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3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여운을 주는 詩! 시는 ‘영혼의 비타민’이자 ‘마음을 울리는 악기’입니다. 영감의 원천, 아이디어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눈 밝은 CEO는 시에서 ‘생각의 창’을 발견합니다. 한국경제 논설위원인 고두현 시인이 금요일 아침마다 ‘영혼의 비타민’을 배달합니다.
고두현 시인(한경 논설위원 / kdh@hankyung.com)
   거지
  길거리를 걷고 있었지요. 늙은 거지 한 명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눈물 어린 붉은 눈, 파리한 입술, 다 해진 누더기 옷, 더러운 상처… 아아, 가난이란 어쩌면 이다지도 잔인하게 이 불행한 사람을 갉아먹는 것일까요!
  그는 벌겋게 부어오른 더러운 손을 나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는 신음하듯 중얼거리듯 동냥을 청했습니다.
  나는 호주머니란 호주머니를 모조리 뒤져 보았습니다… 지갑도 없고 시계도 없고 손수건마저 없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외출을 했던 것입니다. ‘이 일을 어쩌나…’
  그러나 거지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습니다. 당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나는 힘없이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았습니다.
  “미안합니다, 형제, 내 급하게 나오느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구려."
  거지는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그의 파리한 두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대로 나의 싸늘한 손가락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선생님. 그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그것도 역시 적선이니까요.”
  나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거꾸로 이 형제에게서 내가 적선을 받았다는 사실을….
*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 : 러시아 시인 소설가.
투르게네프와 윤동주가 만난 거지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가 인생 후반기에 쓴 산문시입니다. 이 시의 창작 배경은 150여 년 전인 1872년 2월, 찬바람 부는 길거리이지요. 무심코 걷다가 동냥을 청하는 ‘늙은 거지’를 만난 ‘나’는 무언가를 주고 싶어 호주머니를 다 뒤지지만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습니다.

그사이에 늙은 거지의 손은 ‘힘없이 흔들리며 떨고’ 있었죠. 안타까운 마음에 나는 떨고 있는 거지의 손을 덥석 움켜잡고는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붉게 충혈된 두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거지의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가 어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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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거지가  >>자세히 보기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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