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친배우미, 안녕하신가요?
와. 다이내믹한 7월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폭우에 폭염, 그리고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까지! 지난 7월 한 달은 자연의 힘을 호되게 느낀 한 달이었어요. 언제나 건강 조심하세요. 다음 달에는 휴가를 가는 분이 있을 텐데 좋은 추억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마친배우미’ 소식 스물네 번째 주인공은 빡도(박도환)입니다. 빡도는 2013년 PaTI 한배곳 1기로 입학했어요. 2012년 열렸던 예비학교에도 참여한 PaTI의 산증인이죠. 그래픽 디자인에 흥미를 느끼고 작업에 몰두하며 인스타그램에 결과물을 꾸준히 공유하고 있어요. 퀴어 디자이너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에도 열심이랍니다. 얼마 전 동료들과 세운 스튜디오 자율도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된 빡도의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안녕하세요 빡도! 얼굴 맞대고 얘기를 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에요. 

그러게요.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팬데믹 전에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우연히 보고 서로 반가워했던 기억이 나요.

빡도가 PaTI를 졸업한 지 얼마나 됐죠?
제가 2018년 졸전을 끝내고 2019년 2월에 졸업했으니까 이제 졸업 4년 차에요.

어라, 생각보다 요즘인데요? 저는 빡도가 무척 예전부터 PaTI에 있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맞아요. 제가 PaTI의 산증인 중 한 명이랍니다. 하하. 혹시 ‘예비학교’ 기억하세요? PaTI를 세우기 전인 2012년, 홍대 앞에 있던 날개집에서 저와 김단, 그리고 이규찬이랑 셋이서 하얀과 날개와 더불어 예비학교 과정을 진행했었어요.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파주에 PaTI가 정식으로 설립된 후 1기로 들어갔죠. 그런데 중간에 군대를 다녀오면서 졸업을 3기와 함께 한 거예요.

제가 졸업을 기준으로 기억해서 그랬군요. 게다가 빡도가 워낙 어린 나이에 들어갔잖아요. 

제가 예비학교에 참여한 게 19살 때였죠. PaTI에 들어갈 때는 20살이었고요. 그렇게 한배곳 15명으로 시작한 PaTI가 이제 10년 차가 되었으니 이를 바라보는 느낌이 정말 묘해요. (웃음)

졸업 후 빡도의 활약상은 SNS를 통해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근데 얼마 전 스튜디오를 차렸다는 얘기를 들어서 놀랐어요. 

스튜디오의 이름은 ‘스튜디오 자율도studio jayuldo’에요. 자율적인 관계와 협업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잠재적 가치와 가능성을 찾아다니는 디자인 섬입니다.

스튜디오 홈페이지에 올라간 소개 글 같은 느낌은 저만 받는 걸까요? (웃음) 좀 더 쉽게 얘기해주세요.

그러면 이런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아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고, 일하고 싶은 일만 하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섬을 만들고 싶었답니다. 그래서 섬 이름에 자율이라는 명칭을 붙였고요. 그렇다고 언제나 방만하게 운영하는 건 아니에요. 최소한의 규칙이 있답니다! 일단 아침 10시 이전에 웬만하면 출근하려고 노력해요. 스튜디오 설립 이후에 보통 지켜지고 있어요. 놀랍죠? 하하. 그리고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자율도의 자율이 극대화된답니다. 그때는 누구나 쉬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만일 잔업이 생기는 경우에는 저희가 좀 더 주도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야밤에 작업하기보다는 그다음 날 오전에 작업을 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이끌려고 해요. 

스튜디오 자율도는 빡도가 혼자 운영하는 개인 스튜디오가 아니라고 들었어요. 여러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고요. 

스튜디오 자율도의 멤버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찐멤버’죠. 우선 저와 같은 해 PaTI를 졸업한 최유지윤이라는 친구가 있고요. 지윤이 오가닉 화장품 브랜드에서 직원 대 사장으로 만난 김로마가 있어요. 지윤은 공예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로마는 기획자이자 스토리텔러로 활약 중이죠.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말하고, 시각 생산물과 관련된 모든 일을 도맡고 있는 3D잡러입니다.

왼쪽부터 최유지윤, 김로마, 박도환  

결국 세 명이 스튜디오를 이끌어나가는군요. 그럼 나머지 부류는 누구인가요?

스튜디오 자율도는 결국 가상의 섬 같은 존재인데요. 저희는 스튜디오 자율도에 일을 맡기며 함께 하는 분을 일컬어 ‘기러기’라고 부르고 있어요. 자율도라는 섬에 들르는 손님들이죠. 자율도와 기러기는 서로 의지하며 함께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볼 때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큰 시야로 본다면 결국 다 같이 자율도의 멤버가 되는 거죠. 그런데 기러기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하지만 저희는 자율도 멤버라고 굳게 믿고 있답니다.

스튜디오 자율도는 지난 3월에 시작했어요. 섬에 오는 기러기는 많아졌나요? 

저희의 첫 기러기를 소개할게요. 한남동에 있는 편집숍인 ‘오디크oddique’인데요. 다채로운 색상을 사랑하는 대표님이 운영하는 장소인데 정말이지 무척 멋진 곳이에요. 저희는 로고와 톤앤매너, 로고 가이드 북, 매터리얼, 애플리케이션 등 시각 전반에 걸쳐 전반적으로 작업했는데요. 로고에는 제가 주로 참여했고, 색상과 애플리케이션의 경우는 지윤이 힘을 많이 쏟았어요. 오디크 프로젝트를 진행한 계기도 무척 재밌어요. 사실 오디크 대표님은 지윤이 전에 회사에서 일하며 알게 된 지인인데요. 지윤 인스타그램을 보고서 편집숍의 로고를 맡겨야겠다고 생각했데요. 근데 막상 연락해보니, 그 인스타그램이 사실 제 인스타그램 계정이었던 거예요. (웃음) 어차피 지윤과 저 둘 다 스튜디오 자율도의 멤버로 활동하니까 해당 프로젝트를 자율도에 의뢰하셨어요. 그리고 과천문화재단도 꼽을 수 있어요. 과천문화재단은 ‘해석이 있는 클래식 음악회’라는 행사를 매달 개최하는데요. 그 행사의 포스터와 배너, 프로그램북부터 웹사이트까지 전반적으로 저희와 함께하고 있어요. 아직 일을 완전히 마무리하진 않았지만, 기러기는 계속 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민음사, 《매거진 탁!》, 구로문화재단이 자율도에서 쉬어가고 있어요. 이외에도 다른 기러기들이 있는데요. 제가 프리랜스 디자이너로 작업한 포트폴리오를 보고 연락을 준 경우가 많아서 자율도와 딱 떨어지는 기러기라고 말하기에는 조심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답니다. 

편집숍 ‘오디크’ 로고 디자인, 2022

2019년부터 홀로서기를 했으니 이제 4년 차 그래픽 디자이너에요. 빡도의 성장 과정은 SNS에 올린 결과물을 통해 지켜보며 응원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픽 디자이너로 진로를 정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PaTI에 다닐 때는 편집 디자인 관련 수업이 별로 없었어요. 2주 동안 집중적으로 편집 디자인을 파는 워크숍 개념의 수업이 두 번 정도 있었나 했으니까요. 그때 편집 디자인의 맛을 보고 굉장히 아쉬움이 컸나 봐요. 특히 글자를 다루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졸업 작업도 편집 디자인으로 책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었죠. 절 지도하신 분이 오진경 스승이었는데,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렇게 무사히 졸업을 하고 보니, 제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쪽으로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갔죠. 특히 저 자신이 성장하는 모습을 인스타그램 피드에 기록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하고 재미를 느끼면서 그래픽 디자인에 더욱더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좀 해보니까 제 엉덩이가 좀 무겁다는 큰 장점을 알았답니다. (웃음)

인스타그램 피드만 봐도 작업량이 상당하더라고요. 지금까지 빡도가 했던 프로젝트 중 공유하고 싶은 프로젝트로는 어떤 게 있을까요. 빡도의 엉덩이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궁금해지네요!

음…막상 특정 프로젝트를 고르려니까 고민이 드네요. 왜냐하면 요즘 제가 선호하는 작업의 성향이 바뀌었거든요. 예전에는 타이포그래피를 좋아하면서도 솔직히 잘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화려한 색을 이용해 이미지 만들기를 주로 시도했었어요. 제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원색의 강렬한 이미지와 독특한 조형이 어우러진 예시가 아주 많아요. 근데 계속 작업을 하다 보니 드디어 타이포그래피의 묵직함을 조금씩 소화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러자 작업에서 색이 점점 빠지고, 글자를 활용해 작업하는 묘미를 알게 되었어요. 그 대표적인 예가 책이죠. 그래서 현 상황에서 제 작업을 공유해야 한다면  개인 작업 하나와 책 두 권, 그리고 앞으로 나올 자율도 프로젝트 하나를 말하고 싶어요.

아주 좋습니다. 그럼 시간순으로 가볼까요?

세 작업 중 가장 오래된 건 2020년 작업이에요. 개인 프로젝트로 진행했던 〈한강, 다리, 서울〉입니다.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에 교각이 몇 개 있는 줄 아세요? 정답은 24개입니다. 매번 한강을 지나다니면 자동으로 보는 풍경이고, 요긴하게 이용하는 다리인데도 실제 이 교각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명확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더라고요. 한강의 교각을 주제로 그래픽 작업을 했던 예시도 찾아보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참에 한강에 있는 교각 24개의 정면과 측면의 형태를 흑백으로 간결하게 정리하고, 관련한 시각 정보를 한데 모아서 A0 크기의 거대한 포스터로 짜보았어요. 이건 전적으로 제 흥미가 발동해 진행하게 되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빛날 수 있는 곳에 보내주고 싶어요. 예를 들어 한강수자원공사 같은? 그래서 사람들이 한강의 교각에 대한 흥미를 갖는데 일조하고픈 마음이 있답니다.

〈한강, 다리, 서울〉, 2020

그럼 이제 두 권의 책 차례인가요.

지난 2021년 영등포에 있는 스페이스XX라는 전시공간에서 《모던 그로테스크 타임스》라는 전시가 열렸어요. 그 전시의 코디네이터였던 이혜원 씨와 한아임 씨는 전시의 일환으로 그로테스크와 현대성 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괴물성’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됐어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미 알렉사 라이트라는 영국 작가가 『괴물성: 시각 문화에서의 인간 괴물』이라는 책을 영어로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판권을 사고, 번역본을 출간했는데 제가 그 책의 디자인을 맡게 됐어요. 책 내용이 진지하고, 예산이 무척 적어서 흑백으로 출판하고 책날개 부분까지 없앴는데요. 그런 제약이 도리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지금까지 주로 하던 색과 이미지 쓰기에서 벗어나, 한정된 서체와 간결하고 조용하면서 무게감 있는 그리드에 맞춰 디자인을 진행했어요. 이미지의 기교로 눈길을 끌던 기존 스타일을 절제하는 데 성공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디자인의 스펙트럼이 더욱 넓어지고, 관심을 가지던 타이포그래피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죠.

『괴물성: 시각 문화에서의 인간 괴물』, 2021
《작은 불화》 전시 도록, 2022

빡도에게 굉장히 의미 깊은 프로젝트네요. 그럼 다른 책은 무엇일까요.

지난 2020년 7월 탈영역우정국에서 《작은 불화》라는 전시가 열렸어요. 아시아에서 활동하는 퀴어 작가의 작품을 모아서 단체전 형식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전시라 무척 의미가 깊었는데요. 당시 도록이 급하게 필요해서 아주 간단하게 떡제본으로 디자인했는데, 저도 그렇고, 주최 측도 그렇고 계속 아쉬움이 남아서 후도록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계속 나왔어요. 그래서 한국어 전문을 모두 영어로 번역하고, 전시에 참여한 작가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시각 자료를 받아 6개월 정도 조금씩 시간을 냈죠. 그 결과로 올해 4월 멋진 검은색 커버의 양장본 후도록이 정식으로 나왔답니다. 앞서 말한 『괴물성: 시각 문화에서의 인간 괴물』 이후에 작업을 진행한 만큼, 조금 더 노련한 시선으로 글자와 이미지의 관계를 편집 디자인으로 풀어낼 수 있었어요. 특히 트레이싱지를 삽입하고, 검정 커버천에 흰색 잉크를 찍는 등 전에 시도하지 못하던 물성 실험을 좀 더 적극적으로 탐구했다는 점이 참 좋았어요. 게다가 전에는 감추려고만 했던 퀴어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좀 더 정직하게 드러내며 도록 작업을 통해 전시에 일조한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도 무척 의미가 깊었고요. 여러모로 뜻깊은 책을 만들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업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저희가 내부에서 기획해 선보이는 첫 번째 프로젝트에요. 바로 이끼 분재 ‘도담이끼’입니다. 우선 저희 멤버는 자율도 모양의 오브제를 출시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어요. 디자인 섬이 시각적으로 물성 있는 오브제가 되어 나타나는 거죠. 그러다 충북 단양에 있는 도담삼봉(島潭三峯)이 눈에 들어왔어요. 마침 저희가 세 명이라서 세 개의 봉우리 모습이 무척 잘 어울리는 거 있죠. 거기에 ‘이끼 터널’이라고 이끼로 덮인 터널이 있는데, 이를 합쳐 이끼 분재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고요. 저희 프로젝트가 단양의 도담삼봉에 기원을 두고 있으니 스토리부터 재료까지 단양에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방곡도예촌이라는 도자 마을을 찾아 갔죠. 그곳에 있는 현운요에 충청북도 도예 명장인 조태영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단양을 이틀 정도 방문하고 조태영 명장님을 만나 뵌 후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그릇을 만들어주시기로 하셨어요. 이제 그 그릇에 이끼를 담는 거죠. 이런 스토리를 가진 도담이끼는 지금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 중이에요. 펀딩 소개를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화려하게 시각물을 작업했어요. 다른 분재 소개를 보면 차분하고 정갈한데, 저희도 그렇게 하면 재미없으니까요! 다음 주소로 오시면 도담이끼를 만나보실 수 있답니다.

빡도는 2012년 PaTI 예비학교에 참여한 세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예비학교는 어떻게 알게 되어요?

고등학교 2학년 수업 중 본인이 훗날 하고 싶은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일이 있었는데요. 그때 교장 선생님이 날개와 친분이 있어서 날개 메일을 알려줬고, 인터뷰 요청을 메일로 드리니 날개집에서 인턴을 하라고 답장이 왔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출근하기 시작했답니다. (웃음) 주 업무는 날개집에서 근무하는 대학원생과 책도 정리하고 회의도 하는 거였는데 당시 하얀이 대학원생으로 있었어요. 그때가 해 넘어가는 겨울이었는데요. 제가 19살이 되니 동갑인 김단, 이규찬이라는 친구가 날개집에 왔고, PaTI라는 교육기관의 예비학교를 하게 되었다고 하얀이 그러더라고요. 이후에 예비학교가 시작하고 저는 다니던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날개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조 역할도 하고 수업을 듣기도 하는 반 조교 반 학생처럼 1년을 두 친구와 함께 보냈어요.

예비학교 생활이 궁금하네요. 저도 열렸다는 것만 알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자세히 모르거든요.

그때가 벌써 10년 전이라…차근차근 생각해볼게요 (웃음) PaTI가 파주에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에 어떤 커리큘럼으로 운영할지 시험해보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방과후교실처럼 작은 규모로 여러 스승이 와서 수업을 했는데, 주로 드로잉 수업이나 손으로 작업하는 일이 많았어요. 순천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길 위의 멋짓’이 그때부터이지 않았나 싶어요. 편집 디자인이나 기초 디자인 수업 이런 건 많이 없었고요. 무엇보다 저는 기존 학교에 다녀야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수업에 참여를 많이 못 했어요. 그렇지만 PaTI의 구조나 수업의 방향성을 실제 모델로 구현하는 중요한 과정이었고, ‘생각하는 손’, ‘0에서 0으로, ‘한배곳’, ‘더배곳처럼 파티의 중요한 이념과 단어가 이때 정의되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히 수업만 하는 것 같지만, 내부에서는 상당한 정립 과정이 진행되고 있었죠.

PaTI 예비학교 시절, 2012

PaTI에 1기로 입학했어요. 처음 시작하는 교육기관에 입학하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닌데, 어떤 점이 빡도의 마음을 움직였나요?

처음엔 저도 어떤 곳을 갈지 고민하고 있었어요. 마침 예비학교가 끝나갈 즈음 하얀이 “너도 내년에 PaTI 들어올래? 지원해봐”라고 말했죠. 그래서 ‘나는 그냥 지원하면 바로 붙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옆에서 뭐 하는지 지켜보기도 하고 당시에는 어도비 툴을 처음 만져볼 때라 디자인에 대한 호기심이 상당했는데 날개집 조교들이 멋진 작업을 많이 만들어내니 자꾸 따라 하고 싶은 거 있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PaTI에 입학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오리엔테이션을 하니까 저도 다른 지원자와 똑같이 경쟁해야 하더라고요. 저는 예비학교를 했기 때문에 정말 합격 베네핏이 있는 줄 알았어요. (웃음)

PaTI 초반만 하더라도 정말 좌충우돌하는 일이 많았죠. PaTI에 다니면서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면 공유해줄래요?

그때는 많이 웃고 떠들면서 수업했던 것 같아요. 저는 통학길이 멀어서 매일 오랫동안 버스와 지하철을 탔던 게 기억나요. 제 집이 수원이라서 파주까지 통학하려니 두 시간씩 걸리는 거예요. 이후에 그나마 외가댁이 서울 금천구에 있어서 거기서 통학했는데 그래도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더라고요. 지금 같으면 자취하며 통학 시간을 줄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1기로 들어왔지만 3기로 졸업했어요. 2학년 수업에 김성원, 김정옥 스승의 ‘난로 만들기’ 수업이 있었는데요. 친구들과 밤을 새워가며 몰탈을 만들고 난로를 제작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무거운 재료를 옮기고 몰탈기를 낑낑대며 만들던 난로는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투박해 보여도 정말 열심히 만들었거든요! 몸을 가장 많이 썼던 수업이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 만들자고 하면 상상도 못 하겠어요. (웃음)

친구들과 이상집 화목난로를 만드는 모습, PaTI 이상집, 2016

PaTI에서 즐겁게 들었던 수업과 지금도 계속 기억나는 스승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즐겁게 들었던 수업은 방금 말한 기억나는 추억으로 대체하고 이번에는 반대 얘기를 해보겠어요. (웃음) 저는 1기 때 들었던 헬무트 슈미트 스승의 타이포그래피 수업이 가장 추억에 남아요. 저는 그렇게 무서운 수업은 처음이었어요. 하하. 슈미트 스승이 소프라노 조수미를 좋아해서 조수미의 모차르트 앨범을 타이포그래피로 표현하는 수업을 했어요. 당시 한 학생이 작업물 검사를 기다리다가 탁구대(당시에 탁구대가 테이블로 쓰이기도 했어요.) 위에 놓인 슈미트 스승의 책을 들고 봤는데요. 그 모습을 본 슈미트 스승이 아주 크게 화를 냈어요. 그냥 화를 낸 정도가 아니라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분노하고선 그대로 밖을 박차고 나가서 모두가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조용했던 분위기가 갑자기 어수선해지고 모든 게 얼어붙던 순간이었죠. 저희는 당시 PaTI가 입주해 있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건물 여기저기로 슈미트 스승을 찾아다녔고, 어느 테라스에서 밥 먹는 슈미트 스승을 발견했어요. 배우미들은 모두 슈미트 스승을 마치 더 이상 못 돌아다니도록 포위하듯 빙 둘러싸고는 이후에 어떻게 할지 몰라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때마침 통역을 맡고 있던 두루미가 헐레벌떡 쫓아와 슈미트 스승과 한참을 이야기했어요. 결론은 본인의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탁구대 위에 놓인 책을 봤던 배우미는 어안이 벙벙해서 본인이 잘못한 게 맞냐고 여럿한테 물어보더라고요. 이렇게 (안 좋은 이유로) 수업이 중단된 경우는 처음이라 정말 두 번은 없어야 할 일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어요. 지금은 돌아가신 슈미트 스승이 너무나도 그리워요. 그때 수업이 디자인하는 지금도 많은 참고가 되고 있고, 참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 수업을 듣게 된다면 슈미트 스승에게 그때보다 더 좋은 디자인으로 조수미의 모차르트 앨범 작업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제가 작업물을 종이에 출력해서 가져오면 연필로 세심하게 수정할 부분을 체크해주던 슈미트 스승의 앉은 모습이 지금도 불현듯 떠올라요. 10년이 다 되는 지금도 아주 아주 진하게 기억에 남아있어요. 또 1학년 때 김유선 스승의 워크숍이 열렸는데요. 내적인 고민과 고통, 드러나지 않았던 자기 이야기를 끌어올려 작업으로 표현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발표 시간에 작업을 설명하는 데 정말 자연스럽게 자신의 드러나지 않은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많이 우는 친구도 있었는데 그게 꼭 슬퍼서가 아니라 후련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배우미가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도록 그 내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과정을 같이 겪을 수 있는 스승이 얼마나 될까요. 김유선 스승은 비록 2주일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걸 도와줬던 스승이었어요.

그리운 헬무트 슈미트 스승
2015년 타이포그라피 수업에서

졸업 배우미로서 PaTI의 장단점을 꼽아볼 수 있을까요? 

다른 학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PaTI는 PaTI만의 개성이 넘치고 주변에서 특별하게 생각해요. PaTI 자체를 특별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졸업생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작업을 할지 꽤 궁금해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배우미 각자가 고민한 지점을 디자인과 연관 지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만들기도 하고요. PaTI는 디자인 외에 다른 것도 많이 배우지만, 졸업하고 나면 그것들이 상당 부분 연관이 되는 것 같아요. 디자인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도 졸업 후 자기만의 물성과 재료를 찾아 디자인적으로 연결 지어 놀라운 일의 연속을 만들기도 하고요. PaTI의 자유롭고 다양한 수업이 근본이 되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아직 접근성이 별로 좋지 않아요. 학교에 가고 싶어도 거리가 큰 부담이 되어서 저도 졸업하고 거의 가보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인원이 적다 보니 수업에 여러 명이 빠지면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티가 많이 나서 수업에 들어온 배우미가 수업 내내 스승과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점이 있죠. 서로 좋아하지 않은 배우미가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프로젝트에서 배제하고, 뒤에서 좋지 않은 말을 퍼뜨리거나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해주지 않는 일이 생길 때도 계속 마주치고 봐야 하니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지점이 있어요.

PaTI에서의 경험은 빡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파티에서 배웠던 수업 중 저에게 크게 작용한 수업과 스승이 있어요. 그때 느낀 감정과 테크닉, 조언 등이 큰 영향을 주어 지금도 그런 생각과 접근으로 일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듣거나 볼 땐 쉬웠는데, 내 것으로 소화해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아요. 언젠간 그런 게 정리가 되면 훌륭한 작업이 더 많이 나오겠죠?

빡도에게 PaTI는 어떤 의미를 지닌 곳인가요? 

저의 10년은 PaTI와 함께했어요. 졸업한 이후에 이렇게 마친배우미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지금도 PaTI와 인연이 있는 거니까요. 이렇게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은 없었어요. 그만큼 저의 일부가 되었고, 지금도 많이 생각나는 곳이에요. 장소가 아니라 마치 사람처럼 느껴져요. 움직이지만 않을 뿐. (웃음)

지금 PaTI를 다니는 배우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부탁해도 될까요?

지금 어떤 재미있는 작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졸업 후 선배가 거의 없어서 어떤 걸 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 같아요. 지금 PaTI를 다니는 배우미는 먼저 졸업한 배우미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함께 즐거운 협업도 하고, 계약서 때문에 고통받는다든지 시간과 돈을 들여 힘들게 업체를 구한다든지 등등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많이 받았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즐겁게 PaTI를 다녔으면 좋겠어요. 학교 밖은 즐겁지 않은 일이 많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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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장비 제작 업체인 ‘이지송구(EZSG)’ 로고 디자인, 2021
(좌) ‘프라이드 엑스포’ 공식 포스터, 2021
(우) 최정원 작가 개인전 《HIV 감염 7주년 축하 RSVP》 전시 포스터, 2021

빡도를 보면 자유롭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계속 파내려가는 모습이 떠올라요. 혹시 빡도가 설정한 자기 삶의 방향과 태도가 있을까요?

무엇보다 퀴어 디자이너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어요. 퀴어 디자이너가 제 전부는 아니지만, 저의 큰 부분이에요. 평범한 사람에게 한국은 살기 괜찮은 나라예요. 하지만 소수자로서 한국 사회를 바라보면 너무나도 혐오가 많고 법적으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받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반인 가면을 쓰고 조용히 지냈어요. 그게 사람들과 섞여 살기엔 편하니까요. 그런데 이미 자기 목소리를 가지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들을 보고 저도 좀 더 목소리를 내는 데 힘썼던 것 같아요. 대표적인 작업으로 《동성캉캉》, 《HIV 감염 7주년 축하 RSVP》, ‘프라이드 엑스포’, 《작은 불화》와 관련한 디자인 등이 있죠. 사회적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직업이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제가 저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지 않으면 누가 해주겠어요? 저는 스스로 표현하는 것들이 좋아요. 그리고 제가 좀 관음적이어서 그걸 본 타인의 반응을 보는 걸 제일 재미있어한답니다.(웃음)

빡도의 꿈이 궁금해요. 앞으로 어떤 것을 성취하고 싶나요?

스튜디오 자율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많은 작업을 하고, 자율도가 하나의 플랫폼이 되어 많은 사람이 자율도의 기러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율도는 점점 더 큰 섬이 될 겁니다.

몇 년 후 빡도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요? 요즈음 생각하는 미래 계획이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5년 전 저를 돌아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보면 부끄러운 행동과 작업도 있고, 반대로 지금은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좋은 생각과 작업이 있기도 했죠. 중요한 건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다 ‘저’라는 거예요. 저는 어쨌든 표현하는 사람이라 작업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요. 좋은 작업은 시간이 갈수록 나오는 게 아니라 제가 이미 축적한 경험이 좋은 작업을 만드는 요소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려고 해요.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저의 계획입니다. 제 성향이 워낙 진취적이라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해요.

그 계획에서 스튜디오 자율도 또한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겠네요.

맞아요. 여러분에게 놀러 오라고 했지만, 결국에는 놀러 올 수밖에 없는 멋진 디자인 섬으로 만들고 싶어요. (웃음) 자율도는 앞으로 좋은 기획과 이야기에 디자인을 얹히고, 거기에 손맛이 들어간 공예 작업을 통해 멋진 오브제와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어떤 것 하나가 전체를 잡아먹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마치 요리와도 같죠. 그리고 그 과정이 각자 스스로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희가 또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재료니까요.

빡도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궁극적인 미래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코로나로 특정 배달 앱이 커지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그로 인해 너무 비싼 비용이 배달 요금으로 책정되는 사회적 문제를 다룬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누군가의 독점, 다양한 존재 가치와 시장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2013년 PaTI에서 만났던 홍콩 디자이너, 스탠리 웡이 한 말처럼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그 감각(sensation)이 바로 헬무트 슈미트가 말한 디자인적 관점에서의 태도(attitude)이지 않을까요? 그런 감각과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뉴스레터로 보기만 하던 마친배우미 인터뷰를 직접 해보니 소감이 어때요? 

제 생각과 PaTI에서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소개할 수 있는 자리라 정말 좋았어요. 다른 배우미의 인터뷰도 굉장히 좋았는데, 제 인터뷰도 그렇게 보일까요? (웃음) 원래 누군가가 저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하면서도 동시에 ‘아, 사실 딱히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뱉었으니 진짜 이렇게 살아야겠다’라며 저에 대해 그 순간 정의해버리는 게 많았는데요. 이번에는 그동안 가졌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소한 내적 기쁨이 있었답니다.

마지막으로, 못 한 말이 있다면 마음껏 해주세요!

저희 사무실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있으니 근처에 오면 부담 없이 편하게 놀러 오세요! 누구든 기러기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아나요? 커피 마시러 왔다가 신나고 멋진 일을 함께하게 될지!

↓  인터뷰 영상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ju Typography Institute, PaTI)은 2013년 봄, 파주에서 움튼 독립 디자인 학교입니다. 새로운 디자인 교육의 필요성에 동감한 시각 디자이너 안상수와 여러 스승이 꾸린 교육협동조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혜와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무권위와 무경쟁을 지향합니다. 배우미는 스승과 함께 학교를 디자인하며 스스로 뜻한 바를 자발적으로 성취합니다. PaTI는 일반 대학에 준하는 4년제 바탕 과정 ‘한배곳’과 대학원에 준하는 2년제 심화연구 과정 ‘더배곳’, 1년제 ‘PaTI.is(일러스트레이션)’, ‘PaPA(프로덕션디자인)’ 특별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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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28.나무날
인터뷰·글: 전종현  |  편집·발행: 박하얀
영상 촬영·편집: PaTI 영상연구소 이형곤
Paju Typography Institute C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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