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4대강 사업 졸속이라 비판하더니… 똑같이 밀어붙이는 '洑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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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보 개방도 속도전


박은호 논설위원


정부의 4대강 보(洑) 개방 사업에 가속이 붙었다. 작년 5월 "4대강 16개 보 가운데 녹조 발생 우려가 높은 보를 우선 개방하라"는 문재인 대통령 지시에 따라 시작된 보 수문 개방이 당초 6개에서 10개로 늘었고, 4일부터는 다시 13개 보로 확대된다. "보 수문을 열면 지하수 수위가 얼마나 떨어지고 수질, 생태계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이 정부 공식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금강·영산강은 올해 안에, 한강·낙동강은 내년 6월까지 보 철거 여부 등 처리 방안을 내놓겠다"고 한다. 선진국에선 보 하나를 없애는 데 적어도 10년은 검토한다. 우리 정부는 이것을 1년 6개월~2년 만에 하겠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졸속 추진했다며 전 정부를 비판한 현 정부가 속도전으로 보 개방을 밀어붙이고 있다.

◇"4대강 사업 때 옮긴 취수장 또 옮겨라"

4대강에서 강물을 취수해 공업용수로 쓰는 기업들은 걱정이 컸다. "4대강 사업 때 강을 준설하고 물을 채우는 바람에 수십억원을 들여 강 중간에 있던 취수장을 강변으로 옮겼지요. 그런데 이번엔 4대강 보를 개방한다고 취수장을 또 옮길 수 있느냐고 하더군요. 100억원이 넘게 드는데…." 보를 열어 수위가 낮아지면 강변 취수장을 다시 강 중간으로 옮겨야 할 처지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관로 길이가 더 길어져 취수용 전력 비용도 대폭 늘 수밖에 없다.

4대강 보에서 생활·공업 용수를 끌어오는 취수장은 전국적으로 43곳이다. 이 중 상당수가 2011년 4대강 사업 당시 수억~수십억원을 들여 취수장을 옮기거나 관로 연장 등 보강 공사를 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또 상당한 비용을 들여 공사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 기업 관계자는 "경영상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제발 충분한 준비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주보 수문 열자… 바닥 드러낸 공주대교 - 정부는 최근 백제문화제가 끝나자 금강 공주보의 수문을 다시 활짝 열었다. 보에 그득 담긴 강물 수위가 사흘 만에 4.4m 내려갔다. 그러자 공주보에서 5㎞ 상류에 있는 공주대교(사진) 아래 강물도 확 줄었다. 교각까지 그대로 드러났다. 교각을 이런 상태로 오래 두면 세굴(洗掘·강물로 강바닥이 패는 것) 현상으로 다리 안전이 문제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신현종 기자

정부 공식 입장은 "보를 상시 개방할지, 아예 철거할지, 그대로 둘지 결정된 게 지금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지자체·공기업이 운영하는 취수장과 농업용 양수장 이전 비용 등은 내년 예산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자유한국당 이장우 국회의원실이 정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4일부터 개방이 확대되는 13개 보 주변 양수장 이전 등 명목으로 1165억원, 국토부는 106억원, 환경부는 167억원 등 모두 1438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4대강에서 배를 띄우거나 캠핑장 등을 운영하는 친수시설 업체 30여 곳도 보 개방에 따른 수위 하락으로 이미 영업이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선착장을 강 중간으로 옮기는 등 친수시설 이전비와 영업 보상비도 내년 예산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 개방 영향을 과학적으로 모니터링한 뒤 처리 대책을 추후 결정하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보 수문을 상시 개방하거나 철거하는 것을 전제로 사업을 진척시키고 있는 것이다.

◇1조원 넘게 들어간 농경지 리모델링

보를 철거하거나 상시 개방으로 보 기능을 무력화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은 한둘이 아니다. 강변 지하수로 수막 재배를 하는 농민들이 대표적이다. 4대 강변에 이런 비닐하우스가 수만 곳 된다. 일부에선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면서 농사를 망치는 피해가 이미 발생했다. 정부 관계자는 "수문 개방이 확대될 경우 앞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느 규모로 피해가 나타날지 아직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수문 개방에 따른 지하수 수위 영향이 어떻게 나타날지 연구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가 때를 놓친 측면이 있다. 작년 5월 6개 보를 개방했으면서도 지하수위 저하 등에 대한 연구용역은 올 2월에야 시작됐다. 4대강 보 개방을 급하게 밀어붙인 셈이다.



지하수를 이용하는 4대강 주변 논밭 경작지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하면서 준설한 흙을 전국 농경지 150여 곳에 1~4m 높이로 쌓았다. 당시 보 건설로 지하수위가 높아져 농경지 침수 사태 등이 우려되자 약 9500억원을 들여 농지 성토(盛土) 작업을 한 것이다. 성토 작업 기간 영농 피해에 대한 보상비도 4400억원이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보를 열면 이번엔 지하수위가 낮아져 성토한 농경지에서 경작이 불가능해지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성토한 흙을 다시 깎아내거나 영농 보상비를 세금으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자의 심미안 따라 4대강 운명 바뀌나

정부의 보 개방 목적 자체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보 개방은 애초 녹조 현상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보 수문을 열면 유속이 빨라져 여름철 녹조 현상이 덜 나타나고, 이미 발생한 조류는 강 하류로 빨리 씻겨 내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보 건설로 유속이 느려지면서 녹조 발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여름 한 철 발생하는 녹조를 해결하기 위해 보를 철거하거나 수문을 상시 개방하는 것이 난센스라는 말이 정부 내에서조차 나온다. "녹조가 발생하면 그때 가서 보 수문을 한동안 열면 되지 굳이 철거하거나 상시 열어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환경단체 등은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나빠졌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개선됐다는 조사 결과가 여러 건 있다. 환경부 자체 분석에 따르면 4대강 16개 보의 수질은 사업 전(2005~2009년)에 비해 사업 후(2012~2016년)에 개선된 곳이 63%, 악화는 34%였다. 이번 정부 들어 실시된 네 번째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수질 분석을 실시한 대한환경공학회 보고서에서도 개선이 44%, 동일 42%, 악화 14%로 조사됐다. 특히 4대강의 홍수피해 방지 편익을 '0원'으로 계산한 보고서를 감사원에 제출해 논란을 빚은 서울대 경제학과의 수질 분석도 비슷했다. 4대강 사업 전후 기간에 4대강 사업을 한 곳과, 임진강·한탄강·동진강·태화강 등 4대강 사업을 하지 않은 8개 강의 수질 변화를 분석한 결과 4대강 수질 개선 효과가 더 큰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환경단체의 여론몰이로 4대강 수질은 악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일각에선 4대강 보 철거가 "결국은 정책 결정자가 어떤 강을 선호하느냐에 달린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예전처럼 물은 적게 흐르지만 자연스러운 굽이를 가진 강과, 한강처럼 물을 넉넉하게 담근 채 느린 속도로 흐르는 강 사이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유럽의 라인강을 모방해 4대강 사업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걸 적폐로 몰아붙인다. 정책 결정자의 심미안(審美眼)에 따라 4대강 운명이 달라지고 막대한 국민 세금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한강 신곡수중보 30년만에 연다

文대통령 '철거 지원' 밝혔던 곳… 서울시 "1년 열어 영향 살필 것"




4대강 본류에 들어선 보 16곳 개방에 이어 한강 하류 신곡수중보도 이르면 이달 개방한다. 서울시 김윤수 수질수생태팀장은 "신곡보를 개방해 수위가 떨어지면 어떤 영향이 있는지 1년간 실증적으로 분석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업비 9억5000만원을 들여 '신곡보 개방 실증 용역'을 이달 중 발주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신곡보는 30년 만에 열린다.

신곡보는 바닷물 유입을 방지해 농업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한강 유람선도 운행할 수 있도록 1988년 6월 김포, 고양을 잇는 김포대교 하류에 1007m 길이로 설치됐다. 2.4m 높이 콘크리트 고정보가 883m, 수문 5개가 달린 가동보가 124m다. 지금까지는 썰물 때만 일부 개방한 가동보 수문을 상시적으로 열어 강기슭 경관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하수 수위가 얼마나 떨어지는지 등을 파악하겠다는 게 서울시 계획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당선 이후 한강의 생태 복원에는 찬성하면서도 신곡보 철거 여부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왔다. 그러나 이번 수문 개방을 계기로 결국 신곡보 철거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서울시가 신곡보 개방, 철거를 추진하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다.

신곡보는 정부의 4대강 보 개방 이전부터 효용성 논란이 제기됐다. 환경 단체는 "신곡보를 없애면 수질이 개선되고 한강변 백사장이 되살아나는 등 자연 생태가 복원될 것"이라는 반면 "백사장은커녕 한강 하구의 펄이 상류로 올라와 쌓이고 지하수위가 떨어지면서 한강변 구조물의 안전도 문제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박은호 논설위원 uno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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