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부하고도 민망하지만, 자기 소개로 먼저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 안녕하세요,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 점장 손정승입니다. 책을 고르고 팔고, 반가운 얼굴을 맞이하다 보니 어느새 꼬박 6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작년엔 땡스북스 10년의 시간을 담은 『고마워 책방』을 동료 소정 님과 함께 출간했습니다. 책이 있어서 다행인 삶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덕분에 사람들과 함께 유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거 같거든요.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엔 드럼을 배우고 웃긴 밈을 찾아 봅니다. 참, 기록하는 걸 좋아합니다.
→ 어떻게 땡스북스에서 일하게 되셨어요?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점장님의 날들이 궁금해요.
← 십 대엔 특별히 힘든 일도 없었고 특별한 생각도 없었어요. 서울에 반드시 와야겠다는 대단한 생각도 없었고요. 그냥 살던 동네가 지겨워서 언젠가 떠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좋아서 쫓아다니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공부를 잘했어요. 걔가 서울을 간다니까 나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 보니까 왜 그랬나 모르겠지만.
→ 그래서 서울에 함께 온 건가요?
← 함께는 아니고 그냥 따라 왔어요…. 아무튼. 너 국어 잘해? 국문과 가.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별 생각 없이 국문과에 진학했어요.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그냥 책을 눈치보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것 하나는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또 정말 재미없게 국문과니까 출판사에 취직해야겠지, 생각하고 지냈어요. 실제로 한 출판사에서 인턴 생활을 해 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땡스북스라고 서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 파트타이머 자리가 났다,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지원해 봐라. 그때 놀고 있어서 타이밍이 좋았죠. 서점에서 일을 하면 나중에 출판사에서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겠다 싶은 막연한 마음에 덥썩 시작했는데, 눌러 앉았어요.
→ 서점지기라는 게,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저는 정말 못할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점장님을 곁에서 보고, 또 점장님의 글을 보고 느꼈던 건 이분은 아직 인류애를 잃지 않았구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자박자박하게 남아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애정과 선의를 오랜 시간 동안 남겨 두고 있지? 싶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 실은 지나 온 것 같아요. 3년 차쯤엔 진짜 화가 치밀어 올랐거든요. 매일매일 너무 화가 나던 시기를 지나온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서점이라는 곳이 1차로 한 번 걸러진다는 점이에요. 식당이나 옷가게보다는 나아요. 물론 일 년에 한 번 정도 잊을 만하면 이성의 끈이 뚝 끊기게 하는 일들이 생기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래도 여전히 의아할 때가 있어요. 왜 저 사람한테는 이게 상식이 아니야? 아니, 어떻게 이 기본을 지금까지 저 사람한테 아무도 안 알려줬다고? 싶을 때요. 예전엔 이렇게 느낄 때가 더 많았었는데 지금은 좀 더 능구렁이처럼 유하게 넘어갈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겐 ‘왜’를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요.
→ 말씀을 들으니 괜찮은 게 아니라 무뎌진 것 같기도 하고요, 마인드컨트롤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뒤에서 욕 엄청 하는데...
← 무뎌졌죠. 그런데 또 그래요, 백 명이 좋대도 한 명이 싫다면 그게 마음에 걸리잖아요. 그런데 이 백 명이 준 좋은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서 저를 지켜 줘요. 예전엔 이런 기억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치고 들어오니 더 힘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기억들에 보호받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결국 총량은 채워지는구나. 누군가 인류애를 빼가도 누군가 다시 채워 주는구나’ 싶더라고요. 힘들 때면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하면서 땡스북스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준 좋은 기억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요.
물론 짜증 나면 그 날은 절대 생각 안 나죠. 저도 막 욕하며 풀어 버리려고 해요, 감정이 얼굴에 티가 많이 나기도 하고요. 반면 함께 일하는 소정 매니저님은 내색을 잘 안 하는 타입이라 다행이다 싶어요.
→ 드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스트레스 해소의 한 방법일까요? 전에 『고마워 책방』에서 ‘주5일은 책에 밑줄을 치고 쉬는 날엔 드럼을 친다’라고 쓰신 저자 소개가 인상 깊었는데, 드럼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언제부터, 어떻게 치게 되신 거예요?
← 친 지는 일 년 반 정도 됐어요. 그때 만나던 친구와 막 헤어졌거든요. 헤어져서... 너무 심심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엔가 유연석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데 (제가 유연석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유연석이 드럼을 막 치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는 거예요. 뭔데 저렇게 재밌어 보이지? 좋아 보이지? 하는 마음이 마구 들면서 그래, 인생에서 되게 젊은 날에 마침 홍대 근처에 있겠다, 드럼 한번 배워 보자, 집과 회사를 오가는 동선에 들르는 곳 하나만 더 넣어 보자, 하면서 시작했어요.
→ 드럼을 막상 시작해 보니 어떻던가요? 드럼 치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매력이 있는지 너무 순식간에 빠지더라고요.
← 확실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막 두들기면서 풀린다기보다는 싫은 생각, 다른 생각을 아예 안 하게 되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원래 하던 일이랑 완전히 다른 결의 일을 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드럼을 시작하고 나니 그런 일을 찾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너무 두려웠거든요, 되게 오랫동안. 사실 취미랄 게 책 읽는 것뿐이라 책 읽는 게 일이 되니 막상 이게 싫어지면 나는 어떡하나, 걱정을 오래 했어요. 하지만 드럼을 치면서 더 잘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요새 가장 몰두해서 치고 있는 곡이 있다면요?
← 빅베트의 「무지개 소년」이라는 곡이에요. 드럼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곡인데 가사가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수업 때 이 곡을 배우고 싶다고 선생님을 졸랐어요. '어지러운 수수께끼도, 어둠의 끔찍한 괴물도 단숨에 해치워 버린 나는 무지개 소년', '언제나 다른 색깔로 모두를 놀라게 하는 나는 무지개 소년' 뭐랄까... 이 곡을 들으면 이런저런 고민들을 제가 결국엔 해치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노래 부르면서 드럼 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 엄청 틀리는데 그래도 좋아서 요즘엔 입으로 노래 부르면서 곡을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이 고생하시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