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사람이 만듭니다. 
유유에서는 보름에 한 번, 책의 사람을 만납니다. 
책의 세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숨은 이야기를 궁금해하실 독자께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유의 막내 편집자 수입니다. (막내는 막무가내라 막내라지요?)

세 번째 보름유유는 제가 맡았습니다. 이렇게 처음 인사드리게 되어 무척 떨려요.

책이나 작가님을 앞세우고 뒤편에 조용히 있는 게 익숙해서, 이렇게 나서서 말하는 게 참 어색하고 부끄럽고 그런데… 뭐, 한번 해 보는 거지요. 화장실 가서 거울 보고 ‘할 수 있다’ 세 번 외치고 용기 내 봅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제가 준비한 이야기는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게 좋아하는 마음은, 그러니까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좀 지독합니다. 왜냐하면 중간이 없기 때문이에요. 매번 적당히 좋아하자, 생각하다가도 이내 다 내던지고 돌진하게 되더라고요. (네, 과몰입 맞아요.) 하지만 그게 나쁜가요? 마음을 쓰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늘 멋진 일이었어요.


이번 레터에서 제가 소개할 사람 또한 마음 쓰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물 흐르듯 지내 왔지만 모든 것에 진심이기도 하고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려고, 또 ‘잘’ 좋아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지요. 고민이 가득해도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분도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계속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유유 막내 얘는 뭘 좋아하는 사람인가 궁금하다면? 

어제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자고 늘 생각해요
손정승 ―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 점장 

→ 진부하고도 민망하지만, 자기 소개로 먼저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 안녕하세요,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 점장 손정승입니다. 책을 고르고 팔고, 반가운 얼굴을 맞이하다 보니 어느새 꼬박 6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작년엔 땡스북스 10년의 시간을 담은 『고마워 책방』을  동료 소정 님과 함께 출간했습니다. 책이 있어서 다행인 삶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덕분에 사람들과 함께 유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거 같거든요. 책을 읽지 않는 시간엔 드럼을 배우고 웃긴 밈을 찾아 봅니다. , 기록하는 걸 좋아합니다

 

→ 어떻게 땡스북스에서 일하게 되셨어요?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 점장님의 날들이 궁금해요.

← 십 대엔 특별히 힘든 일도 없었고 특별한 생각도 없었어요. 서울에 반드시 와야겠다는 대단한 생각도 없었고요. 그냥 살던 동네가 지겨워서 언젠가 떠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좋아서 쫓아다니던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공부를 잘했어요. 걔가 서울을 간다니까 나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 보니까 왜 그랬나 모르겠지만.

 

→ 그래서 서울에 함께 온 건가요?

← 함께는 아니고 그냥 따라 왔어요…. 아무튼. 너 국어 잘해? 국문과 가.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별 생각 없이 국문과에 진학했어요. 좋지도 싫지도 않았지만 그냥 책을 눈치보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것 하나는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또 정말 재미없게 국문과니까 출판사에 취직해야겠지, 생각하고 지냈어요. 실제로 한 출판사에서 인턴 생활을 해 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그 출판사에서 함께 일했던 분이 연락을 주신 거예요. 땡스북스라고 서점이 하나 있는데 거기 파트타이머 자리가 났다, 괜찮은 것 같은데 한번 지원해 봐라. 그때 놀고 있어서 타이밍이 좋았죠. 서점에서 일을 하면 나중에 출판사에서 일을 할 때도 도움이 되겠다 싶은 막연한 마음에 덥썩 시작했는데, 눌러 앉았어요.

 

→ 서점지기라는 게,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저는 정말 못할 것 같거든요. 그럼에도 제가 점장님을 곁에서 보고, 또 점장님의 글을 보고 느꼈던 건 이분은 아직 인류애를 잃지 않았구나,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자박자박하게 남아 있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이런 애정과 선의를 오랜 시간 동안 남겨 두고 있지? 싶어서 너무 신기했어요.

← 실은 지나 온 것 같아요. 3년 차쯤엔 진짜 화가 치밀어 올랐거든요. 매일매일 너무 화가 나던 시기를 지나온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제가 견딜 수 있었던 건, 서점이라는 곳이 1차로 한 번 걸러진다는 점이에요. 식당이나 옷가게보다는 나아요. 물론 일 년에 한 번 정도 잊을 만하면 이성의 끈이 뚝 끊기게 하는 일들이 생기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래도 여전히 의아할 때가 있어요. 왜 저 사람한테는 이게 상식이 아니야? 아니, 어떻게 이 기본을 지금까지 저 사람한테 아무도 안 알려줬다고? 싶을 때요. 예전엔 이렇게 느낄 때가 더 많았었는데 지금은 좀 더 능구렁이처럼 유하게 넘어갈 수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겐 ‘왜’를 생각하지 않는 방식으로요.


→ 말씀을 들으니 괜찮은 게 아니라 무뎌진 것 같기도 하고요, 마인드컨트롤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뒤에서 욕 엄청 하는데...

← 무뎌졌죠. 그런데 또 그래요, 백 명이 좋대도 한 명이 싫다면 그게 마음에 걸리잖아요. 그런데 이 백 명이 준 좋은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서 저를 지켜 줘요. 예전엔 이런 기억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치고 들어오니 더 힘들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이 기억들에 보호받는 기분이랄까. 그래서 ‘결국 총량은 채워지는구나. 누군가 인류애를 빼가도 누군가 다시 채워 주는구나’ 싶더라고요. 힘들 때면 사소한 것에 감동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하면서 땡스북스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준 좋은 기억들을 끊임없이 생각해요.

물론 짜증 나면 그 날은 절대 생각 안 나죠. 저도 막 욕하며 풀어 버리려고 해요, 감정이 얼굴에 티가 많이 나기도 하고요. 반면 함께 일하는 소정 매니저님은 내색을 잘 안 하는 타입이라 다행이다 싶어요.


→ 드럼을 시작하셨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스트레스 해소의 한 방법일까요? 전에 『고마워 책방』에서  ‘주5일은 책에 밑줄을 치고 쉬는 날엔 드럼을 친다’라고 쓰신 저자 소개가 인상 깊었는데, 드럼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언제부터, 어떻게 치게 되신 거예요?

← 친 지는 일 년 반 정도 됐어요. 그때 만나던 친구와 막 헤어졌거든요. 헤어져서... 너무 심심했어요그런데 어느 날엔가 유연석이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데 (제가 유연석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유연석이 드럼을 막 치더라고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는 거예요. 뭔데 저렇게 재밌어 보이지? 좋아 보이지? 하는 마음이 마구 들면서 그래, 인생에서 되게 젊은 날에 마침 홍대 근처에 있겠다, 드럼 한번 배워 보자, 집과 회사를 오가는 동선에 들르는 곳 하나만 더 넣어 보자, 하면서 시작했어요.

 

→ 드럼을 막상 시작해 보니 어떻던가요? 드럼 치는 사람들을 보니 정말 매력이 있는지 너무 순식간에 빠지더라고요.

← 확실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고요. 막 두들기면서 풀린다기보다는 싫은 생각, 다른 생각을 아예 안 하게 되니까 그게 좋더라고요. 원래 하던 일이랑 완전히 다른 결의 일을 하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드럼을 시작하고 나니 그런 일을 찾는 게 진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너무 두려웠거든요, 되게 오랫동안. 사실 취미랄 게 책 읽는 것뿐이라 책 읽는 게 일이 되니 막상 이게 싫어지면 나는 어떡하나, 걱정을 오래 했어요. 하지만 드럼을 치면서 더 잘 읽을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요새 가장 몰두해서 치고 있는 곡이 있다면요?

빅베트의 「무지개 소년」이라는 곡이에요. 드럼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곡인데 가사가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음악을 들을 때 가사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수업 때 이 곡을 배우고 싶다고 선생님을 졸랐어요. '어지러운 수수께끼도, 어둠의 끔찍한 괴물도 단숨에 해치워 버린 나는 무지개 소년', '언제나 다른 색깔로 모두를 놀라게 하는 나는 무지개 소년' 뭐랄까... 이 곡을 들으면 이런저런 고민들을 제가 결국엔 해치울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노래 부르면서 드럼 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 엄청 틀리는데 그래도 좋아서 요즘엔 입으로 노래 부르면서 곡을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이 고생하시죠, .

내내 밑줄을 치다가 가끔 드럼을 치는 일상

→ 제가 요새 하는 생각인데, 어떻게 어른들은 20 30년씩 한 회사를 다니지? 싶은 거예요. 같은 일을 오래 하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이 회사가 좋고 싫고를 떠나서 반복되는 업무가 주는 권태를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5년 이상 일을 이어 온 제 또래의 90년대 생인 점장님 같은 사람들은 어떤 태도로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 제가 햇수론 6년 차지만, 안정되었다고 느낀 건 3년 차 정도부터였어요. 제가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땡스북스가 이미 전부터 자기 색을 구축한 공간이기도 해서 부담이 좀 있었어요. 창립 멤버가 아니니 제가 혹시라도 이 곳을 망치면 어떡하지 싶은 생각도 들었고, 이 공간 자체가 제게 너무 크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이사를 계기로 완전히 달라졌어요. 완전히 빈 공간을 처음부터 차근 차근 채워 가니까 정말로 적응한 기분, 진짜 내 일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 후로 3년이 지났는데 아직은 질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어요. 책을 골라 주문하고 소개글을 쓰는 건 매일 하는 일이지만 반복된다는 느낌은 아녜요. 한 가지 일을 하고 나면 그 일을 둘러싼 변수들이 계속 생기니까요.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것 같아도 뜯어보면 모두 달라서 제겐 모든 게 변수 같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저는 지금도 계속 쌓고 쌓는 일을 하고 있어요.

 

→ 저희가 독자의 공부를 돕는다는 모토로 책을 만들고 있어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어요. 학구적인 의미에서의 공부가 아니라, 지금까지 지내 온 게 어떤 것을 향해 가는 시간이었을까 생각해 보는 거죠. 원하고 바라는 어떤 것을 향해서 이 과정을 거쳐 왔다고, 혹은 지금도 거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

← 진부한 대답이지만 계속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잘은 모르겠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좋은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더라고요. 너무 추상적인가?

 

→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더 나아지려고 산다는 것요.

← 책을 골라 판다는 것도 기본적으로 제 가치관이 바로서야 가능하다고 생각하다 보니 어제보다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 뭔지도 실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책 읽고 사람 만나면서 그 목표를 향해 더듬어 가는 과정인 것 같고요. 가슴으로는 몰라도 머리로는 이해해서, 최소한 몰라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늘 노력하는데 이걸 공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단단한 사람이고 싶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아프게 닿지는 않는 단단한 사람. 제 주관이 뚜렷하고 심지가 단단한 만큼 주변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고, 주변에 부드럽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하는 모든 게 한 지점으로 모이는 것도 같네요. 좋아하는 세계를 지키고 싶다는 것요.


→ 꿈이 있으신가요?

←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고 싶어요. 그냥 그렇게 늙고 싶어요. 제가 땡스북스를 그만두면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기대되는 건 신간을 안 읽고 구간 중에 읽고 싶은 것만 읽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죽을 때까지 시력 관리를 잘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고요. 그리고 웃긴 거 좋아하는 사람이라 웃긴 사람이고 싶고. 그냥 그래요.

다음 보름유유 예고! 누구일까요?🌓


"짝사랑의 대상이 사람이면 누군가에게 자칫 폐가 될 수도 있지만,

그리는 일을 짝사랑하는 건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다행이에요."

도서출판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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