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넘어 미래를 고민하는 
귀농·귀촌 정책 제안

유지황
청년 농업인 · 팜프라 대표 · 아쇼카 한국 펠로우
"다음 세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촌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여정
제가 농촌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8년 전 배낭여행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를 여행하고 있는데 자동차 밑에 들어가서 자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그 애들을 보면서 저 아이들이 앞으로 자기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양한 방식의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제가 받은 교육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는데요. 공부해서 대학에 진학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획일화돼 있고, 다양성 없는 삶이었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 고민을 바탕으로 대학에 다니는 동안 국제협력기구 활동에 참여하거나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단발성 사업에 대한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식食, 주住, 학學". 스스로 먹을 것을 길러내고,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 것. 다양한 삶 가운데 자기 삶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세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선 저부터 농사를 익히고, 건축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교육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지었는데, 첫 해가 지나자마자 임대한 땅에서 나가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기반 없이 촌라이프를 시작하고 지속할 수 있을까?" 

6개월 정도 국내를 돌아다니며 기반 없이 농사 짓는 사람들을 찾아 보았지만, 그런 청년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파밍 보이즈'라는 이름으로 일본이나 유럽 등 세계의 다른 청년 농부들이 어떻게 기반 없이 농사를 짓는지 살펴보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는데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정책 제도와 교육기관 등을 끊임없이 접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농사를 하든 예술을 하든 삶의 방식을 선택할 때에 다양한 길이 없는 이유는, 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내 삶을 선택할 수 없는 게 과연 당연한 건가?" 

이와 더불어 유럽 등지의 다른 나라들에서 농촌에 살고 싶어 하는 청년들에게 토지, 네트워크, 기술을 제공하는 걸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청년들이 촌에서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실험하고, 촌을 자기 마음의 완충지로 삼으면서 농촌에 정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촌에는 농삿일뿐 아니라 다양한 일거리가 있는데, 청년들이 그런 일들을 하면서 지내다 보면 사라지는 촌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청년들의 귀농·귀촌이 어쩌면 촌과 청년 모두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죠. 
더불어 이런 문제의식도 있었어요. 농촌에 인구가 감소하면 예산도 줄어들고 행정력이 마비될 건데, 
그래서 마을이 쇠락한다면 내가 언젠가 촌에 가서 살겠다고 하더라도 정착할 수가 없게 될 수도 있겠다고요. 그리고 지역에서 살다 보니 고령화된 농촌에 대해 안타까운 것이, 바람과 비에도 모두 이름이 있고, 그 날씨와 농삿일이 어떻게 결부되는지 등등 농촌에서만 가질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있는데 이것들이 어르신들이 늙어가시면서 함께 사라지는 것만 같은 거예요. 그렇다면 농촌으로부터 공급을 받아야 하는 도시에 식량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고, 언젠가 나라에도 큰 문제가 될 것인데 말이에요.

청년은 삶을 전환하고, 
지역은 청년 유입으로 인해 
다양한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팜프라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처음에는 석유 에너지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살기 위한 6평짜리 집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 2년간 300명쯤 되는 청년들이 이런 삶을 살고 싶다고 찾아오더라고요. 그 친구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해 보았더니 공통되는 문제점이 있었어요. 
돈을 어떻게 벌지, 네트워크를 어떻게 형성할지, 무엇을 하면서 살지 잘 모르겠고, 혼자 내려 오기는 두려우니 친구들과 함께 실험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 고민을 담아 만들어진 것이 '팜프라촌'이라는 가상의 청년 마을입니다. 남해군 두모마을 안에 12명이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들고 5~6개월짜리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거기에는 생태, 관계, 완충지, 자립 네 가지 키워드 아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약한 청년들을 위해, 참여한 청년들을 입주민으로 삼고 팜프라가 행정을 맡은 뒤, 촌장과 의회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조례를 제정하고 예산을 편성하여 사용하는 식으로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을 체험해 볼 수 있게끔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촌이 맞는지 도시가 맞는지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내 기질을 알고,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으며 앞으로 어떤 기준과 방향을 잡고 살아가고 싶은지 등을 고민해볼 수 있는 '삶의 궤적'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12명의 입주민과 활동한 내용을 바탕으로 <2019 팜프라촌 보고서>를 만들었습니다. 팜프라촌에 입주하고 살면서 일어났던 일들, 그때 느꼈던 감정, 당시의 회의록, 기술적으로 어떤 것들을 배웠는지 등등을 세세히 엮은 보고서입니다. 이 보고서가 있다면 '집은 어떻게 구하나요?' '돈은 어떻게 벌어야 하나요?'와 같이 귀농·귀촌 관련된 이슈들에 대응하는 정책을 만들 때에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았거든요. 또 귀농·귀촌하려는 청년들이 이 자료를 보고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예측할 수 있다면 좋겠고요.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귀농·귀촌 관련 이슈들
첫째, 빈집은 많은데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자녀 명의라면서 빌려주지도 팔지도 않으시더라고요. 저도 이장님을 통해서 1년 동안 구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집을 못 구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귀농·귀촌해서 들어온 이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을에 사시는 어르신들 또한 빈집이 늘어나다 보니 사람 사는 느낌이 안 난다며 아쉬워하시거든요.
둘째, 살아 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이 정착을 하려 해도 그들을 위한 정책이나 생태계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은퇴자, 청소년 등 농촌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정말 부족한 것이죠. 
실제로 그래서 팜프라는 남해 행정과 함께 정책 설계를 하고 있고요, 더불어 경상남도로부터 '경상남도 청년친화도시'라는 예산을 받게 되면서 청년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반을 본격적으로 만들어 나갈 예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들을 사업의 파트너로 보는 게 아니라 지원의 대상으로만 보는 행정의 시선입니다. 이 청년들은 앞으로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지역을 잘 가꾸어 나갈 이들이고, 그들 중에 누군가는 정치가가 되고 누구는 사업가가 되어 지역의 미래에 이바지할 것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례를 단편적으로만 보는 것도 아쉽습니다. 팜프라를 통해 청년들의 귀농 사례를 참고하시는데, 한 달에 한 번 식으로 정기적으로 포럼을 열면 더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행정의 경직된 업무 처리 방식도 한계가 될 수 있겠습니다. 남해군 같은 경우에는 청년 공무원이 많지만, 정책들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을 느낌에도 내부적으로 피드백이 안 되어 구시대적으로 처리하게 된다고들 하더군요. 또한 저희처럼 실험을 하는 민간 단체에 정책 연구자들이 파견돼서 같이 연구하는 제도가 뒷받침되면 좋겠습니다. 팜프라는 생업을 위해 일하고, 농사하고, 귀농·귀촌을 위해 방문하는 청년들을 맞이해야 하는데 연구까지 하기가 어렵거든요.
넷째로, 어르신들의 지혜, 기술, 이야기들을 보존하여 후대로, 도시로 전달하는 문제입니다. 
이는 우리의 먹거리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일 거예요. 저희는 어르신들의 지혜를 담은 매거진을 만들어서 시금치나 고사리를 주문하면 같이 보내는 형식으로 배포하고 있는데요. 다만 어르신들이 노령으로 인해 조금씩 세상을 떠나시는 걸 보면, 언젠가 그분들의 지혜가 끊긴다면 나중에 귀농·귀촌을 생각하고 먹거리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에 할 수 있는 일들이 다 사라질까 걱정스럽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심각한 기후 위기 문제가 있습니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농사가 잘 안 됐고, 작년에는 태풍 다섯 번 오면서 농작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도시에 있을 때에는 몰랐는데 농촌에 오니 이런 기후 문제를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태풍이 한번 오면 바닷가에 쓰레기 몰려와 이를 정비하기 위해 에너지가 많이 들고요.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 다음 세대가 지구에서 그 기대수명만큼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쓰레기를 줄이는 정도로 괜찮을까요? 그렇다면 탄소를 어떻게 줄일까요? 아직 대책이 구체적으로 수립돼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팜프라는 다양한 계획을 꾸리고 있습니다. 빈집도 구해지지 않고 기후위기 대응도 해야 하는 김에, 주거에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전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에너지를 자립하는 형태의 마을을 실험해 보는 것이 다음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