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를 지닌 목소리

외로움이란 여백을 두고서

모두의 마음에 사랑이 샘솟는 5월입니다. 곳곳에 펼쳐진 다정한 장면들에 충만해지다가도, 문득 영문 모를 쓸쓸함이 불쑥 고개를 듭니다. 그런 감정은 쉽게 다스리기 어려워서 물끄러미 놔두게 되지요. 그러다가 어느 시인이 노래한 외로움을 떠올려 봅니다. 짧은 시에선 가족들이 모두 빠져나간 집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유품을 걸치고선 베란다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개미가 꽃을 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중, 베란다에 잠시 저녁놀이 왔다 갑니다. 사위가 불꽃처럼 환해진 순간, 어쩔 줄 모르던 감정은 새로운 이름으로 태어납니다. 시인은 그를 ‘홀로움’이라 명명했지요. 가득 찼던 삶에 여백을 두고선 그 틈으로 들이치는 투명한 빛을 바라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외로움을 거느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님의 경우는 어떠한가요. 누구나 사랑을 말하는 계절에 내 마음에 파고든 고독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싶나요.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외로움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를 노래로 만드는 김사월과 이아립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어요. 환한 슬픔 속에서 탄생한 그들의 노랫말을 가만히 흥얼거려 봅니다.

05.11. A Piece Of AROUND그때, 우리 주변 이야기

쉼표를 지닌 목소리

Ver.1 AROUND Vol.73 따로 또 같이 Married Or Not Married

〈천국을 안 믿어서 천국이 사라졌나〉 김사월―뮤지션


Ver.2 AROUND Vol.71 오늘의 기분 Now Is Good

〈선택한 여백으로〉 이아립―뮤지션


05.25 What We Like취향을 나누는 마음

어라운드 사람들의 취향을 소개해요.


06.08. Another Story Here책 너머 이야기

책에 실리지 못한, 숨겨진 어라운드만의 이야기를 전해요.

그녀와 나눈 대화엔 공백이 가득했다. 긴 침묵과 오래 곱씹는 생각 사이사이 숱한 감정이 모였다 흩어지고 뭉치고 사라졌을 테다. 이 긴긴 침묵에서 뾰족한 답이 나왔느냐 하면, ‘아니’다. 우린 내내 “모르겠네요.”라거나 “그러게요. 어렵네요.” 같은 모호한 문장만 반복했다. 당연하다. 사랑은 그런 거니까. 모르겠는 기분으로 대화하던 시간이 전혀 위태롭지 않았다. 그걸로 충분하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

최근엔 결혼도 많이 변한 거 같아요. 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거나 셀프웨딩을 하거나 동성 결혼식을 하기도 하죠.

저는 사람들이 결혼을 좀더 많이 하면 좋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혼하는 걸 보고 싶어서요. 전 안할 거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다니, 좀 무책임하죠? 하지만 저는 어떤 형태로든 가족이 많아지기를 바라요. 누구나 원하는 방식으로 결혼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게 세상을 밝힐 힘이라고 믿거든요.


결혼을 안 할 거라고 계속 강조하는데, 사월 씨는 비혼주의자인가요?

‘꼭 비혼으로 살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그저 결혼에 대해 생각을 안 할 뿐이죠.


결혼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을 만드는 방식이잖아요. 먼 미래에 혼자일지도 모를 거란 두려움은 없어요?

두렵죠. 그래서 미래를 위해 돈을 모아 보려고요(웃음). 저는 요즘 비혼 여성의 책이나 SNS에서 많은 위로를 받아요. 최근엔 김하나·황선우 저자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으면서 좋은 에너지를 얻었는데, 성공한 40대 싱글 여성 두 분이 함께 사는 삶을 엿보며 마음이 웅장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구나 싶어졌고요.


두 분 다 너무 멋있죠. 하지만 그런 맘과 동시에 ‘내가 이만큼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어요.

성공한 상태로 혼자 늙어간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물론 어려운 일이겠죠. 가끔 ‘삶이 정말 얼마 안 남았을 땐 결혼해 보고싶다.’는 상상도 하는데요. 70살 정도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해보고 싶을 것 같아요.

사랑에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해요?

믿음이요. 서로에 대한 믿음, 사랑에 대한 믿음은 당연하고 내가 없을 때의 그 사람에 대해서도 믿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과거의 그 사람도 그렇고, 지금 그 사람의 사적인 부분에도 믿음이 있어야겠죠. 이 모든 것에 대한 믿음. 그게 있어야 앞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노래로 많이 만들어진대요. 그렇다면 지금은 사랑이란 감정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사랑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감정같아요. 부모와의 사랑이든 연인과의 사랑이든 나를 사랑하는거든, 어쨌든 사랑이 없으면 사는 거 자체가 힘들지 않을까요?그래서 우린 사랑하는 행위와 함께 사랑 노래를 듣고 부르는 거 같고요.


지금이 유독 사랑이 필요한 시절이라고 생각하나요?

네. 근데 ‘지금’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옛날에는 신에 대해서, 노동에 대해서 노래했겠죠? 신을 기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었고, 일하기 위해서는 힘을 냈어야 하니까요. 근데 지금은… (정적) …어쩌면 우리가 노래로 부르는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요. 작게든 크게든 다르게든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랑하니까 외롭지않아서 너무 좋다.’라거나 ‘사랑을 잃고 나니 너무 외로워.’라는걸 노래로 만드는 거죠.


사랑과 외로움은 같은 선상에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쉽게 정리가 잘 안 되는데요. 지금 우리가 사랑 노래를 만드는 건 어쨌든 외롭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문장에서 시작해 문장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날들. 이아립의 삶을 책으로 옮긴다면 긴긴 여백과 숱한 쉼표들이 문장 사이에 빼곡하지 않을까. 여기 안온한 공백이 있다.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쉼을 닮은 픽션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김연경

20년간 뮤지션으로 소개해왔을 테니 ‘음악’이란 단어를 빼고 설명해 볼까요?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는 사람, 흔들리는 곳으로 여행하는 사람.


고정된 틀이나 경계를 두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려요.

보통은 자신의 것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저는 오히려 확고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있어요. 저는 그 경계를 지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고, 그건 제 안에 있을 때도 있었죠. 돌이켜보면 저는 경계를 지우는 사람보다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 같아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여기저기 힐끔거리면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음악 활동을 이어오는 게 어떻게 가능했나요?

오히려 바람이 부는 것처럼 가벼운 마음이어서 지속할 수 있던 것 같아요.


가벼운 마음이란 어떤 태도인지 좀더 듣고 싶어요.

일반적으로 음악을 녹음하는 건 어떤 잡음도 없는 스튜디오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걸 말해요. 그런데 저는 일상에서 직접 녹음기를 켜고 녹음하는 게 더 좋았어요. 생활 소음이 섞여 들어가는 자연스러움이 특히 좋았거든요. 그래서 노트북을 들고 공원으로 나가서 녹음하곤 했어요. 모래바람이 부는 3월의 공원에서, 노트북에 들어가는 모래를 툭툭 털어내면서요. 심지어 걸어가면서 녹음한 곡도 있죠. 제 방식이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는 얘길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전 항상 어딘가에서 벗어나는 방식을 꿈꾼 것 같아요. 굳이 공연장이 아닌 곳을 찾아서 공연을 기획하는 식으로요. 제 노래 ‘반도의 끝’에 이런 가사가 나오기도 하죠. “정말 그곳이 어디라도 오래 머물기는 싫어.”


그런 벗어남이 이아립의 스타일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맞아요. 그렇게 선택한 일들이 쌓여 지금의 제가 되었죠. 큰길 내버려 두고 사잇길로 가는 사람, ‘저기로 가면 또 어떤 풍경과 만나게 될까.’ 궁금해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

많은 사람이 이아립의 음악은 위로라고 이야기해요. 알고 있나요?

왜 그럴까요(웃음)? 요즘은 다들 바쁘게 사는 것 같아요. 한밤중에도 도시는 반짝거리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어 쉴 틈이 없죠. 요 앞 빌딩들만 봐도 불 꺼지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다들 앞만 보고 걸어갈 때, 제 음악은 혼자 뒤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위로라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는 이 무리를 벗어날 수 없지만 나와는 반대로, 뒤로 걷는 것 같은 음악을 들으며 위안 삼는 거죠. 쉼표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내 삶에 없는 것에 위로받는 거네요.

노래가 뒤로 걸어가는 건 그런 느낌일 뿐, 실은 듣는 사람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을 거예요. 뒤로 가고 싶다는 마음을 나눠 가진 채 같은 쪽으로 걸어가는 게 아닐까요? 어떻게 보면 공감을 통해 위로받는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러려면 노래에 내 이야기만 담을 순 없을 것 같아요.

나’가 있어야 ‘너’도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그동안 사랑 이야기를 참 많이 써왔는데요. 제가 누군가에게 품는 마음은 어느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게 사회적이란 말이 있듯, 개인적인 마음이 가장 보편적인 마음일 수 있거든요. 남의 마음을 상상하며 써본 적도 있지만 복잡하고 부자연스럽게 들리더라고요. 제 마음이 오히려 그 사람의 솔직한 마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제 이야기에만 집중해요. 좀 아이러니하죠?


반대로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들으며 내 마음 같다고 느낄 때도 있나요?

너무 많아요. 슬플 때, 외로울 때, 쓸쓸할 때, 하지만 진짜 제 맘 같은 곡은 아무렇지 않을 때 찾아오는 것 같아요.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틀었는데 어떤 노래가 헉 하고 꽂혀선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도 하잖아요. 택시에 탔는데 들려오는 노래가 내 맘 같을 때도 있고요. 그럴 땐 혼자 중얼거려요. “미쳤네, 타이밍….

우연한 만남을 기다리며

시간 내어 찾은 서점에서 아끼는 책을 마주친다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최인아 책방은 책과의 만남을 도모하며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최인아 책방과 함께 5월 한 달 동안 ‘출판사 테이블’을 진행합니다. 책방 곳곳에 놓여있는 너른 테이블 위, 가지런히 자리한 《AROUND》를 만나보세요. 새롭게 리뉴얼한 82호부터 88호까지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답니다. 함께 전시된 과월호는 특별히 10% 할인하여 판매합니다. 신중하게 고른 책들 사이에서 언제 봐도 애틋한 우리의 이야기를 찬찬히 넘겨보세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을 만큼,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을 마주치게 될 거예요. 


최인아 책방
서울 강남구 선릉로 521, 4층
5월 1일 월요일 ― 5월 31일 수요일

누군가 함께여서, 또 홀로여서 찬란하고 아름다운 5월에 두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 감회가 새로워요. 멋진 계절을 지나는 동안 사랑이 많은 사람들이 조금은 덜 아파하기를, 주어진 여백을 마음껏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뉴스레터는 즐거운 나날들을 더욱 신나게 만들어 주는 어라운드 식구들의 취향 이야기와 함께 찾아올게요. 다다음주 목요일 아침 8시에 도착할 이야기를 기다려 주세요. 안녕!

'지키고 싶은 장면(On Earth)를 주제로 한 《AROUND》 88호가 궁금한가요? 책 뒤에 숨겨진 콘텐츠가 궁금하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이미 지난 뉴스레터 내용도 놓치지 않고 살펴보실 수 있답니다. 어라운드 뉴스레터는 격주로 목요일 오전 8시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평범한 아침 시간을 어라운드가 건네는 시선으로 채워 주세요.

우리의 편지가 내일로 향할 때

‘뉴스레터’라는 새로운 채널이 등장한 이후, 매일 아침 메일함을 확인하는 것이 즐거워졌어요. 창작자들이 성실하게 편지를 적어 내릴 때, 어떻게 하면 그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안전히 가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뉴스레터 서비스 ‘스티비’입니다. 의미 없는 광고 메일로 가득 차 있던 편지함에서 작은 가능성을 발견한 스티비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을 위해 편리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어요. 《내일의 뉴스레터》는 스티비가 꾸준히 쌓아온 지표를 분석하여, ‘지금, 이곳의 뉴스레터’를 톺아보고 이메일 마케팅의 미래를 제시하는 책입니다. 어라운드 83호에서도 스티비의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뉴스레터는 언제 발송해야 할까? 성과는 언제 확인해야 가장 빠르고 정확할까? 성공한 뉴스레터들은 어떤 고민을 거쳤을까?’ 지속 가능한 뉴스레터를 만들고자 고민하고 있다면 일말의 해답이라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어라운드의 시선이 담긴 콘텐츠를 손안에 놓고 살펴보면 어떨까요?
온라인 이용권을 구독하여 ‘AROUND Club’ 회원이 되어주세요.
• 어라운드가 건네는 인사이트 간편 기록
• 오래 기억하고 싶은 기사 스크랩
• 지면에 실리지 않은 비하인드 컷 감상
• 지난 뉴스레터 콘텐츠 모아보기
• 커피 한 잔 가격으로 모든 콘텐츠 감상

어라운드 뉴스레터에서는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펼쳐 보입니다.

또 다른 콘텐츠로 교감하며 이야기를 넓혀볼게요.

당신의 주변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2023 AROUND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Un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