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벤느망>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20대 초반 대학생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이름은 ‘안’입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안은 임신중절을 원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인 1960년 초반의 프랑스는 그것을 어떤 이유로도 허락하지 않는 나라였습니다. 즉 범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중절을 강력히 원하는 안은 위험한 길을 택합니다. 바로 혼자서 어떻게든 임신중절을 해내려는 것입니다.
오드리 디완 감독은 집요한 안을 집요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만 들으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지만, <레벤느망>의 특별함은 이 집요함들에 있습니다. 일단 영화의 모든 씬에 안이 있습니다. 아무리 주인공이라지만, 영화의 모든 씬에 주인공이 얼굴을 비추는 영화는 드뭅니다. 영화에 투입되는 모든 에너지가 안의 안과 밖을 보여주는데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영화인지 안의 하루인지, 안의 하루가 영환지 영화가 아닌지, 영화가 안을 따라다니는 건지 그냥 안인건지, 내가 목격자인건지 당사자인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영화의 안과 밖이 가장 가까워질 때, 바로 그 장면이 나옵니다. 안은 불법 수술을 받으러 밤에 혼자 어딘가로 향합니다. (스포가 정말 싫으신 분들은 영화보고 읽으셔도 좋습니다.) 도착한 허름한 아파트에서 안은 의사로부터 아무리 아프더라도 “절대 소리를 내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소리를 내면 수술을 당장 멈출 것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불법으로 몰래 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 됐던 것입니다.
그렇게 수술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는 너무나 강력한 체험 영화입니다. 안이 어떻게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던 감독이, 안이 수술 받는 순간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를 보여줍니다. 부디 이 영화를 보고나서만큼은 ‘진작 처신을 잘했어야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감독이 before를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 것은, before가 그 뒤에 벌어지는 일에 비해선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영화를 보면 이게 진짜 맞는 말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왜냐면 이 체험을 하는 순간엔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냥 너무 아픕니다. 당연히 이것은 영화를 통한 간접 체험이지만, 그래도 너무나 아픕니다. 간접 체험인데도 이렇게 아프다는 것이 너무나 미안할 지경입니다. 너무 미안해서, 안이 이 아픔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났음 해서, 수술이 중단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보고 있는 나라도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영화관에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소리도 안 났던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 기운을 저는 감지했습니다. 평소 관객들이 내는 소음에 항시 민감하게 반응했던 저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하. 농담이고 여러분도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신다면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모두가 한 목소리를 (안)내게 되는, 흡사 <보헤미안 랩소디> 싱-얼롱(sing-along) 상영관을 방불케 하는 사일런스-얼롱(silence-along) 관람 경험을 놓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현재 임신중절(낙태)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특정 조건에 따라 불법이 아닌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2019년 헌법재판소 판결에 따라 낙태죄가 폐지되었습니다만, 아직 관련한 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여전히 위험한 여지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남아있는 것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종교계의 저항입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레벤느망>은 그 시선을 조금 부드럽게 만드는, 사포질 해주는 영화입니다. 시선(눈)에 사포질한다? 이건 비유가 아닙니다. 그래서 꽤 아픈 영화고, 저는 태어나서 본 영화 중 가장 아팠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호에 계속)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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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는 말씀
1. <레벤느망> 관람을 추천하는 글을 쓰긴 했지만, 사실 모두에게 막 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엄마한테 보라고 추천은 못할 것 같습니다. 선택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원데이원무비까지 신청해주신 분들이라면!
2. 최근 재밌게 본 영화는 <킹 리차드>입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섯 개 부문에 후보를 올린 작품입니다. 다음주 혹은 다다음주에 관련해서 조금 쓸 것 같습니다.
3.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피그>도 재밌었습니다.
4. 원데이원무비로 보내드린 글의 일부는 저의 블로그나 다른 곳에 전문 게시, 또는 재활용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메일 보내드린 뒤 최소 1주의 간격은 두겠습니다.
5. 경쟁을 붙이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전달해야할 것 같아서.. 3월 12일 기준 가장 여러 잔의 커피값(약 6.6잔)을 지불해주신 노창희님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