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1 : 디지털 격차,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연구위원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에서 기차를 타고 오려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젊은 층들은 기차역에 들어서서 바로 승강장으로 이동하는 반면, 어르신들은 모두 매표 창구에 줄을 서 계신 거죠. 
보통 디지털 격차를 이야기할 때에 정보를 많이 가지고 활용하는 자와, 정보를 못 가지거나 덜 활용하는 자로 구분하는데요. '디지털 격차'라는 용어는 1995년 개리 앤드루 풀(Gary Andrew Poole)이 <뉴욕타임스>에서 처음 제안했고, 이후 미 정보통신국에서 그 개념을 정의내렸습니다. 우리나라에는 2001년 '정보 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이 입법되었다가 2009년에 폐지가 된 후 '국가 정보화 기본법'에 편입되어 정보 격차에 대해 정의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격차는 왜 문제가 될까요?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가난을 생물학적 가난과 사회적 가난으로 분류했는데, 이중 사회적 가난은 남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디지털 격차도 일종의 사회적 가난이 되겠죠. 

디지털 격차의 발생 요인은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성별, 교육 수준, 경제적 소득 수준, 연령, 장애, 거주지역 등 불변하는 현상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고, 한편으로 개인적·사회적 요인 곧 심리적·정서적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기술에 대해 얼마나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주변으로부터 얼마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죠. 사회적 지지, 사회적 자본 등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디지털 격차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정보화진흥원에서 2002년부터 매해 디지털 격차에 대해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작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령층, 장애인, 농어업민, 저소득층 등 4대 취약계층을 일반 국민하고 비교하면 비교했을 때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기기를 갖고 있거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갖는 등 접근성을 놓고 보았을 때에는 전체 국민의 91%에 육박하기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안에서 얼마만큼 해결 능력을 갖고 있는지, 정보통신기기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례로 70대 이상인 경우에는 통신기기를 갖고 있더라도 실제로 이용하는 비율이 38%에 그친다고 합니다.  

디지털 격차는 왜 문제가 될까? 
디지털 격차는 처음에는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였습니다. 온라인뱅킹이 확장되면서 은행점포가 사라지고 은행이 2층으로 옮기는 정도 말예요. 그냥 내가 발품만 팔면 되는 거죠. 온라인쇼핑 대신 근처 슈퍼 가고, 궁금한 게 있어도 참으면 되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는 명절 기차표 예매 문제처럼 불이익이 생기게 됐어요. 불평등, 불이익의 문제는 한 번 더 나아가 생존 문제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지자체에서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는데, 취약 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2G폰, 3G폰에서는 수신이 되지 않았죠.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사태 때 마스크앱이 개발되었을 때에도, 앱에 친숙하지 못한 고령층은 마스크를 어디서 구입하는지도 알기가 어렵고, 가더라도 이미 팔려서 구하기가 어렵게 되었죠. 코로나19에 더 큰 위협을 받는 계층이 고령층인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젊은 층이 나이가 들면 격차가 점점 없어질까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일까요? 
실제로 2001년에 입법되었던 '정보 격차 해소에 관한 법률'이 2009년에 폐지되었는데요. 당시에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컴퓨터나 인터넷을 사용하니 실효가 없다고 판단했던 모양인데, 디지털 격차, 날로 더 커지고 있지 않습니까? 기술의 속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특성 중 하나는 새로운 기술이 생겨날 때마다 새로운 격차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신기술이 대중에게 확산되는 양상을 보면 아래 그래프처럼 S자 곡선의 형태를 띠거든요. 그런데 또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또 다른 격차가 발생하면서 디지털 격차가 매우 벌어지게 되지요.
예를 들어, 신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AI 음성인식 기술의 경우 청·장년층의 30%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데, 기존의 디지털 활용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층의 경우에는 그 30%에도 미치지 않는 11%정도만이 이용한다고 합니다.(굵은 선 참조)
디지털 기술의 또 다른 특성으로는 기계의 변화에 따른 접근의 다양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쉽게 말해서 인터넷에 어떤 형태로 접근하느냐는 것인데요. 고령층의 경우에는 스마트폰이라는 창구 단 하나만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스마트폰마저도 저가형 요금제를 쓰다 보니 폭 넓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죠. 반대로 젊은 층을 살펴보면 스마트폰뿐 아니라 컴퓨터, 스마트TV 심지어는 스마트 냉장고까지 대부분의 가전으로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요. 이런 차이가 또 다른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특성은 기술의 속성들입니다. 기술은 크게 도구적 기술, 정보적 기술, 전략적 기술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구적 기술은 컴퓨터 같은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능력, 정보적 기술은 웹서핑 등 IT 기술을 이용해서 내게 필요한 정보를 찾는 기술, 전략적 기술내 목적이나 가치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취약계층일수록 도구적 기술, 기껏해야 정보적 기술 정도에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가치나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쓸 수 있는 전략적 기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이는 시간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첫째로 교육적 대응입니다. 1997년 천만 정보화 교육을 실시하여 정보화 선진국으로 도약했던 것처럼, 올해에도 8월부터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 사업을 추진하여 전국 단위의 교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둘째로는 기술적 대응입니다. 정보통신 기기의 사용이 어려운 만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이 디자인하거나 접근성 높이도록 하는 노력들이죠. 시각장애인을 위한 앱이나, 연령이나 지역이나 신체적인 여건이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디자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는 경제적 대응을 들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부에서 요금을 인하하는 방식을 들 수 있겠는데요. 실제로 현재 저소득층과 노령층을 위해 요금 감면 혜택을 준다거나, 장애인들을 위해 정보통신 보조기기를 저렴하게 보급하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IoT(사물인터넷) 기기나 AI 스피커를 무료로 보급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고요.
지금까지의 세 가지 대응은 전통적인 대응 방법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부각되는 것이 네 번째 대응 방식인 사회적 대응입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디지털 취약계층을 도와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인데요. 정보의 격차가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지,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에 따른다는 '사회적 가난' 개념에 입각한 것이죠. 최근 KT에서 고령층이 정보통신기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일대일로 도와주는 '스마트 돌봄 매니저'라는 사업을 시작한 것처럼, 지역사회 내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겠습니다.

앞으로 디지털 격차는 어떻게 될까? 
정보 불평등은 데이터의 불평등으로 진화할 것입니다. 미국의 COMPASS와 PredPol라는 재난·범죄 예방 프로그램의 사례를 보면, 해당 프로그램들의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이 디지털 취약 계층을 재범률이 높은 계층으로 간주해서 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을 우범지역으로 판정하여 감시하거나 더 가혹한 형량을 내린다는 겁니다. 즉, 지금까지 디지털 격차가 단순히 개인의 역량의 차이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기계가 사람을 차별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2007년 제주도에서 대중교통 체계 개편을 했는데, 고령층이 주로 이용하는 노선들이 많이 폐지된 것입니다. 디지털 취약 계층의 데이터가 수집되지 않아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대중교통 이용량이 늘어서 살펴보았더니, 대중교통 체계 개편의 근거가 되었던 데이터가 모두 관광객들의 것이었던 거죠.
2019년, '내일의 나'라는 제목의 공익광고가 선보였습니다. 현재의 '나'가 미래의 '나'를 도와주는 주제로, 젊은 내가 나이 든 나에게 키오스크 이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등장했는데요.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불이익과 생존의 문제를 안겨줄 디지털 격차가 남이 아닌 나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