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C에서 B2B로 무게중심이 옮겨간 '메타버스 엑스포 2022'
메타버스 엑스포(구 서울VRAR엑스포)는 제가 XR 쪽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2017년부터 매년 빼먹지 않고 방문하던 행사입니다. 처음엔 'VR 엑스포'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가 'VR/AR 엑스포'가 됐고 올해 다시 '메타버스 엑스포'로 명칭이 바뀌게 됐죠

초기 VR 엑스포는 당시 한창 떠오르던 '장소기반 VR(VR 아케이드)'에 집중하던 행사였습니다. VR 아케이드에 활용될 수 있는 디바이스, 콘텐츠 등이 주로 소개됐고, 그러한 성격 때문에 B2B 행사이긴 했지만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부스들이 많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장소기반 VR' 사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으면서 엑스포의 성격도 변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역을 다양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작년까지의 엑스포는 정체되었다는 인상을 지워내기 어려웠습니다. 전년도에 나왔던 부스가 큰 변화없이 다시 나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VR/AR이라는 이름을 아예 떼어버린 올해는 확연한 변화의 기조가 보이더군요. 기존의 터줏대감이던 '장소기반 VR' 관련 부스가 크게 줄어들고 그 자리를 '메타버스' 관련 업체들이 차지했습니다. 메타버스 관련 업체라는 게 뭐냐구요? 메타버스라는 의미가 '온라인 경험의 3D화'를 뜻하는 것이다보니 다양한 방면의 사업체들이 기존 온라인 사업/서비스를 '메타버스화(3D화)' 하고자 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솔루션/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들이 바로 그러한 업체들입니다.
메타버스 생태계도 결국은 웹으로 간다는 믿음 - 빌리버VR
작년 9월, 빌리버의 탄생을 선언하는 미디엄 글
이번 메타버스 엑스포의 방향성을 상징하는 회사 중에 하나가 저는 이 회사가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가을 VR 웹툰 서비스를 만들던 '코믹스V'가 갑자기 웹 XR 솔루션을 만드는 '빌리버'라는 회사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놀라우면서도 동시의 의아해 했던 기억이 있는데요. 행사 현장에서 직접 빌리버 분들을 만나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작년 메타버스 신드롬 속에서 각 기업들이 자사 제품/서비스를 활용한 메타버스 경험을 만들고자 했을 때, 기업들은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 뭔가를 직접 만들려면 거의 온라인 게임을 하나 개발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요. 개발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도 만만치 않았구요.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그 비슷한 경험을 만들어주는 상용 서비스 안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제페토, 이프랜드, VR챗의 부상은 바로 이러한 니즈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여전히 인터넷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웹 생태계를 생각해보면 각각의 웹페이지들은 어떤 서비스에 로그인해야만 볼 수 있느 게 아닙니다. 그냥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주소만 검색하면 바로 접근이 가능하죠. 결국 메타버스가 대중화되려면 이 역시 지금의 웹 서비스처럼 특정 서비스 안에 들어있는 게 아니라 누구나 접근가능한 형태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믿음입니다. 

저 또한 그런 웹 XR, 혹은 오픈 XR의 비전에 공감하는 편이지만 대표적인 오픈소스 서비스인 '모질라 허브'를 막상 써보고는 다소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누구나 쉽고 싸게 개발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경험적, 기능적 제약도 많았거든요. 기어이가 2020년에 경기콘텐츠진흥원 NRP 데모데이를 위해 모질라 허브로 '버추얼 스페이스(지금으로 치면 메타버스 공간)'를 제작한 뒤 이후 게임엔진이나 이프랜드/VR챗을 활용한 콘텐츠 개발로 방향을 튼 이유도 바로 그 '구현 가능한 경험의 제약'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빌리버는 '우리가 모질라 허브를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모든 기업들이 모질라 허브를 커스터마이징해서 쓸 수 없으니, 빌리버가 모질라를 좀 더 편하고 기능적으로 고도화 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거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모질라 허브 자체를 접수할 지도 모른다'는 빌리버의 자신감을 보니, 갑자기 빌리버의 솔루션을 통해 웹 XR에 다시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어이에서 2020년 경기콘텐츠진흥원 NRP 데모데이를 위해 제작했던 Web XR 페이지
마침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전방향 트레드밀(인피나덱 Infinadeck)
엑스포 현장의 대부분의 분위기는 이렇게 메타버스 쪽으로 넘어갔지만, 저는 여전히 장소기반 VR 경험을 고도화 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비/기술에도 눈이 가더군요. 그 중 특히 흥미롭게 본 건 바로 '전방향 트레드밀' 기기였습니다. 전방향 트레드밀 기기는 일찍이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VR 경험을 완성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장치 중 하나로 소개됐죠. (이번 엑스포 현장에서도 '레디 플레이어 원'의 이미지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너무 무겁거나, 소음이 크거나,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아서 그 동안 연구단계에 머물러왔던 기술이었습니다. 그 사이 전방향 트레드밀 방식을 대체하고자 특수한 신발을 신거나 바닥을 미끄럽게 하는 장치들이 고안되기도 했었죠(Virtuix Omni, KAT VR 등).

그런데 2014년부터 전방향 트레드밀의 한길을 파온 회사 Infinadeck의 제품이 마침내 국내에 들어왔더군요. 예전에 ETRI에서 군사훈련용으로 개발하던 전방향 트레드밀을 체험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제품은 그때 봤던 장비보다 훨씬 콤팩트하고 소음도 적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엑스포 현장에서는 센서 간섭 이슈 때문에 XR 콘텐츠와 연동된 경험은 시연하지 못하고 그냥 걸어다닐 수만 있도록 했는데요. 그냥 걷는 상태에서는 일상에서 걸어다니는 느낌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콘텐츠와 결합됐을 때 어떨지는 궁금해져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체험해 보고 싶더군요.  
Engineering the Future Infinadeck (2022.5.13)
'피코 네오 3 링크' 국내 소비자 타겟 정식 출시
피코(Pico)는 한국시장에서 낯선 브랜드는 아닙니다. 2017년부터 국내 총판계약을 체결했고 KT 및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와 연계한 제품도 여러 차례 내놓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작년 8월 틱톡의 모회사로 유명한 바이트댄스가 피코를 인수한 이후의 행보가 어떨지는 궁금했습니다. 올해 4월 유럽, 그리고 얼마 전 북미 시장 진출을 발표하며 메타 퀘스트와 정면 승부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라는 기사도 나왔죠. '틱톡'이라는 서비스가 유튜브와 페이스북/인스타그램을 모두 위협한 것처럼 피코도 바이트댄스의 본격적 지원을 받는다면 정말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올해 가을 메타의 신제품 '캄브리아' 보다 피코가 먼저 신제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어서 그 기대감은 더 높아지고 있었죠. 

사실 그 때문에 이번 엑스포보다는 올해 가을 신제품을 내놓을 때 뭔가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피코 부스가 있었고 얼마 전 유럽에 출시한 바로 그 '피코 네오3 링크'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현장 부스에서 시크하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더군요. "이거 어제 국내 출시됐어요. 네이버나 11번가, G마켓, 옥션, 신세계 등에서 구매하시면 됩니다" 찾아보니 진짜 있더군요. 현재 55만 9천원이라는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하더라구요. 

개인적으로 피코 관련 소식을 들으며 궁금해왔던 것이 작년에 소개된 '피코 네오3 프로'와 올해 공개된 '피코 네오3 링크'는 뭐가 다른가 였습니다. 링크가 '오큘러스 링크' 처럼 PC 연결을 허용하고 이를 통해 PCVR 기기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죠. 하지만 기기는요? 현장에서 설명을 듣고 이에 대한 의문이 풀렸습니다. 두 제품의 성능은 동일하지만, '프로'는 개발자 모드를 허용하고 '링크'는 이를 허용하지 않는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피코는 기존 B2B 중심 판매에서 올해 B2C 시장 진출을 본격화 하면서 오큘러스 스토어와 같은 피코 스토어를 런칭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 피코 스토어에서 콘텐츠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죠. 링크는 바로 이 피코 스토어에 대한 접근만 허용한다고 합니다. 메타 퀘스트의 경우 사용자가 개발자 모드와 일반 모드를 모두 쓸 수 있죠. 피코가 이렇게 개발자용과 소비자용을 의도적으로 분리시키는 전략을 채택한 것이 결국 소비자에게 친화적일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피코 공식 홈페이지
프로토 홀로그램(나인 커뮤니케이션)
행사 현장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 가장 큰 환호성이 들려오는 곳은 바로 나인커뮤니케이션이 소개하는 '프로토 홀로그램' 제품 앞이었습니다. SXSW 등 해외 전시회에서 그동안 PORTL로 소개되던 제품인데 얼마 전 Proto Hologram으로 정식 명칭이 바뀌었다고 하더군요. 이 제품은 전화박스 같은 디스플레이에 홀로그램 캐릭터가 들어가 있는 모습을 제공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홀로그램 속 캐릭터와 실제 스튜디오에서 촬영되는 모델이 실시간으로 연동되고, 실시간으로 버추얼 캐릭터로 변화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며칠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당시 파리 출장 중이었던 김종민 프로듀서님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했다고 화제가 됐었는데 이때 쓰인 장비가 바로 이것이더군요. 직관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어서 이 제품은 올해 여기저기 많이 쓰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진 출처 : KBS 미디어
[News]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비욘드리얼리티 라인업 발표
방금 위에서 언급드린대로 지난 화요일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비욘드리얼리티 섹션 공식 선정작이 발표되었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초 주목 받았던 XR 화제작들이 대거 초청된 가운데, 영광스럽게도 기어이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무려 다섯 편이나 공식 초청되었습니다! (이향정, 미싱픽쳐스 에피소드 3~5, 웰컴 투 레스피트)

이렇게나 많은 작품이 가는 만큼 올해 부천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 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되는데요. 저희들이 준비하는 내용들, 동시에 이번 비욘드리얼리티에서 추천하는 작품들을 별도로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News] 트라이베카 이머시브 2022 경쟁부문 수상작 발표
그리고 오늘 새벽, 올해 트라이베카 이머시브를 마무리하는 경쟁부문 수상작이 발표되었습니다. 메인 경쟁부분에 수여하는 '스토리스케이프 상'은 저희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 권하윤 작가의 '구보, 경성방랑'이 수상했습니다. 이 작품, 진짜 부천에서 볼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한편, 메인 경쟁부문에 '심사위원 특별상'도 나왔는데 이 작품은 페스티벌 내내 가장 화제를 모았던 Evolver에 돌아갔습니다. 

이어서 또 하나의 경쟁부문이었던 '뉴 보이스 상'은 'LGBTQ + VR museum'에 돌아갔습니다. 그 밖에 '트라이베카 X' 부문은 'Emerging Radiance'에 돌아갔습니다. 저희는 아쉽게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수상하신 모든 프로젝트에 진심으로 축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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