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영화평론가’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은 시기입니다. 뭐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소개 글에 ‘영화 뉴스레터 연재중’이라는 말이라도 한 줄 적으려고 뉴스레터를 시작한지 어느덧 8주가 지났는데요. 벌써 지친다거나, 시작한 걸 후회한다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지 지금 정말 잘하고 있는 건가, 스스로 돌아보는 시기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오늘은 좀 이런 얘기들이 하고 싶네요. 쓰고 있던 아씨오, 히스토리!(2)를 지웠습니다. 새벽이라서 그런 건 아닙니다.



[NO.008]


칭찬 두려워하기


2022년 4월 23일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요즘 들어 제 직업에 대한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걸쳐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주일 전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해남에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친척분들에게 받은 질문들이 있었구요. 지난주엔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장에서, 그리고 이번 주엔 함께 축구를 하는 동호회 분께 또 다시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한동안 새로운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 생활을 해온지라, 참 이렇게 단기간에 여러 사람들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는 게 오랜만이었는데요. 생각해보면 이런 질문을 받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어쩌면 지금껏 애써 답을 미뤄두었던 질문을 이제서야 마주할 준비가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준비? 준비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가 솔직한 심경이긴 합니다.


실은 저는 다른 사람의 별 다른 의도 없는 질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그 질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습니다. 대충 ‘영화 평론가’는 무엇을 하는 직업이냐는 질문이었고, 그것이 별로 이상한 질문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다만 확실한 것은 영화 평론가라는 것이 이상한 직업이라는 것, 아니 이걸 애초에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저는 아직 이걸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뭔가 생산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라는 말을 상대방에게 하면, 그러면 상대도 뭔가 자신의 질문이, 혹은 이 대화가, 지금 상황이, 아니면 영화평론가가, 그것도 아니면 김철홍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에이 그건 아니지’하시면서, 하지만 저를 응원하는 엔딩으로 대화가 마무리되곤 했었습니다.


비록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렇게 받은 응원들은 물론 감사했습니다. 아무튼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셨기에 생긴 것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한편 저는 정 반대의 의미로 받는 응원들이 있습니다. 간혹 저에게 어떤 질문의 과정 없이, 순수한 의미로서의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가뭄에 콩나듯 계시는데요. 예를 들어 제 글이나, 작업물들에 대해 정말 좋다거나 어쩜 그렇게 영화를 잘 보냐.. 와 같은 말을 해주시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저는 그냥 감사하다..고 대답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걸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감사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저는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제 진짜 실력이 탄로 날까봐 두려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저는 칭찬이 두려웠던 것일까요. 한동안 칭찬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왜 나는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이런 식이면 영화평론가? 오래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영화평론가, 혹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평론가는, 자신이 확실하게 믿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만이 영화평론가라고, 그런 사람들만 영화평론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디 가서 내가 이거 한다는 말을 잘 하지 않은 적도 많고, 말하더라도 이게 직업도 아니라는 말, 어쩌다 이렇게 됐다는 말로 스스로 실드를 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한 번 써본 건, 이번 주에 본 한 영화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 의심하면서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오랫동안 영화평론가 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는, 그런 가능성 말입니다. 그 영화는 <나이트메어 앨리>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셰이프 오브 워터>로 201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입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 촬영상 등의 후보에 올랐지만 아무 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상받못받이 뭐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의 평가가 대체적으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별로인 영화는 아닙니다. 감독에 대한 기대치에 비해 아쉬운 것이지, 영화 자체는 충분히 재밌습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빈털터리인 한 남자가 우연히 유랑극단에 합류하게 됩니다. 브래들리 쿠퍼가 주인공 스탠턴을 연기합니다. 스탠턴은 비록 수중에 아무 것도 없지만 매력은 있는 사람이며, 성공에 대한 야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극단에서 독심술을 배우게 됩니다. 독심술이라고 해서, 실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아니구요. 그냥 마법사처럼 트릭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뛰어난 말빨과 셜록 홈즈의 1/2에 버금가는 관찰 능력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한 그의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독심술을 믿게 만드는 것이지요.


스탠턴은 그렇게 극단을 벗어나 동네에서 충분히 유명한 독심술사가 됩니다. 성공을 한 스탠턴은 도시의 고위층 인사들이 모이는 연회장에서 공연을 하는 삶을 보냅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충분한 보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재밌는 쇼를 보여주는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저 적당한 쇼 제공자로 머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실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인 양, 심지어는 죽은 영혼들과 교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기에 이릅니다.


신 코스프레를 하는 인간의 끝은 보통 정해져 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 역시 정해진 길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제목을 직역하면 ‘악몽 뒷골목’, ‘악몽길’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이 영화는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내비게이션 같은 영화입니다.



제가 이 정해진 길을 가는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은, 내 길 역시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일단 스탠턴의 직업이 제가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자신을 포장한다는 점이 상당히 비슷하게 느껴졌는데요. 둘 다 나 자신이 가진 작은 능력과 매력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행위라는 점이 특히 그랬습니다. 말하자면 스탠턴의 일이 사람들의 생각을 해석해 주는 것이라면, 저의 일은 영화를 해석해 주는 것입니다. 둘 다 정답이 없는 것, 혹은 정답을 알 수 없는 것이며, 진정한 정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신뿐이라는 것도 공통점 같습니다.


그러나 가끔 아니 자주 정답을 제시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영화의 신이 된 것 같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의 뽕에 찰 때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을 때 그렇습니다. 글 좋네요. 해석이 좋네요. 영화 보는 시선이 정확하네요. 감독의 마음을 정확히 읽으셨네요. 영화 보고 제가 느낀 기분을 제대로 표현하셨네요. 이런 말을 들으면 사실 전 정말로 기부니가 좋은 걸요. 사실 저는 그런 말이 듣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듣지 못했다면, 진작 이 일을 관뒀을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정말 두려운 것도 맞습니다. 방금 스스로 적은 ‘시작’이라는 단어도 부적절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시작했다고? 시작은 무슨.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한때 이 두려움 자체가 두려워, 두렵지 않아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냥 이 두려움을 늘 곁에 두려고 합니다. 스탠턴을 보고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탠턴처럼 나 자신이 신인 것처럼, 세상의 모든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영화평론가인 것처럼 행세하게 된다면, 저 역시 어두운 뒷골목으로 추락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마지막 장면이 제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제까지 영화평론가 할 수 있을까’. . . 저도 잘 모르겠지만, 제가 언제까지 이걸 하든, 꾸준한 관심과 감시와 응원을 염치없이 부탁드려 봅니다. 제 두려움은 제가 알아서 한 번 잘 컨트롤해 보겠습니다.




      - ONE DAY ONE MOVIE by 김철홍 -




드리는 말씀

1. '아씨오 히스토리' - <신비한 동물사전> 편 will return. . . 


2. [원데이 원무비]의 지난 호를 볼 수 있는 아카이빙 페이지는 다음 주 오픈 예정입니다. 조금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3. <나이트메어 앨리>는 네이버 시리즈온에서 구매, 혹은 디즈니 플러스에서 시청 가능합니다.


4. 다음 주에는 전주 영화제에 갑니다. 오다가다 마주치면 인사 나눠요!

stibee

좋은 뉴스레터를 만들고 전하는 일,
스티비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