지야. (웃음) 저희는 각자의 극단이 있어요. 미선 선생님은 '극단 늑대'를 하고 계시고, 준영 선생님은 '공연 집단 떼'를 하고 계시고, 모두 극단에서 대표 역할을 하고 계세요. 무대극 위주의 작품을 하면서 빛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빛을 좋아하다가 어느 순간 빛의 반대급부에 보이는 그림자를 보게 됐는데 뭔가 홀리듯이 확 끌렸어요.


유운

그러면서 그림자를 공부하는 과정을 가졌는데, 그림자라는 게 굉장히 변화무쌍하잖아요. 변화무쌍한데 사실은 이 아이는 나랑 항상 같이 있는 애잖아요. 근데 우리가 그걸 인지하고 살지 않죠. 그게 근데 나잖아요. 내가 아닌 게 아니잖아요. 그것도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럼 내가 저렇게 변화무쌍한 것들을 가진 거잖아요. 일단 내가 그림자로 놀고 싶었어요. 내가 그게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서 빠져들다 보니 그림자 축제를 진행하기까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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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연출한 그림자극>
유운

그림자극 하면은 아동극이나 가족극을 떠올리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그림자는 꼭 그렇지 않거든요. 성인을 위한 그림자극이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림자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치유라든가... 너무 고상하다. (웃음) 인트리라는 단체가 말씀하셨듯 그림자는 무궁무진하죠. 앞으로도 계속 공부가 필요하고 발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소똥

미선님도 비슷한 이유로 빠지신 걸까요?

 

미선

느끼는 감정들은 다르지만 비슷하죠. 아이들이 뒤에서 그냥 움직였는데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판타지 세계를 만들더라고요. 거기서 매료가 됐어요. 뭐라고 설명이 안 돼요. 미묘한 그림자만의 매력이 있더라고요. 배우고 싶어서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 꿈다락를 통해 교육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어요. 진행하는 교육을 소개해주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어떨 때 배웠다고 느끼나요?
소똥

그러면은 이어서 이번에 꿈다락 진행하시는 것도 그림자로 이제 활용하시는 교육이라고 들었었는데요. 꿈다락 지금 한창 진행 중이신가요?

 

유운

네. 1기는 이제 끝났고요. 9월부터 2기가 이제 시작이 될 거예요. 저희 교육프로그램은 그림자를 활용해서 연극이랑 접목한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될 것 같고요. 초반에는 아이들과 연극 놀이를 해요. 그다음에는 그림자를 만드는 작업을 해요. 그림자의 원리를 찾아가는 거죠. 그림자가 거리에 따라서 바뀔 수 있구나. 그림자를 같이 합치면 다양한 형태들을 만들 수 있구나. 오브제를 쓰기도 하고 몸을 쓰기도 하면서 작업을 하는 거죠. 거리도 응용하고요.


소똥

참여모집은 잘 되나요?

 

유운

도서관 측에서 협조적이세요.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홍보를 진행해 주기도 해요. 모집은 별 무리 없이 진행했어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장소도 사실은 걱정이었는데 도서관에서 흔쾌히 장소를 대여해주셨어요.

 

소똥

여러분들은 어떨 때 배운다고 느끼시나요?

 

유운

꿈다락 수업을 꽤 오랫동안 진행해오고 있는데 예기치 않은 상황들이 늘 있는 것 같아요. 대체적으로는 저희는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왜냐하면 도서관 쪽도 협조적이었고, 부모님들도 협조적이었고, 우리 친구들도 굉장히 열정적이거든요. 최근에 같이 성장하는 과정이라 느낀 순간이 있었어요. 그림자극 발표 하루 전날에 한 친구가 코로나 밀접 접촉자가 되었어요. 격리해야 해서 같이 발표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됐어요. 저를 포함한 선생님들은 멘붕이었죠. 근데 그 팀의 친구들이 일사불란하게 발표에 못 오는 친구의 역할을 알아서 나누면서 으쌰으쌰 하고 있더라고요. 친구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내가 다 해결해줘야 하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이 친구들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오히려 선생님들보다도 더 파이팅 있게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으쌰으쌰하는 친구들>

미선

예술과 연극이라는 게 창의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모르는 고정관념들이 너무 많았더라고요. 있는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왜 저 생각을 못 할까. 나는 창의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인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스스로 틀을 만들어놨구나.’ 그것을 깨야겠다. 다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예술하는 사람들은 철들면 안 된다고 하나 봐요.

 

준영

나이를 먹고 연극을 하다 보면 무대에서 테크닉이 늘게 되죠. 왜 연기가 나이를 먹을수록 편해지냐면, 어릴 때는 감성에 충실하죠. 똑같은 햄릿을 시켜도 20대 햄릿과 50대 햄릿은 완전히 달라져요. 20대 햄릿은 진짜 열정적인 햄릿이에요. "삶과 죽음 그것이 문제로다(우렁차게)" 막 하늘이 깨질 것처럼 얘기해요. 50대 햄릿은 "삶과 죽음 그것이(힘없이)" 이렇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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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그것이 문제로다>

준영

힘 빼는 작업을 나이를 먹게 되면서 터득해요. 어린 나이에는 순수한 에너지가 있잖아요. 어릴 때는 내가 가진 열정이 가득 들어가 있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렇게까진 못하죠. 나이 먹었을 때 공부가 필요한 거예요. 근데 연습 많이 하는 거 싫어하거든요. (웃음) 힘들어요. 연습 끝나고 같이 소주 먹고 싶으니까 연습하는 거죠. (웃음) 공부하고 연습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틀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아이들이랑은 그 틀이 없어도 돼요. 그게 배우는 것 같아요.

💭 연극 작업자에게는 매우 척박한 환경이기도 한 양주라는 지역에 자리 잡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6년 동안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유운

돈 때문이고요. (웃음) 대학로를 중심으로 작업을 했는데 그 인근에 있다가 점점 외곽으로 나오게 되는 상황이 된 거고요. 당고개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 공동체와 마을에 관한 관심이 생겼어요. 그 당시에는 빈집들이 많고, 아주 을씨년스러운 공터도 많았어요. 그 공터에 사람이 올 수 있는 장소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마을 잔치를 진행해봤는데 힘들었어도 보람을 느꼈어요. 그런 기억을 가진 찰나에 어쩔 수 없이 서울을 떠나서 양주로 왔어요.

 

유운

양주에도 비슷한 상황들이 있더라고요. 중간에 떨렁 있는 도서관이 하나 있는데 그 도서관도 사람이 안 오는 도서관이었어요. 여기서도 뭔가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마을 잔치를 열었죠. 함께 마음을 모아주는 지역 선생님들이 계셨고, 도서관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덕분에 축제가 정말 성공적으로 진행됐어요. 그 이후에 이 도서관이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주며 관계들이 만들어졌어요. 양주에서도 재미있게 활동들을 이어가면서 제가 꿈꾸는 그 마을이 불가능하지 않겠다는 희망이 생겨요. 소극장만 딱 있으면 좋겠어요. 소극장이 없는 게 아쉬워요.

<백석읍 주민과 한여름 밤의 그림자 축제. 얼쑤!>

준영

극장이 있어야 내가 상상하는 작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죠.

 

소똥

만드시는 마을에는 소극장이 꼭 있겠네요.

 

유운

그렇죠.

 

준영

양주시에서 제가 30대 중반에 연출한 작품으로 대상을 받았어요. 대상을 받게 되면 그 지역에 가서 공연해야 했어요. 양주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냥 극장이 외곽에 떨렁 있어요. 아무런 변화 없이 보수공사만 하는 게 너무 마음 아프더라고요.

 

유운

지금은 극장(양주문화예술회관) 안에 치매 센터가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외관에는 문화예술회관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치매 센터예요. 치매 센터 위층에 중극장 사이즈의 소극장이 있죠. 유일한 극장인데 사실 대강당의 역할이 커요. 극장으로 보기는 어렵죠.

 

준영

양주가 개발 예정 중인데, 역 근처에 문화예술공간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극장도 생기고요. 양주도 5년 정도면 괜찮아질 것 같아요. 좋은 연출가들과 협업해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주에서 좋은 작품을 하는 극단 중에 ‘공연 집단 떼’가 있으면 (웃음)

 

충현

양주에서 연극제 하는데 '공연 집단 떼'와 '극단 늑대' 있고. (웃음) 기대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식사는 안녕하신가요? 먹는 행위가 여러분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예술을 통해 먹고 살만 하던가요?

유운

잘 먹고 살고 있는가. 잘 못 먹고 살고 있나 (웃음)

 

준영

옛날에 생각하면 저는 많이 좋아졌어요.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저의 기준으로만 이야기한다고 하면 옛날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통해 연구비 지원이나 현금적인 지원혜택을 받은 것도 있어요. 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서 돌아가신 이후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생겼잖아요. 요즘 세상에 굶어 죽는 일이 웬 말입니까...

 

유운

저희는 이제 노후에 대해 고민도 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지금은 같이 먹고살아야 하는 때인 것 같거든요. 준영 선생님의 ‘공연 집단 떼'의 이름처럼 같이 잘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하고 싶은 작품도 하면서 그것이 나의 생계를 유지 시켜준다면 너무 행복한 일이잖아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잖아요. 그런 것을 만들며 살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어렵죠. 같이 힘을 모아야 하죠. 밥을 같이 먹는 걸 식구라고 하잖아요. 식구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해결해 나가고 싶어요. 점점 나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 가장 자신다운 복장을 설명해주세요.
<호호 아줌마 유운, 다양한 옷을 입고 싶은 준영, 다른 사람도 수용하며 살고픈 미선>

준영

배우는 연기를 하니까 의상은 맨날 바뀌어야죠. 의상이 매일 바뀌길 바라요. 저는 여러 가지 옷을 계속 입고 싶은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똑같은 옷을 입게 됐어요. 화려한 옷도 입었다가 허름한 옷도 입고 싶은데, 계속 허름한 옷만 입게 (웃음) 오늘 그래도 좋은 옷 입고 왔어요. 나이키 입었어요. 부의 상징이죠. (웃음)

 

충현

유운님과 미선님은 비슷한 옷을 입고 오셨네요.

 

유운

입다 보니 그러네요. 사람들이 저를 떠올렸을 때 이미지 혹은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것은 그냥 자유로움인 것 같아요. 자유로우면서 편안함을 주는 사람. 저는 극단 생활할 때 호호 아줌마, 호호 엄마와 같은 애칭이 있었어요. 저 사람을 만났을 때 즐겁고 편안하다. 저한테도 그런 사람이고 싶고, 타인에게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의 옷인 것 같아요.

 

미선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렇게 풍채도 넓어지고, 예전에는 내 거에만 갇혀 살았다면 이제는 내 것도 보여주되 저 사람 것도 다 수용하면서 살자. 그러면서 이렇게 펑퍼짐하게...

 

충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시는 건가요?

 

미선

네. 그리고 내 색깔을 조금 죽이거나 톤 다운되는 걸 받아들이자. 그런 것 같아요. (웃음)

🐌 조금씩 더디지만 꿈꾸는 그 무엇에 다가가길 소망하며 이라는 이름 갖게 되었다고 소개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꿈꾸는 은 무엇인가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 속에서 어떠한 형태로 변화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유운님이 연출한 작품>

유운

처음엔 뭔가 대단하고 거창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우리 안에 잠재되어있는 폭력성이나 부정적 단면들을 드러내어 마주 보게 하는 것,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보다 나은 삶을 고민해 보는 기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실 돌이켜보면 제 안에 감춰진 분노가 컸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감정들을 무대 위에 쏟아내고 함께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열심히 살았지만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는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 열망과 욕구가 극단을 만든 출발점이었어요.

 

유운

이름 따라간다는 말처럼 저희는 정말 더디지만, 천천히 꾸준하게 활동해오고 있어요. 엄청난 유명세의 작품을 만든 것도 아니고, 멋진 배우나 대단한 연출가도 된 것도 아니지만, 지금은 명확한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어요. 지금은 연극을 통해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고, 사람들이 연극을 통해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꿈이고 목표예요. 더 많은 사람이 연극을 알아가면서 연극의 매력에 취하고, 연극으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어요. 연극 전도사? 연극을 통해 온 마을이, 사회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확신하고요, 꼭 실현하고 싶습니다.

🎡연극실험실늘은 지금까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나요? 또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나요?

유운

처음엔 무겁고 강렬한 호러 서스펜스였다면, 그다음은 스펙터클하게 전국을 누비는 로드 무비였고, 그 뒤로는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로 좀 더 관객 곁으로 다가가고, 이제는 친구처럼 친근하고 날마다 축제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삶 속에 녹아드는 편안함과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늘 곁을 지키는 영원한 동반자 그림자처럼 늘 묵묵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로 즐겁게 어울려 작업하려 합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판타지? 땅에 발붙인 환상 동화? 희망 가득한 아름다운 이야기였음 좋겠네요.

💭 마지막으로, 만약 당신이 라잎스페이퍼의 진행자가 된다면 다음 팀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나요?

유운

좀 뻔한 질문일지 모르지만, 팀 작업을 하면서 어떤 순간 가장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는지, 팀원 간에, 혹은 관객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경험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연극실험실늘 인터뷰: 변화무쌍한 그림자처럼. .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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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 이충현, 연극실험실늘
  • 녹취록 작성 : 조웅희
  • 장소: 경기섬유종합지원센터
  • 인터뷰 발행일: 202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