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무서워 도망치는 코뿔소, 상상이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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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골드먼 환경상 받은 印尼 환경운동가 루디 푸트라, 그린아시아포럼 참석차 방한


"숲에서 처음 수마트라코뿔소와 마주쳤을 때, 무서워서 허겁지겁 도망쳤어요. 문득 뒤돌아보니 코뿔소도 저를 피해 반대쪽으로 달리고 있더라고요."

인도네시아의 환경운동가 루디 푸트라(Putra·41)씨는 수마트라코뿔소와 처음 만났던 20대 때의 경험을 들려줬다. 인도네시아 생태계 산림 보호구역인 구눙 르우제르 국립공원에서 그는 우연히 수마트라코뿔소와 마주쳤다. 전 세계 개체 수 300여 마리로 추정되는 심각한 멸종위기종이다. 환경재단의 제6회 그린아시아포럼 참석을 위해 방한한 푸트라씨는 지난 5일 인터뷰에서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코뿔소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루디 푸트라씨는“덩치 큰 코뿔소가 나를 보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모습이 충격적이었다”며“야생동물이 사람에게 위협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푸트라씨는 2014년 '환경 분야 노벨상'이라 불리는 골드먼 환경상을 받았다. 골드먼 재단이 1990년부터 풀뿌리 환경운동가에게 수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상이다. 산림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개발 계획을 저지하려고 140만명의 서명을 이끌어내고, 인도네시아 르우제르 생태계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공로다.

지난달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우리를 탈출했다 사살된 퓨마에 대해 그는 "마취제로 포획할 수 없는 다급한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면서도 "사육장 문을 잠그지 않는 등 사람의 부주의로 피해를 입는 건 결국 동물"이라고 했다. "멸종 위기의 동물 보호를 위해 동물원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지만, 야생동물을 위한 가장 좋은 서식지는 그들이 원래 태어난 곳이라는 걸 이런 사건이 일깨워주는 거지요."

푸트라씨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15세 무렵. 팜유 원재료인 야자나무 재배를 위해 불태워진 숲의 나무들이 강물에 떠내려오는 걸 본 후부터다. 전 세계 팜유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책임지는 인도네시아는 1990년부터 팜유 농장을 확대했다. "살충제가 흘러들어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는 걸 보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죠."

이후 그는 르우제르 생태계 보존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면적이 약 2만5000㎢에 이르는 르우제르 열대 우림 지역은 580여 종의 조류와 200여 종 포유류의 서식지다. 대학 졸업 후 NGO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는 불법 팜유 농장이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홍수 등 자연재해에도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을 깨달았다. "팜유 농장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민들을 설득하고 경찰과 함께 농장주를 찾아갔다. 2007년부터 5년간 이렇게 폐쇄된 농장만 약 26곳이다. 2013년엔 아체주 주지사가 르우제르 일부 지역을 상업적 목적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발표하자 전 세계 NGO에 도움을 요청해 개발에 반대하는 140만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그는 2015년부터 뿔뿔이 흩어져 있는 수마트라코뿔소를 숲 안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 근처로 데려와 일정 기간 지내게 하고 있다. "생물 다양성 보존이라는 동물원의 원래 목적과 비슷하다"고 했다. 코뿔소가 새끼를 낳으면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인도네시아의 흰뿔쇠찌르레기는 동물원에 남아 있던 새들을 통해 종 보존에 성공했어요. 위협받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동물원이 꼭 나쁜 공간만은 아닙니다."

그는 "수마트라코뿔소가 도망쳤던 이유는 아마 자신을 해치려는 불법 밀렵꾼과 마주쳤던 경험 때문일 것"이라며 "르우제르 숲을 보존하고,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위협받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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