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알아보고 응원하는 일의 힘

💬  님, 한편을 같이 읽어요! 오늘은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라 불리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일생을 전달해 드립니다. 1873년 태어난 콜레트는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쓴 소설을 발표하기 어려운 때였습니다. 여성 작가의 글은 시시껄렁해서 읽을 가치가 없다는 편견이 팽배한 시대였지요. 그런데 남편의 이름으로 처음 출간한 자전적 소설 '클로딘' 시리즈가 소위 '대박'이 나게 됩니다. 이 소설의 주 독자였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주인공 클로딘과 같은 차림새를 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합니다! 

탐욕스러운 첫 남편에게 작품에 대한 모든 권리를 빼앗긴 콜레트는 다소 방황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내세우는 자유로운 작가로 다시 일어납니다. 어머니와 여성 친구들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 위에서 그는 평생 누군가를 알아보고, 믿고 응원하며 살아갑니다. 여성의 글을 폄하하던 시대를 온몸으로 지난 프랑스의 대작가 콜레트. 그의 글은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내게는 문학적 재능이 없었고, 만약 『학교에서의 클로딘』 성공 이후에 다른 일들이 주어져서 조금씩 글 쓰는 습관이 들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다른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는 이쯤에서 위험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내 일 앞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점점 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저는 두려움을 느껴야만 마음이 놓입니다.”

콜레트가 누구인가? 세상을 자신의 발밑에 두었던 코코 샤넬도 콜레트의 작품을 읽으며 영감을 얻는다고 실토하지 않았던가? 프랑스 여성문학의 개척자로 일컬어지는 콜레트가 문학적 재능이 없을 뿐 아니라 “매일 내일 앞에 더 조심스러워”진다고 고백했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진실이었다. 콜레트는 단 한 순간도 쉽게 글을 쓰지 못했다. 새로운 글을 내놓지 못할 바에야 글을 쓰지 말자고 다짐했던 천형의 시간도 자주 반복되었다. 그야말로 “글쓰기는 기쁨이자 고통이었다.” 콜레트의 인생도 기쁨과 고통이 매번 교차했다.

콜레트는 1873년 프랑스 욘 지방의 생소르베에서 태어났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남편을 따라 파리로 이주한 콜레트는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 ‘클로딘’ 시리즈로 수많은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클로딘’ 시리즈를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한 것으로도 부족해 저작권을 움켜쥐고 있다가 마음대로 팔아 버린 첫 번째 남편 윌리는 콜레트를 “똑똑하고 영악한 시골 소녀, 찢어지게 가난했고”라는 말로 폄훼했다. 윌리는 여성 작가의 작품은 출간도 못 되고 팔리지도 않는다는 현실을 핑계 삼아 콜레트를 천년만년 유령 작가로 자기에게 묶어 두려 했다. 콜레트는 개의치 않았다. 그런 과거와 깨끗이 결별하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콜레트도 처음부터 당당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남편에게 복종하고 모든 것을 인내하며 산 세월이 있었다. 파리에 도착했을 당시 콜레트는 완벽하게 빈손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행색도 초라했지만, 콜레트는 젊고 똑똑했다. 그래서 더욱 절망스러웠다. 화려한 파리의 살롱과 카페에서 콜레트는 이유 없이 주눅 들고 숨이 막혔다. 콜레트의 신세계는 다른 곳에서 펼쳐졌다. 돈이 없어도 옷이 후줄근해도 기죽지 않고 온갖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파리의 도서관에 콜레트는 흠뻑 빠져들었다. 

“소르본대학교가 바로 옆이야! 지리학회도, 생주느비에브 도서관도 정말 가까워!”

언제 해가 뜨고 지는지도 모를 정도로 콜레트는 책을 읽었고, 자연스럽게 멋진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또 읽고, 정말 책만 읽었다. 닥치는 대로 읽었 다. 책이 나를 이곳에서 끌어내 줄, 나 자신으로부터 꺼내 줄 유일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콜레트가 못마땅했다. 콜레트는 “오, 클로딘! 나쁜 책을 많이 읽은 아가씨”로 호명된다. 고전도 여자가 읽으면 “나쁜 책”으로 둔갑하고 마는 것일까? 여자가 멀쩡한 책을 어떻게 나쁘게 변모시키는지 알아낼 도리는 없지만, 책을 읽으며 콜레트는 점점 지혜로워졌다. 비로소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들의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어머니와 몇몇 친구들은 콜레트에게 너는 너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작가로 살아가면서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꼭 그렇게 될 것이라고 밑도 끝도 없이 콜레트를 칭찬하며 여성 작가의 탄생을 기다렸다. 콜레트도 더이상 허송세월하지 않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기 시작했다.

콜레트는 이렇게 누군가를 제대로 격려해 주는 일이 때로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된다. 콜레트도 먼저 누군가를 알아보고 응원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1951년, 콜레트는 지독한 관절염으로 고생하며 어쩌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휩싸였다. 그러자 가 보지 않은 길이 궁금해졌다. 자전적 소설을 스스로 극으로 각색까지 한 「지지」 를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 보고 싶었다. 

주인공 지지 역을 물색하던 중 몬테카를로에서 우연히 오드리 헵번을 발견하고, 콜레트는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길 봐, 내가 찾던 지지야.” 대문호 콜레트가 손짓했지만, 오드리 헵번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해 본 적 없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한다. 콜레트는 오드리 헵번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공연 전까지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그저 맹렬히 연기 수업을 받을 뿐이던 오드리 헵번은 막이 오르자 서서히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막이 내릴 때쯤에는 관객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지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오드리 헵번은 마치 다시 태어난 사람처럼 다음 영화 촬영에 몰입했다. 1953년 개봉된 「로마의 휴일」의 주인공 오드리 헵번은 그렇게 세계적인 배우가 되었다. 은퇴 후 오드리 헵번은 아프리카에서 구호 활동을 하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음 세대의 누군가에게 조건 없이 전했다.

오드리 헵번과 함께 대본을 읽고 있는 콜레트

죽음을 예감하며 글쓰기에 처절하게 매달리고 있었던 70대 후반의 콜레트와,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받은 유년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던 20대 초반의 오드리 헵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을 만들 수 있는지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축복이고 선물이었다. 

콜레트는 낙천적이었다. 자신에게 닥친 불운을 새 출발 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승부사 기질도 강했다. 결단력도 뛰어났다. 한때 자신의 책이 남편의 이름을 달고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며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을 쓸쓸하게 지켜보기도 했지만, 어리석고 뼈아픈 경험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는 않았다. 콜레트는 자기만 쓸 수 있는 글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항상 명쾌한 답을 찾았다.

살아갈수록 콜레트에게는 근사한 일들이 잇달았다. 1949년 콜레트는 여성 최초로 콩쿠르 아카데미 회장이 되었고, 레지옹 도뇌르를 네 차례 수훈했다. 15권의 전집도 완간 되었다. 1954년 콜레트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는 위대한 작가를 잃은 슬픔을 국장으로 표현했다. 콜레트의 작품을 사랑했던 수많은 독자들이 장례 행렬에 참가 했다. 하지만 콜레트는 세상과 완전히 작별하지 않았다. 여러 권의 미발표 서간집들이 사후에도 꾸준히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콜레트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콜레트는 일찌감치 깨달았다. “펜을 든 사람이 세상을 바꿉니다.” 

누군가는 펜을 들고 시작해야만 했다. 콜레트는 자신의 생애를 소설로 발표하며, 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멋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콜레트의 말은 진실이었다. 펜을 들고 글을 쓴 여자가 결국 주인공이 되었다. 글 쓰는 여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 장영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 45~51쪽에서

장영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저자. 성균관대학교에서 『근대 여성 지식인의 자기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젠더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2018)을 엮고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2018),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2019)의 공저자로 참여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여성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분투해 온 여성들의 생애를 복원하고, 그들의 말과 글을 차근차근 모아 널리 전하고자 한다.
이번 편지가 어떠셨나요?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주세요.

민음사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1길 62 강남출판문화센터 5층
수신거부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