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라돈' 장기 노출자 당장 추적 조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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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의 안전사회] 방사성 라돈, 침대만 위험한 게 아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최근 전주에 새로 지어져 입주하기 시작한 한 아파트 욕실서 권고기준치의 10배에 달하는 방사성 라돈이 검출돼 입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올 들어 터져 나온 라돈침대 사태로 아직도 홍역을 치르고 있는 우리 사회에 이제 안방뿐 아니라 거실, 욕실 등 주거 공간 전반에 대한 라돈 위험을 걱정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문제가 된 아파트는 욕실 선반에 천연석을 사용했으며 이 천연석에서 라돈이 대량 방출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아파트의 라돈수치는 2000~3000베크렐(Bq/㎥)을 기록했다. 아파트 라돈 권고기준은 200베크렐(Bq/㎥)이다. 학교나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148베크렐이 권고기준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들 천연이면 고급이고 좋은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와는 정반대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짓고 있거나 이미 지어진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라돈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개인주택도 마찬가지다. 라돈에 대해서는 2018년 1월 1일 이후에 사업계획을 신청하는 공동주택부터 측정 의무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문제가 된 전주 아파트는 입주 전 실내공간에 대한 라돈 의무측정에서 제외되었고 입주 후 문제가 터진 것이다.

전주 아파트 사건을 계기로 현재 짓고 있는 공동주택과 기존 공동주택의 라돈 안전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라돈 측정 등 주민들의 요구와 자구책이 사회 전반에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천연석 등 사용처 긴급 조사해야

건설업체들과 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이 천연석이 지금까지 국내 어디에 사용되어 왔는지 신속·정확하게 조사해 문제가 드러나면 즉각 조치해야 한다. 천연석뿐만 아니라 실내에 일 년 내내 두는 화분의 흙 등과 건축자재 가운데 라돈을 방출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라돈 침대 사태를 계기로 지자체마다 앞 다퉈 라돈측정기 무료 대여 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라돈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관리대상에서 빠져 있는 아파트나 개인 주택의 경우 더욱 적극적인 예방대책을 세워 시민 안전을 지켜내야 한다.

라돈 침대 사태를 예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태가 불거진 뒤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중심으로 정부가 이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허둥대면서 정부의 라돈 안전관리에 대한 시민, 전문가. 시민단체의 불신이 매우 높다.

라돈 침대 수거조차 아직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사태 발생 후 범정부 차원에서 전방위적인 대처를 하지 않음으로써 라돈 침대 해체를 둘러싸고 당진항과 대진침대 천안 본사 인근 주민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또 라돈 침대 이외에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모나자이트와 다른 방사성물질의 유통·사용 경로와 관련 제품에 대한 조사를 기피하거나 늑장 조사를 벌이면서 카사미아의 라돈 베개와 깔개 등 침구세트, 대진침대 외 다른 라돈 침대 문제가 잇달아 불거져 나왔다. 이와 함께 방사선을 내는 의료기기, 중국, 동남아 등지에서 들여온 라돈 방출 라텍스 제품 등이 잇따라 폭로되거나 드러나 정부의 생활방사선 안전 관리에 구멍이 뻥 뚫렸다.

더욱 큰 문제는 라돈 침대 등 생활방사선에 노출된 사람의 수가 수십만에 이르고 이 가운데 수만 명은 노출 위해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관련 회사와 정부 어디에서도 이들에 대한 건강조사, 만성 위험 추적 등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농도 라돈 장기 노출자 당장 추적 조사해야

생활라돈 위험은 즉각적으로 목숨을 앗아가거나 질병을 일으키는 등 급성 영향의 성격이라기보다는 수년 내지 수십 년이 지난 뒤 폐암이나 백혈병 등 각종 암과 기타 질환을 일으키는 만성 영향 성격을 지닌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잠재적 피해자 등록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가해기업이 이러한 것을 하려고 들지는 않을 터이다. 따라서 국민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발 벗고 나서야 할 성격의 사안이다. 라돈 침대 사태 초기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요구에 따라 관련 정부기관에서도 잠재적 피해자(고농도 라돈 침대 장기 사용자 등) 등록 추적 사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뒤 흐지부지 됐다.

라돈 침대 등 생활방사선 라돈 문제를 일으킨 기업은 거의 모두가 영세기업이거나 중소기업이다. 이들은 판매중단이나 일부 리콜 등 지극히 기본적인 대처 외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배·보상에 대해서는 '배 째라' 식의 막무가내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일부 회사는 존립 자체가 불투명하다.

그런 염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대진침대는 정신적 피해 등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대해 최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라돈침대 손해배상 소송 첫 변론에서 책임을 전면 부인했다. 제조·판매 당시 정해진 법령을 지켰고 과실이 없다는 것이다. 또 소비자들의 정신적 피해와 라돈 검출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재판 초기 때도 옥시레킷벤키저와 법률대리인 김앤장이 이와 유사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다.

사람에 따라서 불안이나 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크게 다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언제 어떤 식의 피해, 그것도 치명적인 폐암 등이 나타날지 모를 위험에 장기간 노출됐다고 알아차린 순간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고 잠을 잘 때도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낄 사람이 상당할 것이다. 위험 인식은 매우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소송이든, 이번 달 결과 발표가 예정된 소비자 분쟁 조정이든 설혹 대진침대 쪽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해도 회사 자력으로 라돈 침대 배·보상을 해결하기 매우 어려운 경영 여건이라는 점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경우 세퓨 제품 제조·판매기업이 사태 발생 후 도산했지만 특별법에 따라 관련 기업이 출연한 기금으로 피해자들을 보상하고 있다. 하지만 라돈 침대의 경우 비슷한 방식으로 해결하기에는 난관이 적지 않다.

학생에게 백혈병 등 라돈 질환 발생하면 위기 발생

생활라돈 문제는 침대, 매트리스, 베개, 음이온 발생 제품, 의료기기 등 생활의료용품에 이어 아파트 등 주거공간에까지 그 위험이 확산돼 왔다. 그 다음 타깃은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린이와 학생에 대한 위험은 그 어떤 대상보다도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학교 공간에 대한 실내 라돈 측정과 저감뿐만 아니라 상세한 관련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제공하는 등의 위험 소통 또한 매우 중요하다. 특히 학생 가운데 폐암이나 백혈병 등 방사선 관련 질환자가 나오면 우리 사회는 큰 소용돌이 속으로 다시 휘말릴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와 전략도 미리 짜놓아야 한다.

위험은 늘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활방사선, 나아가 환경방사선에 대한 정부의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고 이러한 계획 수립에 반드시 시민 대표와 방사선 전문가, 그리고 위험 소통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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