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과학] 작아야 생존한다…다운사이징 생명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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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파충류·플랑크톤 등
생물 개체 크기 감소 나타나

먹이사슬까지 영향 끼쳐
상위 포식자 멸종 가능성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생태계의 경고장이 아닐까


과하지 않은 남성미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액션. 그리고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섹시함'의 극치. 어릴 적부터 배우 맷 데이먼을 좋아했다.

본 시리즈만 수십 번씩 챙겨본 아줌마 팬이다. '다운사이징.' 그가 주연한 영화라길래 주저하지 않고 VOD를 구매했다(영화가 개봉했을 때 너무 바빠서 영화관을 찾지 못했다). 영화 '마션'에서 고립된 우주인의 애절한 모습을 보여준 데이먼은 이번엔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해 '소인'이 됐다. 데이먼은 몸이 작아진 이후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대해 고찰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깨닫게 된다. 기후변화를 막는 데는 '어벤져스'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과학기술이 답이다'라는 메시지를 예상했지만 어쨌든, 다운사이징, 사람의 몸을 줄이는 것은 한정된 자원을 사용해야 하는 인류는 물론 지구에 있는 생명체가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다운사이징은 현재진행형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여러 연구들은 생물들의 서식지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요새는 동해에서 명태나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라는 말 역시 동해의 수온 변화로 인해 생물 군집의 분포에 변화가 생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최근 발표되는 흥미로운 결과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물 개체의 반응이다. '앨런의 법칙(용어설명)'이나 '베르크만의 법칙(용어설명)'과 같이 기후가 다른 지역에서 생물의 외형이 다르거나 또는 이러한 법칙에 따라 생물의 겉모습이 바뀌는 것 외에도 기후변화로 전 지구적으로 개체의 크기가 줄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는 지속적으로 발표되고 있으며 다운사이징이 발생하는 기작과 예측되는 결과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개체의 크기는 생물 표면적과 직결된다. 결국 산소 교환에 영향을 미치고 세포 분화 정도를 결정한다. 생태계 내에서 유기체의 개체 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환경의 먹이 피라미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생물학자들은 과거 환경이 어땠는지 파악하기 위해 생물 크기를 분석하기도 한다. 생물의 크기는 생존과 번식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당시 환경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생물학적 '지표'가 된다.

'릴리풋 효과(지구 역사의 대멸종 이후 살아남은 생물체의 몸집이 작은 현상을 일컫는 말)'에 대해 많은 연구자들은 상대적으로 따뜻했던 시기에 산소 농도가 낮아지면서 유기체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량이 줄어든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하게 캐나다의 파울리 박사 연구팀은 따뜻해진 물에서 신진대사가 활발해진 물고기가 산소 소비를 줄이기 위해 성장을 줄이는 진화 방식을 채택한다는 연구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영국의 허스트 박사는 요각류(용어설명)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대사가 증가해 성숙이 빨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성숙이 빨라진다고 무한대로 자라는 것이 아닌 만큼, 성숙이 빨라지면 개체 크기는 줄어들게 된다(일찍 성장이 일어나고 멈춘다는 얘기다). 허스트 박사는 이 같은 이유로 현재 생물 개체 크기가 감소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기후변화에 의한 생물의 크기 감소는 곤충, 파충류, 어류를 포함해 식물과 동물플랑크톤과 식물플랑크톤 박테리아에서 유사하게 보고되고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이러한 연구가 인류가 미래의 생태계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생물 크기 감소는 단순히 개체 수준 변화만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생물 크기는 생태계 내 먹이사슬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요소다. 한 종 내에서 몸집이 작은 개체 수가 증가하면 그것을 먹이로 하는 소비자의 섭식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영향은 상위 먹이 단계로 이어진다. 최근 개봉한 영화 '메가로돈'에 등장하는 거대한 상어인 메가로돈 역시 지난해 피미엔토 박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먹잇감이 사라지면서 큰 몸집을 유지하지 못하고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생물 크기는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의 결과일 뿐 아니라 환경 적응의 가능성을 파악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성균관대 이재성 교수 연구팀은 윤충류(용어설명)를 중금속인 카드뮴에 노출시켰을 때 크기가 작은 개체에서 높은 민감성을 보임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전이요소(Transposable elements·용어설명)의 분포 패턴을 통해 크기가 큰 개체가 큰 사이즈의 게놈을 갖는 것을 확인했고 이러한 게놈 확장이 해독 기작에 관여하는 유전자 중복의 증가와 카드뮴에 대한 방어 기작에 영향을 준다고 해석했다.

기후변화가 생물의 크기에 미치는 영향을 단순히 해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환경의 변화는 생물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여기서 살아남는 생물은 진화론에 따라 '적응'한 종으로 남는다. 적응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체 변화는 또다시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문제는 현재 생태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은 변화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기회가 될까 아니면 위협이 될까. 많은 과학자들은 후자에 무게를 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과학자들의 예측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생물의 다운사이징을 좋게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인간이 일으키고 있는 기후변화에 대해 생태계가 보내는 경고장은 아닐까.

■ <용어 설명>

▷ 앨런의 법칙 : 항온동물은 추운 곳에 사는 동물이 따뜻한 곳에 사는 동물에 비해 귀, 코, 팔, 다리와 같은 몸의 말단 부위가 작다는 법칙.

▷ 베르크만의 법칙 : 추운 지역에 서식하는 생물이 따뜻한 지역의 생물에 비해 체중이 큰 현상을 말하며, 이는 체중에 대한 체표면적 비율이 작아져 체열의 발산을 방지하기 위한 체온 유지에 대한 적응을 설명한다.

▷ 요각류 : 갑각류에 속하는 동물성플랑크톤으로 종이 다양하며 어류의 먹이가 되고 일차생산자의 섭식자로서 수환경 내 영양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생물.

▷ 윤충류 : 윤형동물문에 속하는 섬모를 가지고 있는 동물문.

전이요소 : DNA상 어떤 부위로부터 다른 부위로 이전이 가능한, 정해진 구조를 갖는 DNA 단위.

[원은지 한양대 BK21·해양융합과학기술인재양성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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