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사적인 영화관입니다.
008호                              

추운 시국, 뜨거운 논쟁 <남한산성>
 
#한국사 #조선 #병자호란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사적인 영화관의 에디터 챙구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잘 지내셨나요? 그동안에 저는 나름대로 이것저것 하느라 소소하게 바빴는데요. 개인적인 일도 있었지만, 9일에 치러졌던 제20대 대통령 선거로 인해 더욱 정신없이 지낸 것 같아요. 당장에 저 역시 결과가 궁금해서 새벽까지 개표방송을 보다가 겨우 잠들었거든요. 제가 이번 레터를 대선 이야기로 문을 여는 이유는,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가를 두고 여러 후보들의 의견이 다른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에요. 뜻이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 선택인가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펼친 사례는 조선 시대에도 있었는데요. 바로 <남한산성>(2017)최명길과 김상헌이 그랬습니다.

🎞 <남한산성> (2017)
  • 감독 : 황동혁
  • 출연 : 김윤석, 이병헌, 박해일, 고수 등
  • 장르 : 사극, 드라마
  • 러닝 타임 : 2시간 19분
  • 스트리밍 : 넷플릭스(3월 21일 종료 예정), 왓챠 플레이
  • 원작 : 김훈, <남한산성>
  • 수상 : 청룡영화상 각본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작품상
  • 네이버 평점 ⭐8.17

<남한산성>은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이 발생하여,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갔던 임금과 조정 대신들의 이야기입니다. 추운 겨울 식량도, 병사도 얼마 없는 남한산성에서 47일 동안 국가의 존망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당시의 모습이 잘 담겨 있습니다.

※아래부터는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해주세요!

병자호란


본격적으로 레터를 들어가기에 앞서, 영화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병자호란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호란 전후의 조선시대사 연표


    • 1608-1623 : 광해군-북인 정권의 중립외교
    • 1623 : 인조반정으로 인조 즉위, 친명배금 
    • 1627 : 정묘호란
    • 1637 : 병자호란 

    중립 외교 정책을 펼쳤던 광해군 정권과 달리, 인조 정권이 친명배금 정책을 펼치자 이로 인해 분노한 후금은 1627년 조선을 쳐들어옵니다. (정묘호란) 당시 조선 조정 내에서는 화친이냐, 싸움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고, 결국 후금의 제의를 받아들여 양국 사이에 화의가 성립되었어요.

    🔍사적인 포인트! - 화약의 내용

      1. 형제의 맹약 
      2. 화약이 성립되면 즉시 군사를 철수하기로 약속함
      3. 양국 군대는 압록강을 넘지 않기로 약속함 등

      그러나 후금은 군사를 철수시킨다는 약속을 어기고 의주에 군사를 주둔시켰습니다. 그리고 1632년에는 양국의 관계를 ‘형제의 맹’에서 ‘군신의 의(군신지의)’로 고칠 것을 요구하였으며 더불어 금 1만 냥에 말 3,000 필 등 매우 무리한 예물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조선에서는 군신지의 수용을 거부하였습니다.

       

      1636년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고치고 조선에 다시 한번 군신지의를 요구합니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화친을 배척한다는 척화 교서를 통해 청에 대한 단교를 표명하였습니다. 그러자 그해 12월, 병자호란이 발발했습니다.

       

      청군이 압록강을 넘어 평양, 개성까지 진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서울을 빠져나와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으나 청군의 한 부대가 강화도 가는 길을 차단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다시 도성 안으로 돌아와 대책을 강구한 끝에, 이조판서 최명길이 청군 진영에 나아가 술과 고기를 먹이며 출병의 이유를 물으며 시간을 벌이는 동안 인조는 세자와 백관을 대동하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습니다.

      <남한산성>  중
      남한산성의 한겨울 모습

      당시 성 안에는 겨우 50여 일을 견딜 수 있는 식량만 있었으며, 남한산성으로 구원을 오는 군사들은 모두 청군의 기습 등으로 붕괴된 상태였습니다. 이렇듯 성의 안과 밖 상황이 모두 악화되자 강화론이 점차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성 안에서는 최명길로 대표되는 주화파와 김상헌으로 대표되는 척화파가 여러 차례 논쟁을 거듭하였습니다.

       

      논쟁을 거듭함에도 차도는 없었고, 결국 조선은 더 이상 전투에서 이길 수 없음을 깨닫고 1637년 삼전도에서 항복 조약을 체결합니다.

      묵직한 사극


      이렇게 조선 최대의 굴욕, 패배로 불리는 병자호란을 다룬 영화라기에, 저는 처음에는 뻔한 전쟁 영화라고만 생각했었어요. 힘없는 조선군의 모습, 죄 없이 죽어가는 민중들의 모습 등이 주될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영화를 열어보니 예상과는 꽤 달라서 감탄을 했습니다. 영화는 패배의 슬픔보다는 그 이전에 있었던 대신들의 합리적 성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춥고 시린 남한산성의 분위기와 묵직하고 진지한 대신들의 논쟁까지 말 그대로 ‘웰메이드 사극’ 한 편이었습니다.

       

      이는 영화가 전쟁의 참상보다는 당시 정국을 이끌었던 최명길과 김상헌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황동혁 감독이 의도한 바가 그러했다고 합니다.

      📎인터뷰에서 그는 “<남한산성>은 말(言)의 전투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간의 논쟁의 귀착점이 다시 성 밖의 실제 전투로 연결되고, 그 전투가 다시 성 안에서 둘의 말의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최명길과 김상헌이 서로 뱉어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처절하고 치열하게 느껴졌다. 사실 그 논쟁에 매료돼 이 소설을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분위기를 담기 위해 최근 퓨전 사극풍의 대사를 배제하고 정통 사극의 분위기로 접근했다.”라고 밝혔습니다.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남한산성>의 제작진들

      출연진 정보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 환상의 캐스팅입니다.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에 고수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사람도 나오네?’ 하면서 봤답니다. 그런데 출연진만 그런 게 아니더라고요. 제작진들도 깜짝 놀랄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황동혁 감독
      • 연출작 : <마이파더>(2007), <도가니>(2011),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2017), <오징어게임>(2021)
      • <도가니>, <남한산성>, <오징어 게임>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거나, 전쟁 등 다소 무거운 소재를 주로 다뤘습니다.
      • 소재는 어둡지만 영상미와 OST는 굉장히 아름다운 감독으로 유명해요. <오징어 게임>이 극찬 받았던 요소 중에도 미술과 음악이 있었어요. 이런 황동혁 감독의 장점이 남한산성에도 잘 드러납니다. 특히나 남한산성의 OST는 세계적인 영화 음악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가 담당했어요.
      <남한산성>  촬영 현장
      황동혁 감독과 이병헌 배우의 모습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 감독
      • 음악 감독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의 뮤지션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 음악 감독입니다.
      • 그의 음악은 이후 광고나 방송에도 사용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는데요, 여러분들도 그의 음악이 익숙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는 1987년 아카데미에서 영화 <마지막 황제>로 음악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바로 이 'Rain'이라는 곡인데요.  익숙한 곡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 또, 골든 글로브에서는 <마지막 황제>(1987), <마지막 사랑>(1990)으로 총 2회 음악상을 수상했어요.
      • 아래의 곡은 <남한산성>의 OST인데요, <남한산성>으로 그는 2018년 대종상에서 음악상을 수상했습니다.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살 것인가

       

      <남한산성>은 밀도 높은 대사가 주는 긴장감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최명길과 김상헌의 언쟁에서 이 장점이 십분 발휘가 되는데요. 저 역시 두 사람이 인조 앞에서 불같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가장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는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두 인물인 명길과 상헌에 대해 설명해 드리려 합니다.

       

      최명길은 인조반정 때 1등 공신으로, 인조 정권 당시 이조판서에서 우의정, 영의정까지 역임했던 대신이었습니다. 그는 주화파의 대명사였는데요. 정묘호란 때부터 후금과의 강화를 주장했다가 후금군이 철수한 뒤 많은 지탄을 받았습니다. 영화에도 드러나듯이 병자호란 때에도 일관적으로 주화론을 주장하였습니다.

      <남한산성>  중
      청군과 독대하러 떠나는 최명길
      🔍사적인 포인트! - 최명길의 견해 들여다보기

        최명길의 문집인 <지천집>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습니다. 


        “화친을 맺어 국가를 보전하는 것보다 차라리 의를 지켜 망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신하가 절개를 지키는 데 쓰는 말입니다. (중략) 자기의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경망하게 큰소리를 쳐서 오랑캐들의 노여움을 도발하여, 마침내는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종묘와 사직에 제사 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그 허물이 이보다 클 수 있겠습니까?”


        명분보다는 나라의 안위라는 실리를 더욱 중시했던 그의 주화론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영의정이 된 이후 조선 내의 반청 움직임이 청에 알려지자, 최명길은 청에 불려가 수감생활을 하였고 1645년에 귀국한 후 인조를 계속 보필하다가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반면 김상헌척화파의 대들보였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항복이 결정된 후 자결을 암시하는 결말을 맞지만, 실제로는 목을 매어 자진하려고 하나 저지당한 뒤, 소현세자와 함께 청에 볼모로 갔었습니다.

        <남한산성>  중
        김상헌의 모습

        여러분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가노라 삼각산아~’하고 시작하는 시조를 배운 기억이 있으신가요?

        👩‍🏫가노라 삼각산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이 바로 이 시조의 작자였는데요. 소현세자와 함께 청으로 갈 때 지은 시조라고 합니다. 김상헌이 보여주었던 지조와 절개는 높게 칭송받았는데요.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김상헌은 북벌파들의 이념적 상징이 되었으며 조선 말기까지 존경받았다.

         

        병자호란 두 사람의 논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최명길이 쓴 청과의 강화 문서를 김상헌이 절대 보낼 수 없다고 찢으며 통곡하자, 최명길이 이를 다시 주워 모으며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각각 정치적인 입장은 달랐지만, 나라를 위한 충절은 매한가지였습니다. 영화에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며, 실제로 두 사람은 청에 볼모로 잡혀갔을 당시, 감옥에서 재회하여 화해의 시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진지한 분위기와 무게감 있는 대사, 그리고 명배우들의 열연으로 풀어낸 당대 정국을 이끌어가던 두 충신의 이야기, <남한산성>이었습니다. 선거철을 맞이하여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완연한 봄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남한산성>은 작중 배경이 겨울이라 따뜻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추천인가 싶지만, 그래도 워낙 잘 만들어진 영화이니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주연배우 두 사람의 열연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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