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형석 기자 #말랑말랑_노동 #칼_짐머

[주말에 뭐 읽지]  2020-11-13 #33

책, 책방, 사람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주말의 책꽂이

photo by pixabay

말랑말랑한 노동이 가능해?  

황세원 지음, 산지니 펴냄  

이 책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책 제목에 얽힌 이야기도 그렇다. 지은이는 올해 초 한 일간지의 노동 관련 특집기사를 눈여겨보았다. ‘녹아내리는 노동’이라는 제목으로, 플랫폼 노동처럼 전통적 노동자상과 거리가 먼 ‘일을 하는 사람들’을 다룬 기사였다.

그는 ‘녹아내리는 노동’이라는 표현에 주목했다.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의문이 이어졌다. “플랫폼 노동이 등장하기 전에는 녹아 있는 노동이 없었던가. 혹시 그 당시의 녹아 있는 노동은 더 열악했는데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덜 열악해진 것은 아닐까? 그때의 녹아 있는 노동들은 주로 누가 했으며, 그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정부는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무엇보다 녹아내리는 노동이 걱정이라 할 때, 그럼 이 노동들을 다시 ‘단단하게 굳어 있는’ 상태의 노동으로 만드는 것이 옳은 해결책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노동이 어느 정도 ‘말랑말랑’해지는 방법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하는 게 지은이의 제안이다. 이런 의문과 제안이 신선하다.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일과 노동’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새로운 생각의 오솔길을 열어나가는 지은이와 동행하는 느낌이 든다. 그 여정에서 우리가 상식이라고 여겼던 낡은 통념을 깨나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내게는 동네 노동, 청년들의 일자리 선호 이유, 직무급제 도입 등에 대한 지은이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일에 대한 시각을 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예를 들어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드물어지는데, 그런 사회에서 나만은 예외가 될 수 있을까? 어느 순간이라도 새로운 일을 선택하게 될 때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할까? 이 책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성인을 위한 ‘진로 교육’ 참고서로 알맞아 보인다.

차형석 기자 

시사IN 기자들이 추천하는 책
누가 백인인가?
진구섭 지음, 푸른역사 펴냄 

“인종과 인종 혐오의 역사는 짧다.”  

한국에서 인종은 아직 낯선 문제다. ‘블랙 페이스’ 사건처럼 불현듯 사회문제로 떠올랐다가 금세 침잠하곤 한다. 세계적으로 인종문제는 가장 중요한 갈등 요인 중 하나다. 특히 미국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주요 코드로 인종을 꼽는 이들이 많다. 필자는 인종이란 원초적 산물이 아니라 ‘창안’된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태어날 때부터 차이가 나는 피부색이나 이목구비의 생김새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현대 생물학자들은 외모와 무관하게 인간 유전자의 99.9%가 같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들은 0.1%의 유전적 차이 속에서 각 인종을 뚜렷이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은 근대사회가 어떻게 인종을 ‘만들어냈는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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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장군 평전
김삼웅 지음, 두레 펴냄 

“그는 역사의 심판, 하늘의 심판을 믿었고, 그래서 웃으면서 죽음의 형장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41년 전 10월26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재판 최후진술에서 김재규는 말했다. “박 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희생되더라도 끝까지 방어를 해낼 사람으로 (대통령을) 그만둘 사람이 아닙니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국민이라면 김재규 전 부장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평전은 김재규의 재심과 복권이 필요하다는 견지에서 쓰인 책이다. 책에 실린 ‘인간 김재규’의 삶 이상으로 눈길을 끄는 것은 법원의 판결이다. 소수의견을 낸 판사들은 대통령을 살해한 피고인의 행위가 곧 ‘내란’인지 의심한다. “대통령이 곧 정부는 아니(양병호 판사)”라고 주장한 판사 네 사람은 모두 법복을 벗었다.  




쓰레기 거절하기  
산드라 크라우트바슐 지음, 박종대 옮김, 
양철북 펴냄 

“어째서 시간이 갈수록 우리 집에는 물건이 엄청나게 쌓여만 갈까?”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물질이 주는 편리함 때문에 갈등한다. 비닐봉지, 택배 상자, 플라스틱 등 거절 못한 쓰레기들이 그렇게 쌓였다. 오스트리아 출신 저자는 2009년부터 플라스틱 없이 살고 있다. 해변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며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들에게 좀 더 나은 대답을 하고 싶었다. 이후 장을 볼 때마다 유리병, 스테인리스 통을 챙겨 갔고, 중고차를 팔고 이웃과 자동차를 나눠 쓰는 ‘카 셰어링’을 했다. ‘우리만 그런다고 뭐가 바뀔까’ 하는 생각이 안 들었던 것은 아니다. ‘플라스틱 없이 살기’ 실험을 통해 저자는 ‘좋은 삶에는 과잉 소비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유지되는 시스템 속에서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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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F코드 이야기   
이하늬 지음, 심심 펴냄 

“큰 사건 없이도 우울증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F코드는 정신과 질병에 붙는다. 4년 전 처음으로 정신과를 찾은 이후 저자의 삶은 F41.2 혼합형 불안 및 우울장애, F32 우울병 에피소드, F42 강박장애 등의 코드로 채워졌다. 지금도 F313 양극성 정동장애라는 진단명으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예전처럼 대책 없이 우울증에 휩쓸리지 않는다. 인생이 망했다고 여겼던 순간을 지나 하나의 문이 닫히고 다른 문이 열린 것이라는 깨달음에 다다랐다.
기자이자 30대 여성인 저자는 우울증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고 있는 과정을 진솔하게 써 내려간다. 사랑받는 가정에서 자라고, 사려 깊은 친구들을 주변에 두고, 원하던 직업을 가진 이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적지 않은 우울증 책들이 출판되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경험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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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영토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

"언제까지 파야 해?"

만약 샘과 데이브가 방향을 바꿔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판다면 다이아몬드를 갖게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아래로만 열심히 땅을 팝니다. 샘과 데이브는 언제까지 계속해서 땅을 파려는 걸까요?   
  <바이러스 행성> 저자를 만나다

<진화><바이러스 행성><기생충 제국>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과학 칼럼니스트 칼 짐머(사진)를 2020 시사IN 저널리즘 콘퍼런스에서 만나보세요.
이번 콘퍼런스 주제는 "신종 바이러스가 언론을 만났을 때"입니다. 전 세계 모든 언론이 같은 주제로 기사를 써야 했던 사상 초유의 재난 상황. 그 속에서 언론은 이제껏 어떤 역할을 해왔고, 해야 할까요?

*일시:11월30일 오후 5시~8시
*중계방식:온라인 생중계(사전신청은 여기
얼마 전 한 독서모임에서 ‘내 인생의 삽질’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이는 전공을 팽개치고 철학 수업만 들으러 다녔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더군요. 하마터면 전공 이수 학점이 모자랄 뻔했다면서요. 또 다른 이는 어느 날 갑자기 종이 공예에 빠져 들었던 시절이 생각난다 했습니다.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젖먹이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 채 종이 공예를 배우러 다닌다고 주변에서 눈치 주는 사람도 많았다네요.

오늘 소개해 드린 그림책 <샘과 데이브는 땅을 팠어요>에서 주인공들은 땅을 파고 또 팝니다. 어떤 대단한 것, 멋진 것이 나올 거라고 기대해서가 아닙니다. 남들 눈에 잘 보이는 다이아몬드도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죠. 그런데도 이들은 왜 ‘삽질’을 멈추지 않는 걸까요?

물론 삽질의 결과 언젠가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캐낼 수 있다면 좋겠죠. 지겨웠던 대학 시절 우연히 서체학 강좌를 들었다가 훗날 매킨토시 서체를 개발했다는 스티브 잡스처럼요. 그러나 잡스가 아니면 또 어떻습니까? 독서모임에서 자기 경험을 들려주던 분들은 삽질의 공통점을 이렇게 꼽더군요. ‘도피로 시작했다 몰입으로 구원받았다’고요. 마음에 안 드는 전공, 산후 우울증 따위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시작한 행위였을지언정 순수한 몰입이 자신을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었다는 거죠.

그 어느 해와도 달랐던 코로나 원년. 님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어집니다. 올 한 해, 어쩌면 우리에게도 특별한 삽질의 시간이 주어졌던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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