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2일
언뮤 뉴스레터 제1호
by 음악학 허물기
"쌓아두면 안 돼."
짐은 예전에 그렇게 충고한 적이 있었다. 작가가 당장 사용하는 게 내키지 않는 구절이나 이름이나 사건을 훗날 집필할지 모를 작품에 써먹을 요량으로 쟁여두는 행동에 대해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정작 짐은 실제로는 출판된 최종고뿐 아니라 메모와 초고까지 전부 다 꼼꼼히 모아두었다.

—제임스 설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아내 케이 엘드리지 설터의 서문 중에서
저도 그랬습니다. 훗날 진행할지 모를 연구나 집필할지 모를 논문에 “써먹을 요량으로 쟁여두는 행동” 말입니다. 정돈되지 않은 거친 생각이라도 글로 남겨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도 나중에 논문으로 발표할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쌓아 두었다는 게 공식적인 변명이지만 갈수록 ‘쓰고 싶은 글’과 ‘써야 하는 글’의 간극은 커져만 갔습니다. 그다지 실효성도 없었는데 연구 주제 10개쯤 쌓이는 동안 현실적으로 가공할 수 있는 논문의 수는 많아야 1년에 서너 편. 그마저도 다 못 씁니다. 제임스 설터 사후 출판된 산문집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마음산책, 2020)의 원제는 Dont Save Anything. 이럴 바엔 아끼지 말고 그냥 쓰자. 좋은 연구 주제는 언제든 또 나오기 마련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1. 막스 브루흐의 협주곡(feat. Op. 26 말고)
월요일은 KBS 음악실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가 있는 날입니다. 161번째 방송에서 만날 작곡가는 2020년 서거 100주년을 맞은 독일 작곡가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1920). 지난주에 이어 오늘은 그의 협주곡을 만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잠시 후 11시에 함께하시지요. 아래 버튼을 누르시면 언뮤에서 음악 감상하며 자세한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브루흐의 실내악도 반응이 좋았는데요. 특히 그의 《현악8중주》가 인기였습니다. 지난주 방송도 확인해 보세요.
2. 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
이번 주 소개할 책은 음악학자 낸시 노벰버(Nancy November)의 신간 『실내악으로 편곡된 베토벤 교향곡』(Beethovens Symphonies Arranged for the Chamber: Sociability, Reception, and Canon Formation, 2021). 19세기 초중반, 모차르트나 베토벤 교향곡은 어떻게 들었을까요? 실내악으로 ‘편곡’된 연주를 들었습니다. 이른바 “편곡의 시대.” 노벰버는 이 시기 편곡 문화를 간과하는 것은 19세기 서양음악사를 간과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작곡가의 ‘마지막 의도’(Fassung letzter Hand) 같은 “‘작품’에 대한 시대착오적 관념” 때문에 19세기 초중반의 편곡 문화가 학계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진단합니다. 아래 버튼 클릭해 자세히 읽어 보세요.
3. 저스티스 리그: 시그리드 vs. 닉 케이브
DC 코믹스의 저스티스 리그와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 어느 쪽을 좋아하시나요? 아, 원작 만화가 아니라 영화 이야기입니다. 2017년 개봉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저스티스 리그》가 조스 위든의 편집본이라는 사실을 아시나요? 그런데 최근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이른바 스나이더 컷이 공개되었습니다. 4시간에 육박하는 분량이니 애초에 비교가 어렵지만 생각보다 많이 달라서 조금 놀랐습니다. 특히 오프닝 크레딧의 편집 방식과 거기에 사용된 음악은 전혀 다른 두 영화를 예고합니다. 위든의 선택은 시그리드의 Everybody Knows,” 반면 스나이더는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씨즈의 Distant Sky를 들려줍니다. 어느 쪽이 더 좋으신가요? 언뮤에서 들어 보세요.
4.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
한 편의 글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영상입니다. 글쓰기의 이론과 원칙은 간단한 반면 실천은 어렵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도 마찬가지라고, 일단 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제 말을 믿지 않습니다. 가끔은 제가 얼마나 삽질해 가며 글을 쓰는지 보여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보여줄 수 있잖아요? 학생들에게는 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과정을 보여주거나 칭찬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유튜브까지 할 시간은 없으니 어차피 쓰는 글.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벌써 아프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체 과정 그대로 녹화해 편집 없이 업로드합니다.
5. 음악(학)계 소식
연주자와 애호가를 위한 소식은 국내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음악학자들을 위한 소식지는 없더군요. 대부분 외국에서 유학하신 분들이라 각자 소식 접하고 계시겠지만 가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고 느낀 적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일 하면 되지 해외에서 뭐하는지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겠지요. 하지만 학문이라는 게 나 혼자, 혹은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정리해 봤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사에 치중한 리스트입니다. 아래 버튼 클릭해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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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학 허물기 Undoing Musicology
© 2021 Hee Seng K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